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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92/180724]두 형제의 友愛 이야기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18.07.25|조회수249 목록 댓글 0

[新너더리통신 92/180724]두 형제의 우애(友愛) 이야기

첨부파일 슬푸다 (1).jpg첨부이미지 미리보기


 

7월 6일, 아버지 91회 생신이어서 고향에 내려갔다. 오랜만에 작은방을 정리하다 책상 서랍에서 아버지의 익숙한 글씨가 쓰여진 작은 종이를 한 장 발견했다<사진>. 작년 7월말 작은 아버지의 별세소식에 망연자실(茫然自失)하신 아버지, 당시 부의금 봉투 속종이에 쓰신 것이다.

 

<슬푸다/이 무슨, 청천벽역이야/나를 두고 먼저 간단 말이야/가는 마당에 말 한마디 못하고 이별이야/슬푸고 원통하구나. 후천세상에 만나자구나/이승에서 못다 이룬 한을 후천세상에서나/다 이루어라. 원통하구나. 원통하다/형이 씀 世哲/金 百萬원 旅費>

 

사실, 이 내용은 사촌동생이 장례식장에서 보여줘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 처음 쓰셨던 것인 모양이다. 아 그래, 벌써 1주년이 다 돼가는구나. 동생 죽음에 부쳐 부의(賻儀)를 하면서, 형으로서 슬픈 소회(所懷)를 밝힌 것이다. 동생의 황천길, 여비하라고 일백만원을 넣는 구순(九旬) 아버지의 울먹이는 어깨를 상상하니 새삼 가슴이 먹먹하다.

 

그렇다. 아버지는 숙부의 죽음이 참 난감(難感)하셨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신이 여덟 살 때부터 두 살 된 동생을 보살피고 가르치고 취직도 알선하고 분가(分家)까지 시켰으니, 80년이 훌쩍 넘는 세월(歲月)을, 세상에 단 두 형제가 같이 했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셨을까? 당신의 아버지는 만 30세에, 할아버지는 만 60세에 세상을 등지고, 천지간에 남은 사람이라곤 27세 청상과부 어머니와 두 살 동생이라니? 얼마나 막막하셨을까?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그 정상(情狀)만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돌고 만다. 이제 당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인생을 합해도 남는 세월의 수레바퀴(年輪)를 살아오시며, 장수(長壽)를 하고 계시지만, 동생의 오랜 노환(인지장애)와 죽음에 어찌 회한(悔恨)이 없었겠는가? 할아버지(아버지의) 생신이 5월 22일, 아버지의 생신이 5월 24일인데, 당신의 생신이 5월 23일로 가운데에 끼여 3대(代)의 생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렇게 되기도 드물거니와 참 희한하다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시곤 했다. 나는 그것보다 평생 흙에 등바닥을 붙여온 구십이 넘은 농사꾼이 동생의 가는 길에 노자(路資)하라며 조카들에게 ‘금일봉’을 주는 게 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형이 대한민국에 과연 몇 분이나 있을까?

 

아버지가 쓴 짧은 글을 나 혼자 보는데, ‘슬푸다’ ‘청천벽역’ 등 틀린 맞춤법이 무슨 상관이랴, 그 곡진(曲盡)함에 가슴이 더 미어졌다. 상할아버지가 5대 독자였기에 아버지쪽 친척들은 당연히 전무(全無), 세상에 의지할 데는 오직 형과 동생뿐인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두 분은, 아니 두 집안은 의(義)도 좋았다. 숙부는 ‘아버지’역할을 한 우리 아버지께 참 잘 하셨다. 그래서였을 터, 7년여쯤부터 ‘이쁜 치매’을 앓으셨으나, 다른 것은 다 기억을 못해도 고향에 사시는 형님(아버지)께는 하루에도 십수 번 안부전화를 하셨다. 금방 하고 돌아서면 잊어버려 다시 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성화를 대셨다. 그때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아프면서도 형님만 찾는데 전화라도 잘 받아주시라고 권하곤 했다. 동생을 여윈 슬픔은 1년여를 지나며 많이 엷어지셨겠지만, 그때를 생각하며 가만히 안아드리고 싶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고생 좀 덜하시고 85세까지 사셨으니 잘 가신 걸로 생각하시라고, 작은집 총생들도 다 잘 살고 있으니 됐지 않느냐고, 그러니 아버지 옥체(玉體)를 잘 보전(保全)하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이쯤에서 형제‧자매의 우애(友愛)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예로부터 형제의 우애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매의 우애는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보듯이 부러운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아무리 정이 돈독한 형제 사이라도 각자 가정(家庭)을 꾸리고, 제 살림들을 살다보면,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초심(初心)처럼 살지 못하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왜일까? 성씨(姓氏)가 다른 여자들과 같이 살아서일까? 아마도 그렇겠지만, 그것도 남자들 하기 나름일 터. 처음부터 ‘가정 운영(運營)의 묘(妙)’을 살리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하여, 아예 친형제들도 보기만 하면 얼굴을 붉히거나 아예 외면을 하며 사는 경우도 흔치 않던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늙어갈수록 오직 피붙이와 배우자만을 찾게 마련이라는데. 친구가 언제까지 같이 가겠는가? 반면에 여자형제들의 우애는 잘못되거나 뒤틀릴 경우가 거의 없다. 21세기 시류(時流)인 ‘모계(母系) 지향적’ 사회의 영향도 클 듯싶다. 노년에 같이 여행을 다니거나 아예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자매들도 많이 보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애들 얘기네 뭐네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하고, 건강 상담도 하고, 같이 분노하거나 슬퍼하고 기뻐하며…, 그들은 그제서야 자기들을 자매로 낳아 길러준 부모의 은혜를 절실히 깨닫고 느끼며 감격해 한다. 얼마나 보기 좋은 광경인가. 그 부모들이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볼 때, 당신의 총생들이 저렇게 다정다감,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을 보면 한없이 흐뭇해 하지 않을까. 아버지가 ‘슬푸고’ 원통하다며 후천세상에 다시 만나자고 하시는 것처럼, 모름지기 형제는 사랑하고 또 사랑할 일이다.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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