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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lfkang 단편] 울프의 탁구 이야기

작성자hungrywolf|작성시간19.11.21|조회수132 목록 댓글 2

울프의 탁구 이야기,

첫 번째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철없이 천방지축 뛰어놀던 때였습니다. 자전거 폼쁘로 바람을 넣어야 하는 축구공 한 개로 2학년 전체 학생이 우르르 쫓아다니는 시골 중학교 학생 때였습니다. 전체 학년 합해서 겨우 6학급에 불과한 시골 중학교였지요. 축구공은 빵꾸 때운 곳이 혹이 나서 엇박자로 굴러가는 공이었고 나도 한번 차 보겠다고 졸졸 따라다녔지만 제대로 차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마을은 1970년대까지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였습니다. 이 마을 출신의 정치가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이유였겠지요.

그런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 집이었기에 나는 방과 후 시간을 외톨이처럼 보내곤 했습니다.

왜냐고요? 학교가 끝나면 놀 친구들이 없어요.

유성이는 꼴 베러 산에 가고, 승관이는 엄마랑 밭 매러 가버리고, 창수는 나무하러 가고, 친한 친구 상용이는 돼지 줄 음식물 얻으러 손수레를 끌고 읍내까지 나갑니다. 대부분의 친구는 농사일에 매달려 사는 집들이라 한가롭게 놀 시간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자전거 타고 매일 읍내로 출근하시고 밭 한 뙈기, 논 한 마지기도 없는 우리 집은 바깥 농사일이 없어요. 그렇다고 공부할 마음은 별로 없으니, 그저 냇가로 산으로 들판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지요. 동네 형들이 돌려보던 무협지는 유일한 독서였고 최고의 문화생활이었습니다. 사실 무협지에서 배운 것도 많습니다. 정파를 존중하고, 의협을 나누고, 무림영웅 흉내를 내기도 했고, 어려운 한자를 이해하였으니까요. 옥문이라는 생경하지만 달콤한 단어도 그때 알게 되었네요. 저는 모든 무협지는 전부 와룡생이 쓴 줄 알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조그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체육 선생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아담한 몸매에 딱 저의 눈높이에 맞게, 키도 비슷해서 교복을 입으신다면 우리 학교 여학생인줄 착각할 정도의 여자 선생님이었습니다. 햇볕에 그을려 촌티가 팍팍 나는 우리와 다르게 피부도 하얗고 얼굴도 매우 예뻤습니다.

내 생에 처음으로 가슴이 뛰는 순간을 느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우리학교 모든 남학생들이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감히 사랑을 느낀다거나 짝사랑을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순진한 저는 그냥 상상만 하던 좋아하는 여성의 이상향을 본 것뿐이라고나 할까요.

기적 같은 일은 여선생님이 오신 후 얼마 있다가 일어났습니다.

창고처럼 사용하던 빈 교실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그 안에 탁구대 한 대가 설치되었습니다.

탁구는 처음 접해보는 놀이기구였지요. 이에리사 선수가 사라예보에서의 승전보를 올리기 전이었습니다. 탁구를 스포츠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탁구가 놀이이든 스포츠이든 제게 상관없었습니다.

왜냐면, 탁구를 가르쳐 준다고 한 선생님이 바로 새로 오신 예쁜 여자 선생님이셨으니까요.

방과 후 한 시간씩 탁구를 가르쳐 준다는 게시판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달려가 신청했습니다.

중학교라도 예쁜 여자 선생님은 인기가 많게 마련이지요. 탁구 때문인지 선생님의 인기 때문인지 우루루 몰려들었습니다.

아뿔싸, 제 앞으로 50여 명이 먼저 명단에 이름을 올렸네요.

유성, 승관, 창수, 상용이 모두 농사일로 바쁘다고 후다닥 집으로 가던 놈들에게서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첫날, 설레는 마음으로 탁구 교실로 달려갔습니다.

헉! 교실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교실 안은 이미 학생들로 꽉 찼고 미처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이 복도에까지 죽 서 있었습니다.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매일 방과 후, 나 홀로 산에 돌아다니는 것도 지겹고 더 읽을 무협지도 없습니다.

기어이 줄을 헤집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은 파랑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추리닝을 입으셨는데 살짝 튀어나온 몸매가 아주 탄력 있게 보였습니다. 추리닝이라고 불렀던 트레이닝 운동복은 그때에는 진짜 선수들도 입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기억에 선이 세 개 있는 바로 그 상표 아디다X가 아니었나 생각 듭니다. 일반인들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브랜드였지요. 그때는 브랜드라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추리닝 위로 선생님의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엉덩이와 종아리가 매력적입니다. 여드름도 없는 어린놈이 뭘 알겠느냐 하겠지만, 그때 솔직한 느낌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가끔 까졌다는 표현을 할 때가 있는데 뭔가 알고 있거나 경험이 있는 친구에게 사용하는 말이었지요. 나는 까지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뭐가 까졌다는 건지 훨씬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만...

선생님은 가까스로 파고들어 간 제 성의를 몰라주고 모두 운동장으로 나가라고 하셨어요.

“자, 운동장 열 바퀴! 선착순으로 집합!”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운동장 트랙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하필 달리기입니까? 제게 왜 시련을 주시는지 원망스럽습니다. 농사일로 잔뼈가 굵은 제 친구들은 몸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잘 합니다. 약골인 저는 한 바퀴만 뛰어도 다리가 풀리고 하늘이 노랗습니다. 겨우 열 바퀴를 채웠는데 당근 꼴찌였지요.

“다시 열 바퀴 더!”

아무리 예쁜 선생님이지만 너무 하시네요. 이를 악물고 다시 열 바퀴를 달려……. 아니 걷다시피 했습니다.

탁구를 가르쳐 주신다고 하더니 운동장만 돌게 합니다. 다음날도 또 열 바퀴 또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헉! 탁구 하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미처 몰랐어요. 운동장 달리기만으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탁구 배우겠다고 신청했던 학생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습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자 반으로 줄었습니다.

제가 약골처럼 보여도 깡은 제법 있어요. 오기 하나만으로 버티는 깡다구입니다. 당당히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지요. 그런데 여선생님이 아니었어도 살아남았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합니다.

 

 

울프의 탁구 이야기.

두 번째

 

드디어 탁구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탁구 빠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연필 잡듯이 가볍게 잡은 후, 휙휙 휘두르라고 하는데 각이 잡히지 않아 어색합니다. 그래도 폼 나게 휘둘러봅니다.

탁구대 한 대에 20여 명의 학생들이 배우니까 탁구대 앞에 한 번 서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순서를 기다리다 몇 번 팔을 휘젓고 나면 차례가 끝나버립니다. 폼 잡고 연습한 스윙은 제대로 한 번도 못해보고 볼 맞히는데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사팔뜨기가 될 때까지 공을 노려봅니다.

애들이 많으니 볼 줍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 탁구대 주변에 둘러싸고 있다가 공이 튀어 오면 서로 주우려고 몸싸움이 납니다. 어떻게든 공이라도 한번 만져보고 싶은 거지요, 아니면 여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것이지요.

어쨌든 똑~딱, 똑~딱 하던 소리가 빨라지고 랠리도 제법 길어지면서 탁구의 재미에 홀딱 빠졌습니다. 예쁜 선생님이 칭찬이라도 해주시는 날에는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방에 누우면 천장에서 하얀 탁구공이 오락가락합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을에 건장한 청년들이 몰려 왔습니다. 전주에 있는 대학교의 4H 클럽 회원들이 농촌 봉사활동 차 마을에 왔다가 학교를 찾아 온 것입니다.

우리가 탁구를 연습하는 것을 보고 4H 클럽 회원 중의 한 청년이 시합하자고 요청해왔습니다. 물론 우리 중에 시합할 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젊은 청년은 은근히 예쁜 선생님에게 한판 붙자는 속셈입니다.

수상한 냄새가 납니다. 예쁜 우리 선생님을 꼬시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기분 나쁘지만 나보다 훨씬 큰 젊은 청년을 어쩔 수는 없지요.

이런 것을 연적이라고 해야 하나요? Rival of love!

삼각함수는 이때부터 싫어했습니다.

한편으로 우리 선생님의 탁구 실력이 궁금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학교에 장학사님이 오신다고 하여 무릎까지 내려오는 빨간 치마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옷을 핑계로 얌전하게 거절을 하셨습니다.

정식 탁구 게임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우리는 진기한 구경거리를 놓치게 되겠지요. 우리는 입을 모아 선생님을 졸랐습니다. 마침내 선생님께서 마지못해 수락하셨습니다.

“그럼, 한 게임만 해 보겠습니다”

청년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습니다. 아무래도 탁구보다 우리 예쁜 선생님께 어떻게든 접근해 보려는 속셈이 드러나 보입니다. 청년은 가방에서 탁구 빠따를 꺼냈습니다. 빨간빛이 선명한 나비마크의 탁구 빠따입니다. 나는 저절로 탄성이 질렀습니다. 우리가 연습하는 빠따는 투박하고 고무가 너덜거리고 여기저기 찍힌 상처 자국이 나 있는 데다 손잡이도 때가 잔뜩 묻어 있어서 시커멓습니다. 당시는 탁구라켓이라는 말도 모르고 그냥 빠따 아니면 탁구 채라고 불렀습니다.

젊은 청년이 재킷을 벗으니 건장한 어깨에 근육이 울퉁불퉁 권투 선수 같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제 눈길을 끈 것은 바로청년이 입고 있는 붉은색의 운동복입니다. 유니폼이지만 그때만 해도 모든 것이 다 운동복으로 통했고 축구나 야구에만 유니폼이 있지 탁구에도 유니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었지요.

청년은 가볍게 몸을 돌리고 스윙을 여러 번 하면서 몸을 푸는데 대단한 선수처럼 보였습니다. 이쯤 되니 나는 슬슬 우리 선생님이 걱정되었습니다. 일단 남자와 여자의 대결이니 힘으로는 여자가 불리할 것이며 체격이 두 배 정도 차이나 나 보여서 마치 어른과 중학생의 대결 같았고, 더구나 선생님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니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 무참하게 깨질 선생님을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우리 선생님이 이겨 주시길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기도 하였습니다. 나뿐 아니고 모든 학생이 탁구대 주위를 에워싸고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태연하게 우리가 연습하던 채 중 하나 고르더니 채를 머리에 쓱쓱 문지르고 탁구대 맞은편에 섰습니다.

그때 왜 머리에 채를 문지르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지금도 몰라요.

청년이 걱정스럽게 물었지요.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탁구 채를 염려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옷차림을 걱정하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평온한 선생님의 표정이 나를 더 불안하게 했습니다.

“자, 그럼 연습부터 해 볼까요?”

젊은 청년의 외침과 함께 톡! 서브를 넣었습니다. 빙그르르 회전하는 볼이 낮게 네트에 스칠 듯 날아서 선생님의 테이블이 번개처럼 꽂혔습니다.

아~ 학생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쏟아졌습니다.

더 놀란 것은 그다음이었어요. 선생님은 허리만 살짝 숙인 자세로 살짝, 아주 살짝 툭! 받아넘겼는데 그 속도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빠르기였습니다.

선생님의 부드러운 움직임은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

치마 아래로 드러난 종아리의 움직임은 탱고 춤을 추는 듯하고 블라우스 앞가슴의 율동이 제 눈을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톡~탁, 톡~탁, 눈동자가 쫓아가기 바쁠 정도로 빠르게 주고받는 두 사람의 묘기에 모두 얼이 빠졌지요.

‘아하! 탁구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탁구 랠리의 진수를 본 것 같았습니다. 탁구공이 갑자기 왼편으로 넘어오자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마치 손등으로 내치듯 재빠르게 휘둘렀고 탁구공은 빠르게 선생님의 왼편 코너에 꽂혔습니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조마조마했습니다. 선생님은 한 발 살포시 뒤로 물러서서 팔을 어깨 위에서 아래로 살며시 내려그었습니다. 마치 춤사위라도 하듯 부드러운 동작이었어요. 탁구공은 공중으로 높이 솟아올랐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 테이블에 떨어졌다가 그 반동으로 다시 높이 튀어 올랐습니다. 갑자기 청년의 몸이 홱 돌아가더니 긴 팔이 커다란 스윙을 그리며 따악! 엄청난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탁구공이 깨진 줄 알았어요. 탁구공은 총알처럼 날아갔습니다. 워낙 빠른 속도여서 테이블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오싹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거 한 방 맞았다가는 시퍼렇게 멍이 들것이 분명 했으니까요. 우리 선생님 과연 무사할까요?

청년의 입가에 빙긋이 미소가 흐릅니다.

“게임 시작할까요?”

태도는 예의바르고 공손했지만 자신에 넘치는 그의 표정이 역력했지요.

“네, 좋아요!”

마지막 볼을 받아 내지 못한 선생님은 별 동요 없이 얌전하게 대답하셨어요. 바야흐로 나의 인생에서 첫 번째 탁구시합을 관전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울프의 탁구 이야기

세 번째.

 

21점 게임, 서브 5개씩 주고받는다는 것도 이 게임으로 알게 된 사실입니다. (지금은 국제 규정이 11점 게임, 서브 2회씩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서브권을 결정했습니다.

청년이 주먹을 내고 우리 선생님은 보를 내셨습니다. 청년의 선공입니다. 청년은 왼쪽 모퉁이로 가서 고양이 자세를 하였습니다. 등을 활처럼 구부리고 눈은 네트를 넘어 빈자리를 노려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웠지만, 그의 신중한 자세와 빈틈을 노리는 날카로운 눈빛에 차마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왼손바닥에 올린 공을 공중으로 슬쩍 던져 올리더니 내려오는 공을 툭 건드렸는데,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 수 없는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어느새 공은 그의 허리에서 총알같이 튀어나와 네트를 넘어 선생님의 왼쪽 구석으로 날아갑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석양의 무법자에서 총을 뽑아 든 순간처럼, 전광석화 같았습니다.

어쩌면 화약 냄새가 날 것도 같은 분위기입니다.

아, 저건 아무도 받을 수 없을 거야. 하고 실망한 순간, 선생님은 살짝 허리를 돌리더니 백핸드 스매싱으로 강하게 때렸고 공은 청년의 왼쪽 구석에 빠르게 튕겨 나갑니다. 청년이 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볼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정말 놀랍고도 통쾌한 순간이었습니다.

청년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침착하게 냉정함을 되찾더군요. 경력과 실력을 고루 갖춘 선수임이 분명합니다.

두 번째 서브는 방향을 바꾸어 역방향 커트로 넣습니다. 역시 설명할 수 없는 절묘한 서브 자세입니다. 마치 요술을 부리거나 묘기에 가까운 신기한 서브였고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대로 드라이브를 걸어 빠르게 받아넘기고 공은 청년의 오른쪽 옆구리에 꽂히자 와~ 학생들의 함성과 박수가 절로 터집니다.

나도 모르게 감탄의 비명을 질렀고 선생님이 이길 것이라는 자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점수는 2대0, 선생님이 앞서기 시작합니다.

청년의 세 번째 서브는 처음에 넣었던 고양이 자세였기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여유 있게 받아 앞으로 밀었는데 그만 네트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똑같은 자세였는데 서브 공은 첫 번과는 반대방향으로 휘어 날아갔습니다.

역시 도전자답게 젊은 청년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한 점을 얻은 청년은 네 번째 서브도 세 번째와 똑같은 서브를 넣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번 실수하지 않았습니다. 역회전이 걸린 공을 그대로 드라이브를 걸었고 공은 빠르게 넘어갔습니다. 청년은 툭 하고 채를 앞으로 밀어 간단하게 넘깁니다.

선생님의 손이 빨라졌습니다. 빠른 드라이브가 걸린 공은 길게 넘어가고 이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청년은 뒤로 두 발짝 물러서서 테이블 아래쪽에서 수평으로 걷어 올립니다. 탁구공의 속도가 갑자기 느리게 변하더니 네트를 살짝 넘어갑니다.

선생님의 눈길이 공을 따라 움직입니다. 다시 한 번 스매시가 맵시 있게 내려치고 공은 다시 빠르게 넘어갑니다, 청년은 다시 한 번 멀리 떨어져 커트로 깎아 올립니다. 선생님의 스윙 폭이 조금 더 커졌습니다. 그대로 드라이브를 걸었고 공은 오른쪽 모서리로 향하여 쭉 뻗어 나갔습니다. 아쉽게도 테이블에 닿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선생님의 자세가 약간 불안했었습니다. 무릎까지 내려온 치마가 불편했었나 봅니다. 치마끈을 살짝 매만지고 다시 자세를 가다듬었습니다.

순식간에 2대2 동점이 되고, 마지막 서브를 신중하게 넣은 청년은 선생님이 커트 리시브해서 넘어오는 공을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가공할 위력으로 휘둘렀습니다. 청년의 몸이 한 바퀴 돌아갈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이었습니다. 옆에서 관전하던 여학생의 머리카락이 휘날렸으니까요.

소림칠십이종절기 小林七十二種絶技의 하나인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 장풍을 날린 줄 알았습니다.

청년이 힘의 탁구라면 선생님은 우아한 탁구입니다. 청년의 라켓이 청룡도같은 철검이라면 선생님의 라켓은 자유롭게 휘어지는 구절검입니다.

 

2대3, 한 점차로 뒤진 선생님의 서브 차례입니다.

손바닥에 올려놓은 공을 마치 새를 날려 보내듯 머리 위로 살짝 띄웁니다. 공이 포물선의 정점을 그리며 돌아 내려옵니다.

선생님이 슬쩍 건드리자 공은 살아 있는 메뚜기마냥 낮게 날아서 네트를 넘어 테이블에 톡 떨어집니다. 탁구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가요? 아, 아름다운 나비가 펄럭이는 것 같았습니다.

청년은 강한 서브를 예상하다가 허를 찔린 듯, 후다닥 팔을 뻗어 받은 리시브 공은 네트를 넘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서브는 같은 자세로 연달아 두 번 넣었는데 전자가 펄럭이는 나비라면 두 번째는 빠르게 날아가는 벌새입니다.

청년의 두 번째 리시브는 길게 나가 테이블을 살짝 벗어납니다.

점수는 4대3, 역전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다시 앞서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 서브는 평범하게 왼쪽으로 넘어갔습니다. 기회를 잡은 듯 젊은 청년이 백 드라이브로 강타를 날리고 선생님은 급하게 왼쪽 커트로 걷어 올렸습니다만 볼이 높이 떴습니다.

갑자기 청년은 두발 전진하면서 공중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왼발은 앞으로 오른발은 뒤로, 마치 배구에서 강스파이크하는 자세로 뛰어올랐다가 내려오는 탄력과 함께 무지막지한 힘으로 내려쳤습니다.

순간 머리가 멍했습니다. 탁구에서 두발이 공중에 뜬 채 후려치는 타법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 했습니다.

무림 천하제일 고수가 휘두르는 천뢰제왕신공검법 天雷帝王神功劍法을 탁구에서 펼친 것 같이 벼락이 떨어지는 굉음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공이 날았습니다.

선생님이 받아치는 것보다 다치지 않고 무사하기를 바랐습니다.

 

 

울프의 탁구 이야기

네 번째 마지막

 

4대4, 동점이 되었고 연거푸 실점으로 이어져 4대 8로 점수 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선생님의 뺨이 복숭아 빛으로 상기되셨습니다. 이때부터 선생님의 자세가 약간 바뀌었습니다. 테이블에 허리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서 짧게 받아넘기는데 그 속도가 무척 빨라졌습니다. 공이 테이블에 닿기가 무섭게 상대편으로 넘어가는데 위력은 없어도 볼은 정확히 왼쪽 모서리, 오른쪽 모서리에 번갈아가면서 떨어집니다.

일명 칠보유홍분심검법 七步流紅分心劍法을 시전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일곱 걸음 이내에서 360가지의 변화무쌍한 초식을 일으켜 상대의 마음을 교란한다는 무당파의 신공입니다. 선생님의 하얀 운동화가 바람에 날리는 목련 꽃잎처럼 화려하게 움직입니다.

주고받는 열전은 계속되고 어느새 청년은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합니다. 선생님은 치마를 입은 얌전한 모습 그대로 숨도 차지 않고 평온합니다.

예쁜 선생님 볼이 불그스레하니 더욱 아름답게 보이네요. 꼭 천사 같아요.

딱 따닥! 딱 따닥!하는 소리와 함께 유선형을 그리는 탁구공의 궤적은 오래오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학생들이 환호하고 감탄하는 동안 청년은 오로지 게임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완전히 몰입하여 전력투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역력합니다.

21대18 최종 점수 결과입니다. 청년은 선생님께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함으로써 경의를 표했습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멋진 경기였고 이 나이 때까지 오래도록 인상 깊게 남아있는 추억의 탁구 경기였습니다.

그 후, 소문은 점점 널리 퍼져 마을에서 탁구 좀 한다는 사람들이 학교를 찾아와 우리 선생님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선생님은 찾아오는 도전자들을 상대로 하나씩 하나씩 물리쳐야 했습니다. 동네에서 뿐이 아니었습니다. 읍내에 있는 고등학교까지 소문이 나서 고등학생, 학교 교사, 당구장 주인, 교육청 장학사들도 핑계를 만들어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특히 젊은 총각들은 유난히 많이 찾아오곤 하였습니다. 총각들은 예쁜 선생님과 호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중에서도 꾸준히 찾아오는 청년은 바로 그 처음 대결을 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 왔습니다.

그때마다 청년의 솜씨는 일취월장 크게 달라졌습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신기한 서브와 새로운 전술을 구사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선생님은 항상 아슬아슬한 점수 차를 유지했습니다. 여러 번 경기를 지켜본 후에 서로 이기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매번 이길 듯하면서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항상 환한 웃음으로 대신합니다.

아무튼, 탁구는 우리 학교는 물론 마을 전체가 들뜨고 읍내까지 왈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탁구의 물결이 세차게 몰아쳤습니다. 조그만 읍내에 두 개의 탁구장이 생겼을 정도니까요.

3학년이 되고 안타깝게도 저는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다른 도시로 전근 가시는 바람에 우리 집도 이사했고 탁구는 더 이상 칠 기회가 없어졌습니다.

선생님이 없는 탁구는 영 재미가 없습니다. 자연히 탁구라켓을 놓게 되었습니다. 30년 동안 탁구를 잊고 살다가 최근 탁구동호회에 가입해서 아내와 함께 나란히 탁구 하러 다닙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행복합니다.

하얀 탁구공이 테이블에서 튀어 오를 때마다, 그 선생님의 빨간 치마 아래로 보이던 예쁜 종아리와 하얀 블라우스가 생각납니다.

춤사위 같았던 날렵하고 우아한 움직임은 아직도 눈부신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예쁜 탁구선생님, 그 청년과 인연이 맺어졌을까요? 무척 궁금합니다.

 

토요일 밤, 탁구 동호회에서 연거푸 다섯 게임을 치르고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반대편에서 백발의 할머니께서 제게 손짓합니다. 한 게임 하자는 신호입니다. 사실 저는 탁구를 잘 치지 못합니다. 공이 보이기만 하면 잘 치는데 아쉽게도 헛손질을 자주 합니다. 그래서 고수가 저에게 게임을 신청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뜻밖입니다.

할머니의 탁구 실력은 동호회원들도 인정하는 고수이십니다. 제 수준에서 감히 상대할 수 없는 레벨이 다른 급이었으니까요.

공손하게 인사하고 한 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할머니에게서 중학교 여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사뿐거리는 스텝, 나비처럼 화려하게 움직이는 손짓, 꼭 닮았습니다. 분명히 그 선생님은 아니지만 마치 선생님과 경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상상이 듭니다.

랠리로 시작해서 길게 드라이브를 주고 받는데 제가 먼저 헉헉거리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하얀 머리카락조차 흐트러지지 않고 호흡도 편안해 보입니다.

오랜만에 신나게 탁구를 즐겼습니다. 한 경기까지 마치고 할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탁구를 예쁘게 치시니 보기가 아주 좋습니다. 아름다워요!”

할머니께서 빙그레 웃으십니다. 저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탁구 실력은 별로지만 탁구를 멋있게 즐기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래서 저는 패션만큼은 화려하게 입습니다. 탁구 유니폼 셔츠에 반바지를 반드시 입고 손목 밴드는 물론 헤어밴드나 모자를 착용합니다. 빨간색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누가 봐도 프로 선수처럼 보일 것입니다. 실력은 어쩔 수 없지만 패션은 꾸미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포인트보다 멋있는 폼을 구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춤사위를 하듯 길게 치는 것을 선호합니다. 주위에서 빈정대고 놀려도 제 의지는 확고합니다.

오늘 할머니 고수께서 저의 진면목을 봐주시고 인정해 주셨다는 것이 저를 행복하게 해주네요.

이것은 바로 중학교 때 여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탁구는 이기고 지는 승부의 게임이 아니라 즐기는 자의 게임이라는 말씀, 선수가 되는 것보다 탁구를 즐기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할머니와의 경기를 하고 나니 선생님이 보고 싶어집니다. 선생님도 어디에선가 할머니처럼 탁구를 즐기고 계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언젠가 선생님을 만나 탁구 한 경기를 할 수 있는 행운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내가 한판 붙자고 신호를 보냅니다. 탁구가 부부관계에 아주 좋아요. 왜냐하면 가까이도 너무 멀리도 아닌 딱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뭔 말인지 알겠지요?

 

울프의 탁구 이야기 끝.

Wolfkang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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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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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無性김성환 | 작성시간 19.11.23 그래서 삼각함수가 싫어졌구나 ㅋ
  • 작성자無性김성환 | 작성시간 19.11.23 같은 날이 반복되는 나이에.... 그동안 고군분투했던 우천에 이어 개성 넘치는 친구들의 등장으로 글의 장르가 다양해져 기대가 된다.

    가끔 신선한 詩로 관성화 되어버린 머리 속을 반짝하게 해주던 달우는 혼자 뭐하느라 이렇게 조용하다냐?
    아얘 산으로 들어가버렸남?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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