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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포럼

Mozart Requiem 음반 리뷰

작성자박정훈|작성시간01.01.29|조회수254 목록 댓글 0
모차르트: 레퀴엠 D단조 KV 626 1. 윌리엄 크리스티 (지휘) 레 자르 플로리상 수많은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 중에서 크리스티의 녹음은 여러 면을 살펴보더라도 항상 일정한 수준 이상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가장 빛나는 장점은 투티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금관 중에서 트럼펫이 가장 깨끗하고 투명하기 때문이다. 헤레베헤의 연주형태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풍부한 잔향감과 햇살처럼 부서지는 금관의 소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그리고 합창단의 규모는 작지만 단아하면서도 깨끗한 소리로 인하여 실보다는 득이 많다. 합창에서만은 코르보 음반 보다는 못하지만 오케스트라의 디테일한 면이나 음색에서는 더 나은 연주를 들려준다. 헤레베헤 보다는 구조적인 면에서 빠른 곡과 느린 곡의 템포변화와 음량의 진폭을 더욱 정교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팀파니의 음색도 부드러우면서도 풍만한 소리로써 저음역을 풍성하게 만든다. 단적으로 Dies Irae부분에서 크리스티는 이 음반의 강점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맑은 합창사이로 뻗어 나오는 트럼펫의 소리는 확실히 이 부분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 그날의 심판을 알리듯 강렬하게 표현되는 금관은 이 부분에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템포가 너무 느리면 이러한 분위기를 묘사하는데 힘들게 되지만 크리스티는 빠른 템포로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Confutatis에서도 호른과 트럼펫의 질주와 그 뒤에 잦아드는 합창의 묘미도 훌륭하다. 소규모의 합창이기 때문에 더욱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는 분위기를 간절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 현이 반복되는 리듬으로 진행하는 부분에서 현의 진행을 번스타인만큼 분명하게는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합창이나 관현악이 번스타인의 연주보다는 더 정교하다. Lacrimosa부분은 바이올린의 여린 소리 사이로 번지는 팀파니와 합창단의 총주로 인해서 단아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다. 서른 명이 조금 넘는 합창단이 뿜어내는 소리는 대규모 합창단의 웅성거리는 듯한 소리보다는 더욱 맛깔스러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Sanctus에서 처음 시작되는 팀파니가 부드러우면서 깊은 맛을 더해준다. 번스타인만큼 강렬하게 마지막을 끝맺지는 않지만 처음 부분에서 트럼펫의 끄는 듯한 음량의 조절은 더욱 인상적인 부분이다. Lux aeterna부분은 처음보다 느리게 연주함으로써 차이를 두는 카라얀의 연주도 있지만 비슷한 템포로 연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크리스티는 여기서도 템포를 늦추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더 단단하게 구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크리스티의 음색이 건조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음역이 정교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발생되는 파생적인 부분이다. 끝이 살아있는 것을 즐기려면 이만한 점은 감수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찾아오는 청량감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크리스티보다 더욱 정밀한 오케스트레이션도 있겠지만 크리스티의 장점은 투박하게 검은 천을 드리운 음반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훌륭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레퀴엠의 카타르시스는 음악을 듣고 난 뒤에 찾아오는 암울한 느낌도 좋겠지만 이러한 레퀴엠도 분명히 살아있는 자가 듣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 더 긍적적인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점에서 크리스티가 표현해 내는 레퀴엠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본다. 가장 효과적이면서 기능적인 음악적 요소들로 가득한 크리스티만의 표현방법은 아주 훌륭하다. 지휘자의 유별난 루바토가 없어도 충분히 훌륭한 음악을 빚을 수 있는 것이다. 2.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합창단 번스타인의 이 연주는 죽은 아내에게 바쳐졌다. 이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연주는 감정이입에 매우 적극적이다. 감정이입의 형태는 곡의 구조적 모습을 강렬하게 대비시켜 놓고 있다. 느린 부분은 더욱 더 느리게 빠른 부분은 빠르게 함으로써 강건한 이미지의 건축물을 쌓고 있다. 이는 뵘과 가장 대별되는 점이자 번스타인 연주의 핵심이다. 뵘의 한없는 이완과는 달리 번스타인은 중요한 부분에서는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또한 충분히 서정적이며 우수에 찬 부분에서는 마음껏 가슴속의 고삐를 풀어헤치고 있다. 밝음과 어두운 면이 교차하는 부분이 느껴지면서 레퀴엠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투쟁적인 모습이 많이 연상된다. 이것은 번스타인 자신이 생각하는 레퀴엠에 대한 통찰력이지만 판본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보기에는 조금 힘든 면이 있다. 작품 해석의 영향이 판본의 차이보다 더 크다. 번스타인이 채택하고 있는 바이어 판본은 쥐스마이어 판본의 너무나 강압적이고 두터운 화음들을 좀더 모차르트의 작풍에 근접하도록 수정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수정을 거치지는 않았으며 쥐스마이어의 오류들 중에서 상당히 어색한 부분들을 과감하게 삭제시키면서 정정하였다. 또한 번스타인의 연주는 녹음자체의 경향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음색을 아주 낭랑하게 포착하고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Introitus에서 바셋 혼과 바순의 음색이 뚜렷한 가운데 느릿하게 진행되는 것은 뵘의 연주를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훨씬 음색이 뚜렷하다. 현보다 이들 악기가 더 잘 들린다. 이후 트럼펫이 등장하고 곡은 서서히 상승한다. 오르간의 음색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도 놓칠 수 없다. 금관 악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Dies Irae는 빠른 템포로써, 앞부분의 느슨한 분위기를 고조된 분위기로 바꾼다. 빠른 템포로 인해서 바이올린의 정교한 표현이 무너지지만 번스타인은 이런 정밀한 세공과는 거리가 멀다. Tuba mirum에서는 베이스의 독창 이후에 테너가 등장하고 알토, 소프라노가 이어진다. 이때 바이어 판본은 테너 독창 이후의 트롬본을 삭제시키고 있다. 번스타인은 이 부분에서 Dies Irae와는 달리 느린 템포를 선택함으로써 확실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Rex tremendae에서는 바이어 판본에 따라서 금관의 사용이 억제되고 대신 오르간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역시 Dies Irae 분위기를 따라서 너무 느리게 연주하지 않는다. "salva me" 이후도 적당한 템포로 진행한다. 느긋하던 Recordare와는 달리 Confutatis에서는 다시 빠르게 연주한다. 빠르게 반복되는 거친 현을 바탕으로 금관이 분명하게 채색되어 있다. 애원하듯 흐르는 구원을 바라는 노래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현의 리듬사이로 점점 낮아진다. 번스타인 고유의 특징과 판본이 잘 어울리면서, 아주 색다른 경향의 연주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Lacrimosa는 어느 연주보다도 느리며 차이콥스키 6번의 4악장이나 말러 교향곡처럼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런 연주가 반감을 주기보다는 그 동안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가 마시는 물처럼 온몸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번스타인은 곡의 핵심을 바라보는 혜안으로 감상자가 원하는 부분의 맥을 잘 짚고 있다. 이 Lacrimosa는 번스타인 연주의 핵심이자 이후에 더욱 그 빛을 발하는 부분들에 대한 이정표다. 이 Lacrimosa는 Sequentia를 종결짓는 부분으로써 마지막 아멘을 끝으로 최후를 장식한다. 번스타인의 마지막 아멘은 너무나 충격적이며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찔하다. Domine Jesu는 조금은 빠르지만 상당히 강건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것은 확실한 금관과 분명한 오르간의 음색의 덕택이다. 역시 앞부분의 Lacrimosa 이후에 설정된 빠른 템포라서 또 한번 대조를 이룬다. Sanctus는 처음 팀파니의 울림으로부터 마지막 트럼펫의 화려한 끝 부분까지 짧은 곡이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 끝처리가 역시 대담스럽다. 그냥 넘겨도 될 법한 부분을 강조하는 듯한 표현은 번스타인만의 언어다. Benedictus는 마지막 코다 부분의 "호산나" 가 새롭게 첨가되어 바이어 판본의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개성적인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구성력이 탁월하다. 대편성의 관현악단이 표현하는 느낌과 연주된 장소가 주는 느낌 등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뛰어난 점은 이 곡을 통해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번스타인의 능력이다. 또한 이로 인해서 도저히 빠져나 올 수 없는 깊은 감동의 늪에 잠긴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3.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빈 콘센투스 무지쿠스 아르농쿠르는 선명하고 명확한 비팅을 우선시하고 있다. 그래서 템포의 체계적인 완급조절보다는 음표 하나가 진행될 때마다 그 순간 순간의 표현을 극대화하고 있다. 강렬한 비팅으로 인해서 과격하다고 느끼는 것은 여태껏 과장된 평가에 불과하다. 사실 더 본질적인 가슴을 찌르는 듯한 표현이지 과장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처음 아르농쿠르의 이 연주가 발매되었을 당시에는 색다른 느낌이 강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많은 원전연주에 익숙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아르농쿠르의 선구자적인 표현이 더 가치를 발한다. 트럼펫이 연주되는 부분에서는 전혀 위축되지 않는다는 점이 우수하다. 그리고 아르농쿠르의 연주에서도 밝음과 따스함이 스며있는 부분이 존재함을 볼 때 괜한 선입견은 배제시키는 것이 좋다. 이 음반은 표지에서 보듯이 빈 뮤직페라인 홀에서 녹음됐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그 점이 정격연주임에도 자연스러운 울림까지 갖출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이 때문인지 근접 녹음인 헤레베헤 (HARMONIA MUNDI)의 연주는 끝이 무디면서 큰 일격을 가하는 반면 아르농쿠르는 좀더 가늘면서 정교한 표현이 덧붙여져서 헤레베헤의 무딘 면을 더욱 갉고 닦았다. 아르농쿠르는 번스타인 (DG)과 같은 바이어판본을 사용하지만 표현에 있어서 판본이 우선시하는 부분에서는 번스타인보다 표현이 미흡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세밀한 부분에서는 더욱 가다듬어져 있다. 아르농쿠르의 연주에서 다른 곡들보다 유난히 유약해 보이는 "Dies Irae"는 판본 자체가 그렇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는 악보가 아니다. 번스타인이 오히려 더 적극적인 표현에 임한 결과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르농쿠르는 Benedictus에서 더 첨가된 부분이자, 마지막 부분인 "Hosanna"에서 그 표현이 미흡한 것이 아쉽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Introitus에서는 현과 관악기의 서주 후에 최초로 등장하는 트럼펫이 아무런 제약 없이 뻗어 나오고 있다. 이것은 미리 선전포고와도 같은, 확실한 트럼펫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암시하는 것 같다. 조금 빠르게 곡이 연주되어서 암울한 분위기 표현에서는 다소 미흡하다. 조금은 천천히 진행할 필요가 있다. 소프라노의 독창이 시작되는 부분 이후에서는 그런 대로 답답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연주된다. Kyrie에서 베이스 합창의 음색이 특이하다. 의도적으로 중압감을 많이 제거시킨 듯이 들리며, 간결한 텍스트와도 잘 어울리는 듯하다. Dies Irae에서는 판본이 쥐스마이어 판본과는 달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역시 아르농쿠르 연주 중에서 가장 아쉬움을 많이 남기는 부분이다. 쥐스마이어 판본이 더 강렬한 트럼펫의 표현이 사용되었으며 바이어는 오히려 온유한 표현을 쓰고 있다. Tuba mirum에서는 테너가 조금은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나머지 독창자들은 우수하며 오케스트라 반주도 충실히 독창자들을 도와주고 있다. Rex tremendae에서 처음 반복되면서 시작되는 "Rex" 부분을 짧게 끊어서 연주하다보니 조금 그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은 것처럼 들리나 이것은 악보에 충실한 연주이다. "Rex" 부분은 투티로 강하게 발음해야 하며 앞의 바이올린은 충분히 짧게 끊어서 연주해야 한다. 이는 놓치기 쉬운 부분에도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격이 되었다. Confutatis에서 남성 합창과 여성 합창의 대비도 무난하다. 뚜렷하게 진행되는 현의 진행과 더불어 관의 표현이 그렇게 강렬하게만 표현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나타내고 있다. Lacrimosa는 원전연주의 특징인 빠른 템포를 취하고 있다. 이 곡에 한해선 어떤 새로운 시도는 보이지 않지만 역시 템포는 왠지 모르게 빠르게 느껴진다. Domine Jesu에서는 곡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연주자체는 많이 경쾌하다. 아르농쿠르의 연주는 선명한 현과 금관의 진행으로 충분히 이러한 경향을 따르고 있다. Sanctus에서는 처음 시작부의 트럼펫이 일반적인 진행과는 다르게 들린다. 투티도 조금은 절제를 하고 있다. "Hosanna" 이후의 알레그레도 조금은 템포를 늧추고 있다. Benedictus에서는 번스타인과는 다르게 표현하고 있으며 좀더 쥐스마이어 판본과 유사하다. 이 부분은 번스타인처럼 진행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Communio에서도 Introitus와 같이 조금은 빠른 듯이 연주하고 있다. 그러나 키리에 부분이 다시 반복 될 때는 템포를 앞 부분과 대조적으로 느리게 설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그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다. 곡이 마침내 잦아지면서 끝나는 부분은 일반적인 연주와는 달리 서서히 음량이 낮아지면서 사라진다. 전체적으로 아르농쿠르의 연주는 자칫 레퀴엠의 본질을 망각하면서 심각하게 왜곡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시각으로 곡을 바라보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을 한 번쯤이라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공감하는 바이다. 그의 의견이 무시당할 만큼 잘못된 시각이 아니며 오히려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번스타인이 더 크게 바라보면서 감상적인 측면을 강조한 반면 아르농쿠르는 조금은 작지만 세부적으로 더 면밀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감수성을 얻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은 이 음반의 진짜 가치다. 4. 필립 헤레베헤 (지휘) 샹델리제 오케스트라 헤레베헤의 모차르트 레퀴엠은 도구는 원전악기를 사용했지만 그 내용은 현대적이다. 따라서 정격연주에서 가장 불만으로 떠오는 템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헤레베헤의 전체적 외형은 그렇게 부담을 주는 스타일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녹음이 FRANCE HARMONIA MUNDI의 특징인 근접녹음으로 각 악기의 음량을 크게 잡을 결과, 너무 강하게 들리는 점이 다소 부담을 준다. 모차르트 레퀴엠은 그렇게 대편성의 곡이 아니기 때문에 금관이 그렇게 강하게 들리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다고 존재감 마저 없는 그런 밋밋한 연주는 아니라야 된다. 이러한 근접녹음은 고악기들의 다이나믹을 손쉽게 얻기 위한 방법일테지만 항상 양면이 존재하는 선택이다. 크리스티 (ERATO)에 비해서 헤레베헤가 곡의 구조적인 설계는 조금 떨어진다. 각 곡마다의 템포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스타일이 아니라 익히 들어오던 그런 템포로 헤레베헤는 곡을 진행하고 있다. 합창은 코르보 (ERATO)보다 더 순수해보이거나 아름다운 느낌은 주지 않는다. 합창 역시 소리가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 옆에 바짝 붙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Introitus에서 너무 무거운 느낌을 주지 않으며 이러한 점은 합창이나 관악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트럼펫은 그 위치에 변함없이 존재한다. 템포도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괜찮다. Dies Irae에서도 역시 빠른 템포를 선택하기보다는 앞부분과 비슷하게 처리해서 구조적인 표현에서 조금 아쉽다. 트럼펫도 조금은 힘겹게 짜는 듯한 면도 보이지만 크게 보아 넘길 것은 못된다. 공간감이 살아있는 크리스티의 뻣어 나오는 것과는 달리 트럼펫의 음량만을 크게 한 것이 차이가 난다. Tuba mirum에서도 부담감을 주는 목소리보다는 자극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나 트롬본이 조금 더 나긋하면서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Rex tremendae는 합창이 뚜렷하게 하나씩 선명하게 드리면서 다른 악기들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도 악기처럼 들린다. Confutatis는 현의 반복음 사이로 튼튼한 트럼펫의 연주가 진행된다. 헤레베헤 음반의 장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큰 음량의 관악기 사이로 두드러진 현의 진행은 가장 뚜렷한 곡의 진행을 알린다. 그 뒤로 여린 어조로 어루만지듯 시작되는 합창도 그 맛을 제대로 알고 있다. Lacrimosa는 조심스러운 면을 내포하면서 한 풀의 천을 가린 듯이 시작되었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관현악의 상승과 맞추어 진행되는 합창의 묘미가 잘 살아나 있다. 곡의 처음에서 아주 가늘게 합창을 이끈다. 뒤로 갈수록 질퍽해지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소리보다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소리를 들려준다. Sanctus는 처음에서 강인한 팀파니보다는 역시 정성스럽게 다루고 있으며 마지막 트럼펫의 끝맺는 부분도 번스타인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잘 처리하고 있다. 큰 음량의 거대한 규모가 아니라서 다소 재미가 없게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정교한 합창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멍멍한 대규모의 합창보다는 소규모의 합창이 담백한 분위기에 더 유리하다. 전체적으로 헤레베헤는 템포변화를 심하게 해서 구조적인 완성미를 연출하기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의 합창과 템포를 가지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나 지루하게 사람을 잡아끌기보다는 강한 음량의 금관 (물론 녹음의 덕택으로 부수적으로 얻어냈지만)으로 곳곳에 숨어있다. 숨어 있던 모습이 한 음 한 음 살아날 때면 듣는 사람의 귀와 마음을 충분히 즐겁게 해 준다. 5. 칼 뵘 (지휘) 빈 필 칼 뵘 (Karl Bohm)의 이 유명한 연주는 해석이 번스타인의 그것과 일견 비슷한 것 같으면서 아주 이질적이다. 첫 번째는 그 판본이 다르다는 점이며 (칼 뵘은 쥐스마이어 판본, 번스타인은 바이어 판본이다), 두 번째는 템포설정을 비롯한 구성력의 차이다. 칼 뵘은 전체적으로 느리게 전부 길게 늘어뜨린 형식이다. 그래서 사람을 쉽게 피곤하게 만든다. 감상자의 숨통을 죄어오는 듯한 답답함이 있을 때와 숭고한 마음이 들 때와 아주 편안할 때가 공존하는 연주다. 그래서 칼 뵘의 연주는 처음 들으면 아주 편안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지극히 숭고한 마음까지 생기게 한다. 그러다 시간이 더욱 흘러 점차 익숙해지면 답답하다는 결국 느낌에까지 이르게 된다. 여기에는 심리적인 것이 많이 작용하는 연주로 처음 듣고 난 뒤에 자주 이 음반을 집어들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 음반의 특징은 쥐스마이어 판본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녹음이 둔탁해서 어두운 느낌이 강한 것은 부차적인 이유며, 근본적으로 뵘은 모차르트가 부여한 이 곡의 성격 중 '슬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 결과 이렇게도 암울한 정서가 가득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뵘의 레퀴엠은 마음이 안정된 상황에서 감상이 아주 절실한 연주다, 잡념이 들어가면 곧 잘 지루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연주와는 달리 상당히 뵘만의 색깔로 바라본 연주이기 때문에 처음 듣기에는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뵘은 곡 전반에 걸쳐, 그림을 그릴 때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서 그리듯 아주 두터운 울림을 들려준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쥐스마이어 판본이라는 점과 맞물려서 암울한 분위기 묘사에는 더할 수 없는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쪽 면만 바라본다면 동굴속의 우상이 되기 쉽기 때문에 이 연주도 색다른 방향으로써 그 가치가 인정된다. 느릿한 현의 반주와 함께 바순과 혼의 주고받는 형식으로 Introitus가 시작된다. 서서히 상승곡선을 긋다가 다시 "et lux perpetua"를 거치면서 곡은 점점 밝아진다. 그 후 소프라노 마티스의 독창이 시작된다. 그 반주는 가장 간단한 것이지만 가장 심오한 면을 지니고 있다. 뵘은 번스타인과 유사하게 넉넉한 템포로 곡을 시작하며 충분한 사색을 즐기기에 알맞다. 곡은 다시 잦아지면서 끝을 맺고 장중한 베이스로부터 Kyrie로 넘어간다. Dies Irae는 일반적인 템포와 함께 금관도 생명력을 갖고 있어서 무난한 연주이다. Tuba mirum에서는 템포를 많이 늦추어서 앞부분의 강렬한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Rex tremendae에서는 음을 꾹꾹 누르듯 진행하며, Dies Irae의 분위기를 이어받기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다. 또 "salva me" 이후의 템포가 느려지면서 애절한 분위기와 잘 들어맞는다. Recordare는 첼로와 혼의 서주 후에 각각의 독창이 진행된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Confutatis는 느리지만 현의 두터운 바탕 아래 튼튼한 선율이 흐른다. 느린 템포로 인해서 구원을 바라는 여성 합창이 더 설득력있게 들린다. 이를 받쳐주는 현의 진행도 고즈넉하게 계속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욱 음의 진행이 잦아지면서 Lacrimosa를 향해서 전진한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가장 안정적인 Lacrimosa이다. 3분대가 대부분이지만 항상 이보다는 좀더 느린 연주를 원했었기에 뵘이 적절하다고 본다. 번스타인은 가장 느린 Lacrimosa를 들려주지만 이것은 보편적인 템포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고, 가장 개성있는 Lacrimosa로 봐야할 것이다. 느리게 진행되면 툭툭 치는 듯한 팀파니가 제법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재현한다. 이 후의 뵘의 연주는 느리게 진행되지만 여전히 깊은 사색의 길로 인도한다. 이러한 부분은 원전연주와 가장 다른 부분이며 이는 서로 절대적인 비교가 될 수 없다.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하는 부분이라서 각각의 길은 따로 존재한다. 뵘의 연주는 분명 표준적인 연주 형태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상자가 무척 평안하게 정적인 상황이라면 아주 훌륭한 연주임에 분명하다. 외형적인 면은 비표준이지만 내부적인 면에서는 표준적인 연주다. 이 연주가 느린 템포로 인해서 잃는 부분은 긴장감이지만 이로 인해서 얻는 부분은 평화로운 안식을 바라는 마음이며 더욱 숙연함을 지니게 하는 연주이다. 6. 조르디 사발 (지휘) 카탈루냐 합창단 레 콘서트 데스 나시온즈 오케스트라의 음색이나 음량, 합창단의 기량 등이 골고루 그 실력을 갖춘 연주다. 이러한 기본적인 바탕 위에서 독창자의 음색을 선별적으로 택한 사발의 기용이 돋보인다. 특별히 어떤 면을 강조하지 않는 아주 모범적인 연주이다. 모범적인 연주라면 개성은 일단 뒤로 유보된 상태이다. 그러면 사발은 어떤 면을 자기의 색깔로 채색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일단 정격연주 중에서 헤레베헤보다는 좀더 투명하면서 더 맑다. 정격연주의 특징을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으며 판본도 색다른 시도 대신에 쥐스마이어 판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점들만을 살펴봐서라도 이 곡에 대한 표현 자체가 그렇게 튀는 연주가 아님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사발의 합창의 특징은 소프라노의 초고음역과 베이스의 초저음역을 될 수 있으면 배제시키고 있다. 소프라노의 음색이 카운터 테너 비슷한 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어, 상당히 자극적인 면이 감소되었다. 이러한 부담스러운 음역을 줄이려는 시도의 결과로써 상당한 투명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헤레베헤가 익숙한 템포와 분위기, 그리고 강렬한 이미지의 연주를 통해서 레퀴엠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사발은 음역 자체가 부담감이 전혀 없는 레퀴엠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부담감을 감소시키기 위해서 가디너처럼 차가운 음색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처음 정격연주를 접한다거나 너무 자기 주장이 강한 연주가 싫다거나 색다른 독창자의 음색을 원한다면 들어볼 만 하다. 그러면 이제 곡을 살펴보기로 하자. Introit에서는 정격연주다운 템포로 빠른 듯이 시작된다. 그 다음 트럼펫과 팀파니, 그리고 합창단이 최초로 등장한다. 빠른 템포는 정격연주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런 부분에서 불만이 있다면 잠시 그 감정을 이 연주를 들으면서 가라앉히기로 하자. 소프라노의 독창자가 "et lux perpetua"라고 부르는 대목에서 상당히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왠지 모르게 카운터 테너 비슷한 음색의 소프라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듣다보면 참으로 편하다. 소프라노의 음색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하지만 이런 음색의 독창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합창단도 대규모가 아니라서 더욱 단아한 면을 부각시킨다. 키리에서도 앞부분의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차분하지만 혼탁하지 않는 합창으로 연주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너무 화려하다거나 두드러지는 표현이 없다. Dies irae는 빠른 템포로 쥐스마이어 판본의 처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음의 밸런스도 무난하다. 오르간의 음색도 뭍히기 쉬운 부분인데 이런 부분까지 음을 잘 포착하고 있다. 팀파니의 연타도 가디너와는 대조적으로 낭랑한 듯 하지만 무난하게 진행한다. Tuba mirum에서도 베이스의 음역이 그렇게 저음이 강하게 표현되지 않아서 테너 비슷한 음색이지만 전체적인 합창의 무게를 감량시키는데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Rex tremendae의 도입부에서의 투티는 그렇게 강렬하게 표현하지는 않고 있다. 역시 템포는 무척 빠르게 설정되어 있다. 또한 악단이 소규모여서 그런지 다이나믹한 연주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Recordare는 매우 차분하게 부르는 독창자의 기량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역시 일반적인 독창자들의 음색과는 달라서,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Confutatis도 빠른 템포로 연주하기 때문에 제대로 현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살리지 못한다. 합창은 무난하게 진행하고 있다. Lacrimosa도 느리게 진행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합창 자체가 투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를 표출하지 않는다. Sanctus도 Dies irae 악보와 비슷한 선율이 나오는 만큼 투티에서는 상당히 강인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비록 엄청난 다이나믹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약한 이미지는 아니다. 뒷 부분의 곡에서도 역시 특이한 개성의 표현보다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의 중용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나 사발의 표현은 재미없는 연주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합창이 새로운 서정성과 밝은 빛깔의 음색으로 인해서 단점으로 여겨질 수 있는 부분들이 덮어지게 된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처음 정격연주를 접하기에는 알맞은 연주다. 무난한 연주 스타일이란 점과 합창도 가볍고, 음색도 세련된 분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그러나 템포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원전연주의 단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사발이 선택한 레퀴엠의 표현수단은 억압된 느낌과 암울한 색깔의 커튼을 걷어버리고, 밝고 시원한 커튼으로 바꿔주는 듯하다. 형식상으로 중용적인 연주로는 손색이 없다. 다만 새로운 시각의 해석을 원한다면 이 연주는 적어도 그런 방향은 아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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