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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기행

아린 시절 망덕걸의 추억

작성자예암|작성시간26.06.07|조회수701 목록 댓글 0

카페의 글은 

2016년 10월 1일 포스팅하였습니다.

 

비오는 날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푸른 지평선의 물결 사이로

커다란 감잎 사이 언듯언듯 누렇게 익어가는 대봉감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커피잔을 비우고 카메라 가방을 열어 장비를 챙겨 

베란다의 커피잔에 녹아든 마음을 유혹하였던 그 감나무를 찾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쓰지 않았지만 

감나무 바로 옆에 청단풍 잎이 무성하여 카메라에 비가 젖지 않았습니다.

 

비 내리는 날 사진을 찍으면 손각대로는 

노이즈가 많이 생기고 미세하게 흔들린 사진을 얻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챙겨간 삼각대......

평소 삼각대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삼각대로 카메라를 고정시켰습니다.

 

제법 굵은 감 나무는 나무의 연수가 느껴졌고

대봉감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사진을 찍어보면 감나무는 푸른 잎사귀가 붉게 물들어가고

그 사이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을 접사하면 목가정 서정의 감칠나는 손맛을 느끼게 합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아내는 감성을 손맛으로 느끼는 사진의 세계는

정서적 감성을 마음의 행복으로 한껏 느끼게 합니다.

 

낚시의 손맛보다 카메라의 셔트 누르는 손맛은 

또 다른 성취의 감동을 맛보게 하는 세계입니다.

 

특히 비오는 날의 출사는

비에 젖은 감성을 최고로 느끼게 합니다.

 

카메라의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겨 

감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골 마을은 

어느 곳이든 감나무가 없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자랐던 고향 마을에도

집집마다 두 세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습니다.

 

몸에 밴 어린 시절의 감나무 향수는 

비오는 날 감나무 사진을 찍는 정서를 갖게 하였습니다.

 

5월말에서 6월초에 감꽃이 피어 떨어지면

지푸라기를 감꽃에 꿰어 목걸이를 하며 놀았던 어린시절의 추억은 감나무의 향수를 더욱 자극하였습니다.

 

한여름 태풍에 떫은 감 떨어지면......

단지 안의 소금물에 삭혀 먹었습니다.

 

가을이면 곶감을 만들고.... 

커다란 대나무 장대로 감나무 꼭대기의 홍시를 따먹으며 자랐습니다.

 

무엇보다도 망덕걸의 감나무는

낮에는 그늘이 되어 주고 밤에는 숨바꼭질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마을 앞 신작로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언덕길을 따라 올라서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는 산에서 내려오는 도랑이 90도로 꺾이는 삼각주여서 복개를 해서 쉼터를 만들었습니다.

 

제법 넓은 공터 삼거리의 쉼터를 망덕걸이라고 하였고

어린 시절 그 망덕걸은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의 추억으로 가득하였습니다. 

 

복개하지 않은 도랑은 돌담과 길 사이로 흘렀는데

비가 올 때마다 도랑물은 가득 넘쳐 흘렀습니다.

 

동네 한가운데 있는 망덕걸에 올라서면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다 들어옵니다.

 

망덕걸은 돌담을 따라 커다란 감나무가 무성하여 

마을 입구 정자의 느티나무보다 훨씬 더 운치가 있었습니다.

 

여름철이면 해가 지고 어두워 갈 때 제각기 저녁을 먹고 난 후

하나 둘씩.....약속이라도 한 듯이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망덕걸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6.25사변 이야기를 많이 하였습니다.

 

낙동강 건너 고령에는 인민군이 점령하였고 

마을 뒷산에는 국군과 낙동강 전선을 형성하였습니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대구마저 점령당하는데

우리 마을은 치열한 낙동강 전선의 전투지였습니다.

 

당시 선친께서는 6.25 참전 용사였는데

제주도에서 훈련받았고 전선으로 배치되었다고 하였습니다.

 

5년 동안의 군복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치열한 전쟁의 흔적으로 지붕 일부가 폭격을 맞아서 새로 집을 지었습니다.

 

망덕걸의 밤은 깊어갈수록 어르신들은 떠나가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만 남아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였습니다.

 

70년대 초에 초등학교 다닐 때는 

우리 마을에 전기가 없었습니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 온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호롱불 밑에서 공부를 하였고 

또 성경을 읽었습니다.

 

전깃불을 모르던 시절.......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은 하늘의 은총, 그 자체였습니다.

 

오리온 자리와 전갈자리, 그리고 북두칠성 그 사이로 흐르는 은하수의 물결은

하늘과 땅이 마주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픔었던 하늘과 땅이 마주하는 우주적 밤 하늘은

오늘날 우주적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품었습니다. 

 

밤 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것은

참으로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정서를 갖게 하였습니다.

 

지난 날 강원도 산약초 산행을 할 때 

어린 사절 바라보았던 별빛 쏟아지는 밤 하늘을 동경하여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분명 구름 한 점 없는 밤 하늘인데

별이 한 두 개, 서너 개 정도 보였고 자세히 보면 좀 더 보였습니다.

 

그래서 안 목사님께 강원도 산촌의 오지 마을인데 

어떻게 별빛 쏟아지는 밤 하늘을 볼 수 없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지난 번 정동진 해돋이를 보러 갔을 떄도

정동진의 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는데 별은 연등보다 더 적었습니다.

 

문득 우리 나라에서는 어린 시절 보았던 그 별빛 쏟아지는 밤 하늘을 

다시 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정법에서 어린 시절 밤마다 보았던 그 별빛 쏟아지는 

정글의 밤 하늘을 볼 수 있어 감동적이었습니다.

 

별빛 쏟아지는 밤 하늘을 관찰하였던 망덕걸의 추억은

또한 달 밝은 밤 숨바꼭질의 추억을 갖게 하였습니다. 

 

한 날은 숨바꼭질 하다가 

술래가 슬그머니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마을 아이들은 술래에게 찾기지 않기 위해 꼭꼭 숨었는데

술래 가 찾지 않으니 곤하여 숨은 곳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하나씩 둘씩 숨었다가 나와서는 모두 집에 간 줄 알고

각자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나중에 집에 오지 않은 아이를 찾아 나선 부모는

동네가 떠나갈 듯이 이름을 불러 겨우 숨바꼭질 하면서 잠든 아이를 깨웠습니다.

 

30호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지만 

아이들이 많아 어린 시절 많은 추억을 쌓았습니다.

 

그 이름도 기억에서 사라져 가는 망덕걸......

감나무로 둘러쌓인 망덕걸의 별 빛 쏟아지는 밤 하늘의 추억은 

믿음으로 성장하면서 창조의 신비와 그 동선을 아름답게 느끼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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