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음악 용어 해설 -

작성자굴드|작성시간00.07.02|조회수709 목록 댓글 0

 


<관련 용어해설>







@Fugue <푸가: 둔주곡> (It. fuga. "나르다"). 하나의 주제(때로는 2개 혹은 3개의 주제, 이 경우에는 2중 푸가 혹은 3중 푸가라고 한다)가 각 성부 혹은 각 악기에 장기적이며 규율적인 모방반복을 행하면서 특정된 조적(調的)법칙을 지켜서 이루어지는 악곡이다. 모든 대위법적 기법을 포함하여 전개되는데, 조적으로는 하나의 조를 기반 으로 해서 그것의 근친조가 그 원조를 수식하면서 커다란 조적 마침꼴을 형성하는 것이다. 푸가에 있어서 선율적 요소는 주제(주창), 응답(답창), 대주제(대창, 주제 혹은 응답의 대위적 부주제)의 세가지이다. 또한 주제종결의 연장으로서의 코다도 선율적요소가 될 수 있다. 푸가를 화성적으로 분석하면 제시부, 회유부(삽입부), 추적부, 지속음부의 4개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바흐는 푸가의 대가로 간주된다. 특이한 경우로, 오페라 작곡가들도 특별한 효과를 기하기 위해 푸가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모차르트는 돈 지오반니의 마지막 장면, 바그너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에서의 왁자지껄한 장면, 베르디는 팔슈타프의 종지부에 푸가를 사용했다.



@대위법(Counterpoint). 대위법이란 점 대 점(point counter point)에서 비롯된 명칭이며, 이 경우의 점은 음표를 뜻한다. 오늘날에는 작곡기술의 일부로서 독립된 부문을 이루며, 화음연결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적 화성법과 근본적으로 대조되는데, 주로 음의 흐름 즉 선율선을 위한 서법을 취급한다. 이를 테면 푸가와 같은 악곡에 있어서는 그 기초가 되는 것이다. 팔레스트리나와 바흐는 보통 이 대위법의 두 대가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대위법적인 작곡은 사실상 모든 작곡가의 작곡 양식의 기본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스트레타(Stretta). '좁은', '긴박한'이란 뜻의 이탈리어. 주로 푸가등의 끝부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 기 위하여 사용되는 수법으로서, 그 부분을 '긴박부(緊迫部)'라고도 한다. 주제(또는 응답)가 완결되기 전에 다음의 응답(또는 주제)을 도입하는 것.



@오르겔풍크트(Orgelpunkt). 지속음(또는 보속음)의 일종으로서 페달음이라고도 한다. 다른 성부의 화음변화에 관계없이 길게 지속되는 저음. 이 명칭은 오르간의 페달건반으로 연주되는 지속저음에서 비롯되었다.



@카논(Cannon). 카논은 원래 '규칙', '표준'을 뜻하는 그리스어로서 중세이래의 음악에 있어서는 가장 엄격한 모방에 의한 대위법 악곡의 일종을 가리킨다. 14세기에는 단선성가에서 채용한 정선율이 다른 성부에 의해 시종 엄격하게 모방되는 카논풍 푸가(fuga per canonem)라는 악곡이 있었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카논으로 발달했다. 카논의 특징을 일반적으로 말하면, 주제라고 하는 1성부의 선율이 시작 되고 이것이 응답이라고 하는 다른 성부에 의해 어떤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정확하게 모방되는 형식이다. 그리고 같은 모방수법에 의한 푸가에서는 모방이 주제에만 한정되는것에 반해 카논에서는 시종 모방이 행해진다.



@코랄(Chorale). 일반적으로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 특히 루터파 교회의 찬송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나 본래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의 성가나 교회의 노래를 가리키는 용어였다. 프로테스탄트 코랄의 중요성은 그것이 수많은 칸타타나 오르간 코랄의 기초로서 독일 바로크 음악의 중심적임 역할을 한 점에 있다.



@코랄 전주곡(Chorale prelude). 코랄선율을 바탕으로 한 단순하고 짧은 오르간곡. 회중이 코랄을 부르기 앞서 연주되었다. 북스테후테, 파헬벨 그 밖에 많은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이 작곡했는데 특히 바흐의 여러 작품이 유명하다.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멜로디의 표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대한 연주 방법이다. 각 음들을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할 때 그 효과를 레가토(legato)라고 한다. 레가토 아 티큘레이션은 흔히 멜로디의 어느 단락 위나 아래에 긴 호선을 그려서 나타낸다. 현악기에 의한 레가 토는 길고 부드러운 활쓰기로 행해지고 관악기에서는 부드러운 텅잉 테크닉으로 연주된다. 성악에서는 한 번의 호흡을 부드럽게 내쉬게 된다. 레가토와는 반대로 스타카토(staccato)는 음과 음 사이를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방법을 뜻한다. 스타카토 아티큘레이션은 대개 분리시켜서 연주할 음표의 머리 아래에 작은 점을 붙여서 나타내며, 다양한 방법으로 행해진다. 현악기에서는 짧은 활로 치듯이 연주하고 관악기에서는 각 음을 보다 뚜렷하게 텅잉하게 된다. 그리고 성악에서는 각 음이 뚜렷하게 분리되도록 호흡을 중단시키면서 노래한다.



@아고긱(Agogik). 일종의 속도법을 말한다. 속도변화에 따른 그리스어 'agoge'에서 유래된 말로서 후고 리만이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 연주할 때 엄격한 템포나 리듬에 미묘한 변화를 붙여 다양한 색채감을 내는 방법이다.



@통주 저음(Basso Continuo). 숫자 저음이라고도 불리는데, 17-18세기의 유럽에서 널리 행해진 것으로서 건반악기주자가 주어진 저음 위에다 즉흥으로 화음을 맞추어 보태면서 반주성부를 완성시키는 방법 또는 그 저음 자체를 가리킨다. 독주파트가 쉴 때에도 저음은 악곡을 일관해서 연주되기 때문에 '통주(continuo)'라고 불렀다.



@투티(Tutti). '전부'라는 의미를 가지며 흔히 '총주'(總奏)라고 번역됩니다. 연주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연주자, 또는 가수가 다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17, 18세기의 콘체르토에 있어서는 독주 악기군(concertino)과 대비적으로 사용되는 총주를 '투티', '리피에노', '콘체르토 그롯소' 등으로 불렀습니다.



@리피에노(ripieno). 본래는 '충만한', '가득찬'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17, 18세기의 관현악, 특히 콘체르토 그롯소에서 이 말은 관현악의 <보강부>를 뜻한다. 현대 관현악단의 바이올린 뒤쪽의 플루트에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리피에니(ripieni)는 독주자들(concertino)과 구별되어 전관현악단(즉, 총주라 할 수 있는 tutti)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콘체르티노(Concertino). 바로크 콘체르토 그롯소에서 리피에노나 투티에 대비되는 작은 합주를 일컫는다. 기준 편성은 트리오 소나타의 편성(바이올린2, 통주저음)인데, 나중에는 비올라나 관악기를 추가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콘체르토 그롯소(Concerto Grosso). 바로크 시대의 기악 콘체르토 형식의 하나로 트리오 소나타의 한 부분을 인원수를 증가해서 연주함으로써 부분과 전체의 음량 대비효과를 얻는다. 이 경우 소편성 부분(통주저음을 포함한 3명-5명)을 콘체르티노, 대편성 부분을 리피에노(혹은 콘체르토 그롯소)라 부른다. 코렐리의 12곡으로 된 <<콘체르토 그롯소집>> Op.6(1714년)이 그 표준적인 형태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형식상 두 개로 나누자면, <교회 콘체르토>(느림-빠름-느림-빠름)와 <실내 콘체르토>(무곡의 모음곡)로 구분할 수 있다. 코렐리의 작품집의 경우, 8번까지가 전자이고 9번부터 12번까지는 후자의 계통에 속한다. 코렐리 이후의 주요한 작품으로는 제미니아니의 Op.3, 로카텔리의 Op.7, 비발디의 Op.3-2와 Op.3-11, 헨델의 작품번호 없는 악곡집 등이 알려져 있다. 콘체르티노에 관악기를 더한 것으로는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제1번 등이 있다. 한편 비발디의 <<4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콘체르토(b단조)>> 같은 것은 콘체르티노에 통주저음이 포함되어 있지 않는데, 악장 배치를 보더라도 오히려 솔로 콘체르토의 변형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모노포니(Monophony). 아무런 대조적 화성 요인을 포함하지 않는 무반주의 단선율로서, 한 사람 또는 몇 사람이 유니즌으로 노래하는 무반주의 민요가 좋은 예이다. 유사한 예로 클라리넷과 오보에, 트럼펫, 피아노가 만약 똑같은 멜로디를 연주한다면 비록 음질적인 대조감은 느낄 수 있더라도 그것 역시 모노포니의 연주임에 틀림없다. 또한 다양한 악기가 같은 멜로디를 서로 다른 옥타브로 연주하더 라도 텍스처는 여전히 모노포니이다.



@호모포니(Homophony). 서양음악에서 가장 보편화된 텍스처인 호모포니에서는 하나의 멜로디가 화 성 반주를 수반하는 하나의 악기로(또는 몇 개의 악기에 의해 유니즌으로) 연주된다. 물론 화성 반주 와 함께 독창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교향악 작품에서 현악 반주와 함께 연주되는 목관의 멜로디는 호 모포니이디. 또 교회의 찬송가나 코랄도 대개는 호모포니이다. 더 나아가 피아니스트가 왼손으로 반주하며 오른손으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 역시 호모포니를 형성한다. 멜로디를 반주하는 데에는 여러 가 지 방법이 있다. 우선 단순히 밑자리나 자리바꿈꼴의 3화음이 사용된다. 화음은 한꺼번에 모음화음 (block chord)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각 구성원을 아르페지오처럼 차례로 잇달아 연주하기도 하며, 때로는 부기우기 베이스(boogie-woogie bass)처럼 반복되는 화성적 패턴이 오스티나토(ostinato)가 반 주로 연주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반주는 박이나 박자의 흐름을 보강한다. 요컨대 주요 멜로디가 화성적 반주를 수반하는 한 그 텍스처는 호모포니이다.



@폴리포니(Polyphony). 몇 개의 멜로디가 동시에 진행하면서 화성을 이루어가는 데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폴리포니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개의 성부(또는 멜로디)가 필요하며, 어떤 작곡가들은 8성 대위법으로 적품을 쓰기도 했다. 대위법이란 폴리포니 텍스처에서 음표 대 음표의 종적 관계를 나타내는데 사용하는 용어이며, 가장 일반적인 것은 3성 또는 4성 폴리포니이다. 가장 기본적인 폴리 포니는 이른바 돌림노래(round)에서도 생성된다. 하나의 멜로디를 노래한다는 점에서는 헤테로포니와 유사하지만 시간적 간격을 두고 각 파트가 노래한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그리고 폴리포니에서는 멜로디가 조금씩 변화되면서 겹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블리가토(obbligato). 조주(助奏). 주선율에 대한 대성(對聲)의 뜻. 반주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선율과 더불어 악곡의 구성상의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파사칼리아. 4마디나 8마디 정도의 짧은 저음 선율을 반복하면서 상성부의 멜로디를 음형 또는 패시지로 변주해가는 일종의 변주곡. 본래는 무곡의 일종으로 느릿한 3박자의 무곡이었다.



@피아노. 이 악기의 발명자인 B. 크리스토포리에 관한 기록에 '피아노(작은음)와 포르테(큰음)를 낼 수 있는 쳄발로'라는 표현이 사용된 데서 유래했으며, 그 이후에도 정식 명칭으로는 피아노포르테가 일반적이다. 18세기에는 포르테피아노라고도 불렸다. 이러한 명칭이 이 악기의 음 자체의 특징을 나타 내는 데 반해 제작면에서의 특징을 명칭 속에 삽입한 해머클라비어라는 호칭도 있다. 그런데 클라비어 라는 용어는 이전에는 건반악기를 총칭하는 것이었으며, 바로크시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명 건 반악기를 통틀어 가리키는 용어이다.



@쳄발로. 유럽의 치터족 현명악기로 하프시코드, 클라비쳄발로, 클라브생, 버지널 등으로도 불린다. 피아노의 원류를 이루는 건반악기의 하나로 외관은 피아노와 아주 흡사하지만 발음원리가 다르다. 피아노는 해머로 현을 쳐서 발음하는데 반해, 쳄발로는 손톱 모양의 플렉트럼으로 현을 뚱겨서 발음한다. 17세기까지 쳄발로 음악은 오르간이나 클라비코드의 음악과 명확하게 구별해서 의식되고 있지는 않았 으며, 쳄발로 특유의 음악이 나타난 것은 J.J.프로베르거(1616-1667)무렵부터이다. 18세기말에 일단 피아노에 길을 양보하지만 그때까지 다양한 개량이 시도되었으며, 만드는 법은 나라와 제작자에 따라 각각 다르다. 1900년 전후의 부흥 이후는 피아노 기술의 응용으로 쇠테를 사용한 현대적 쳄발로 만들어 지게 되었는데, 이는 전통적인 쳄발로와는 딴 악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음색이 다르다. 그러므로 최근의 경향으로는 적어도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 음악 연주에서는 전통적 쳄발로가 중요시되고 있다.



@클라비코드. 하프시코드와 함께 피아노의 전신이 된 건반악기. 하프시코드가 현을 긁어서 음을 내는 데 반해 클라비코드는 키(건)를 내리면 키의 반대쪽이 올라가 거기에 부착된 탄젠트라고 하는 놋쇠의 쐐기로 현을 아래에서 치는 것으로 음을 낸다. 클라비코드는 음량이 작기 때문에 가정용 악기로 애호되었다. 미묘한 셈여림의 변화를 붙이는 것이 가능하고 타건 후에도 탄젠트가 현에 닿아 있음을 이용, 타건 뒤에 몇 번 압력을 새로 가해 일종의 비브라토 효과를 얻는 베봉 주법과 같은 독자적인 주법도 고안되었다.



@오르간. 건반악기 중에서 현이 아니라 파이프 또는 리드를 진동체로 하는 유일한 기명악기. 이 말은 '도구', '기관'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오르가논', 라틴어의 '오르가눔'에서 유래하고 독일어로는 Orgel, 프랑스어로는 orgue, 이탈리아어로는 organo라고 한다. 원래 음을 내는 도구라는 뜻으로 '악기' 의 총칭으로 쓰이고 있었으며, 특히 '많은 파이프로 이루어진 악기'까지도 가리키게 되었다. 구미에서는 오르간이라고 하면 본디 파이프를 갖춘 파이프 오르간을 가리켰지만 한국에서는 파이프가 없는 리드 오르간도 포함하여 오르간이라 일컫는다. 이는 한국 특유의 호칭으로 그 배경에는 리드 오르간이 피아노나 파이프 오르간보다 일찍 한국에 들어와 학교와 가정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특수한 사정이 있다.



@바흐 작품번호(BWV). 보통 클래식 음악에는 Op.라는 작품번호가 붙는다. 이는 '작품'을 의미하는 라틴어 Opus의 약자이다. 그러나 몇몇 작곡가들의 작품 앞에는 위대한 작곡가들의 수많은 작품을 분류, 확인하여 정리한 음악학 자들의 이니셜을 따거나, 작곡가의 이름에서 유래한 고유의 작품 번호가 붙는다. Op.와 고유의 작품번 호를 같이 쓰는 경우도 있고, 같은 곡이라도 분류한 사람에 따라 다른 작품번호를 쓰는 경우도 있다. 바흐 작품번호(BWV)의 유래를 살펴보면, 바흐가 타개한지 꼭 200년이 되던 해인 1950년에 독일의 음 악학자인 볼프강 슈미더(Wolfgang Schmider: 1901-?)가 바흐의 작품들을 정리한 목록을 출판했는데, 그의 목록에는 '바흐의 작품 목록'이라는 뜻의 독일어 'Bach-Werke-Verzeichnis'의 이니셜을 따 BWV라는 작품 번호가 붙어 있었다. BWV는 총 1080개의 바흐 작품에 붙어있다. ex) Partita No.2 in D minor, BWV1004: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Aria <아리아> (It. "곡조"). 서정적인 독주성악곡으로서, 독립된 형태의 것이 있고 혹은 Opera(오페라), Oratorio(오라토리오), Passion(수난곡), 또는 Cantata(칸타타)의 일부를 구성한다. 아리아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아에로(공기), 또는 이탈리아어의 아리아(곡조)에서 유래하며 양상, 정경, 형상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가창적인 성격이 현저하고 그 자체로도 완전한 곡의 부분을 말한다. 대부분은 독창곡이지만 2중창의 형태를 가지는 것도 있으며 흔히 길고 정교하게 작곡되어 음악적 흥미의 중심을 이룬다. 원래 아리아는 Recitative(레치타티브)와 반대로서 레치타티브 부분에서 극적인 상황이 급속히 전개되어 일정한 정서가 억제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을 때, 거기에 음악적인 배출구를 주는 것이었다. 아리아가 불려지는 동안 극적인 활동은 일시적으로 정지되지만, 음악적으로는 가장 충실한 가창기술을 표현하는 부분이 된다.



@바로크 모음곡(Baroque Suite). 모음곡이란 몇 개의 소곡 또는 악장을 합친 복합구성의 기악곡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고전모음곡(바로크모음곡)과 근대모음곡의 두 가지로 대별된다. 고전모음곡은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기악형식의 하나로 무곡의 성격을 지닌 몇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지며 전체는 동일한 조성으로 통일된다. 각 악장은 2부 형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며, 4-8악장의 것이 많으나 간혹 20악장 이상의 것도 있다. 사용악기는 초기에는 류트, 그 뒤에는 쳄발로가 특히 많이 쓰였고 그 밖에도 실내악이나 관현악을 위한 모음곡도 있다. 모음곡의 발달은 16세기부터 시작되나 그 형식적인 기초는 중세말기에 사교무용이나 민속무용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2박자나 3박자, 템포의 완급 등의 성격이 다른 무곡의 구성으로 시작된다. 예컨대 파반느, 가야르드, 파사메쪼+살타렐로 등의 구성이었다. 또한 중요한 것으로는 1540년-70년 경경의 이탈리아 류트곡집에서 볼 수 있는 파사메쪼+갈리아드+파도바노라든가, 파사메쪼+파도바노+살타렐로+리프레사 등 3곡 이상이 결합된 예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모음곡에서는 무곡의 배열도 고정되지 않고 원리적으로는 어떠한 구성도 가능했다. 모음곡을 하나의 통일된 악곡형식으로 생각하는 인식은 독일의 작곡가들에 의해 처음 시도되었다. 17세기 초기에 작곡된 포이에를(P.Peuerl), S.샤이트, H.샤인 등의 모음곡 중에는 주제변주의 원리를 응용하여 전곡을 통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편 프랑스의 작곡가들에게 있어서 모음곡이란 통일된 악곡형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유로운 구성에 의한 무곡집이었다. 그것은 고티에(D.Gaultier), J.C.샹보니에르, L.쿠프랭, J.H.당글베르 등이 만든 프랑스의 바로크 초기-중기 모음곡의 공통된 특징이며, 그들의 흥미는 주로 개별 무곡의 양식화와 표현법의 확립에 기울어 있었다. 그 무곡에는 자주 두블(double)이라는 일종의 장식적 변주가 실시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프랑스 음악의 대표자 중 한사람인 쿠프랭의 클라브생 모음곡에 잘 나타난다. 그들은 스스로 suite라는 명칭을 피하고 오르드르(ordre)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그것은 공상적인 표제를 지닌 몇 개(긴 것은 20곡 이상이나 됨)의 소곡을 자유롭게 모은 것으로서 거기에는 고도로 세련되고 양식화된 무곡뿐만 아니라 론도양식에 의한 악장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고전모음곡의 형식은 17세기 중엽의 독일 작곡가 J.프로베르거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의 모음곡 대부분은 <알라망드-쿠랑트-사라방드>라는 3개의 기본적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가 사망한 뒤에 출판된 곡집(1693)에서는 끝악장인 지그가 추가되어 바로크 후기 모음곡의 정형이 확립된다. 바흐 시대에 기준이 되는 모음곡은 성격을 달리하는 다음과 같은 악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알라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 그리고 흔히 사라방드의 앞뒤에 여러 형태의 무곡이 1곡 또는 몇 곡이 임의로 삽입되었다. 그러한 것들 중 중요한 것으로는 미뉴엣, 부레, 가보트, 파스피에, 폴로네이즈, 앙글레즈, 루르, 에르(아리아) 등이 있다. 또한 알라망드 앞에는 프렐류드, 신포니아, 토카타 등 무곡 형식과 관련이 없는 악곡이 전주곡의 성격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 시대 모음곡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그 국제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요 악장을 이루는 무곡 가운데 알라망드는 독일, 쿠랑트는 프랑스, 사라방드는 스페인, 지그는 영국에서 각각 생겨났다. 한편 임의로 삽입된 무곡은 이러한 중요악장과 양식면에서 현저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까닭은 후자가 16세기말에 생겨났으며 바흐 시대에 와서는 이미 무곡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여 고도로 양식화되었음에 반해, 전자는 17세기말 프랑스의 발레에서 생겨나 18세기 전반에 와서는 아직도 실제로 추는 댄스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크 중기-후기의 건반용 모음곡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는 독일의 프로베르거, 파헬벨, 폴리에티(A.Poglietti), J.크리거, J.K.F.피셔, J.쿠나우, G.뵘, J.S.바흐, 헨델, G.무파트, 영국의 퍼셀, 프랑스의 샹보니에르, F.쿠프랭, 라모 등이다. 이상과 같은 건반용 모음곡과 아울러 상당히 자유로운 성격을 지닌 모음곡이 실내악이나 관현악 분야에서 사용되었다. 이탈리아 실내 소나타(소나타 다 카메라)도 그 하나로서,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이탈리아의 코렐리, 베라치니, 독일의 J.로젠뮐러 등이 있다. 한편 관현악 모음곡은 1690년-1740년 경에 독일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습니다. 이것은 륄리의 발레나 오페라의 무곡을 본보기로 하여 첫머리에 프랑스풍의 서곡이 있기 때문에 관현악 모음곡 전체를 당시는 서곡(Ouverture)이라고 불렸다. 주요 작곡가로는 G.무파트, J.K.F.피셔, 텔레만 등이 있으며, 헨델의 <<수상음악>>이나 <<왕궁의 불꽃놀이>>,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은 이러한 형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전반에 독일에서 쓰인 파르티타라는 명칭도 흔히 모음곡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예컨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의 경우처럼)



@Badinerie <바디네리> (Fr. "익살"). 18세기 바로크 모음곡의 빠르고 경쾌한 악장을 부른 말. 바흐 관현악 모음곡 2번의 바디네리가 유명하다.



@Baroque <바로크> (Port.; barroco, "일그러진 진주"). 원래 이 단어는 "기괴함"을 의미하지만, 지금은 17세기와 18세기의 화려한 건축양식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음악에서는 1570년경부터 1750년경까지의 작품들을 분류하기 위해 빌려진 말이다. 바로크 시대의 대 작곡가로서는 몬테베르디, 륄리, 퍼셀, 코렐리, 비발디, 라모, 프랑스와 쿠프랭, 알레산드로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 헨델과 바흐 등이고, 동시에 Opera(오페라)가 시작되는 시기였다. Ballet(발레) 및 Oratorio(오라토리오)와 대부분의 현대기악 형태의 발원기였다. 그리고 역시 장조와 단조의 음조법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며 Keys(조성)과 음계법 및 통주저음의 사용이 그 특징이다.



@Bourre <부레> (Fr.). 옛날 프랑스의 춤. 룰리에 의해서 프랑스 오페라에 도입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도처에서 발견되는데, 작곡가들이 보통 이것을 Suite(組曲 혹은 모음곡)에 삽입해 넣었다. 바흐의 조곡 속에 있는 것들은 그 훌륭한 예다.



@Canon <캐논> (Gk. "규칙"). 두 개 이상의 성부로 구성된 대위법적인 성악곡 및 기악곡. 시간의 차이를 두고 시작하는 여러 성부들은 서로를 모방하면서 같은 선율을 연주한다. 윤창(輪唱)은 단순한 형태의 캐논이다.



@Cantata <칸타타> (It. cantare, "노래하다"). 하나 이상의 성부를 위한 악기반주의 성악곡. 1620년경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는데, 일련의 대조적인 부분들 - 레치타티브, 아리아 등 - 로 구성되어 있다.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를 제외하고는 바로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성악 형태였다. 17세기 후반까지는 주로 세속음악에 쓰였는데, 18세기초에 이르러 개신교음악의 대표적인 형태가 되었다. 바흐는 주말 성사곡으로 약 200개의 종교적 칸타타를 썼다. 1750년 이후에는 이 형태의 음악이 인기를 잃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베를리오즈의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같은 작품처럼 대규모의 종합적인 음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Chaconne <샤콘느> (Fr.). 3박자의 느리고 장중한 바로크 시대의 춤곡으로서, 베이스에서의 반복되는 주제를 갖는다. 파사칼리아와 매우 흡사한데, 후자는 단조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Courante <쿠랑트> (Fr. "달리는"). 일종의 무도곡 및 기악곡으로, 16세기와 18세기 중엽 사이에 번성했던 음악양식으로, Suite (조곡)에서 사용되는 표준적인 악장들 중의 하나이다.



@Gavotte <가보트>. 빠른 두 박자의 프랑스 궁정 무곡과 기악곡을 가리킨다. 16세기에 발생하여 18세기 후반까지 대중적인 음악형식이었다. 이것은 종종 바로크 시대의 Suite (조곡)에 포함되었다. 20세기에 와서 프로코피에프는 그의 고전교향곡에 가보트를 작곡해 넣었다.



@Gigue <지그> (Fr. "급격히 움직이다"). 바로크 시대의 대중적인 무도기악으로서, 건반악기의 네 개의 표준적인 악장 중 마지막 것이다 Suite (조곡). 이것은 아마도 15세기 영국에서 기원된 것 같다. 하지만 17세기말경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서로 다른 형태의 지그가 나타났다. 이 양식의 음악은 계속하여 빠른 속도로 18세기 후반까지 영향을 주었는데, 모차르트와 하이든에 의해서 6/8 박자의 활달한 악장들이 만들어졌다. 후기의 작곡가들도 지그를 썼다 드뷔시의 관현악곡인 images(영상) 중의 지그,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이 그 예이다.



@Mass <미사(祭祀)> (Eng.; Fr./Ger.: messe; Lat.: missa).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서, 두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 통상문미사, 즉 변하지 않는 고정된 텍스트를 바탕으로 치르게 되는 미사, 그리고 축제일이나, 성인의 날이나 혹은 장례의식( Requiem Mass) 같은 특별한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텍스트로써 치르는 고유문미사가 그것이다. 통상문미사를 구성하는 다섯 부분의 텍스트는, 그것들의 고유한 음악적 양식에 따라 작성되는데, 우리가 미사라 부르는 것은 보통 이렇게 음악적으로 작곡된 고유문미사를 가리킨다. 그것들은 각각 Kyrie(기도송), Gloria(영광송), Credo(사도송 : 니케아 사도송), Sanctus/Benedictus (성사송/은총송) 그리고 Agnus Dei(신의 어린 양을 위한 찬송) 등으로 불린다. 고유문미사는 Introit(도입송), Gradual(계층송 : 사제가 제단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할 때 불려지는), Alleluja(봉축송) 혹은 Tract(찬양송), Offertory(봉헌송 : 신에게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봉헌때 부르는 찬송) 그리고 Communion(성체배령: 봉헌된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의식으로 일명 성찬례라고도 한다) 등으로 구성된다. 중세의 종교의식에서는, 전부 라틴어로 된 텍스트를 바탕으로 교회의식이 진행되었는데, 의식은 우리가 종종 Gregorian Chant(그레고리안 성가)로 부르는 단선율 교회제창으로써 치렀다. 노래의 가락은 점차적으로 cantus firmus(고정선율)로 불려졌는데, 이것은 그 위에 다른 성부를 첨가시키는(Polyphony) 기본곡조의 기능을 하였다. 15세기경에는 조스캥 데프레 같은 대가들이 나와서 Canon(캐논)과 그 모방적 형태 등과 같이 미사를 위한 음악적 구성으로 작곡기법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각 성부를 위한 아주 복잡한 작곡법으로 발전되면서 결국에는 트렌트 공회(1545-63)에서 음악이 너무 복잡하여 그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속세적인 가락을 바탕으로 작곡되는 것을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팔레스트리나가 작곡한 어떤 미사곡은, 특히 교황 마르첼리를 위한 미사에서, 공회에서 제정한 규칙을 충실히 따랐다. 초기 바로크 시대에는, 미사는 종종 오케스트라 반주를 동반하였다. 통상문 미사곡중 가장 훌륭한 작품중의 하나는, 비록 그것이 단일한 곡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두 시간이 넘는 연주시간을 가진 바흐의 b단조 미사일 것이다. 그 규모와 복잡성에서 이에 필적할 수 있는 곡은 한 세기 후에 작곡된 베토벤의 Missa Solemnis(장엄미사곡)뿐일 것이다.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그리고 브루크너 등도 훌륭한 미사곡을 썼다. 모차르트의 웅장한 레퀴엠(장송미사곡)은,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된 작품이었지만,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이다. 20세기에 와서는, 풀랑,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본 윌리엄스 등이 훌륭한 미사곡을 작곡하였다. 최근까지 미사곡의 텍스트는 라틴어로 불려졌지만, 제2바티칸공회(1964-1969)에서 미사를 각 나라의 실정에 맞게 치를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이로부터 작곡가들은 재즈나 민요를 바탕으로 하는 미사곡도 쓸 수 있게 되었다.



@Minuet <미뉴에트> (Fr.: menu[발걸음], "짧은[스텝(발걸음)]"). 온건한 3박자의 프랑스식 춤. 1600년대에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그리고 그 후에는 귀족사회에서 인기 있는 무도곡이었다. 미뉴에트는 종종 세 부분으로 쓰여졌다 ; 대조적인 효과를 갖는 두 번째 부분은 보통 세 개의 악기로써 연주되었는데(예를 들어, 두 개의 오보에와 하나의 바순), 이것은 Trio(트리오)로 알려지게 되었다. 미뉴에트는 Baroque (바로크)시대에는 기악적인 Suite(조곡)이나 Ballet 등에 삽입되었다. 그 후에, Classical(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은 이것을 다음의 악곡양식에서 세번째 악장(때로는 두번째 악장)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형적인 작곡법이었다.



@Motet <모테트> (Fr.: mot, "단어"에서 유래). 이 말은 13세기초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는데(Middle Ages), 작곡가들이 Gregorian Chant(그레고리안 성가)의 기본 곡조 위에 한 두 개의 대칭 멜로디를 첨가하면서 이 용어가 생겼다. 처음에는 가사 없이 불려지다가, 가사가 추가되자 교회용이
든 세속용이든 모테트("작은 텍스트")라는 말로 불려지게 되었다. 바로크시대의 도래까지 이것은 Polyphony 음악의 가장 중요한 형태의 하나였으며, 크고 아름다운 모테트를 작곡한 모든 음악가들은 이 모테트를 통해 그들의 모든 음악적 기술을 과시하였다. 1600년대 이후에 모테트는 점차
적으로 중요한 분야에서 목소리와 악기를 위한 Cantata에 의해 대치되었지만, 형태적인 발전이 반주가 있는 형태나 없는 형태(A Capella) 모두의 경우에 있어서, 바흐,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브람스 그리고 특히 브루크너 같은 후대의 작곡가들을 통해 이루어졌다. 브루크너의 라틴어로 된 고유문 미사곡은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적 영광을 낭만적으로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Requiem <레퀴엠>. 레퀴엠 (Requiem)은 '안식’이라는 뜻의 라틴어다. 가톨릭 장례 미사 중 첫 곡인 입당송(Introi tus)은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 라고 시작하는데 그 첫 단어인 'Requiem'을 따서 '레퀴엠 미사'라고 하여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Missa pro defunctis)를 통칭했고, 그것이 레퀴엠이라는 독특한 음악 양식을 만들어 냈다. 미사의 한 형태인 레퀴엠의 구성을 알려면 일반 미사가 어떤 형태로 드려지는가를 알아야 한다. 미사 때 드려지는 기도를 보면 키리에(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글로리아(아버지께 영광)·상투스(거룩하시다)·베네딕투스(축복)·아뉴스 데이(신의 어린 양) 등과 같은 통상문(Ordinarium, 늘 변함이 없다는 뜻)이 있다. 그와 비교해 음악 형식으로서의 레퀴엠 미사는 전례 미사의 기도문인 고유문(Properium; 절기나 행사에 따라 변한다는 뜻)을 거의 모두 가사로 쓰고 있기 때문에 더 확장된 모습을 가지게 된다. 레퀴엠은 미사 고유문인 입당송(Introitus), 층계송(Graduale), 연송(Sequentia), 봉헌송(Offertorium), 성체 배례송(Communion)의 전례문들을 포함하게 되고, 그 대신에 일반 미사곡에 사용되는 가장 긴 부분인 글로리아(Gloria)와 크레도(Credo)는 제외되고, 진노의 날(Dies irae)가 첨가되는데 이 부분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미사의 진행 순서에 따라 인트로이투스(입당송)·키리에·그라두알레(층계송)·세쿠엔티아(진노의 날)·오페르토리움(봉헌송)·상투스 - 베네딕투스·아뉴스 데이·코뮤니온(Lux aeterna luceat eis; 영원한 빛)의 구성이 만들어지게 된다. 코뮤니온 뒤에 '리베라 메'(나를 자유롭게 하소서)나 '인파라디줌'(천국에서)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작곡가의 선택에 따라 레퀴엠의 구성은 조금씩 달라진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회 음악 작곡가인 호앙 카레롤스의 '죽은 자를 위한 미사'(1680년경)는 이런 레퀴엠의 구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다. 가장 오래된 다성 음악에 의한 레퀴엠은 중세 작곡가인 뒤파이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뒤 오케켐과 브루멜·피에르 드라뤼 등의 레퀴엠이 뒤따른다. 1563년에 끝난 트랜트 종교회의에서는 미사 음악에 입당송의 가사 '레퀴엠 아에테르남'과 연송의 '디에스 이레'(진노의 날)를 쓰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그리하여 음악의 르네상스기로 볼 수 있는 1620년까지 약 70여 개의 레퀴엠이 작곡된다. 이때 까지 작곡된 레퀴엠들은 기악 반주가 없는 아카펠라 스타일의 다성 음악이었다. 바로크 시대로 넘어가면서 교회 성악곡과 기악의 발달과 더불어 기악 반주가 첨가된 레퀴엠들이 활발히 만들어지게 되었다. 1620년∼1750년에는 약 325개의 레퀴엠이 발표된 것을 보면 얼마나 활발히 레퀴엠 곡들이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하인리히 비버와 장 기유, 그리고 앙드레 캉프라 등의 레퀴엠이 그 당시 가장 사랑받는 곡들이었다. 모차르트 시대에 들어서면 왕족이나 귀족, 또는 유명 인사의 장례식을 위한 위탁 작곡이 늘게 되었고, 따라서 당시의 명망있는 작곡가들은 여러 개의 레퀴엠을 작곡하기도 한다. 프랑수아 고섹·루이지 케루비니, 그리고 비록 미완성이지만 역시 모짜르트의 레퀴엠이 고전주의의 대표적인 레퀴엠들로 꼽히고 있다. 1760년에 작곡된 고섹의 레퀴엠은 낭만성을 지닌 대편성으로 후대 레퀴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두 개의 레퀴엠을 남기고 있는 케루비니의 1817년 작곡된 C단조의 '레퀴엠'은 낭만주의 시대의 대규모 작품을 예견하며,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감과 의욕을 불러일으킨 또다른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미사 음악의 장르가 상당히 쇠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레퀴엠 미사라는 장르에서 풍겨나오는 근원적인 낭만성은 더욱 많은 작곡가들을 매료시켰고, 그에 따라 1825년∼1910년 사이에는 620여 개의 레퀴엠이 작곡되기에 이른다. 이중 베를리오즈와 베르디의 레퀴엠은 그랜드 오페라의 개념을 도입한 장대한 규모의 것이다. 그 밖에도 리스트·생상·브루크너·드보르작 등이 레퀴엠을 남겼는데, 이 작품들은 케루비니의 표본을 따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포레의 '레퀴엠'은 초기의 레퀴엠으로의 회귀와 진정한 안식의 의미를 지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루터교의 독일어 성서에서 발췌한 문장을 텍스트로 한 '독일 레퀴엠'이라는 장르도 생겨났는데 하인리히 쉬츠·프레토리우스·미하일 하이든·슈베르트 그리고 브람스의 걸작을 꼽을 수 있다.



@바로크 소나타(Baroque Sonata). 17세기는 바로크 시대로부터 시작된 소나타라는 명칭은 기악곡의 한명칭으로서 당시의 칸초나라고 불리우는 대조되는 리듬과 빠르기를 갖는 여러부분으로 구성된 기악 형식이 발전된 것이다 이 세기 초엽이 용어는 주로 성악 작품의 기악 서주나 간주곡을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점점 독립된 기악 작품을 기칭하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 17세기 초에 소나타라고 불리우던 곡들은 한 두개의 선율악기(대개는 바이올린)와 지속 저음에 의한 것일 때가 많았다. 17세기 중엽에 들어오면서 두가지 형태의 소나타로 구분되기 시작하였는데, 첫째로 교회에서 사용될 목적으로 쓰여진 느린 악장과 빠른 악장으로 구성된 교회 소나타(sonata da chiesa)와 또하나는 각 악장들이 뚜렷한 춤 리듬이나 춤 이름을 갖는 실내 소나타(sonata da camera)로 구분되었다. 이들은 '느림-빠름-느림-빠름'의 4악장 배치가 표준이 되었으며, 실내 소나타는 독일 무곡인 알르망드, 프랑스의 쿠랑트, 스페인의 사라반드, 이탈리아(영국)의 지그로 무곡적인 특성을 대조적으로 배치하였다. 보통 이 시대의 소나타는 두대의 바이올린과 지속저음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트리오(삼중주) 소나타라고도 불렸다. 후기에 들어와서는 곡의 규모도 커지고 곡의 분위기도 점점 부드러워졌으며 소나타 형식을 예고하는 2중 주제도 예고된다. 이 시기에 들어오면 많은 작곡가들이 소나타 형식을 애호하는데 이탈리아의 알비노, 비발디, 마르첼로, 타르티니, 코렐리, 프랑스의 쿠프랑, 영국의 젠킨스, 독일의 북스테후데, 푹스, 그라우프너, 헨델, J.S.바흐 등이 있는데, 그 중 바흐의 소나타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전 소나타. 보통 소나타라고 하면 이 고전 소나타를 지칭하는데, 바로크 소나타가 고전파에 이르면서 크게 피아노 독주용과 독주악기와 피아노용으로 나눠지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3중주 이상의 곡에는 소나타와 같은 형식을 취하더라도 소나타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보통 4악장으로 구성된 고전 소나타의 제1악장에는 소나타 형식이 사용 되는데, 이러한 형태는 독주곡뿐만 아니라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등에도 사용되는것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1악장 :Allegro 알레그로, 소나타형식
*제2악장 :Andante, Adagio 안단테 또는 아다지오, 가요(세도막) 형식
*제3악장:Menuett, Scherzo 메뉴에트 또는 스케르초, 트리요 형식
*제4악장:Allegro, Presto 알레그로 또는 프레스토, 론도 형식
이 4악장 구성은 하이든(285곡 작곡)에 의하여 완성되어 모차르트(90곡 작곡)와 베토벤(55곡 작곡)을 정점으로 하는 빈고전파에 의하여 더욱 풍성하게 종합된다. 특히 베토벤의 32곡의 피아조 소나타는 '구역성서'라고 불리우는 J.S. 바흐의 평균율과 비교하여 '음악의 신약성서라고 불리우는 만큼 표현의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낭만주의의 경향이 강한 베토벤의 후기 작품은 2,3,4악장 구성을 갖기도 하였는데, 그 후 하나의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낭만주의에 들어오면서 소나타의 악장 배치는 2악장이나 1악장 등으로 매우 자유스럽게 되었다. 또한 현대에 들어오면서 소나타는 고전적 의미와는 달리 단순히 (기악곡)의 의미로만 쓰여지고 있다.



@소나타 형식. 소나타 형식은 소나타와 교향곡, 협주곡 등의 제1악장에 사용되는 악곡 형식으로, 주제를 제시하는 제시부(Exposition)와 주제 및 다른 주어진 선율을 전개시키는 발전부(Development)와 주제가 다시 나타나는 재현부(Recapitulation)의 세 부분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크게보면 론도형식과 같은 세도막 형식이다.
*제시부-성격이 다른 두개의 주제가 제시되는 부분으로, 제1주제 다음에 경과구를 지나 제2주제가 나타난후 짧은 종결악구(Codetta)를 거쳐 발전부로 들어간다. 제1주제가 장조이면 제2주제는 그 장조의 딸림조, 단조이면 제2주제는 나란한 장조가 된다.
*발전부-작곡자의 역량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부분으로 제시부의 주제를 동기적으로 발전하는 부분이다.
*재현부-제시부와 같은 구조이지만 두 주제의 조성이 다르다. 제1주제가 장조이면 제2주제는 같은 장조이고, 단조이면 제2주제는 같은 으뜸음조가 된다. 마지막 부분에는 종결악구(Coda)로 맺는다.



@실내악(Chamber Music). 오늘날 실내악이라고 하면 먼저 순수한 기악으로 이루어진(간혹 성악이 섞이기도 함) 2명 이상 10명 내외의 연주자들이 일반적으로 실내나 작은 홀에서 연주하는 합주를 말한다. 본래 실내악이란 용어는 바로크시대에 사용된 이탈리아의 뮤지카 다 카메라(musica da camera)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이것은 교회나 극장을 위한 음악이 아닌 왕궁이나 귀족의 저택에서 연주하는 것을 지칭하기 위하여 쓰이던 것이 하나의 음악적 장르가 된것이다.
실내악의 본격적인 출발은 소나타 형식 및 근대적인 소나타의 성립이후인 18세기 말 부터라고 볼 수 있다. 교향곡 을 오케스트라를 위한 소나타라고 한다면 실내악은 작은 앙상블을 위한 소나타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실내악은 소나타와 같이 4악장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전악장중 하나 이상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성되는 연주형태는 다음과 같다.
a. 2중주(Duo, Duet)
바이올린(비올라)-피아노, 첼로-피아노, 피아노(1)-피아노(2)
b. 3중주(Trio)
*피아노 3중주-피아노, 바이올린,첼로
*현악 3중주-바이올린,비올라,첼로
*플루트 3중주-플루트,바이올린,첼로
*목관 3중주-플루트,클라리넷,파곳
c. 4중주(Quartet)
*현악 4중주-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
*피아노 4중주-바이올린,비올라,첼로,피아노
d. 5중주(Quintet)
*현악 5중주-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피아노 5중주-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피아노
*목관 5중주-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호른,파곳
@오페라(Opera). 오페라(Opera)라는 단어는 원래 라틴어의 '작품(opus)'이라는 뜻으로 르네상스의 발생지인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발생되었다. 오페라는 음악,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을 합친 총체예술로서 독창(아리아, 레치타티브)과 중창, 합창, 합주 등의 연주 형태로 구성되는 극음악을 말한다. 음악과 극의 결합은 고대로 부터 있어 왔지만 오페라의 조상격은 르네상스 시대 희극의 막간에 사용한 인테르메조로서 인테르메조들은 합창, 독창, 기악합주 등을 갖는 상당히 정교한 음악극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음악 형식과 같은 오페라의 기원은 16세기 말 이탈리아의 작곡가 페리(Jaccop Peri)가 리누치니(Ottavio Rinuccini)의 대본에 의하여 작곡한 '다프네(Dafne)'가 최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의 귀족들은 궁전에 모여서 예술을 논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을 카메라타라고 하는 것이다. 그 중 바르디 백작의 카메아타에 모인 일련의 예술가들은 르네상스의 의미인 그리스의 재탄생을 시도하여 다프네라는 희랍 신화를 취하여 독창 성부에 간단한 반주를 붙인 새로운 음악형식인 단선음악(Monody) 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 뒤 라누치니의 시에 페리와 카치니가 곡을 붙인 '에우리디체(Euridece)'가 본격적이니 오페라가 되었다. 오페라의 중심지가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옮기어 발전해 나갔는데,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이어주는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1567~1643)가 지도적 작곡가로 군림하였으며, 그 뒤 나폴리로 옮겨져 아리아가 오페라의 중심이 되었는데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 1659~1725)가 당시의 요구에 부합하는 다.카포.아리아를 사용하는 무수한 작품을 남겼다. 또한 나폴리악파의 유명한 작곡가는 페르골레지(Battista Pergolesi 1710~1736)로 그의 '마님이 된 하녀'는 오페라부파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그 뒤 북상하여 1647년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상연되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온 륄리(J.B Lully 1632~1687)에게 배운 라모(J.P Rameau 1683~1764)가 프랑스 오페라를 이끌었다. 영국에서는 오페라의 상연이 늦게 시작되었는데 최초의 작곡가는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이다. 독일은 프랑스나 영국보다 빨랐지만 이탈리아 오페라에 의존하였으며,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utz 1585~1672)가 최초의 오페라를 쓴 후(글룩의 오페라 개혁 이후)베버에 이르러 국민적 오페라의 발전을 보게된다. 18세기 후반에 와서는 이탈리아의 과장된 오페라 세리아(정가극)보다는 일상 생활의 재료를 사용한 희극적인 오페라 부파(희가극)가 널리 애호되기 시작하는데, 파리에서는 이 오페라 부파와 전통적인 이탈리아의 오페라 세리아 사이에 심한 논쟁이 벌어지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부퐁 논쟁'인 것이다. 오페라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글룩의 오페라 개혁인데, 그는 자신의 오페라 '알체스테'의 서문에서 당시에 피폐해져 있던 오페라를 과감히 지적하고 나서는데, 음악을 극적 효과가 있게 할 것, 아리아 가수의 허영심을 억제할 것(당시에는 아리아 가수의 횡포가 극심했슴), 극이나 대사에 관계가 없는 음악적 장식을 제거할 것, 서곡을 극의 성질과 관계지을 것 등을 내세웠다. 자신의 의도를 성실히 수행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그를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의 위치로 올려 놓았을 뿐만아니라 이 작품을 근대 오페라의 기초가 되게 하였다. 그 후 오페라 200년의 발전을 총괄하는 천재 작곡가인 모차르트가 나타나 '피가로의 결혼','돈조반니','마적'등 뛰어난 작품을 남겼고, 베토벤은 단 하나의 오페라 작품인 '페델리오'를 ,독일 낭만파의 기수가 되었던 베버는 '마탄의 사수'를 남겼으며, 19세기에 들어와서는 로시니의 '세빌랴의 이발사', 도니제티의 '루치아',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자'등이 등장한다. 바그너는 글룩의 의도를 반영하여 종래의 오페라와는 다른, 음악이 극에 종속되게 하며, 무한 선율을 사용하고 지도 동기를 사용하여 음악이 극의 발전을 심화시키는 '악극'을 창시하였는데, 대표작으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탄호이저',로엔그린',트리스탄과 이졸데','니벨롱겐의 반지' 등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바그너와 같은 해에 태어나 그와 견줄 만한 베르디가 있었는데,'리골레토','춘희','일 트로바토레','아이다','오델로' 등의 걸작을 남겼다. 19세기 말엽에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푸치니의 '라 보엠','토스카','나비부인'이 있으며 그 후에도 20세기의 많은 작곡가들이 크고 작은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 참고자료: 초기 오페라의 역사



오페라의 사전적인 정의를 하나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6세기말에 일어난 이탈리아 음악극 전통에 따른, 작품 전체가 음악으로 표현된 악곡의 형태" 즉 이 정의에 따른다면 카치니(Guillio Caccini)나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이전의 음악극들은 오페라의 범주에 넣지 않으며 또 노래에서만 음악 반주가 있거나(뮤지컬, 오페레타) 혹은 음악을 일부에만 국한하여 사용하는 경우(극 부수 음악)의 경우는 오페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음악극들은 오페라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음악학자들마다 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다. 그라우트는 그리스 서정극에서 오페라의 기원을 찾았고, 오레이는 중세 의전극을 오페라의 기원으로 보았다.



▶오페라 이전의 음악극



10세기경부터 중세 교회를 중심으로 이른바 의전극 혹은 예배극(liturgical play)이라고 하는 장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의전극은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대중에게 성서의 이야기나 교리를 쉽게 알리기 위해서 만들어 졌으며 선율은 그레고리오 성가의 단선율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가사는 성서에서 따온 이른바 트로푸스(tropus, 가사 바꿔 부르기)였다. 이런 형태의 의전극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다니엘 극(Ludus Danielis)으로서 구약성경의 다니엘 서의 이야기를 극으로 꾸민 것으로 연기와 기악 반주가 수반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대단히 드라마틱한 장면을 여럿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오페라적 요소를 풍부히 가진 작품이었다. 의전극은 중세 말까지 기적극, 신비극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며 계속 발전하였는데 나중에는 규모가 너무 커져서 한 도시의 축제로 발전할 정도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의전극과는 별도로 새로운 형태의 음악극이 탄생하였다. 흔히 막간극(intermezzo)라고 불리는 이 음악극은 대규모의 축제(이를테면 대귀족의 결혼식) 사이에 여흥 음악으로 상연되었는데 초기에는 전통적인 마드리갈(madrigal)에 기악 반주가 붙은 형태로, 나중에는 오페라의 기초가 된 모노디(monody)로 불리었고, 그 가운데는 야코포 페리(Jocopo Peri)가 작곡한 <다프네>(Dafne, 1598년)도 있었다. 페리의 <다프네>는 고대 그리스 비극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본떠 만든 것으로 단성 마드리갈, 즉 모노디로 전곡이 작곡되었다. <다프네>의 악보는 현재 거의 소실되었는데, 역시 그가 1600년에 작곡한 <에우리디케>(Euridiche)는 현존하는 최초의 오페라이다.



▶신음악 (Le Nuove Musiche)



모노디라고 불리는 르네상스 말기의 혁명적인 음악 형태를 완성한 사람들은 카메라타(Camerata)라고 불린 일단의 귀족들과 예술가들이었다. 피렌체(Firenze)의 바르디(Bardy)백작의 후원으로 결성된 이들이 목표로 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극과 낭창법의 부활이었다. 그들은 당대의 다성 마드리갈이 시의 운과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그에 대해 단순한 기악 반주를 가진 하나의 목소리만을 위한 음악, 즉 모노디라는 장르를 만들었다. 그들은 모노디가 시의 자연스런 억양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고 가사도 분명히 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와 함께 감정의 직접적 전달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표현방식, 흔히 제 2작법 혹은 stile moderno라고 부르는 것과 모노디가 결합하여 극적인 가창 양식이 탄생했다. 모노디는 대단히 이상적이고, 이론적인 것으로 출발했는데 그것을 실체화한 사람은 카메라타
의 멤버였던 시인 오타비오 리누치니(Ottavio Rinuccini)와 작곡가 줄리오 카치니였다. 줄리오 카치니는 그의 작품집 <신음악>(Le Nuove Musiche, 1602년)에서 모노디의 이론적인 우수성을 알림과 동시에 그에 따른 작품들을 작곡했는데 그 가운데 "Amarilli mia bella"는 오늘날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카치니는 이 모노디 이론을 바로 음악극에도 적용하여 <에우리디케>의 작곡에 참가했으며 나중에 이를 자신의 작품으로 개정하였다. 그의 <에우리디케>는 페리의 작품과 함께 현존하고 있다.



▶몬테베르디와 오페라의 발전



페리와 카치니에 의해 비록 오페라가 출발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 작품들은 대단히 밋밋한 작품들로 음악적으로 그다지 큰 감명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몬테베르디의 등장은 금새 오페라의 수준을 진일보 시켰다. 몬테베르디는 크레모나(Cremona)에서 태어나 일찌기 만토바(Mantova)의 궁정악장을 지냈으며, 만년에는 베네치아(Venezia)의 산 마르코 성당(St. Marco)악장으로 활동했던 17세기 전반의 최대 작곡가이다. 그의 작품경향은 초기에는 전통적인 무반주 마드리갈을 주로 작곡하였으나 <마드리갈 작품집 제 5권>(1605년)부터는 제 2작법에 따라 바로크 적인 풍부한 표현과 대담한 불협화음의 사용, 가사의 중시 등으로 확실히 새로운 음악으로 나아가는 면모를 보였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몬테베르디의 추구가 일대 정점에 이른 것은 1607년 만토바 궁정에서 결혼식을 위해 쓸 목적으로 작곡된 "favola in
musica" 로 카치니 등이 작곡한 종래의 모노디 양식에 중창, 합창, 대규모의 기악 오케스트라에 의한 반주와 춤곡을 혼합해 오페라의 일대 혁신을 이루었다. 악기의 효과적인 사용은 곡의 지루함을 덜 뿐만 아니라 인물과 장면의 묘사를 더욱 생생히 하여 후대의 작곡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몬테베르디는 1613년부터 베네치아에서 활동했는데 이때 베네치아는 이미 이탈리아 오페라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쉽게도 이 시대에 작곡한 오페라 가운데 대부분은 소실되었고 최후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율리시스의
귀환'(1641)과 역사 오페라 '포페아의 대관'(1642)만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몬테베르디의 사후 그의 제자인 피에르 프란체스코 카발리(Pier Francesco Cavalli)등에 의해 오페라는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모노디는 점차 가사의 전달을 위한 레치타티브와 음악적인 아리아로 분화되었고 레치타티브는 반주의 종류에 따라 다시 레치타티브 세코와 레치타티브 아콤파냐토로 나뉘었다.



베네치아의 오페라는 로마를 거쳐, 나폴리(Napoli)에서 더욱 발전하게 되었는데 나폴리 오페라의 초기 거장인 알렛산드로 스카를라티(Allessandro Scarlatti)는 흔히 다 카포(da capo) 아리아라고 부르는 A-B-A 3부 형태의 전형적인 바로크 아리아를 확립시켰으며, 이것은 노래의 음악적 기능이 중시되기 시작한 17세기 중반 이후로 점차적으로 오페라의 중심이 되었다. 기악에 있어서 스카를라티는 빠름-느림-빠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탈리아 서곡(sinfonia)을 완성시켰다. 이 시대에는 현악기가 주가 되는 간소한 오케스트라가 널리 사용되었는데 오케스트라의 규모는 축소된 반면, 화려한 무대장치와 스타급 가수의 사용은 이탈리아 오페라에서 여전히 중요했다.



▶프랑스와 영국의 오페라



17세기말부터 사실상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이탈리아 오페라의 영향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프랑스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프랑스 오페라를 시작하고 발전시킨 최초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장 밥티스트 륄리(Jean Baptiste Lully)는 이탈리아에서 귀화한 프랑스인 이었다. 프랑스도 처음에는 선진적인 이탈리아 오페라를 먼저 접하게 되었는데 결혼 축제용으로 루이지 로시(Luigi Rossi)와 카발리가 몇 개의 오페라를 프랑스 궁정에서 상연했다. 이에 자극을 받아 프랑스 인들에 의해 본격적인 오페라가 시작되었는데 시인 피에르 페랭(Pierre Perrin)과 작곡가 로베르 캉베르(Robert Cambert)는 최초의 서정극 '이시의 전원극'과 오페라 '포모나'를 내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곧 륄리의 아성에 밀려나야 했다 륄리는 그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과 춤솜씨, 또한 권모술수로서 오페라 상연의 독점권을 얻는 등, 루이 14세의 총애와 비호를 받게 되었는데 루이 14세의 춤에 대한 열정 때문에 프랑스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에는 없는 독특한 발레 형식을 지니게 되었다. 그는 24인으로 구성된 왕실 합주단을 만들고 정연한 현악 앙상블을 처음 확립하였으며 바로크 시대에 가장 중요한 기악 장르가 된, 네 부분으로 된 프랑스
식 서곡(Ouverture)을 창안했다. 륄리 사후 가장 중요한 프랑스 작곡가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한 장 필립 라모(Jean Philippe Rameau)는데 그는 이미 이론가와 종교 음악 및 클라브생 음악의 작곡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는 륄리 식의 서정 비극(Trag die lyrique, Trag die en musique)에 덧붙여 자신만만한 풍부한 화성과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다양한 오케스트레이션, 장대한 대위법을 구사하여 50세가 넘어서 새로이 오페라의 대가라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영국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극음악이 발전하고 있었다. 영국에는 이미 엘리자베스 시대에 연극의 부수물로서 음악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셰익스피어나 말로우의 희곡 작품은 실제로는 풍부한 기악 반주와 노래를 붙여 공연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오페라가 발전이 늦은 것은 순전히 크롬웰 독재하의 암흑시대 때문이었다. 왕정복고 이후 존 블로우(John Blow)나 헨리 퍼셀(Henry Purcell) 같은 재능있는 작곡가들이 배출되었으나 1711년 핸델의 '리날도'가 런던에서 상연됨으로서 영국의 음악계도 이탈리아 오페라, 이탈리아 작곡가, 이탈리아 가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카스트라토의 황금시대



전설과 역사상의 영웅들이 등장하는 대규모의 비가극,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는 적당히 재능있는 극작가, 고만고만한 작곡가, 그리고 빛나는 가수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 바로 이 빛나는 가수들이 음악사상 전무후무한 거세남성 소프라노와 알토들, 즉 카스트라토(Castrato)였다.



17세기 중반 이후 독창이 음악적으로 중요해지고 기교적이고 장식적인 아리아, 벨 칸토 창법이 완성되면서 기술적으로 이것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가수를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이미 카톨릭 교회의 성가대에서 중요한 파트를 맡고 있었던 거세가수들이 오페라의 주요 배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카스트라토들은 그 초인적인 기술과 목소리로 인해 단연 오페라의 스타로 떠오르게 되었다. 카스트라토들은 화려한 의상을 갖추고 굉장한 무대 배경을 뒤로하고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바이올린의 기민함과 목관
악기의 감미로움, 오르간의 지속성, 트럼펫의 웅장함과 겨루었다. 이렇듯 오페라는 기술적으로는 정점에 서 있었으나 드라마 그 자체는 잊혀지고 있었다. 이른바 메타스타시오 풍의 오페라 세리아는 그 복잡하고 비현실적인 내용으로 인해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귀족 및 유력 시민에 의해 유지되던 베네치아, 나폴리, 함부르크, 드레스덴, 런던의 오페라는 갈수록 사치스럽고 불건전한 오락으로 전락하고 있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오페라 스타들끼리의 암투와 여기에 가세한 귀족들의 반목은 굳이 핸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상상 이상의 것이어서 당대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종종 패싸움과 같은 소동이 일어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한쪽에서는 오페라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오페라 세리아 내부에서 스스로 붕괴하고 있었다. 런던에서의 이탈리아 오페라의 몰락은 작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오페라 개혁



"아리아의 전주가 연주되는 동안 가수는 무대를 왔다갔다하며 잡담을 한다. 막상 노래할 차례가 되면 카덴차 부분에서 자기 좋을 대로 쉬고 마음내키는 대로 얼렁뚱땅 노래하거나 장식음으로 요란하게 꾸며댄다. 그동안 지휘자는 쳄발로에서 손을 놓고 담배를 한대 피우며 가수가 지칠 때까지 기다린다. 가수는 카덴차의 끝 부분에서 목소리도 가다듬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기의 최고 음을 부른다" 이상은 작곡가이자 작가인 베네데토 마르첼로(Benedetto Marcello)가 쓴 (유행중인 극장, 1720)라는 팜플렛에서 당시의 오페라를 비판한 글이다. 물론 약간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당시 스타급 카스트라토 가수들의 폐해를 아주 적절히 나타내고 있다.



당시의 오페라 작곡가나 가수나 청중 모두 아름답고 기교적인 아리아에만 열광하여 초기 오페라가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 고전극의 부활이라는 카메라타의 이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때 일단의 작곡가와 이론가들이 오페라 개혁을 부르짖고 나섰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폰 글룩(Christoph Willibald von Gluck)이었다. 그도 처음에는 전형적인 오페라 세리아를 작곡했으나 그리스 고전극의 부활을 주창한 알가로티(Francesco Algaroti)의 사상에 심취하여 그것을 구체화 한 ' '를 작곡하고 ' '의 서문에서 드라마가 중심이 되는 음악극의 원리를 분명히 하였다. 글룩은 동시대의 프랑스 작곡가들, 조금 뒤의 사키니, 살리에리, 모차르트, 그리고 훨씬 나중의 베를리오즈와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곡(리트, Lied). '리트란 시와 음악의 결혼이다' 라는 말처럼 시에다 단순히 선율을 붙여서 부르는 것만이 아니라, 피아노 반주에 의해 시의 내용에 따라 보다 더 깊은 정감을 주게 함으로써 시와 음악이 협동작업을 하는 독특한 예술 분야가 바로 리트이다. 'Lied'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은 중세의 음유시인들로부터이며, 그 대표적인 인물인 발터 폰 포겔바이데의 걸작인 <<팔레스티나의 노래>> 등이 대표작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Lied'는 고전파 이후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가리키며, 특히 슈베르트가 리트의 신기원을 개척했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그 이전의 작곡가는 오페라,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 성악 분야에 몰두하였을 뿐, 리트란 말하자면 한가한 사람들의 심심풀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예컨대 바흐나 헨델, 하이든 등은 리트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아 불과 몇 곡밖에 쓰지 않았다. 1770년이 되면서 글룩이 처음으로 피아노 반주가 붙은 가곡집, 클롭시톡 작사의 <<찬가와 가곡(리트)>>를 썼는데, 이 가곡집은 당시까지의 노래가 노동가, 권주가, 학생가, 사냥가 등 대개 민요적이었던 것을 글룩이 이를 한걸음 진전시켜 독창적인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멜로디는 시의 내용을 충분히 나타내도록 신중히 다듬고, 반주는 시의 내용을 더욱 돕게 하고 있다. 이어서 모차르트가 리트에 대한 명확한 작업을 하게 된다. 그 때까지 주로 유행하던 유절가곡(Strophenlied, 2절 이상의 시에 대하여 동일한 멜로디를 되풀이 노래하는) 형식에서 연가곡 형식으로 발전시켜 놓았는데, 가령 <<오랑캐꽃>> 등은 괴테의 시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베토벤은 더욱 연작가곡형식을 다듬어 <<머나먼 연인에게>> 등 명가곡을 작곡하게 된다. 이와 같은 기초 위에서 슈베르트는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것이며, 절대로 슈베르트의 리트가 하루아침에 출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리트 중에도 민요풍의 것이 호감을 주었고 라이하르트, 쩰터 등이 이 분야에서 많은 가곡을 썼는데, 슈베르트는 그들의 수법에 만족하지 않고 연작형식의 발라드 등을 청년시절 이전부터 상당량 작곡했다. 그리하여 <<물레 잣는 그레첸>>이나 <<마왕>> 등의 명작이 탄생되었고, 피아노 반주도 단순히 화성만을 이끌어 나가는 범주에서 보다 넓은 표현방법을 확보해 나갔던 것이다. 하나의 짧은 리트 속에 하나의 인생관, 사상, 철학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전까지의 작곡가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슈베르트는 그 천재성으로 인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많은 리트를 우리에게 남겨 놓게 된 것이었다. <겨울 나그네>>를 보더라도 그때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인생의 심연과 단절이 이 가곡집 속에 묘사되어 있다. 슈베르트의 뒤를 이어서 낭만파의 멘델스존, 슈만 등도 리트의 세계에서 활약했는데, 특히 슈만의 리트는 시를 다루는 방법의 미묘한 아름다움과 피아노의 절묘한 활용이 서로 상승된 참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비롯하여 <<밀테의 꽃>>, 2개의 <<가곡집>>(Op.39, 42) 등 수많은 명가곡집을 남겼다. 이렇게 해서 독일 리트의 산맥은 그 영역을 넓혀 브람스에 이르게 된다. 브람스는 내적으로 낭만적 감정이 깃들게 하면서 형식상으로는 고전적 균형과 그 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브람스의 리트에는 멋대로 흐르는 음악의 즉흥적인 즐거움은 전혀 없고, 오히려 한음 한음이 고뇌에 맺힌 듯 느껴진다. 브람스의 리트를 난해하다고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브람스에 이어 계곡의 맑은 꽃과 같은 로베르트 프란쯔의 작은 노래도 빼놓을 수가 없고, 그 밖에도 리스트의 마음속에 스며있는 서정가곡이나 바그너의 <<베젠동크의 5개의 시>>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리트의 흐름을 계승한 대작곡가는 역시 볼프와 말러라 할 수 있다. 광기 속에서 펜을 든 볼프의 불꽃같이 강렬한 리트와, 언제 어디에서도 민요를 버리지 않았던 말러를 거쳐서 독일 리트의 산맥은 최후의 봉우리에 이른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서정가곡은 비록 그의 교향시가 없어지더라도 아마 계속해서 남을 정도로 훌륭하며 정치한 아름다움으로 충만되어 있어 오페라에 필적할 정도이다. 오늘날에는 레거나 힌데미트, 알란 베르크, 베베른 등의 가곡이 이러한 흐름을 계승하고 있으며, 특히 현대에 있어서는 포르트너, 헨쩨의 리트가 주목받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