[찬샘통문 Ⅲ-21]시드니 중국시장에서 본 계왕개래(繼往開來)
얼마 전, 시드니 차이나타운을 둘째아들네와 함께 유유자적 걷다가 시장입구에 세워진 대문에서 낯익은 문구를 발견해 화들짝 놀랐다. <계왕개래>(繼往開來)의 뜻을 아시는가? 한자를 풀이하면 금세 이해할 수 있는 성어(成語)이다. 지나간 과거의 훌륭한 전통과 학문을 이어받아-繼, 앞으로 올 미래의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開來는 뜻으로, 언젠가 졸문을 쓴 기억이 있다. 그 뜻으로만 말하자면,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동의어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말의 출전을 따지면 두 성어보다 훨씬 더 거창하다.
아주 간단하니, 잠깐 한문공부를 해보시는 것은 어떠한가? 송나라때 유학자이자 성리학의 기틀을 다진 장재(張載, 1020-1077년)가 지식인의 사명과 학문의 목적을 4가지로 압축해 표현한 글에서 유래한 것이다. 장재는 익숙한 이름이 아니지만 ‘장횡거’라면 알 법하다. <횡거사구>(橫渠四句)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위왕성계절학 위만세개태평>(爲往聖繼絶學 爲萬世開太平)을 줄인 것으로, 지나간 성현들의 끊어진 학문을 이어받고(繼), 만세를 위해 태평성대를 연다(開)는 뜻이다. 멋지지 않는가? 나는 이런 것이 ‘진짜 멋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별난 취미(趣味)라고 실룩거리지는 말기 바란다.
시작한 김에 <횡거사구> 앞부분 원문도 보자. <위천지입심 위생민입명>(爲天地立心 爲生民立命). 무슨 뜻인가? 천지를 위해 마음을 (곧게) 세우고, 백성들을 위해 목숨(바른 삶)을 세운다. 여기에서 '세운다'는 '뜻을 세우다(立志)'의 뜻. 최소한 지식인이든 지성인이든 정치가든, 이 땅의 '선비'라면, 이 정도의 마음가짐을 갖고 학문에 임하고 정치를 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그 놈의 잘난 기득권이 뭔지는 몰라도 ‘(서울)특별시민’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조금이라도 자기들에게 손해가 될 것같으면 요지부동(搖之不動)이 아니던가.
아무튼, 이 마당에서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캐치프레이즈 <Unique Origin, Unique Future>가 불쑥 생각난 것은 ‘영원한 홍보맨’이기 때문일 터(실제로 2002-2014년 홍보전문위원으로 일했다). <유일한 학통(學統), 굉장한 미래>라 번역하면 밋밋해 전혀 '맛'이 없다. 개교(開校)가 아니고 ‘1398년 건학(建學)’을 주창하며, 620년이 넘은 유일한 대학이 초일류기업 삼성과 함께 ‘굉장한 미래’를 꿈꾸는 대학. 굳이 번역을 하자면 <전통(傳統)과 첨단(尖端)의 조화(調和)의 대학> <아주 오래된 미래의 대학>으로 의역할 수 있겠으나, 나는 <온고지신>이나 <법고창신> 또는 <계왕개래> 등 사자성어로 번역하는 게 더 의미가 맞고 옳다고 생각한다. 옛 것을 연구하여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낸다는 온고지신,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 옛 성인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후세 학자들에게 전하고, 지난날의 사업을 계승하여 앞길을 개척한다는 계왕개래, 결과적으로 모두 같은 뜻으로,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를 여는 정신을 상징하면서,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계왕개래> 큰 글자 위에 <CONTINUE THE PAST INTO THE FUTURE>라고 작게 쓰여진 영어글씨를 자칫 보지 못할 뻔 했다.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로 가자’는 의미로 ‘계왕개래’를 번역하는 것치고는 제법 세련되게 한 듯했다. 과거가 없는 오늘이 있을 수 없고, 오늘이 없는 내일과 미래가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가 아니겠는가. 과거(역사)에서 배울 줄 아는 국민과 민족 또는 나라에는 희망이 있고 앞날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을, 위의 3개의 사자성어가 우리에게 ‘큰 팁’의 지혜를 주고 있는 것같지 아니한가. 계왕개래, 좋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