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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의 감상시 28]이선관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19.09.17|조회수187 목록 댓글 0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가령 손녀가 할아버지 등을 긁어준다든지

갓난애가 어머니의 젖을 빤다든지

할머니가 손자 엉덩이를 툭툭 친다든지

지어미가 지아비의 발을 씻어준다는지

사랑하는 연인까리 입맞춤을 한다든지

이쪽 사람과 윗쪽 사람이

악수를 오래도록 한다든지

아니

영원히 언제까지나 한다든지,

어찌 됐든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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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과 살이 닿는다'는 말은

요즘말로는 '스킨십(skinship)'일 터.

'옆지기'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람'

조선시대 예법책에는

시집 장가가는 첫날밤 방(房)풍경을 이렇게 기술해 놓았다.

짓궂은 동네 구경꾼들

창호지 문짝에 침을 묻혀 구멍을 뚫고

서로 엿보겠다고 소란을 떨며 한참을 시끄럽다가

이윽고 잠잠해지면,

새 신랑은 술 한 잔을 새각시한테 받고는

각시의 옷고름을 푸는구나.

서로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신강이 발가락으로 신부 발가락을 살짝 건든다.

그 짜릿한 스킨십이라니!

오매 환장허것는것!

어느새 대각선으로 누워 있던 두 몸뚱이,

하나는 이미 뜨거워졌고,

다른 하나는 더욱 더 수줍어졌으나

점점 가까워져 평행선을 이루다

결국은 '이층집'을 짓는구나.

방아를 찧는구나.


그렇다.

스킨십만큼 좋은 '소통'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의 뿌랑구(뿌리)도

사실 이 스킨십에 그 비결이 있지 않을까?

그까짓것 삼복(三伏)더위면 또 어떤가?

까실까실한 삼베빤쓰, 삼베이불 바스락거리는 소리,

청각까지 더욱 좋으니

흥분도 두 배가 된다.

죽부인(竹夫人)이 웬말이냐?

제 옆지기는 본체만체하고

제 마누라마냥 죽제품 껴안고 희희낙락하다니,

에라, 똥물에 튀겨 죽일 놈인저.

무식한 놈,

무식한 남정네여!

가물다고 어디 옹달샘이 마르던가?


그러니까 이선관 시인도

살과 살이 닿는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며

'참'자를 두 번이나 강조했을 터.

암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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