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40/191127]고향집으로 가는 길
14일 오후 판교집에 가서 26일 오후 고향집에 내려왔으니, 고향집을 무려 13일간이나 떠나 있었다. 친구의 캠핑카로 함께 내려와 대문을 여는데, 이런, 설레기까지 했다. 지난 여름부터 거의 석 달간 나의 땀이 밴 집이다. 솔직히 이보다 멋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흐흐. 집을 기똥차게 고쳐놓고, 서울집에서 장기간(?) 체류하고 온 것이 실감났다. 김장도 해야 하고(15∼16일), 방아쇠 증후군(trigger finger) 친구와 우정의 동반수술(19일), 며느리 해외출장으로 인한 네 살 손자와 동고동락 닷새(20∼24일) 그리고 성남시청 중견간부 대상으로 <기록의 나라, 대한민국> 2시간 특강(25일) 등을 무사히 마치고, 마치 오랫 동안 먼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온 듯한 나의, 우리의 고향집.
기분이 “울트라 캡션 짱”이다. 올 시한(겨울)은 어디에도 안가고 내내 여기에만 있어야지. 아내가, 아들 손자가 보고 싶어도 참아야지. 머지 않아 이 들판에 축복처럼 눈도 내리리라. 사부작사부작 내리는 하얀 눈은 자고나면 은세계銀世界 벌판을 선사하겠지. 새벽녘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소나무 가지가 짜아짝 찢어지기도 하겠지. 나는 소싯적부터 자다가 그 소리를 듣는 게 어찌 그리 좋았는지. 손자는 지 애비에게 ‘할아버지 시골집 가자’고 졸라댈까. 그렇게 하라고 몇 번이나 입력을 시켜놓았으니, ‘나를 닮아’ 영특한 녀석, 기억하고 있다가 틀림없이 졸라댈 거야. 암먼. 이제 문제는 아프지 않을 일만 남았다. 그게 나의 마음과 의지대로는 안되겠지만, 하루 2만보 이상 걸어야겠다. 한마디로 ‘바람이 부니 살아봐야겠다’가 아니라 ‘고향에 돌아왔으니 살아봐야겠다’. 키 177cm에 한때는 77, 78kg 나갔는데, 65kg라니, 어찌 이리 체중이 빠졌을까.
나의 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아마도 평생 안해본 노가다에 혼자 부실하게 먹은 먹을거리 때문일까. 아니면 먹는 게 모두 포도당이 되어 소변으로 빠져 나가기 때문일까. 혹시 10년이 넘었으니, 당뇨 약발이 안먹히는 게 아닐까. 그 통에도 10여년째 ‘그놈의 술’을 못끊고 주구장창 마셔댄다고, 하느님이 벌을 주시는 걸까. ‘당권糖權’을 쥔 서너 명의 친구는 약 하나 안먹고 운동으로 관리를 잘도 하더만, 내가 ‘용코사니’가 된 것일까. 식구들도 걱정이 많지만, 솔직히 나도 상당히 겁이 난다. 눈, 다리, 합병증만큼은 오면 안된다. 실명이라니, 다리 절단이라니, 그것은 정말 안될 일. 그래, 살을 찌워야지, 몸무게를 늘려야지. 최소한 70kg는 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올 겨울 한번 해보는 거야. 고향집에서 나 혼자 도 닦는 심정으로.
노 플라브럼, 네버 마인(no problem, never mind). 문제없어!. 이제 근 50년 동안 마신 술도 한번 어찐가보게 끊어보지 뭐. 못할 건 또 뭐야. 아아, 사랑하는 나의 세 여동생이여! 고맙다. 이 못난 오래비를 위하여 그 비싼 흑염소 한 마리(한약재 넣어 팩으로 한 박스에 60만원을 한다나)를 선물한다고. 고맙다. 직심스럽게 잘 먹을게. 동생들의 지극정성, 고운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한번도 안거르고 먹어 건강해져야지. 무엇보다 구순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 보필을 해야 할 ‘가족적인 막중한 책임’이 나에게 있거늘, 약체로 비실비실,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한다면, 세상에 그런 불효가 어디 있을까.
뭐, 일반대중교양서 한 권 제대로 상재上梓하겠다고? 그러면 금상첨화겠지만, 안되어도, 못해도 너무 연연해 하지 말자. 흔한 말로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다’고 하지 않던가. 15년째 먹고 있는 고혈압, 당뇨약 한번 끊어보자. 죽느냐, 사느냐, 햄릿의 독백이 아니라, 약 끊느냐 술 끊느냐, 그것이 우천의 문제로다. 가장 큰 숙제로다.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