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통신 203/200623]‘노가다 데모도’라는 것
면소재지 농협판매장에서 종합살충제를 사갖고 돌아오는 길, 귀농선배의 전화다.“우천, 오늘 노가다 좀 해줘”참깨잎을 갉아먹는 노린재 죽이는 작업을 멈추고, 달려갔다. 헛간 벽‘조적’을 한 후 미장을 해야 한다. 나야 블록와 벽돌을 나르는 등 사수를 돕는 조수助手 역할이니 힘들 것은 없어도(사실 이것도 벅찬 일이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마당에 왼종일 노가다를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지난해 집을 대대적으로 고치면서 처음 들었던 건축토목용어들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대부분 일본어에서 온 것들이다. 노가다: 토목공사장이나 노동판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데모도: 기능공들과 함께 일을 하는 조수, 아시바: 가설공정에 쓰이는 비계, 구배: 바닥의 수평높이를 잡는 일, 덴조: 천장, 기르빠시: 쓰고 남은 재료, 랭가: 벽돌, 가배: 벽공사할 때의 벽, 구루마: 수레 등이 그것이다. 하기야, 신문사에서도 편집, 인쇄, 조판 등 모든 용어가 모두 일본어였다. 지금은 많이 순화된 편이지만. 이렇듯 일제강점기의 잔재들이 우리 생활 속에 아직도 엄청나게 남아 있다. 어디 언어뿐이랴. 일본을 대하는‘정신精神’이 더 문제가 아니던가. 선거를 잘한 바람에, 이제 정치판에서 친일파 모모 후손들의 천방지축 날뛰는 꼴, 궤변들을 보지 않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리라.
시멘트 블록 한 장에 700원이라 한다. 1개만 들어도 무겁다. 수 백 개를 들어날라야 하는데, 사람힘만으로 하기가 지치고 벅차다. 옆동네 선배의‘궤도차’를 긴급요청했다. 400kg을 한꺼번에 실을 수 있다. 이제 기계가 아니면 아무일도 할 수가 없다. 데모도가 만만한 것같아도 제법 바쁘고 힘든 일이다. 벽돌을 한참 나르다, 대학시절 월계동에서 노가다 1주일을 한 게 생각나 혼자 피익 웃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하루 8시간 노동은 꿈도 못꿀 일. 12시간은 족히 했던 것같다. 해는 어찌 그리 길던지, 기계로 한 장 한 장 찍자마자 날라다 쌓아놓은 후, 트럭이 들어오면 상차上車를 해야 하는 단순작업. 허리가 끊어질 듯했지만, 펼 시간도 없이 일에 쫓겼다. 그래도 고향 형님 3명과 함께 해 가능한 일이었다. 막사 움막의 때 절은 베개는 머리 뉘이기도 거시기하게 더러웠지만, 밥만 먹으면 눈 부치기 바쁘니 그까짓 청결이 문제였겠는가. 그렇게 어거지로 일주일이 가고, 손에 받아든 알바비 5000원. 얼마나 기쁘고 보람있던지. 그 돈으로 맨먼저 달려간 게 목욕탕이었다. 딱 그때쯤, 이리역 열차폭발사건이 있었다. 1977년 11월 11일, 익산에 사는 여자친구 안부가 궁금해 안절부절못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지금처럼‘손전화’도 없을 때였으니.
아무튼, 오전 3시간, 오후 5시간여. 나는 시다바리 8시간에 힘들어 죽겠는데, 숙수熟手인 70세 선배는 새참마다 쐬주를 마시고도 어찌 그리 일을 잘 하실까? 평생 갈고 닦은 솜씨이니, 조적-미장 그 노하우가 어디 가랴. 참 대단하시다. 몸뚱아리 하나로 헤쳐온 세월의‘훈장勳章’이라 할 것이다. 일당 25만원이 어찌 비싸다할 것인가? 더구나 우리는 일당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닌, 아무 조건없이 돕고 도와주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의 관계. 참으로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러니 그 힘든 일도 지루한 줄 모르고 하게 되는 것. 7시 반이 되어서야 어둑해지는 하루, 아주머니가 해놓고 간 토종닭백숙이 기가 막힌다. 찹쌀에 오가피잎을 넣은 닭죽이 맛있다. 일년 중 해가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가 노동으로 시작해 노동으로 끝났다. 휴우ㅡ, 허리가 휜다(나는 순전히 엄살이다). 하루가 어찌 그리 길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