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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기행

어린 시절 수박과 원두막의 기억

작성자예암|작성시간26.06.20|조회수727 목록 댓글 0

무더운 여름 폭염의 뙤약볕 그 아래서 마음의 그늘을 찾아 

고향의 정취가 어린 "수박밭의 원두막"을 마음의 시간 여행으로 드라이브 합니다. 

 

오늘의 서정을 있게 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은

풍부한 시골 정서와 농촌 생활입니다.

 

낙동강의 전선이었던 고향 마을은 6.25 사변으로 황폐화 되었지만

할머니의 보따리 장사는 많은 토지를 사들였고 저희 팔남매는 농사일로 분주하게 자랐습니다.

 

저희 집은 윗채와 아랫채, 그리고 헛간을 가진 백구마당이 있어

많은 농사를 타작할 수 있는 넓은 집터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닭장과 돼지 우리, 그리고 외양간이 있어

떄마다 헛간의 거름을 생성하였습니다.

 

헛간의 거름은 농토의 땅을 기름지게 하였고

대부분 유기농이었습니다.

 

훗날 비료도 사용하였지맍 

헛간은 유기농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쇠스랑으로 외양간과 돼지 우리를 치고

그것을 헛간에 쌓아 올렸던 추억은 농군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농사일을 도우면서 자랐기 때문에

다양한 농사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농삿일의 수고에 대한 보람은

수박밭의 원두막에서 추억의 세월을 쌓았습니다.

 

수박밭의 원두막은

시골의 정서 그 한가운데 피어난 보람의 꽃이었습니다.

 

그 보람의 꽃은 

오늘날까지 아름다운 마음의 서정으로 각인되었습니다.

 

동네 집 앞의 논과 들이 거의 우리 것이었고

수박밭의 원두막은 유일하였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해마다 수박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수박 농사에 대한 기억은 누구보다 더 생생합니다.

 

동네 어귀의 밭에 수박 하우스 모종을 하였는데

한켠에는 박씨를 심고 다른 한 켠에는 수박씨를 심었습니다.

 

박씨가 어느 정도 자라면 

수박 모종의 싹으로 접을 붙입니다.

 

그 많은 모종을 전부 접붙이고 일정기간 지나면

집 앞 들의 노지에 모종을 옮겨 심고 대나무를 구푸려 작은 비닐 하우스를 만들어 덮습니다.

 

어느 정도 자라 넝쿨이 뻗어 줄기를 내면 

비닐을 모두 걷어냅니다.

 

수박은 토질과 거름에 따라서 크기와 맛이 결정되기 떄문에

비료보다 퇴비를 많이 넣고 토질을 좋게해야 좋은 상풍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맛이 없는 수박은

그 만큼 토질에 정성을 쏟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즙은 대부분 하우스 수박인데

어린 시절의 그 수박 향기와 맛은 사라졌습니다.

 

수박이 자라기 시작하면서 많은 넝쿨이 자라는데

우수한 수박 품종을 위해서 한 포기에 세 넝쿨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내야 합니다.

 

그리고 넝쿨에도 엄청난 가지들이 줄기를 내는데 

그 순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수박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힘든 것은

잡초처럼 자라는 수박순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또한 한 넝쿨에 수박 하나만 달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수박 넝쿨에 수 십개의 수박이 달리지만 

넝쿨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하나만 남기고 모두 제거해야 커다란 수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수박 한 포기에 세 넝쿨과 세 개의 수박만 농부의션택을 받고

그 나머지 넝쿨의 줄기와 달리는 수박은 모두 버려집니다.

 

그런데 요즘 하우스 수박은

수박 한 포기에 하나의 넝쿨과 하나의 수박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제거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노지에 수박을 심으면......

산성비로 전부 제초제를 뿌린 것처럼 말라 죽어 버리기 떄문에 하우스 수박을 제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노지의 수박이...... 

오늘날의 하우스 수박보다 훨씬 더 맛과 향이 깊고 품종이 우수하였습니다.

 

어떤 수박은 너무 커서 들 수가 없었고

수박 옯기다가 꺠어진 수박은 원두막의 별미가 되었습니다.

 

뙤약볕에서 일하다가 원두막에서 쉬면서 먹는 그 수박 맛은

맛의 향기가 진동하여 벌들이 날아들 정도였습니다.

 

입에 넣으면 사르륵 녹는 그 수박 맛은

치아가 아플 정도로 질긴 오늘날 하우스 수박과는 비교를 거부합니다.

 

고향을 떠난 후로는 상치를 거의 먹지 않는데

시골의 텃밭에서 기른 그 상치향이 전혀 없는 상치를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우스 재배나 비료를 넣은 농삿물은

겉은 윤기가 나도 맛은 옛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필리핀의 다문화 가정 다이애나는 

한국에서 코코넛을 먹었는데 맛이 없어서 토할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원산지의 맛을 아는 사람은

바다 건너 온 물건은 싱싱해 보여도 맛의 차이가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강원도 사람들은 옥수수의 맛을

금방 따서 쪄먹는 맛과 하루 지난 옥수수의 맛을 구분할 할 정도입니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사람도

강원도에서 옥수수를 농사짓는 사람의 그 입맛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맛의 차이에서 느끼는 서졍은

격조 높은 품격 정서를 대변합니다.

 

지난 날 다산 교회에서 15년 동안 인터넷과 영상 협력 사역을 하면서 해마다 많은 수박 맛을 보았는데 

그렇게 맛 없는 수박이라고 느낄 정도로 어린 시절의 원두막 그 수박 맛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떄 여름이면 어르신들과 시원한 교회당 로비의 원탁에 둘러 앉아

수박 농사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고 받았는데 어린 서절 수박 농사법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오늘날의 하우스 수박 재배는 모종을 재배하거나 접붙이는 것이 없고

종묘 상회에서 모종을 사고 거름도 사고 수박꽃의 수정도 벌이나 나비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붓으로 수정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수박 농사를 지으면서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든 유기농 거름을 넣어 수박 농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습니다.

 

다산 교회 발을 들여 놓으면서 농사짓는 집사님 앞세워서 

수박밭 하우스에서 커다란 수박 들고 환희 웃는 농부의 모습을 사진찍었던 시절은 

그래도 순순하 행복으로 넘쳤습니다.

 

요즙 같았으면 서정으로 수박밭의 원두막을 사진으로 남겼겠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은 사진보다 더 뚜렷한 마음의 상을 떠올려 이렇게 글향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넓은 들의 수박밭에 원두막은 

왜 하나 밖에 없었을까 궁급하기만 합니다. 

 

수박밭의 원두막은

카다란 나무 네개의 기둥을 세우고 키를 넘고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널판으로 원두막의 바닥을 만들고

지붕을 짚으로 엮고 들어 올려 나무 막대기로 고정할 수 있는 사방의 문을 만듭니다.

 

그리고 원두막에 올라갈 수 있는 나무 사다리를 만들고 모기장을 치면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과 산 위에서 불어 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별 빛 쏟아지는 여름 밤 하늘의 풍광은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한 여름의 원두막 서정으로 단연 최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 재키칼로 커다란 수박 쪼개 먹으면

낮의 뙤약볕은 씻은 듯 사라집니다.

 

이렇게 수박밭의 원두막은  

그 추억만으로도 초복과 중복과 말복의 그 수박 맛과 향을 대신하며 

폭염의 찌는 듯한 더위를 극복하는 사막의 샘이 세월을 흐르는 원천의 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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