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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편지 2신/108신]환승역에서 조우한 벗에게

작성자알록달록|작성시간19.10.18|조회수146 목록 댓글 0

[은행잎 편지 2신]출근길, 지하철 환승역에서 우연히 만난 반가운 벗에게


생각지도 못했네. 출근길, 똥통의 고자리같이 버글버글한 군중 속에서 자네를 만나게 될 줄은 말야. 동대문운동장역 에스커레이터를 막 타려는데, 자네의 트레이드마크인 ‘ 희고 긴 눈썹’이 보이는 게 아닌가. 반가움에 불쑥 자네의 법명法名 '무성'을 부르니, 자네도 어지간히 반가운 모양이더군. 따지고 보면 만난 지 1주일도 안됐는데, 아주 오랜만에 만난 듯 하니, 우리 ‘전라고 남자’들은 대체 어떤 사이인가. ‘사귄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잖은가. 손을 잡고 한동안 몇 마디 나누고 헤어지는데 뒤가 돌아봐지는 사이라면 좋은 관계겠지.


지난 일요일 총동창회 체육대회 소식을 전하며 ‘유기농 된장 10kg’ 경품에 내가 당첨되었다고 하니, 자기 일처럼 좋아하던 그대는 “자네 손은 복손이기도 헌가봐”라고 말했지. 나는 그 말이 참 고마웠다네. 같은 말이라도 '똥손'이 아니고 ‘복손’이라니 얼마나 듣기 좋은가. 나의 글도 ‘복글’이 되어 다른 친구들에게 한가닥 기쁨을 주었으면 좋겠네.


생각해보면 자네는 참 결이 고운 사람이네. 말이 없는 듯 하면서도 주변을 밝게 해주는 사람, 술을 즐겨 마시거나 많이 마시지도 않는데, 늘 한 자리를 다소곳이 지키는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동네 애기들 볼때기가 다 자네의 장난감이라고 했던가. 나도 그렇다네. 자네의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 삼국지의 ‘백미’白眉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네. 거 왜 있잖은가. 제갈공명과 친한 마량馬良의 눈썹이 유난히 희었다던가. 마씨 5형제의 자字에 모두 ‘상’常자가 들어 있어 ‘馬氏五常 白眉最良’이라고 했다지. 어쩐지 흰눈썹의 연륜年輪에서 삶의 경륜經綸이 묻어나오는 듯 허이. 아니나다를까, 여러 벗들을 위하여 홈페이지에 간간히 풀어내는 불교의 세계를 읽으면 ‘한 감탄’씩 한다네. 부창부수夫唱婦隨,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했던가. 문자현 보살, 어부인(전라고녀)은 또 왜 그렇게 음전하신지. 둘 다 불심佛心이 두터울 뿐 아니라 한 달에 한번이랬나,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공부를 하신다고. 내심 부러웠다네.


지난 달 산행에서 만난 어부인조차 또 나를 기쁘게 했네. 1912년 어느 일본인이 찍은 석굴암 사진 말이네. 학교를 찾은 자네에게 판넬선물을 했는데, 안방에 걸어놓고 108배를 한다며 고맙다고 하질 않던가. 선물하고 보람을 느끼며 기분좋은 경우가 바로 이런 것이네. 우리 왕회장님도 영업장 카운터 벽에 떡 허니 걸어놓았더군, 그것뿐인가. 한문선생 친구는 피아노 위에 모셔놓고 사진까지 찍어 홈피에 공개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선물을 주지 못하는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어 잠깐 민망하기도 했었지. 나는 무엇이든 주거나 받거나, 친구들의 마음을 배려해주는 것이야말로 우정友情의 시초(실마리)라고 생각하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 좋네.


자네하고는 고3때 같은 반이었지. 팝송과 7080노래에 몰입하던 자네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나는 부러운 때가 많았다네. ‘하얀 나비’를 어찌 그렇게 잘 부르던지. 나중에 ‘카수’가 될지 알았네. 얼마나 팝송 등에 조예가 있었으면, 시내 유명 다방에서 여고생들이 가장 선망하던 DJ알바를 할 수 있었겠나? 아마 피카디리극장이었을 것이야. 김정호가 죽기 얼마 전에 리사이틀한 게. 고3인데도 처음으로 땡땡이를 치고 평일 낮시간에 그걸 보러 갔다네. 아마도 자네랑 같이 간 듯 싶으네. 대학 다닌다고 서울에 처음 왔는데, 맨먼저 종로1가 김정호가 운영한다는 카페 ‘꽃잎’을 찾아 어설프게 맥주를 기울이던 기억도 나네. 그때는 이미 죽었지만 말야. 요즘은 어느 자리에서든 김정호 노래를 부르지 않는데, 지난번 내가 억지로 조르는 통에 주옥같은 한두 곡 선사해주어 기뻤다네.


졸업을 하고 20, 30, 40대는 나름 바쁜 통에 그렇게 친할 기회가 없었지. 재경동문회가 생기고 초창기에 열성적으로 뛰던 자네 모습이 몇 커트 기억나기는 하지만, 우리가 자주 만난 것은 최근래지. 달포쯤 안보면 보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이고 좋은 일인가. 회장은 ‘만날 수만 있다면 매일이면 또 어떠냐’고 하여 사람을 감동시키던데, 실제 우리 관계가 그렇게 된 것은 한 마디로 대단한 일이네. 자네 생각나는가. 작년 4박5일 백두산白頭山 여행말이네. 비록 민족의 시원始原, 천지는 우천雨天으로 보지 못했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살다보면, 아니 죽기 전에는 한번 보게 되겠지. 문제는 부부 7쌍과 싱글 4명 등 동창 18명이 일시에 휴가를 내어 다른 나라를 다녀왔다는 것이네. 내가 자주 하는 말로, ‘이거 신문에 날 일이네’. 어느 친구는 그러더군. “전라북도 명문고(전주고)에 떨어지기를 참 잘했다”고 말야. 농담 속에 진담이 있다고, 그 친구가 거짓말하는 게 아님을 우리는 알지 않은가.


어허, 참, 출근길 지하철 환승역에서 우연히 한번 만난 걸 가지고 남자답지 않게 있는 수다, 없는 수다를 떨고 있네. 하지만, 정말 반갑더군. 요며칠 28도를 웃도는 초여름날씨를 보이다 오늘 봄비를 마침 뿌려주시니(하느님은, 아니 부처님은 고마우기도 하셔라) 기분이 차악 가라앉으며 자네에게 ‘난생 처음’ 편지를 쓰니 기분이 자꾸 오바되네. 어느 누가 사귄다고 할까봐 그만 접으려네. 아, 캠퍼스는 환장하게 봄꽃들의 합창이 한창이라네. 개나리야 진작 졌지만 진달래, 철쭉, 라일락꽃이 흐드러졌네. 우리의 아들 딸내미들이 수업시간 늦을까 총총거리며 달려가는 폼새들은 또 왜 그렇게 이쁜가? 사람들은 프레시fresh하고 자연은 청신淸新하기가 이를 데 없네. 그런데, 참, 자네가 여러 번 광화문에서 한 잔 사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내가 산다고 했던가. 우리 그 약속 조만간 지키면 어떻겠는가.  잘 지내시게.


2008년 5월 6일 꼭두새벽

                                                    우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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