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찬샘통문 Ⅲ-23]잊히거나 잊거나 한 ‘시절인연’ 친구들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26.06.23|조회수111 목록 댓글 0

[찬샘통문 Ⅲ-23]잊히거나 잊거나 한 ‘시절인연’ 친구들

 

 

 

초계 최가의 중시조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 1482-1536) 선생의 필적. 조선명필첩에 실려있다. 정암 조광조와 도학정치를 꿈꾼 '낙중군자회' 멤버로, 전남 화순 동복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해제후 벼슬을 하지 않고 하서 김인후, 미암 유시춘 등 후학 양성을 했고, '적벽'이름도 명명했다. '호남 유학의 종장'으로 불리는 학자이다.

엊그제 막역한 친구와 ‘소바’로 점심을 하면서 나눈 이야기에 ‘한 느낌’이 있었다. 붓글씨 30년 내공에 처음으로 서예개인전을 준비하는 친구 왈 “초대장을 직장관계로 알았던 많은 분들에게 보냈는데, 그것을 보고 반드시 축하답장을 보낼 것으로 믿은 분들의 ‘묵묵부답’을 보면서 ‘내가 세상을 잘 못살았나?’하는 마음이 들더군. 그런데 그렇게 친했다고 생각지 않은 동료나 후배들이 의외로 단톡방도 아닌 개인카톡으로 축하한다는 댓글을 보낸 걸 보니 ‘내가 세상을 잘 살았나?’하는 생각도 들데” “하하. 그래. 그렇겠지. 내가 재작년 출판기념회를 2번 하면서 느낀 심정과 똑같네. 그때 ‘인심(人心)이란 게 그런 것인가’하는 생각을 하게 됐네. 당연히 달려와 축하해줘야 하는 친구는 오지 않고, 건너건너 소식을 들은그렇게 친하지 않던 친구가 직접 와 축하해주며 봉투까지 내미는 친구를 보면서 느낀 생각과 비슷할 듯하이”

 

집에 돌아와 컴퓨터책상에 앉으니, 이번달 초 호주 호텔에서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우정’(友情)에 대해 나누었던 한밤의 대화내용이 생각났다. 친구의 무심함(무배려)과 어떤 배신감에 친구를 포기했다는 아들의 고백에 나는 “그때는 그때,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생각하고 과도하게 마음에 상처를 받지 말라”고 말했다. 그 ‘시절인연’이 떠오른 것이다. 한때는 오랜 친구와 소원해지면서 몇 달간 멘붕을 겪기도 했던 대표적인(?) 4건의 시절인연을 되돌아본다.

 

#1. 중학교 2학년(특수반) 시절부터 완전 절친인 친구의 이야기이다. 나란히 명문 전주고를 떨어지고 익산(이리) 명문고 야간이 있다길레 둘이 전주에서 걸어간 적도 있고, 고등학교를 같이 입학. 1년을 다닌 친구는 휴학을 해 7회로 졸업했다. 휴학때 울산을 찾아가 방어진 해수욕장에서 수영도 못하면서 물놀이하다 죽을뻔했다. 문학청년인 친구와 예비고사 직후 ‘2인동인시집 맥아(麥芽)’를 등사기로 밀어 펴냈다. 친구는 천재시인같이 시를 60여편 쏟아냈고, 나는 옆에서 흉내만 냈는데, 각각 10편의 시를 묶어 국어선생님에 드렸는데 핀잔만 들었다. 학교신문을 창간한 친구 덕분에 독후감 한 편이 활자로 처음 등장했다. 대학 진학에 왜 실패했는지 이유는 분명치 않는데, 이후에도 자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조금씩 선병질적인 ‘증세’를 보여 피하고 싶었다. 84년 겨울 나의 결혼식에 온 이후 뜸했는데, 어느날 직장(동아일보)으로 찾아와 환청에 시달린다며 나의 목을 진짜로 죽일 듯 졸라 기겁을 했다. 몇 십년후 그를 전주 막걸리집에서 처음으로 만나 진솔한 얘기를 들었다. 결혼도 못했으며 정신병원에서 17년을 지냈고, 현재는 경비 등을 하면서 ‘포도시’ 살고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눌 화젯거리가 없어 민망하게 헤어진 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젊을 때 얼마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는데, 만나본들 처지(입장)가 처지이다보니, 만난다해도 어색할 듯하다. 그도 내 소식은 어떻게든 알고 있을 터인데. 그렇게 청소년시절 친했던 중학교때 친구를 잃어버렸다.

 

#2. 고교시절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 함석헌 선생의 책을 많이 읽었다. 그분의 <그사람을 가졌는가> 시는 우정에 관한 것인데, 평소에 친구 세 명만 있으면 잃었던 나라도 찾을 수 있다는 각오로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에 감명을 받았다. 3년내내 3명만 사귀었다해도 과언이 아니게 ‘3총사’로 지낸 친구들이 있다. 그러니 53년이 됐는데, 10여년 전 한 친구가 암에 걸렸다. 그 소식을 들은 한 친구가 암에 걸린 친구의 아들에게 아버지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은 후, 그 친구에 대해 ‘오만정’이 떨어졌다. 왜 그랬냐고 묻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밖에 안되는 친구라면 이미 친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둘이 그동안 좀 소원했다쳐도 절체절명의 병명을 안 이상, 최소한 문병은 와야 의리이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일로 그 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았고, 나의 친구 명단에서 지워버렸다. 투병 중인 친구와도 그 친구 이름을 꺼내지 않은지 오래됐다. 고교때 절친한 친구를 우정으로는 내가 버렸지만, 어쩌다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친구와 인척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는 일이다.

 

#3. 대학을 두 군데 다녔는데, 상경해 다닌 대학에서 사귄 친구 이야기이다. 나의 대학친구로는 거의 유일한 편인데, 그 친구는 내가 진짜로 유일한 친구였다. 집안도 오갔기에 형제들의 안부를 물을 정도였고, 내 두 아들의 결혼식에 거금의 축하금을 보내기도 했는데, 정작 자기의 두 딸 결혼소식은 알리지 않았다. 그때도 화가 났지만, 그 친구의 개성이려니 하며 지나갔으나, 자기 어머니 돌아가신 소식을 알리지 않은 데는 기가 질렸다. 하여, 나도 어머니상을 알리지 않았다. 부인끼리도 잘 알지만 그 친구의 독특한 개똥철학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몇 년 동안 먼저 전화오거나 내가 전화를 한 적도 없지만, 이제는 친구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당연히 왕래를 한다거나 안부를 묻지도 않는데, 몇 년만에 떨떠름하게 데면데면하게 만난 일이 있기는 하다. 하하. 그러던 그가 어제 생일을 축하한다는 카톡이 왔다. 지독한 ‘공부벌레’로 대학교수를 하면서도 한의대 편입하여 한의사가 된 ‘공부왕’ 친구의 행운을 빌 따름이다.

 

#4.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까지 “참으로” 친했던 친구들을 내가 버렸거나 잊어먹은 경우가 세 번 있었다. 누군들 한두 명은 왜 없으랴. 이제 차례가 ‘사회친구’이다. 신문사 시절 날마다 붙어 살았던 친구가 있었다. 처음에는 소속부가 같고 동향(전북)이며 자치동갑이기에 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는데, 워낙 글을 잘 쓰는 친구여서 무작정 좋았다. 직장이 달라도 서울 천지에서 1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 술잔을 기울리고, 고담준론을 나누는 사이. 어쩌면 모두가 부러운 ‘우정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마음속으로 깊게 찢어진지 10년이 지났어도 그 친구 안부를 나에게 묻는 전화가 종종 온다. 그 친구는 아내의 의부증으로 가정적으로는 너무 불행한 ‘황야의 이리’였으나 마음으로는 늘 ‘책부자’이고, 지은 책도 ‘베셀’(베스트셀러)이 될 정도로 내로라하는 언론인이었다. 강산이 세 번 바뀐다는 30년이 어디 보통세월인가. 2015년 사소한 말다툼 하나 없었는데, 어느날부터 돌연 나와 소통을 끊었다. 핸드폰도 받지 않고 문자 메시지도 ‘읽씹’을 하고, 한 다리 건너 만나자해도 거절했다. 그 사건은 나에게 너무 큰 고통을 줘, 6개월간 멘붕에 시달린 후에야 아내에게 고백할 정도였다. 나는 지금껏 명확한 이유를 듣지 못하고 10년이 흘렀다. 물론 그 사이 아무 맥락없이 전화를 몇 번 하기도 하고, 한두 번 만나기도 했지만. 그 친구가 말하지 않는데 왜 그랬느냐? 묻고 싶지도 않았다. 정년퇴직한 이후에는 많은 동료들과도 끊고 지낸다고 하는데, 무언가 ‘도통한’ 사람이 아니고는 그럴 수 없는 일일 듯.

 

꽃피는 어느 봄날, 한 가족 "원단"이 단체티셔츠를 입고 모였다.

이렇듯, 네 명의 친구(중-고-대, 사회)들을 생각하면 가장 알맞은 단어가 ‘시절 인연’이다. 그때는 그랬지만 뭔가 ‘우리의 운대가 거기까지였고 성격이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치부하고 만다. 그래야만 나도 ‘살아가는 숨통’이 트이지, 거기에 연연하다보면 머리 골치가 띵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데, 기분이 나쁘거나 좋지 않는 것은 잊혀지지는 않겠지만, 생각을 빨리 지우는 게 방법이다. 하여, 얼마 전에 두 아들과 우정에 대해 나눈 얘기를 글로 정리할 때 이렇게 썼던 까닭이다. “두 아들아. 내가 대학 다닐 때 배운 영어 관용구 ‘Let bygones be bygones’(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내비두자)가 있다. 너희도 너무 마음 아파하거나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정에는 실패(失敗)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단지 즐겁거나 씁쓸하거나 잊고 싶은 추억(追億.메모리)만 있을 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노력 또는 포용, 그것이 아니라면 ‘그뿐’(한자로는 而已)이라고 생각해야, 내가(우리가) 편하고 해피해진다는 생각이다. 배려(配慮.consideration, thoughtfulness)는 아주 중요한 덕목(virtue)이다. 물론 최선(最善.best)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다. 대답이 길었다. 내로라하는 철학자나 문사들의 현란한 어록들을 참고할 필요는 없다는 게 아부지의 생각이다. 그런 것들은 순전히 '말장난'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절인연’ 친구들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자. 한 삶(70년이 될지 100년이 될지 누가 아는가)을 통과하면서, 마음에 맞는 길동무(도반, 道伴)들이 많아 희로애락을 같이 해나간다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 일인가. 아아-, 다음에는 한동네 꾀(깨)복쟁이 친구부터 초딩학교 동무들과의 ‘60년 우정’에 대해 써야 할까?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