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톤 쿠프만에 관하여
'원전연주 운동'은 20세기에 일어난 음악계 최대의 혁명이었습니다. 20세기 초 돌메치, 란도프스카 등에 의해 시작된 이 혁명은 애초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참여한 작은 운동에 불과했고 이것이 번져갈 무렵 많은 사람들은 '곧 사그러들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누구나 다 인정할 것입니다. 짧은 유행으로 그치기는커녕 들불처럼 점점 더 번져나가 지금은 대세가 되어버렸으니까...
톤 쿠프만은 이 지펴진 '들불'을 이어받아 지키고 퍼뜨리고 있는 연주자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주로 관심을 갖는 시대는 바흐와 헨델을 최후의 정점으로 하는 바로크 시대로 특히, 바흐에 대한 그의 관심은 각별하죠. 현재 진행중인 바흐 칸타타 전곡 녹음, 두 번의 바흐 관현악 모음곡 녹음, 바흐의 숱한 건반악기 작품 등 수많은 바흐 음반을 녹음한 것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쿠프만의 명성은 지휘자가 아닌 건반악기 독주자로서 시작되었습니다. 1973년과 74년 그는 각기 두차례나 'Prix d'excell-ence'을 받았는데, 한 번은 오르간 주자로서였고 또 한 번은 쳄발로 연주자로서였습니다. 그는 1963년 암스테르담 음악원에 입학, 오르간과 하프시코드를 전공했으며, 동시에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음악학을 전공했죠. 음악원 재학 당시 쿠프만은 하프시코드는 레온하르트에게서, 오르간은 시몬 욘슨에게서 배웠습니다. "욘슨은 피아노도 아주 잘 쳤으며, 즉흥연주의 대가였다. 오르가니스트이면서 교회에서 매주 바흐 칸타타를 지휘하기도 하는 아주 좋은 스승이자 음악가였다. 그의 밑에서 배운 것은 아주 좋은 훈련이었다. 당시 고음악뿐만 아니라 레거, 메시앙 등 20세기 작곡가들의 오르간곡도 함께 배웠다"고 쿠프만은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건반악기 연주는 지휘와 더불어 아직도 쿠프만에게 중요한 활동입니다. 자신의 오케스트라의 콘티누오 파트를 연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오르간 주자이자 쳄발로 주자로 아직도 활발한 리사이틀을 갖고 있죠. 뿐만아니라 스카를라티, 코렐리 소나타가 담긴 하를레케인에서 발매된 데뷔 레코딩을 시작으로 레코딩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 바흐 프랑스 모음곡 등 다양한 건반악기 독주곡 음반들이 그동안 많은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현재도 칸타타 녹음과 더불어 오르간 작품집 녹음을 진행중이라 하는데, 이 녹음은 에라토의 자매회사 텔덱의 바흐 전집에 들어갈 예정이랍니다.
지휘자로서의 쿠프만의 명성은 대부분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해왔습니다. 1979년 창단된 이 원전악기 오케스트라는 그가 본래 몸담았던 '무지카 안티쿠아 암스테르담'이 해체된 후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쿠프만이 직접 실력있는 단원들을 모집, 결성해 만든 쿠프만의 땀과 정성이 담긴 단체죠. 현재 버진 클래식스 레이블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영국 바이올리니스트 모니카 휴게트도 당시 창단 멤버로 기용된 적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에라토 전속이 된 이후 바흐의 ‘요한 수난곡’과 ‘마태 수난곡’, B단조 미사 등을 녹음,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에라토 레이블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미 DHM사에서 발매, 90년 그라모폰 상까지 수상한 바 있는 바흐 관현악 모음곡을 에라토에서 다시 녹음, 발매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음반은 먼저 연주와 비교해 팀파니 연주가 바뀌고 콘트라바스가 빠져 보다 가볍고 투명한 색채를 띠고 있는데, 이에 대해 쿠프만은 "바흐가 바이마르 시대 초기 작품들을 쓸 때 바이마르 궁정 악단에는 콘트라바스가 없었던 것으로 추측됐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얼마전 <객석>과 가졌던 인터뷰입니다.
# '완전한 바흐를 추구하는 고음악 혁명가': 톤 쿠프만
- 바흐 마가수난곡의 복원 연주
당신과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에라토에서 녹음하고 있는 바흐 칸타타 전집은 교회·세속 칸타타를 총망라한 것이며, 또한 동일한 지휘자, 오케스트라, 합창단에 의한 레코딩이다. 이 점에서 레온하르트와 아르농쿠르가 나누어 지휘한 텔덱의 교회 칸타타 전집이나, 핸슬러에서 발매된 헬무트 릴링 지휘의 교회 칸타타 전집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런 커다란 기획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오래 전부터 나는 바흐의 교회 칸타타와 세속 칸타타를 망라하는 칸타타 전곡을 지휘하기를 갈망해왔다. 하지만 그에 소요되는 엄청난 시간과 자금을 고려할 때 그것은 헛된 꿈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녹음한 바흐의 요한 수난곡, 마태 수난곡, B단조 미사 등이 판매에 성공을 거두면서 에라토 측에서 먼저 이 바흐 프로젝트에 욕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스폰서가 있었으나 계획이 너무 방대하자 포기하고 물러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라토는 이 계획을 진행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야심찬 결단이었다. 에라토와 나의 계획은 바흐의 세속 칸타타와 교회 칸타타 전곡을, 한 가지 곡의 여러 판본이나 미완성작, 단편까지 상당수 포함하여 총 66개의 음반으로 11년에 걸쳐 녹음하는 것이다."
현재 얼마나 진행됐는가?
"바로 얼마 전 프로젝트 9번의 레코딩을 끝냈다. 프로젝트 10번을 끝내면 칸타타의 절반을 마치게 된다. 완성은 2004년에 이뤄질 예정이다. 한 해에 6장의 음반을 낼 계획인데, 모든 연구 작업이 그 이전까지 끝나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벅찬 스케줄이다. 모든 소스를 검토하고 연주회용 판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에 발간되어 문제가 많은 곡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신 바흐 전집>을 기초로 하여 다른 소스들과 비교, 검토한다."
칸타타 이외의 다른 바흐 성악곡도 프로젝트에 포함돼 있나?
"칸타타 프로젝트의 일부는 아니지만, 모테트·수난곡·오라토리오 등 다른 종교 성악곡들도 결국 모두 연주하게 될 것 같다. 부활절 오라토리오 녹음은 이미 마친 상태다. 내 욕심으로는 루터파 소미사 (BWV233∼236)까지 연주하고 싶다. 곧 바흐의 마가 수난곡도 복원해 레코딩할 예정이다."
마가 수난곡은 텍스트만 남아 있고 음악은 남아 있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렇다. 하지만 바흐가 이 곡에 쓰인 음악을 다른 작품들에 전용했기 때문에 복원이 가능하다. 레치타티브는 전혀 전해지지 않지만 아리아·합창·코랄 등은 바흐의 다른 작품들로부터 복원이 가능하다. 이 작품을 복원할 때는 칸타타 198번(‘Trauer-Ode’)과 54번, 그리고 마태 수난곡에서 재료를 찾아 끼워 넣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나는 바흐 칸타타에 대한 현대의 학문적 연구 성과를 이용해 이 곡을 재구성했다. 코랄은 한 가지 선택밖에 없는 경우가 많지만, 아리아와 합창곡은 선택의 범위가 넓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흔히 들어온 복원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될 것이다. 겹치는 곡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레치타티브이다. 레치타티브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자료가 없다. 악보의 단편도 없으며, 다른 곡에서 가져올 수도 없다.
그렇다면 레치타티브 부분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내가 직접 작곡해 채워 넣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크 스타일로 작곡했으므로 그럴싸(plausible)하긴 하지만 역시 상상에 의거한 '가설적'(hypothetical) 버전에 불과하다. 레치타티브가 단편적인 형태로조차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가 수난곡 복원판은 누가 만들 건 바흐가 실제로 연주했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마가 수난곡의 특징은 무엇인가?
"바흐에게 있어 새로운 곡을 작곡하면서 다른 칸타타들로부터 이토록 많은 재료를 가져온 작품도 드물다. 바흐의 자기 인용이 극에 달한 만년의 걸작 B단조 미사를 보면, 80% 내지 85%는 분명 BWV12와 같은 초기 칸타타를 비롯해 여러 곡에서 빌려온 것이고 새로운 작곡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B단조 미사는 레치타티브가 없으므로 마가 수난곡 복원판을 만들 때와는 문제가 다르다. 세속 칸타타로부터의 차용이 많은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의 예를 보면, 바흐는 대부분의 재료를 이전에 작곡한 곡들에서 끌어왔지만 레치타티브 부분은 완전히 새로 작곡했다. 마가 수난곡을 복원할 때 라인하르트 카이저(Reinhard Kaiser: 1674∼1739)의 마가 수난곡(바흐가 1726년 라이프치히 수석 교회인 니콜라이 교회에서 이 곡을 공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카이저의 수난곡은 반주 붙은 아리오소와 레치타티브의 극적인 사용 등 여러 면에서 바흐의 수난곡에 영향을 끼쳤다고 짐작되고 있다)을 참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두 작곡가의 음악적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므로 이 곡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흔히 이 곡을 복원할 때 음악은 다른 곡들로부터 고스란히 따오되, 레치타티브는 '어차피 소실됐으니까' 하고 후대 스타일로 만들어버린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매우 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양식상의 문제점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마가 수난곡의 재구성판은 언제 연주될 예정인가?
"내년 9월 슈투트가르트에서 초연된 후 2000년 3월에 발매될 예정이다. 애호가들과 음악가들에게 바흐의 해 2000(Bach-Year 2000)을 맞는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발매와 함께 뉴욕 링컨센터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대규모 연주 여행을 다닐 예정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는 것이, 신작 초연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현대 작곡가의 심정을 알 것 같다."
그 밖에 재구성한 다른 바흐 작품이 있다면?
"BWV 190도 완전한 악보가 전해지지 않는 칸타타다. 합창, 제1·2바이올린 파트만이 전해지는데, 남아 있는 타이틀 페이지를 보면 이외에도 3대의 트럼펫, 3대의 오보에, 바순, 비올라, 콘트라바스가 쓰였음을 알 수 있다. 1, 2악장은 없어진 부분이 적어서 작업이 쉬웠다. 바이올린, 오보에, 오보에 다 카치아 등 여러 악기들의 오블리가토 솔로를 복원하는 작업도 함께 했다. 칸타타 193번도 마찬가지 작업을 해서 내년 3월경에 녹음할 예정이다. 이런 작업은 어느 도까지는 작곡에 속한다. 바로크 스타일로 작곡해 보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지닌다."
다른 원전 연주자들 가운데는 베토벤을 넘어 브람스까지 연주하는 이들이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1991년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부터는 하이든과 모차르트를 자주 연주하게 되었는데, 내게 대단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도 한때는 대단히 전위적인 음악이었던 것이다. 나는 19세기 전반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대악기 오케스트라 지휘해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을 연주한 적도 있으며, 몇 주 후에는 슈만을 지휘할 계획이 잡혀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작업들로,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쓰고 말하고 느꼈는가를 발견하는 일이다. 연주회를 전후해 호텔방에서 악보를 들여다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것 또한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1853년 이후로는 가고 싶지 않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베를리오즈의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까지를 나의 한계로 정해놓고 있다."
다른 원전악기 지휘자처럼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할 생각은 없는가?
"아직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해 본 적은 없다. 베토벤의 세계는 또 완전히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슈베르트와 멘델스존의 음악은 바로크, 특히 바흐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친숙하긴 하지만."
에라토에서 관현악 모음곡 전곡을 새로 녹음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가?
"도이치 하모니아 문디(DHM)에서 발매된 예전 녹음은 사실 에라토에서 출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시 에라토는 가디너 지휘의 레코딩을 몇 년 전 발매하여 카탈로그에 올려두었기 때문에 대신 녹음을 제의해 온 DHM 쪽에서 음반을 냈다. 구녹음 발매가 중단된 후 에라토는 그 녹음을 발매할 수 있도록 DHM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기 때문에 새로 녹음하게 된 것이다."
바흐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유일한 길은 그의 음악을 그가 했던 그대로 연주하고 노래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신념이기도 하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너무 크거나 비브라토를 너무 많이 쓰거나, 너무 기계적인 리듬으로 연주하고 노래할 때, 다른 시대의 레퍼토리에서 쓰는 악기들을 그대로 사용할 때 연주는 결국 바흐의 폴리포니를 해치게 된다.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악기라 할지라도 사운드를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 변조된 악기라면 원래 악기 구조대로 고쳐야 한다. 그가 원하는 것을 찾아 선택하는 것은 작곡가의 권리고, 우리는 연주자로서 그를 따라야 한다. 또한, 바흐의 음악을 연주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면서도 흔히 간과되는 것이 '소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한다."
- 음악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고악기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어릴 때 라디오에서 하프시코드 연주를 듣고 '저런 멋진 소리를 내는 악기가 있다니!' 하고 탄복했었다. 아마 란도프스카의 연주였을 것이다. 이 후 오르간을 배우고 싶어 교회 오르간 주자를 찾아갔더니 '아직 어려. 페달도 발에 안 닿잖니' 라며 더 자란 다음에 오라고 거절당했다. 그 동안은 피아노를 계속 배우다가 16세가 되어 다시 그를 찾아갔다. 그는 나를 기억하고는 '키가 컸으니 이제 연주할 수 있겠군' 하고 말을 건넸다. 이때 레슨을 받겠다고 내가 가져간 곡이 거창하게도 바흐의 오르간 곡이었다. 그 첫 수업을 나는 쉰넷이나 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스승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물론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이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아마 누구나 다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는 진정 거인이며 대가이다.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아르농쿠르도 어떤 의미에서 스승이다. 그의 몬테베르디 레코딩이라든지 바흐의 요한 수난곡은 내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밖에 알프레드 델러도 꼽을 수 있다.
만나본 사람 중 인상깊은 연주자는?
"요요 마를 꼽을 수 있다. 우리 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바로크 첼로로 하이든 D장조 협주곡과 보케리니 협주곡을 협연했는데, 당시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에 거트현을 사용했다. 정말 환상적인 음악가다. 이 연주는 소니에서 곧 발매될 것이다. 그 밖에 안너 빌스마·막스 반 에그몬트·프란스 브뤼헨 등이 있다. 이 작은 나라(네덜란드)에 뛰어난 음악가들이 이리도 많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이들은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내가 활동하던 바로크 오케스트라 '무지카 안티쿠아 암스테르담' 시절을 살펴보면 악장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아내 마리 레온하르트였다. 그 악단에서 제2 바이올린을 하던 라인하르트 괴벨은 후일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의 악장이 되었다. 필립 헤레베게는 아르농쿠르와 레온하르트의 텔덱 바흐 칸타타집에서 합창지휘를 맡았고, 르네 야콥스는 암스테르담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친다. 고음악을 연주하는 이들 음악가들의 관계는 마치 커다란 가족과 같다."
아내인 티니 마토는 하프시코드 주자 겸 레코딩 프로듀서, 교수라는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떻게 된 사연인가?
"아드리안 페어슈티넨에 대해 먼저 말해야겠다. 아드리안은 마토와 함께 작업하는 엔지니어로, 내가 25, 6년 전 처음 레코드를 낼 때 만난 사람이다. 당시 그는 '하를레케인'이라는 신생 레이블의 클래식 파트 책임자이자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었다. 아드리안이 결혼한 상대가 카바레 가수의 전처(前妻)였는데, 그 카바레 가수(해먼드 포름베인)가 세운 회사가 바로 그 '하를레케인'이었다. 포름베인은 아드리안을 알게 되고 나서 자기 회사의 클래식 파트를 맡아 보지 않겠냐고 제의했고, 아드리안은 승낙했던 것이다. 당시 나는 음악원에서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으로 두 차례 'Prix d'excellence'을 받은 것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화젯거리였다. 마침 아드리안이 나에 대한 신문기사를 읽고 레코드를 내보자고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여자친구였던 아내 마토가 녹음할 때 함께 갔다. 그런데 마토가 테이프를 들어보자더니, 얼마 후 자신이 하면 더 잘할 수 있다며 프로듀서일과 편집일을 배웠다. 그래서 프로듀서 마토와 엔지니어 페어슈티넨이란 공식이 생겨났다. 내 녹음의 대부분이 바로 이들의 작품이다."
아내는 그럼 에라토 전속 프로듀서인가?
"아니다. DHM, 에라토 등 여러 회사를 위해 일하는 프리랜서다. 오직 나한테만 전속일 뿐이다(웃음)."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고악기 주자건 현대악기 주자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다른 음악가와 구별되는 자기만의 세계를 갖는 것 말이다. 나는 레온하르트에게 배우면서도 레온하르트가 아니라 쿠프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 올 계획은 없는가?
"몇 차례 한국에 오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너무 기일이 촉박해 가지 못했다. 가고는 싶다. 특히 한국 클래식 음악 시장은 팽창일로에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다. 음반 인세를 받을 때면 계산서에 각 나라별로 판매량이 집계돼 통보되는데, 한국에서 상당히 많이 팔리는 것을 보고 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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