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해설] 미사 B단조, BWV 232

작성자굴드|작성시간00.06.01|조회수928 목록 댓글 0
@ 미사 B단조, BWV232 1. 개설 는 종교 음악가로서의 바흐의 활동의 총결산을 보여주는 불멸의 금자탑이다. 그것은 '바흐가 30년에 걸쳐 써 온 여러 양식의 백과 전서'(Robert L. Marshall)이며 바흐 음악의 모든 요소를 초연한 높은 수준으로 결합한 원숙한 작품이다. 바흐 음악이 가지는 '보편성'은 이 작품에서 가장 순수한 결실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는 바흐의 종교 음악 중, 극히 특이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키리에'에서 '아뉴스 데이'까지라는 카톨릭적인 '완전 미사 Missa tota'의 형태는 타에서 그 유형을 찾아볼 수가 없다. 따라서 전곡이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위해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데, 동시에 그것은 카톨릭 교회의 예배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러기에는 전체가 너무 장대하며 전체가 카톨릭의 전례문과는 다른 4부분 구성을 위하고 있다는 점, 약간의 어구가 전례문과 상위(相違)하고 있다는 점 등, 순수한 카톨릭 교회 음악에서는 벗어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연주 기회를 염두에 두지 않고 마무리되었다. 즉 는 카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초월한 범 종교적인 태도로 엮어져, 뜻 있는 후세 사람들에게 보내진 대(大) 바흐의 유산인 것이다. 바흐의 자필 악보를 보는 한 는 4개의 개별적인 악곡의 집합에 불과하고, 전체를 통일적인 작품으로 간주할 만한 논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b단조/D장조의 조성적 통일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나, 제6곡의 악상이 제25곡에서 순환적으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보면 바흐가 전곡의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작곡은 20년 이상에 걸쳐 이루어졌다. 개개의 악장 속에는 칸타타에 있어서의 예전 작품들의 패러디가 많이 있다. 구성의 기초는 나폴리 악파의 칸타타 미사 그것인데, 합창에는 신·구 두 양식의 대위법이 구별되어 사용되고, 독창곡에는 이탈리아의 새로운 갤런트 양식이 모습을 보이는 외에도 콘체르토, 파사칼리아 등의 여러 형식도 쓰이고 있다. 이러한 다채로운 기법에 의한 부동의 구성미를 가진 음악에는 전통적인 수상징(數象徵)법도 배후에서 이성적이고 신비적인 뒷받침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2. 작곡의 경과 바흐가 "완전 미사"의 형태를 가진 자필 악보를 쓰기 시작한 것은 1747년의 일인데, 개개의 악장에는 다음과 같은 성립 과장을 더듬을 수가 있다. 맨 처음에 태어난 것은 제3부의 상투스였다. 이것은 바흐가 라이프찌히의 예배를 위해 작곡하였다. 이어 1733년에는 키리에와 글로리아로 이루어진 제1부 미사가 쓰여져, 즉위한 지 얼마 안되는 작센 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에게 헌정되었다. 이 헌정은 드레스덴 궁정의 궁정 작곡가의 칭호를 얻기 위해 행하여진 것이라고 한다. 바흐는 이 칭호로 라이프찌히 당국과의 끊임없는 싸움에서 유리한 후원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 미사가 드레스덴 궁정의 카톨릭 예배에서 연주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또 같은 해 4월에 라이프찌히에서 행한 새 선제후의 축하 예배를 위해 작곡·연주되었다는 일부의 설도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바흐는 만년에 이 미사의 자필 악보에 더하여 제2부 이하에 의한 새로운 스코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로 구작(舊作)의 전용(轉用)에 의하면서도 1747-49년에 제2부 '니케아 신경(信經)'을 완성하고, 1748-49년에는 상투스가 전기(轉記)되고, 호산나 이하의 제4부가 만들어졌다. 이리하여 바흐가 죽기 전에 오늘날과 같은 의 형태가 갖추어진 것이다. 3. 편성 독창 5부(소프라노2, 알토, 테너, 베이스), 합창 5-8부, 플루트 2, 오보 3, 오보 다모레2, 파곳 2, 혼(코르노 다 카치아), 트럼펫 3, 팀파니, 바이올린 2부, 비올라, 통주저음(첼로, 비올로네, 파곳, 오르간) 4. 해설 [제1부] Missa ◇ 제1곡 Kyrie eleison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b단조. 4/4박자 우선 투티의 서주가 있고, 합창이 진지한 기도 소리를 터뜨린다. 이 선율은 루터의 독일 미사의 코랄 선율에 의거한 것이다. 5마디 째부터 라르고의 주부(主部)로 들어가 관현악의 전주를 거쳐 선이 굵은 주제에 의한 5성의 푸가가 장대하게 전개된다. 바흐는 이 악곡을 빌데러(1670-1724)의 를 참조하여 구상했다고 한다. ◇ 제2곡 Christe eleison 그리스도여, 불쌍히 여기소서. D장조. 4/4박자 삼위 일체의 제2위격인 그리스도의 기도가 바이올린의 오블리가토를 수반한 소프라노의 2중창으로 노래된다. 3도와 6도의 병행을 주제로 한 감미로운 울림은 이탈리아의 갤런트 양식에 접근한 것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의 정념 affetto amoroso'을 동경을 담아서 표현하고 있다. ◇ 제3곡 Kyrie eleison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알라 브라베 f#단조. 4/2박자. 제2 키리에는 장중한 옛 양식에 의한 4성 푸가이다. 나폴리 6도를 두드러지게 한 주제는 긴밀하게 처리되어 엄숙한 기도의 인상을 일깨운다. ◇ 제4곡 Gloria in excelsis Deo 매우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께 영광 있으라. D장조. 3/8박자. 키리에 세 곡이 b단조 3화음의 각 음을 으뜸음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글로리아의 여덟 곡에서는 밝은 D장조가 주축이 된다. 우선 3개의 트럼펫과 팀파니를 포함한 관현악을 블란켄부르크가 말하는 '하늘의 협주곡'을 휘황하게 연주하기 시작하고, 합창이 이 악장을 이어받아 하느님의 찬미를 진행시킨다(하느님의 상징으로 3박자가 취해지고 있다). 제100마디부터 음악은 새로운 부분으로 들어간다. 땅을 상징하는 4박자에 의하여 지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부분이다. e단조의 차분한 악장을 거쳐 4성의 푸가가 일어나고, 금관군이 다시 되돌아와 장대한 클라이맥스가 구축되어 간다. 바흐는 이 악장을 1742년경에 동명의 칸타타 BWV 191의 제1곡에 전용했다. ◇ 제5곡 Laudamus te 우리는 그대를 찬양하여. A장조. 4/4박자. 독주 바이올린과 제2소프라노 독창이 협주하는 아리아로 현이 이것을 배후에서 받치고 있다. 풍부한 장식을 가진 패시지가 찬미의 열렬한 마음을 전한다. ◇ 제6곡< br>Gratias agimus 감사를 올린다. 알라 브레베. D장조. 4/2박자. 베이스부터 시작하여, 당당한 대위법적인 4성 합창이 일어난다. 이것은 1731년의 칸타타 '하느님이시여, 우리들은 당신께 감사한다' BWV29의 제2곡에서 전용한 것이다. 곡은 두 개의 주제를 교대시키면서 고조되고, 그 정점에서 트럼펫이 드높게 울려 퍼진다. ◇ 제7곡 Domine Deus, Rex coelstis 주님이신 하느님, 하늘의 왕. G장조. 4/4박자. 플루트의 오블리가토와 현의 반주를 가진, 제1 소프라노와 테너의 2중창. 2중창은 '아버지이신 하느님'과 '독자이신 그리스도'의 2격을 상징하는 것이다. 플루트가 연주하는 선율레는 당시 새로이 유행하게 된 롬바르디아 리듬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 악장은 1727년의 세속 칸타타 '그대들 하늘의 집들이여 Ihr Hau"ser des Himmel' BWV 193a 제5곡을 원곡으로 하고, 나중에 BWV 191의 제2곡에 전용되었다. ◇ 제8곡 Qui tollis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는 자여. b단조. 6/8박자. 조성이 b단조로 바뀌고,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는 자애의 기도가 된다. 제1 소프라노를 생략한 4성 합창이 조용히 전개되고, 현의 반주 위에서 2개의 플루트가 카논풍으로 아름다운 장식을 입혀 간다. 원곡은 <칸타타 Schauet doch 생각해 보라 BWV 46>(1723)의 제1곡. ◇ 제9곡 Qui sedes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신 자여. b단조. 6/8박자. 현의 반주를 배경으로, 오보 다모레가 마음에 스며드는 듯한 오블리가토를 연주한다. 알토의 아리아는 전·간주에 의하여 3개의 부분으로 나뉘고, 에코 효과가 훌륭하게 색채를 더해 준다. ◇ 제10곡 Quoniam tu solus sanctus 그개만이 거룩하시니. D장조. 3/4박자. 베이스의 아리아. 다시 D장조가 되고, 유일신에 대한 신앙이 확연하게 노래 불린다. 코르노 다 카치아와 한 쌍의 파곳, 통주저음이라는 특이한 편성은 성스러운 자의 비범함을 표현하기에 알맞다. ◇ 제11곡 Cum Sanctus Spiritus 성령과 더불어. 비바체. D장조. 3/4박자. 이 매우 발랄한 악곡이 글로리아를 끝마친다. 그것은 aba'b'의 협주곡풍 5부분 형식을 취하고 (a는 투티의 호모포니 부분, b는 5성의 푸가), 진행해 나아감에 따라 긴박감을 높인다. 이 악장은 BWV 191의 제3곡에 전용되었다. [제2부] 니케아 신경(信經) Symbolum Nicenum ◇ 제12곡 Credo in unum Deum 나는 믿는다. 유일한 하느님을. A장조. 4/2박자. 흔들림 없는 신앙의 고백이 5성의 합창에 2부의 바이올린을 더한 7성의 푸가(7은 하느님의 완전성의 상징)로 전개된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유래하는 믹솔리디아 조의 코랄 정선율을 쓴 고풍스런 푸가이다. 통주저음은 일관하여 4분 음표의 걸음걸이를 계속한다. ◇ 제13곡 Patrem omnipotentem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는다. D장조. 2/2박자. 새로운 가사를 주제로 한 푸가인데, 전곡에서 나온 '나는 믿는다' 라는 고백이 여기서도 되풀이 되어 양자가 일체를 형성한다. 그러나 음악의 성격은 한층 근대적이고 즐겁다. 이 악장은 <칸타타 Gott, wie dein Name 하느님이시여, 당신의 이름처럼 BWV171>로부터의 전용이다. ◇ 제14곡 Et in unum Dominum 유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안단테. G장조. 4/4박자. 그리스도와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일체성을 노래하는 제1소프라노와 알토의 2중창. 2개의 오보 다모레와 현이 오블리가토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닮았으나 서로 다른 성격이 아티큘레이션의 구별에 의하여 교묘하게 상징되고, 노래 성부는 카논을 이루어 진행한다. ◇ 제15곡 Et incarnatus est 성령에 의하여처녀 마리아로부터 육체를 받아. b단조. 3/4박자. 그리스도가 마리아를 통하여 사람의 몸이 주어진 것이, 신비적인 정서를 띤 5성 합창에 의하여 노래 불린다. 2부의 바이올린이 유니즌으로 연주하는 오블리가토의 음형은 실로 아름답다. ◇ 제16곡 Crucifixus 십자가에 못 박혀. e단조. 3/2박자. 마케아 신경의 중심을 이루는 합창곡. 라멘트 베이스에 의거한 샤콘의 형태를 취하고, 대담한 불협화음의 사용에 의해 십자가의 고뇌의 박진적인 표현에 성공하고 있다. 이 곡은 <칸타타 울고 한탄하고 근심하고 두려워하라 BWV 12>(1714)의 제2곡의 패러디인데, 제13변주에 해당하는 '장사지내지다'의 부분에는 반음 하강의 미로를 거쳐 희망이 희미하게 보이는 G장조의 카덴차에 이르는 화룡점정의 가필이 행해졌다. ◇ 제17곡 Et resurrexit 3일째에 소생하시어. D장조. 3/4박자. 대규모의 관현악 연주를 수반하는 합창곡이 부활의 기쁨을 선명하게 고한다. 자유로운 다 카포 형식을 위하고, 중간부의 끝에는 베이스 성격의 파트 솔로가 나타난다. 이 악장은 <칸타타 Entfernet euch, ihr heitern Sterne 물러가라, 밝은 별이여 BWV Ahn 9>(1727) 제1곡의 패러디. ◇ 제18곡 Et in Spiritum Sanctum 생명의 주이신 성령을 믿는다. A장조. 6/8박자. 신앙 고백은 여기서는 제3위격인 성령으로, 다시 '보편적인 교회'로 향한다. 높은 음역을 주로 한 베이스의 아리아로, 2개의 오보 다모레(사랑의 오보)가 신·구 양 교회의 화해를 상징하는 듯한 온화한 듀엣을 펼친다. ◇ 제19곡 Confiteor unum bapisma 유일한 세례를 인정한다. f#단조. 2/2박자. 통주저음만을 수반한 고풍스런 합창 푸가이다. 이것이 한바탕 전개되면 '니케아 신경' 최초의 곡에서 들었던 코랄 선율의 해당 가사 부분이 정선율 풍으로 모습을 보인다. ' Et expecto resurrectionem mortuorum 사자(死者)의 소생을 대망한다'라는 구(句)는 아다지오가 되어 신비적인 기분 속에서 전조를 거듭해 간다. ◇ 제20곡 Et expecto resurrectionem mortuorum 사자(死者)의 소생을 대망한다. 비바체 에 알레그로. D장조. 2/2박자. 앞의 곡 말미의 신비감을 단숨에 날려 버리는 명쾌한 피날레 합창. D장조의 화음이 강조되고, 트럼펫을 화려하게 활약시키면서 커다란 클라이맥스가 구축된다. 이 악장은 <칸타타 Gott, man lobet dich in der Stille 하느님이시여, 인간은 남몰래 당신을 찬양합니다 BWV 120> 의 제2곡의 4성 합창에 제5성부를 가하는 형태로 작곡되었다. [제3부] ◇ 제21곡 Sanctus 거룩하도다. D장조. 4/4박자. 3개의 트럼펫과 팀파니, 3개의 오보, 3부의 현, 6성 합창과 통주저음이라는 편성에 의해 하느님으로의 장대한 찬가가 노래된다. 묵직하게 흘러가는 셋잇단음표 또한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이다. 'Pleni sant coeli et terra gloria eius 하늘과 땅은 주의 영광에 찼도다'의 부분은 3/8박자의 활발한 푸가가 된다. 이 때문에 전체는 프랑스풍 서곡의 완급 구성을 모방한 것으로 해석된다. [제4부] ◇ 제22곡 Ossana in excelsis 높은 곳의 호산나. D장조. 3/8박자. 2군의 4성 합창과 관현악을 사용한 약동적인 찬미의 표현. 이 음악의 유래는 <세속 칸타타 Preise dein Glu"cke, gesegnetes Sachsen: 은총받은 작센이여, 그대 행복을 찬양하라 BWV215> 제1곡을 거쳐 로 거슬러 올라간다. ◇ 제23곡 Benedictus 축복 받으소서. b단조. 3/4박자. 주의 이름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부름이 경건한 테너의 아리아로 형성된다. 플루트의 유려한 전주에 인도되어 테너가 정감을 깃들여 노래하고, 이어 전곡의 호산나가 되풀이된다. ◇ 제24곡 Agnus Dei 천주의 어린 양. g단조. 4/4박자. 영탄(詠嘆)적인 기분에 찬 알토의 아리아. 바이올린이 유니즌으로 오블리가토하고, 표정적인 감7화음이 많이 사용된다. 이 음악은 처음에 <세속 칸타타 Auf! Su"ss entzu"ckende Gewalt 자, 감미로운 매력이여> 제3곡에 붙여졌던 것으로, 나중에 <승천(昇天)제 오라토리오 BWV11>를 거쳐 이 미사에 전용되었다. ◇ 제25곡 Dona nobis pacem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옵소서. D장조. 4/2박자. 제6곡의 음악을 그대로 새로운 가사에 맞추어 놓은 종곡. 여기서는 평안의 기원이 확신에 넘친 찬미의 음악과 융합하여 드높은 기분을 고양시키면서 전곡을 맺는다. ※ 참고자료들 1. 앙드레 마르셀 <바흐> (1961) 중 B단조 미사에 관힌 글. <마태 수난곡>이 바흐의 가장 주관적인 작품이라면, 은 반대로 가장 객관성에 충실하여 작곡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의식용 음악으로 통치자와 그의 궁정 귀족들의 취향을 따르려는 의도가 완연하며, 동시에 모든 기독교도를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 극도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과시한다. 이러한 음밀한 의도 때문에 가사 또한 바흐 자신의 내적인 감정을 토로했다기 보다는 격식을 갖춘, 화려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미사곡에는 프로테스탄트(바흐에게서 프로테스탄트 신앙은 결코 그의 삶과 분리할 수 없는 부분이다)적인 주관주의와 카톨릭의 객관주의가 양립하고 있다는 슈바이처의 말은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다. 실제로 제1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합창곡 '키리에 엘레이손'은 제1부 중간에 나오는 이중창인 '크리스테 엘레이손'에 비해 일체감을 느끼고 환기시키려는 특성이 있다. 이것은 방대한 악곡의 일반적 특성이다. 그러나 바흐만큼 완벽한 솜씨로 이렇게 웅장한 작품을 창조해 낸 예술가가 또 있을까. 완벽을 기하려는 그의 까다로운 예술론은 그 때까지 장엄한 푸가에서만 꽃피고 있었다. 반면 이중창은 지나칠 정도로 온화하여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 또한 '라우다무스 테'에서는 거의 법열에 가까운 고요함 속에서 예의 그 주관주의가 숨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바흐는 단어의 깊은 뜻에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었으나, 기존의 대부분의 대가들이 여기서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민다든지 감정의 분출을 자제하지 못했으므로 바흐는 그런 걸 지양했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대립적인 두 경향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크레도(사도신경)'이다. 이 부분이야말로 바흐의 모든 작품들 중에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널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추상적이며 판독하기 어려운 신앙고백인 사도신경만큼 다루기 어려운 음악적 주제도 없을 것이다. 사도신경은 사실 '부조리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바흐뿐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쨌든 바흐는 이 단어들을 음악에 싣는 방법을 알았고, 지리멸렬하게 늘어진 깃발을 다시 펄럭이게 할 줄도 알았다. 놀랍게도 그는 그걸 실현시켰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노래부르고, 두 개의 오보에가 두 개의 다른 형식으로 동시에 하나의 테마를 연주하는 (인간의 이중성에 내재된 함일성의 상징)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갱생부분에서는 놀라운 소리가 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카르나루스'는 숭고함의 경지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음악이 갱생의 신비를 사랑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천재라도 이러한 곡을 작곡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합창의 선율이 하늘로 드높이 울려 퍼지다가 큰 물결과도 같이 잇따라 하강할 때 바이올린의 선율은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표현하듯 곡선을 그리며 선회한다. 이 곡은 동시에 여성스러움, 둥그런 가슴, 모아진 두 손, 무릎을 꿇음, 봉헌, 순진무구한 갈망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매혹적인 것을 발견한 인간의 경외함과 나아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바흐 자신의 애정표현을 상징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나 역시 그 경이로운 부분에서 음악으로 육화된 사랑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한편 '레수르레키(부활)'부분은 자극적인 원시성을 내뿜는다. 바흐가 예전에 한 칸타타에서 노래했듯이 실로 죽음이 죽음에게 먹히는 시적이며 황홀한 꿈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경이로운 음악을 케케묵은 해석으로 고리타분하게 들려주는 악단장들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 곡들은 모두가 부르기가 어렵다. 바흐가 오늘날 통용되는 의미에서 성악 기교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호흡의 길고 짧음에 따른 제한을 거의 무시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성악가들이 얼마나 요령껏 불러야만 했을까! 그런데 바흐가 더욱 싫어했던 것은 문장이 잘리거나 가사가 토막 나게 들리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성악가들에게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목소리를 내도록 요구했다. 그는 성악가들이 그 자신 정도만으로도 목소리를 내주길 바랬다. 사실 작곡가가 성악가의 자질이 있건 없건(바흐는 전자에 속한다)작곡가의 소리보다 그 곡에 어울리는 목소리는 없다. 바흐는 목소리 하나만을 갖고 있는 사람이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일단 바흐의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특히 헨델을 비롯한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은 성악가들에게 거의 악기와 다름없는 역할을 맡겼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성악곡에는 차츰 여러 특징이 접합되었다. 일례로 <마니피카트>의 알토 파트를 보자. 전형적인 바이올린 풍의 빠른 아르페지오로 엮어진 구절에서는 말 그대로 목소리에는 아무 것도 배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목소리로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대위법적 구조에서는 그저 웅얼거리는 소리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바흐는 이러한 임시방책을 극히 드물게 사용했다. 왜냐하면 이런 방법은 그가 늘 주장하던 표현의 아름다움과 음질에 위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다성론자들은 합창곡을 쓰는 방식을 놓고 바흐와 상반되는 견해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악절의 표현을 전달하는 방식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특히 독일에서 흔히 행해지듯이 모음의 발성을 풍부하게 한다는 몇몇 현대적인 기법도 목소리만 망쳐 놓았을 뿐이다. 낭랑하고, 열정적이고, 농밀한 목소리들은 좋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목소리를 무겁게 만들 수도 있다. 바흐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모음창법이라는 기교에 지금보다 덜 집착했다. 더군다나 오늘날의 연주는 극장에서 실연되는 상황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연주회용 형식과 반응에만 관심을 기울인다는 얘기이다. 그들은 신앙과 선, 천사들의 경구로 이루어진 생각을 앵무새처럼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실제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2. [오윤록 역: Edition Eulenburg 총보교본 서문]에서 발췌한 B단조 미사에 관한 글. Fritz Volbach write: 마치 거대한 바위가 암석으로 높이 쌓였듯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고귀한 미사(Hohe Messe)"도 높이 솟아있다. 그의 정상은 구름위로 높이 태양이 비취는 푸른 무한 데에 다른 어떤 소리도 들어갈 수 없는 숭고한 외로움 속에서 군림하고 있다. 바흐의 예술은 영원함을 동경하는 예술이다. 그 예술은 시간성을 영원으로, 유한대를 무한대로 엮어놓는 사랑 안에서 - 신의 사랑 - 영원에 근접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한다. 알려지지 않은 비밀에 가득한 것을 드러내는 동경, 오직 "그리움으로 달래는" 동경. - 이 작품의 생성에 대한 정확한 진술은 할 수 없다. 바흐는 작센 왕에게 궁정작곡가의 직위를 받기 위한 청원서를 보내며 여기에 미사의 처음 두 부분인 Kyrie와 Gloria를 첨부했다. 청원서는 1733년 7월 27일 이라는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다른 나머지 부분인 Credo, Sanctus, Osanna의 작곡시기를 슈피타(Spitta)는 1734-1738년 사이에 두었다. Agnus Dei는 칸타타 "하느님의 나라를 찬양하라(Lobet Gott in seinen Reichen)"의 한 아리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Dona nobis pacem의 음악도 마찬가지로 칸타타 - 우리는 당신에게 감사한다 (Wir danken dir) - 에서 파생된 Gratias agimus의 반복이다.1) 개신교 신자인 바흐가 미사를 작곡한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루터는 미사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희생장면을 없앰으로서 희생의 성격을 배제했다. 고정된 부분들 - 통상미사 - 은 기독교적 제식에도 머물러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개혁 이후 바흐 시대까지 일련의 기독교 신자의 대가들이 예배의식의 사용을 위해 미사를 작곡하는 것을 본다. 훌륭한 시가 그들 곡에 남겨져있다. 이 시는 모든 높고 깊은 종교적 감정을 배회하고, 아무데서도 발견할 수 없는 풍부한 변화로 감동적이고 압도적이며 장엄하게, 고조되며 그림을 나열한다. 그러나 누가, 하느님 나라의 장려함을 이처럼[바흐 미사] 모든 숭고함과 깊이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모든 현실 뒤에 놓인 비밀로 가득한 동경의 나라를 배회하는데 있어서, 독일의 가장 위대한 신비주의자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보다 더 능력이 뛰어났는가? - 첫 부분인 Kyrie eleison이 깊은 동경으로 탄생했다. 이 세계의 빈곤과 갈망으로부터의 자유로움과 구원에 대한 동경이 신의 사랑으로 열린다. 모든 감동적인 그림이 5성부의 푸가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합창편성은 두 명의 소프라노, 알토, 테너와 베이스이다. 오케스트라는 현악5중주와 더불어 관악기에서 두 개의 플룻, 두 개의 오보에 다모레(Oboe d'amore 일반적인 오보에보다 3도 밑이고 소리가 더 부드럽다)와 바순으로 편성돼 있다. 제일 낮은 성부인 콘티누오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외에 오른간에 의해서도 연주된다. 오르간은 동시에 계속저음 숫자로 표기된 화성이 첨부된다. 이것은 이 악장뿐 아니라 작품의 모든 악장에도 적용된다. 키리에의 거대한 범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구성은 분명하고 일목요연하다. 5마디의 강력한 도입 뒤 오케스트라로 푸가 주제의 전개가 나온 다음, 이것을 합창이 더 무게 있고 폭 넓게 넘겨받는다. 그러나 내용은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 첫 부분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오케스트라의 막간연주에 의한 두 번째 격앙된 전개부가 잇따른다. 다음의 Christe eleison은 2중주로 다루어졌다. 화성적인 채움이 오직 오르간에 주어진다. 희망과 확실한 신뢰가 근본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분위기는 뒤에 따르는 두 번째 키리에에도 계속된다. 키리에는 성부진행의 놀라운 순수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악기들은 여기에서 강한 기반을 제외하고 성악성부와 진행한다. 우리들은 풍부한 전조를 동반한 마지막 9 마디들의 놀라운 고조를 관찰한다. 이 곡의 두 번째 부분인 Gloria in excelsis Deo는 이전의 대가들이 했던 대로(그리고 베토벤도 행했던 것처럼) - 교회의 규범에 따라 - 일관 작곡되지 않고 몇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 처음 세 부분은 다시 통일된 그룹으로 통합된다. 거대한 시작을 첫 합창이 형성한다. 요란하게 환영하는 트럼펫이 여기에 밝은 광채를 부여한다. 합창은 텍스트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Laudamus에서는 독창과 독주 바이올린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서로 경쟁한다. Gratias agimus는 두 주제에 기초하고, 주주제는 시작에, 그리고 이와 절묘하게 얽힌 부주제는 propter magnam gloriam tuam 말에 나타난다. - 뒤에 따르는 Domine Deus로 그리스도의 찬양이 시작된다. 다시 독주가 합창과 교환한다. 특히 필자는 감동적인 Qui tollis에 역점을 두고싶다. 관악기 중에서는 플룻만이 효과를 발휘하고, 이 곡에 여리고 애처로운 매력을 부여한다. 다음에 오는 알토-아리아인 Quisedes는 분위기를 의무적인(obligate) 오보에 다모레 (Oboe d'amore)의 사로잡는 소리로 특징짓는다. 아마도 이 부분은 이 악기를 위해 쓰여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성부일 것이다. 베이스-아리아인 Quoniam tu solus sanctus는 상당히 독특한 기악적 편성을 보여준다. 콘티누오에는 Corno da caccia(영국 호른)와 두 개의 바순이 등장한다. 이 곡은 소리를 내기가 어려우며 대부분 불명확하다. 이러한 불만족스러움을 없애는데는 오르간 대신 쳄발로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바흐가 그의 종교적 작품에서 오르간과 더불어 피아노를 사용했었는지는 오늘날까지 확실치 않다. 우리 시대는 이 문제를 부정하는 방향이다. Gloria의 마지막인 Cum sancto spiritu는 큰소리의 장려한 화려한 곡이다. 우리는 특히 주제의 풍부함과 주제 형성의 다양함에 주목한다. 처음 시작에 모든 소리그룹은 고유의 모티브를 갖고 있다. 이들은 곡의 전개과정에서 풍요로운 연관을 갖고 상호작용을 한다. 특징적인 것은 첫 트럼펫의 높은 진행(네 번째 마디에 d''까지 올라간다)으로 특히 이 악장은 관악을 위한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이다. 바흐가 트럼펫에 요구하는 것은 헨델보다 훨씬 더하고 오늘날에도 훌륭한 연주가에 의해 가능하다. 세 번째 부분인 크레도는 글로리아처럼 일련의 세부적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도입하는 부분인 Credo in unum Deum을 바흐는 아주 오래된 그레고리아 선율에서 따온 주제에 기초해 형성했다. 깊은 상징성이 원모티브의 사용에 놓여있다. 믿음의 뿌리에서처럼 원모티브로 부터 모든 악장이 자라난다. 그것은 어떤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고, 마치 신같이 마침내 영원한 넓은 흐름과 거대한 확장으로 전념할 때까지, 스스로 분만하며 성부를 통해 계속해서 울린다. 바흐는 이 작품의 Confiteor unum baptisma 부분에서 다시 한번 그레고리아 선율을 사용했다. 이 선율이 이 악장의 73마디의 베이스와 알토에서 예고한 후 92마디의 테너에 긴 고정선율(Cantus firmus)로 나타난다. 앞에서 언급한 비슷한 상징성이다: 신성한 정신인 신의 세 번째 인물로 세례에 드러난다. 상징적인 것은 또한 크레도(듀엣)의 세 번째 부분인 Et in unum Dominum의 엄격한 카논적 진행의 처리이다. 한 주제로부터 두 개의 성부가 나타나나, 둘이란 것은 아들이 아버지와 하나가 되면서 또한 둘로 분리된다. 이 부분의 끝없는 아름다움의 충만함으로부터 필자는 세부적인 것에 역점을 두고싶다: 독특하고 지속적인 바이올린 음형으로 된 비밀에 가득한 Et incarnatus. "하늘의 정신이 세상 위를 찾고 떠다니며 그가 들어갈 존재를 갈망하고 있다"(Schweitzer). 뒤에 따르는 고통을 느끼는 Cruzifixus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네 마디의 베이스 음형인 반음계적 게속저음위에 형성된다. Gloria의 Qui tollis 에서와 마찬가지 이유로 관악기 중 오직 플룻만이 사용된다. 감동적으로 화려한 것은 뒤에 오는 Et resurrexit로 이전 부분과 상반되며 더 거대하게는 생각될 수 없을 것 같다. 트럼펫과 팀파니가 음색을 부여한다. Cujus regnum non erit finis 부분에는 마치 무한대가 열리는 것 같다. 이 빛나는 광채는 마지막 합창인 Et expecto resurrectionem에서 계속된다. 우리는 바흐가 얼마나 훌륭하게 이 악장을 소리에 있어 단순한 Confiteor로 준비하는지 주목하게된다. 그리고 이 울리는 대양의 파도가 계속해서 상승하며 표현의 수단이 풍부해진다. 미사의 네 번째 부분을 여는 상투스(Sanctus)는 5성부 합창에 두 번째 알토가 여섯 번째 성부로 첨가돼 나타난다. 세부적 그림대신 프레스코화가 나온다. 군중이 서로서로 움직인다. 신의 장중함과 숭고함이 이 음들로 부터 울린다. Pleni sunt coeli가 뒤에 따르고 상승하는 움직임에서 경이로운 고조를 표현하며 마치 모든 창조가 환희로 찬동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바흐는 오직 기독교의 찬양과 기쁨의 노래만 잘 들리게 하길 원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침별이 서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신을 환호한다."2) 그리고 아직도 바흐는 고조의 마지막에 있지 않다. 절정은 다음에 오는 Osanna가 이룬다. 여기서는 단순한 8성부의 이중 합창대신 모든 악기에 의해 반주된다. 가장 황홀한 음악이다. 신의 사랑이 대가의 가슴에 강력하게 타오르면서 속세의 것이 그에게서 소모된다. 그리고 그는 하늘이 열리는 것과 하느님을 본다. 만군의 주(Zebaoth)는 금으로 된 왕좌에 앉고 세라핌(Seraphim)에 둘러싸이며 이들은 서로(이중합창) "하느님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부른다. 이러한 성부로 천국의 사원의 문턱이 진동한다.3)- 뒤에 오는 테너아리아인 Benedictus가 상당히 단순함으로 돌아오고 독주바이올린과 콘티누오가 모든 반주를 형성한다. 광채와 장려함 대신에 이제 조용한 경배가 나온다. 감정의 표현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니는 알토아리아인 Agnus Dei도 단순하다. 대규모 작품의 종결을 Dona nobis pacem이 Gratias agimus의 음악으로 이룬다. 이 감사 기도의 연관으로 특징지어진다. 바흐의 음량은 무엇보다 그의 고귀한 미사에서 드러나듯이 무한정 하다. 우주만큼 풍요로움에 있어 무한하다. 그의 작품은 지혜로움의 책이다. 이 지혜로움에 하느님의 말이 적용된다: "너희들이 나를 진정으로 찾을 때 나를 발견하도록 할 것이다." *** [오윤록 역: Edition Eulenburg 총보교본 서문] 1) Qui tollis가 칸타타 " Schauet doch und sehet"와의 관계, Patrem omnipotentem이 "Gott wie ist dein Name"와의 관계, Crucifixus가 "Weinen, Klagen"과의 관계, Osanna가 "Preise dein Glucke"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A.Schweizer: J.S.Bach (1908), 684 쪽을 참조. 2) Spitta: Bach, II. 541쪽 참조. 3) 위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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