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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해설]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1001-1006

작성자굴드|작성시간03.05.08|조회수920 목록 댓글 0

@ Sonatas and Partitas for Solo Violin, BWV1001-1006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1001-1006)


[개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피아노음악의 구약성서라 불리듯이 여섯 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바이올린의 성서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보통은 단선율을 연주하는 바이올린을 화성적으로, 그리고 다성적으로 취급하여 독주 바이올린만으로 반주 악기를 곁들인 것처럼 작곡되어, 네 개의 현을 동시에 울리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연주되지 않은 채 있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기술의 진보로 연주되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바흐의 훌륭한 6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 중, 소나타 3곡은 악장에 개념적인 제목을 붙였으며(대개 템포에 따라), 파르티타 3곡은 대부분의 악장에 무곡의 이름을 썼습니다. 소나타들에서 악장의 빠르기는 느리게-푸가-느리게-빠르게의 양식을 취합니다. 이런 형식을 '교회형식(Da chiesa)' 혹은 '교회소나타' 형식이라고도 합니다.

6곡의 작품 모두가 쾨텐시절에 작곡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작품들은 바흐가 살았던 당시에는 출판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렇다고 전혀 연주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가지각색의 필사본이들이 퍼져 있었으며 바흐 작품들 중 아주 소수만이 출판되었는데, 대부분 교습용이었습니다. 그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교육적인 목적이었듯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들도 같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바흐의 차남 칼 필립 엠마뉴엘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내게 말하기를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자 배우고 있는 이나 누구든지 공부하기를 열망하는 이에게 이 작품들보다 더 완벽하고 더 좋은 작품은 없다"

왜냐하면 바흐에게는 기교적인 연주상의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보다는 '교육'이라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의미를 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대위법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악기에서 최대한도의 표현력을 폭발시키고,속도의 형식이 얼마나 유연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풍부한 음악적 감정들이 작품속에 담겨질 수 있는지를 의미합니다.

원래 이 작품들은 '무반주 소나타'가 아니라 '저음부가 없는 소나타'로 불려졌었습니다. 바로크시대에는 저음부가 대개 '통주저음(通奏底音,Basso Continuo)'으로 특징지어졌는데, 이처럼 단순한 저음부가 화음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위에 선율과 꾸밈음부가 엮어졌었습니다. 그리고 말하자면 '저음부가 없는' 작품은 실제로 고음부만으로 충분히 화음의 구도를 제시할 수 있도록 쓰여져, 청중들이 무의식적으로 화음부를 채워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바흐의 선대와 동시대의 작곡가들도 역시 '저음부가 없는' 바이올린 독주곡들을 남겼습니다. 텔레만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12개의 환상곡', 비버(Heinrich Biber)의 바이올린 독주 작품들과 피젠델(Johann George Pisendel)의 가단조 독주 소나타가 그것입니다. 바흐의 특징은 그의 혁신이 겉보기에는 기존의 전통에서의 논리적인 단계처럼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바이올린 독주 작품들은 전혀 선례를 찾을 수 없는 구조와 표현이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들은 하나의 멜로디가 주로 되어있는것과 시종일관 겹음으로 되어 있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각각 나름대로 매력이 있으며 이는 '무반주 첼로모음곡'에서도 나타납니다. 특히 BWV1003의 '안단테(Andante)'와 BWV1004의 '샤콘느'는 무반주 바이올린곡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곡입니다. 다음은 이 6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2번과 소나타 제3번에 관한 해설입니다.

@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2번 d단조, BWV 1004

6곡 중에서 가장 우명한데 샤콘이 붙어 있는 파르티타(Parita) 제 2번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곡의 마지막에 있는 샤콘(chaconne)은 느린 무곡으로 여기서는 걸작으로 마련되어 있다.

제1악장 알르망드 d단조 4/4박자 . 활기에 찬 장중한 무곡인데 두도막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서곡의 역할을 한다.

제2악장 쿠랑트 d단조3/4박자. 활기에 차 있으며 선율도 아름다운 두도막 형식이다.

제3악장 사라반드 d단조3/4박자. 제2박자를 긴 음으로 하여 과히 빠르지 않게 연주하는 중음 주법의 무거운 악장이다.

제4악장 지그 d단조 3/4 두도막 형식의 빠른 템포인데 활기에 찬 불꽃 튈 정도의 눈부신 장면이다.

제5악장 샤콘느 d단조 3/4박자. 16세기 스페인 등지에서 생겼다는 3박자의 춤곡인데 여기서는 클라이맥스에 이른 감이 있다. 그의 풍부한 환상과 깊은 감정, 격조 높은 품위에 짜임새 있는 기교를 담았다. 당당한 테마는 위험 있는 장중한 것으로서 30회 가량 변주 반복한다. 이 샤콘은 바이올린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편곡되어 즐겨 연주된다.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제3번 C장조, BWV 1005

기교적으로나 악상으로 보아 바이올린의 특성을 장 살렸다. 그 중에서도 제4번에 있는 33개의 변주의 샤콘과 같은 것은 독창적인 동시에 극히 아름다운 곡이다. 6곡 중 3곡은 모음곡 파르티타로 되어 있다. 제1, 제3, 제5번은 푸가를 포함한 소나타 형식, 제2, 제4, 제6번은 무도 모음곡의 구성이므로 이를 따로 파르티타(Partita)라 부른다.

쾨텐 시대의 이 작품들은 교회 소나타의 공식에 따라 4악장인데 제1과 제3은 느리고 그밖의 악장은 빠른 템포이다. 모음곡에 있어서 당시는 무곡을 연속시킨 것에 다소 변화를 붙인 것이다. 그 원형은 다음 4개의 무곡을 연속시킨 것이다. 알르망드(Allemande) 4/4박자의 별로 빠르지 않은 독일 무곡, 쿠랑트(Courante) 3/4박자의 빠른 무곡, 사라반드(Sarabande) 3/4박자의 느린 곡, 지그(Gigue) 6/8박자의 빠른 무곡이다.

이 6곡의 소나타는 그의 사후 1802년에 출판되었고 1839년 명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David 1810-1873)가 새로 출판한 다음 해부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전 6곡은 아래와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BWV1001,1003,1005)

* BWV1001 - Sonata No.1 in g minor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 1번 사단조
/Adagio - Fugue(Allegro) - Siciliano -Presto

* BWV1003 - Sonata No.2 in a minor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 2번 가단조
/Grave - Fugue - Andante - Allegro

* BWV1005 - Sonata No.3 in C major
/무반주 바이올린소나타 3번 다장조
/Adagio - Fugue(Alla breve) - Largo - Allegro assai


- 무반주 바이올린파르티타(BWV1002,1004,1006)

* BWV1002 - Partita No.1 in b minor
/무반주 바이올린파르티타 1번 나단조
/알르망드-더블-쿠랑트-더블-사라방드-더블-부레-더블

* BWV1004 - Partita No.2 in d minor
/무반주 바이올린파르티타 2번 라단조
/알르망드-쿠랑트-사라방드-지그-샤콘느

* BWV1006 - Partita No.3 in E major
/무반주 바이올린파르티타 3번 마장조
/프렐류드-루레-가보트-미뉴에트1-미뉴에트2-부레-지그



[음반소개]

현대 연주자들이 바흐의 무반주 작품에 접근하는 방법을 비교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탐험입니다. 19세기에 바이올린을 다루는 방법이 완전히 변질됨에 따라 바로크 시대의 바이올린 주법이 상실되었고, 따라서 무반주 작품을 올바르게 연주하는 방법을 탐구하는 것이 연주자의 중요한 임무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의 연주자를 위한 에디션이 수없이 출판되었는데 중요한 것만 열거하더라도 최초의 페르디난트 다비트(1843년)부터 헬메스베르거(1865년), 로제(1901년), 요아힘(1908년), 아우어(1917년), 부쉬(1919년), 플레쉬(1930년), 갈라미언(1971년), 그리고 가장 최근의 세링(1979년), 슈나이더한(1987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에디션들과 달리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의 경우, 작곡자 자신의 완전한 자필보가 전해오고, 원전악보의 명확함 때문에 각 에디션들은 악보 그 자체에 어떤 차이가 있다기보다는 어떻게 연주할 것인가, 즉 프레이징이나 보잉 테크닉의 측면에서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근래 바이올린의 사운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움직임, 즉 바로크 당대의 바이올린을 복원하고 거트현과 18세기 활을 사용하며 그 주법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은 우르텍스트를 통한 비평적인 악보 읽기와 더불어 바흐 작품의 끊임없는 새로운 해석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1. 시게티(Vn) [벵가드]
1955년 모노럴 녹음으로 음질이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이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가를 선구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음반입니다. 기교적인 현란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오히려 그런 소박함으로 당당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바흐의 핵심에 접근해 들어간 연주입니다. 요즘 연주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엄숙하고 성실한 자세로 작품의 내면을 깊이 파고 들어 엄격하고 날카롭게 그리고 때론 따뜻하게 바흐 음악이 지니는 카타르시스적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연주는 드물 것입니다. 시게티 이상의 기교를 갗춘 연주자가 수두룩한 요즘이지만 바흐 연주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립시킨 역사적인 음반으로 후세에 길이 남을 명반입니다.

2. 크레머(Vn) [필립스]
뛰어난 테크닉으로 각 곡을 예리하고 격렬하게, 그리고 선명하게 연주하면서 호쾌하고 긴박하게 표현한 연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프레이징에 있어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고 샤콘느에서 보여주는 거친 보잉으로 이 곡의 핵심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난해한 3중음이나 4중음을 떡 주무르듯 다루는 소나타의 푸가 악장에서의 명인기와 각 무곡의 성격을 잘 포착해낸 파르티타 악장의 리듬감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선명한 바이올린의 음과 더불어 그나마 이 음반에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셰링(Vn) [DG]
67년에 녹음된 것으로 52년의 모노럴 녹음에 이은 두번째 전곡녹음입니다. 바이올린 음악의 성서와 같은 이 곡에 대한 수많은 음반이 있어 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 음반은 단연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완벽한 기교와 넘치는 정열로 밀도높은 조형미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노래하는 듯한 유연함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모든 악구를 정성스럽게 다듬어 하나하나 음의 뜻을 깊이 생각하여 되새기게 하는 연주입니다. 격조 높은 음색과 자유로운 강약 표현은 때론 애달픈 슬픔의 노래가 되고, 때로는 긴장감 넘치는 씩씩한 기상으로 즐겁고 경쾌한 무곡이 되게 합니다. 심금을 울리는 바흐의 고결한 정신세계가 이토록 정화된 연주를 만나는 것은 앞으로 그리 흔한 일이 아닐 듯 싶습니다.

4. 그뤼미오(Vn) [필립스]
사실 그뤼미오의 낭만적인 연주 스타일에서 바흐의 엄격한 정신세계를 바라는 것은 다소 무리지만, 여기서 그는 이 작품을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개성적인 연주를 들려줍니다. 노래하는 듯한 유연함과 시원스러운 리듬감이 단아하고 절제된 듯한 점을 보충하고, 또 불안정한 비브라토의 기교를 자연스럽고 유연한 보잉으로 커버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려한 첼로연주를 듣는 듯한 자연스런 프레이징으로 그는 새로운 바흐를 창출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이 음반에서 그뤼미오는 거의 모든 코드를 저음에서 고음방향으로 긋는데, 멜로디 라인에 주력하기보다는 화성적 효과에 치중한 연주라 할 수 있습니다.

5. 메뉴힌(Vn) [EMI??]
청년 메뉴힌의 30년대 SP복각 음반입니다. 신동의 대명사로 불렸던 풋내기 약관의 젊은이가 심오한 이 곡의 전곡녹음(맞는지 자신없지만)에 도전한 최초의 기록입니다. 그것이 과연 무모한 시도였는가?... 그의 떨리는 듯한 풍부한 비브라토와 감정이입이 바흐의 정신성을 추구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시각도 가능하겠지만, 바흐의 음악을 지루하지 않고 드라마틱하게 표출하는 것으로 충분히 이를 극복해 내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음조가 좀 불안하고 푸가 같은데선 아직 테크닉이 완성되지는 못했다는 느낌도 들지만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가슴을 직접 파고드는 치열함에 빠져들게 되고 느린 악장에서의 눈물이 고인듯한 아름다운 음색과 애절함에 취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로맨틱한 바흐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셰링이나 다른 대가들의 연주에서 받는 바흐의 엄숙한 감동과는 좀 다른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뤼미오의 이태리적이고 아폴론적인 연주와는 정반대에 서있는 젊은 메뉴힌의 찬란한 비상은 숱한 무반주의 명연 가운데서 빠트리기 아까운 연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6. 밀슈타인(Vn) [EMI] [DG]
모던 악기에 의한 연주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음반입니다. 밀슈타인은 생애동안 두 번 무반주 작품을 전곡 녹음했으며, 그 외 Orfeo레이블로 발매된 57년의 실황연주반이 있습니다. 54년에서 56년에 걸쳐 녹음된 EMI 연주는 질감이 뛰어나고 역동적이면서 순수한 음색이 돋보였는데, 거의 20년 뒤에 녹음된 이 DG음반은 상대적으로 템포가 느려졌지만 여전히 리듬이 강조되며 명료한 프레이징의 추구는 포르타멘토와 같은 요소는 거의 배제하고 비브라토는 아주 적게 사용하는 등의 독특한 연주로 나타납니다. 빠르고 강철같은 추진력의 푸가는 단지 기교의 과시용이 아니라 지적인 음의 구조로서의 푸가를 완전히 이해하고 실체화하고 있는 밀슈타인의 걸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마치 건반악기로 옮겨 쳐보고 다시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완벽한 푸가를 연주하는데, 그의 특별한 중음주법은 현대의 그것도, 바로크의 그것도 아니면서 모든 성부의 음이 분명하고 자연스럽게 들린다. 활을 쉽게 쉽게 그으면서 듣는 이를 편하게 하는, 그러면서도 결코 경솔한 느낌이 들지 않는 지성과 기교가 완전한 조화를 이룬 연주입니다.

7. 야사 하이페츠(Vn) [RCA Victor]
바이올린의 신동이라 불리던 하이페츠 역시 두번에 걸쳐 이 곡을 녹음했으나 첫번째는 전곡이 아니라 소나타 1,3번과 파르티타 2,3번만 수록된 음반으로 너무 오래되어 음질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EMI) 그는 52년에 이르러서야 RCA를 통해 비로소 전곡녹음을 남기게 됩니다. 이 음반은 현재까지 소수의 사람들에게는 오래전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아 왔으나 뭔가 아쉬운 구석을 많이 남기고 있습니다. 기교적인 문제야 탓할 데가 없다고 하더라도 조형감각이 부족한 듯하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울림에서 무언가 꽉 막힌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그의 강한 카리스마와 연주 스타일을 감안할 때, 바흐의 심오한 정신세계를 표현하기에는 좀 미흡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8. 요한나 마르치(Vn) [EMI]
헝가리 출신의 요한나 마르치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에리카 모리니의 재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여선적이고 매혹적인 소리를 지녔습니다. 후바이를 사사한 그녀는 아다 헨델과 선의의 경쟁을 했으며, 바흐에 경도되어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르치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유려한 감정표현과 신선하고 리리시즘이 넘치면서도 뛰어난 자아절제를 보여주는 그녀의 대표적인 명연입니다.

9. 모니카 허젯(0Vn) [Virgin Veritas]
원전악기의 연주 가운데서도 유래 없이 개성적일 뿐만 아니라 이후의 연주에 상당한 영향을 준 음반입니다. 소나타의 아다지오 악장을 시작하는 코드를 그녀만큼 부드럽고 풍부한 감성으로 시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듯 싶네요. 지극히 느린, 놀라우리 만치 변화 무쌍한 유동적인 템포와 그것과 결합한 미묘한 다이나믹스는 모든 느린 악장들의 표현을 한차원 끌어올립니다. 비록 푸가에서의 정연한 구조를 어느 정도 양보해야만 했지만 샤콘느에서 그녀가 이끌어 내는 감정의 기복을 따라가기는 것은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10. 얍 쉬뢰더(Vn) [Smithonian Institution]
얍 쉬뢰더는 한번도 쿠이켄만큼 유명세를 날린 적이 없지만 그의 차분하고 사색적인 무반주 연주를 들어보면 그가 결코 선구자라는 명성에만 안주하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쿠이켄만큼의 실랄함과 세련됨은 비록 결여되었지만 소박함이 물씬 풍기는 아다지오 악장과 충실한 건축미가 돋보이는 푸가의 연주는 이 연주가 널리 알려지고 있지 않음을 아쉽게 만듭니다.

11. 지기스발트 쿠이켄(Vn) [Deutsche Harmonia Mundi]
최근에 발매된 루시 반 댈과 레이첼 포저의 훌륭한 연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로크 바이올린의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이 있는 쿠이켄의 이 음반은 오소독스하면서도 한번도 매우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그란치노 바이올린의 독특한 소노리티, 밝은 울림과 결합한 세련되고 분명한 디테일과 그의 독특한 분절법이 성부의 암시에 있어서 듣는 이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스피디한 샤콘느의 연주가 그렇습니다. 소나타의 느린 악장과 파르티타의 프렐류드에서는 표정이 풍부한 연주를 들려주며 빠른 악장의 연주는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속도감이 있으며 리듬이 명확합니다. 중음의 연주는 전혀 무리가 없는데 3·,4중음의 연주도 귀에 거슬리는 현대적인 주법 대신 빠른 아르페지오를 사용하는 바로크 주법 덕분에 부드럽게 들립니다. 실제 연주자들에게 모범이 될만한 교과서적인 음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12. 블라디미르 시트코베츠키(Vn) [Orfeo]
시트코베츠키의 연주는 밀슈타인보다도 좀 더 19세기의 전통에 닿아 있습니다. 이를테면 느릿하고 차분한 템포를 유지하고, 중음의 연주에서 베이스 라인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던가, 풍부한 비브라토의 사용이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주가 현대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이유는 소나타의 느린 악장들, 파르티타의 무곡들에서 그 감정의 표현이 완전히 개성적이고, 새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견고한 리듬과 탁월한 센스를 유지하면서 바흐 음악 깊숙히 접근하면서 이 곡을 균형있고 힘차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기교와 정신력의 엄숙한 감동을 자아내어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는 연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최근 핸슬러 레이블에서 재녹음했는데 템포는 훨씬 빨라지고 연주 스타일은 바로크 양식을 많이 흡수한 절충적인 연주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13. 슐로모 민츠(Vn) [DG]
민츠는 기술적인 어려움을 무난히 뛰어넘은 몇 안되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사람입니다. 게다가 전세대 거장들에 비하면, 디지털 녹음 기술의 덕을 후하게 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기백과 열정으로 가득한 연주이지만 군데군데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연주입니다. g단조 소나타의 푸가에서는 균형감을 잃고 표류하고 있으며, d단조 파르티타의 샤콘느에서는 젊은 열정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정신력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14. 장 자크 칸토로프(Vn) [Denon]
칸토로프의 연주는 한마디로 신선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한 연주로 바흐의 정신세계에 당당히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 연주자의 단점으로 흔히 지적되어 온 우아함과 부드러움의 부족이 이 연주에서도 흠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정확한 스타일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부드러움과 따뜻한 인간미의 결여가 이 음반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주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15. 우토 우기(Vn) [RCA]
우기는 국내에는 거의 알려진 바 없지만 서구에서는 널리 알려진 중견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사람입니다. 놀랍게도 파르티타 2번의 사콘느를 이미 7살의 나이에 청중들 앞에서 연주한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기는 오랜 준비 끝에 90년에 비로소 녹음을 했는데, 사용한 악기는 1744년에 제작된 카리플로라는 이름의 과르네리 델 제수로 동종의 바이올린 중에는 최고의 명품에 속하는 것입니다.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사람의 목소리처럼 따뜻하면서도 약간 어두운 음색이 신비하게 울리는 이 악기는 바흐의 다성음악을 표현하는 데 매우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기의 진지하고 엄숙한 연주에는 투박한 표현과 가끔씩 느껴지는 기교의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내면을 응시하며 깊게 성찰하는 구도적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악기와 녹음기술은 이 음반의 또다른 장점입니다.

16. 오스카 셤스키(Vn) [ASV]
셤스키의 음반은 모던 악기로 녹음된 근래의 연주 중에서는 가장 모범적인 연주라 할 수 있습니다. 능숙한 기교와 꽉 찬 비브라토, 그리고 신선하면서도 확신에 찬 해석으로 인간의 숭고하고 고결한 정신세계를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만큼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뛰어난 연주를 들려줍니다. 썩 잘 된 녹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큰 스케일의 정통적인 연주를 원하는 분들에게는 최상의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7. 이자크 펄만(Vn) [EMI]
86-87년에 걸쳐 녹음된 회심에 찬 펄만의 이 음반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합니다. 완벽한 테크닉, 뜨거운 열정, 구도자적 자세,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우아한 리듬감, 작품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성찰력 등 뭐하나 모자랄 데 없는 최상의 연주를 들려줍니다. 기교와 음색의 과시적 표출로 자주 의미없는 연주를 해왔던 펄만이 이 음반을 계기로 정신적인 한계를 극복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음반은 그 당시까지 펄만이 써 왔던 1740년제 과르네리로 대부분 녹음되었는데, 마침 운좋게도 1714년 제작의 소일이라는 이름의 스트라디바리를 구입하게 되어 C장조 소나타와 g단조 소나타는 새로운 악기로 녹음되어 있습니다.


그 밖에도 바이올린이 아닌 다른 악기에 의한 여러 편곡 연주가 있습니다. 먼저, 나이젤 노스가 류트로 편곡한 바흐의 작품들은 편곡의 기술과 연주 능력의 양면에서 가장 탁월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작품들을 완전히 류트 작품으로 변용하면서 원곡의 이미지를 재현하기 위해 바흐의 류트 편곡들을 참조하지 않고 일부러 바이올린의 악보로부터 류트로 편곡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또다른 훌륭한 편곡은 존 갤브레이스가 8현의 기타로 연주한 전곡음반(Delos)입니다. 안너 빌스마는 피콜로 첼로로 두 곡의 바이올린 작품(BWV 1003, 1006)을 편곡 연주(DHM)했는데, 이 거장 첼리스트의 a단조 소나타의 푸가는 충분히 귀기울여 들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은 악기를 떠나서 가장 위대한 푸가 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유니크한 편곡은 스킵 젬페가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d단조 파르티타의 샤콘느입니다(DHM). 엄밀하게 말해 이것은 편곡이 아니라 바이올린의 악보를 즉흥적으로 건반으로 옮긴 것인데, 이 하프시코드 주자가 베이스 라인을 실제화 하는 능력이 경이로울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의 연주에서 중요시되는 의사복선율의 성부 암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어떤 힌트를 주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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