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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건반음악 작품에 대하여

작성자굴드|작성시간99.08.09|조회수948 목록 댓글 0
바흐의 건반음악에 대하여
"바흐가 아니라 대해(大海)라고 불러야 한다" ―독일어의 '바흐(Bach)'는 시냇물을 뜻함―
이 말은 일찌기 베토벤이 바흐를 일컬으면서 사용한 비유이다. 참으로 예언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이 말의 깊은 뜻은 그보다 훨씬 큰 것이다. 베토벤은 바흐 음악의 큰 바다에서 배운 최초의 작곡가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에 나오는 당당한 푸가나 후기의 현악 4중주 가운데의 교묘한 대위법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는 후세의 작곡가들도 역시 바흐의 작품에서 영감의 원천을 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 예상대로 되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이 말의 100년 뒤에 바흐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는가를 예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극심한 혼란과 실험을 거친 오늘날, 작곡가들은 "바흐로 돌아가라"는 표어에서 새로운 희망과 신뢰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또한 그의 비유를 보다 더 넓은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이 얼마나 멋진 뜻을 지니고 있었는가를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바다는 아무리 물을 퍼내도 마르는 일이 없는 수원(水源)인데, 그와 동시에 크고 작은 갖가지 시냇물이 모두 그곳에 흘러드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바흐 이전 음악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베토벤이 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 50년 동안의 음악학의 연구 결과, 여러 나라에서 오랜 시대를 걸쳐 지속되어 왔던 무수한 선구자들의 노력을 집대성한 사람으로서의 바흐의 위치가 완전히 뚜렷해졌다. 이것은 음악사상 뿐만 아니라 아마 모든 예술의 역사를 통해 참으로 유례가 없는 것이다. 바흐는 바로 바로크 음악의 거대한 건축물의 꼭대기에 있는 요석(要石)이었다. 바흐의 음악은 그 당시까지의 음악을 완성시켰으며, 바로크 음악은 그에게서 최고의 정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서양 음악이 미래에의 장을 열 수 있게 해 주었다. 유럽 각지의 여러 음악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은 모든 결과가 그의 음악 속에서 합일을 이루고 실현되었다. 그의 시대사적 의미는 전통적 인 양식을 진정 대가다운 솜씨로 승화시키고 영적 높이로 끌어올리고 음악 양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해 주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작곡가들의 모범이 되며 음악의 척도가 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놀라울 정도의 적극성으로 그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음악 형식과 양식을 흡수하고 더할 수 없는 숙련으로 그 모두를 예술적 표현의 절정으로 올려놓았다. 샤이트와 프레스코발디, 북스테후데와 뵘, 파 헬벨과 피셔, 쿠프랭과 비발디의 전부가 바흐 속에 다시 나타나, 후기 작품 <음악의 헌정>과 <푸가의 기법>에서는 15세기의 초기 네덜란드파의 대기를, 오케겜(Ockegehm)과 이자크(Issac)가 새로운 생명을 받아 되살아나고 있다.
바흐의 독창력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 완성하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그는 과거의 형식과 양식을 예술적 완성의 절정으로 끌어올렸는데, 바로크 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하이든이나 모짜르트 교향곡에의 길을 준비하고 있던 당시의 새로운 경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바흐에 비하면, 같은 해에 태어난 헨델(Handel)은 진보적이었으며 같은 시대에 살았던 텔레만(Telemann)이나 심마르티니(Simmartini)는 급진적이었다. 바흐의 작품이 특히 말년에 이르러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은 아마 그의 보수성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가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었다면 그것은 작곡가로서가 아니라 오르가니스트로서 였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감동했던 약간의 사람들조차 그것을 구식이며 지나치게 복잡하다고 생각했었다. 1722년에 쿠나우가 죽고 라이프찌히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cantor; 합창장)의 지위가 공석이 되었을 때, 처음에 그것은 텔레만에게 제공되었다. 텔레만은 함부르크에 훨씬 유리한 지위가 있었으므로 사퇴했기 때문에 비로소 라이프찌히 시의회는 마음이 내키지는 않으나 바흐를 택하여, "최적임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라고 의사록에 기록했다.바흐가 죽고 4년 뒤에 씌여진 기사에는 이보다 더욱 놀라운 문장을 볼 수 있다. 거기에는 당시 독일의 일류 작곡가의 이름이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적혀 있다. 하세(Hasse), 헨델, 텔레만, 요한 그라운, 시�p�f(Stolzel), 바흐, 피덴젤(Pisendel), 블뤼믈러(Bl mler).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하세나 그라운이 바흐보다 먼저 두어지고 시�p�f, 피젠델, 블뤼믈러처럼 망각되는 것이 당연한 사람들이 어찌해서 바흐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바흐의 건반음악 작품은 하나하나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걸작들이다. 바로크 음악의 정상의 요석(要石)으로서의 바흐의 지위를 뚜렷이 하는 곡을 살펴보도록 하자.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푸가이다. 바흐의 푸가가 그 이전의 작곡가들의 푸가보다 뛰어난 점은 여러 가지이다. 대위법의 기교가 우수하다는 것, 구조의 명확함, 화성적 처리 방법의 우수함 등등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특성은 이전의 음악적 유산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발전 과정상의 한 단계로 생각될 수 있다. 바흐의 푸가를 전적으로 독자적인 것으로 만드는 근거는 주제가 지닌 더할 수 없는 예술성에 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푸가와 선구자 요한 카스파르 피셔(Johann Kaspar Fischer: 1665-1746)의 <아리아드네 무지카>를 비교해 보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 바흐는 24의 조 전부에 걸쳐서 프렐류드와 푸가를 만든다는 착상을 배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푸가의 주제 자체도 몇몇을 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얼마나 푸가의 스타일에 숙달되어 있었는지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설명할 것도 없이 평균율이라는 제목은 그 당시로서는 신기했던, 그 뒤 계속해서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조율법을 가리키고 있다. 이 조율법의 결과, 모든 조를 똑같이 기분 좋게 연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이전의 조율법에서는 조표가 적은 조는 깨끗이 울리지만, #(sharp) 이나 b(flat)이 많이 달린 것은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바흐는 2권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1722년과 1744년에 각각 완성)에서 이 새로운 조율법을 비로소 실제로 적용한 프렐류드와 푸가를 작곡했다.
한편 바흐의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은 각각 6곡으로 된 <영국 모음곡(English Suite)>, <프랑스 모음곡(French Suite)>, <파르티타(Partita)>의 3개의 모음곡집을 주체로 하고 있다. 그러나 제1의 모음곡집에서는 영국풍의 특징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또한 제2의 모음곡집은 독일 작곡가의 모음곡 전부가 갖추어져 있는 프랑스적인 요소를 제외하면 조금도 프랑스풍이 아니다. 다만 이탈리아에서 빌어 온 파르티타만은 이 모음곡집이 어느 정도 이탈리아풍의 영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근거가 있 다고 할 수 있다. 파헬벨의 모음곡에서 볼 수 있는 낡은 타입의 댄스와 나중 시대의 댄스 사이의 스타일의 차이는 바흐의 모음곡에서 뚜렷이 볼 수 있다. 바흐의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는 춤추기 위한 댄스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고도로 양식화된 춤곡이다. 한편 그의 가보트, 부레, 폴로네이즈, 미뉴엣은 댄스 본래의 특징을 남기고 있는데,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는 해석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주어지고 있다.
바흐의 코랄 프렐류드는 귀중한 보배이다. 그러나 그 의미의 깊이는 푸가나 모음곡에 흔히 친숙해진 음악 애호가들조차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는 하나, 바흐 음악을 이해하는데 있어 코랄 프렐 류드는 통과해야 할 필수적인 관문이다. 그 이유는 스타일과 처리법의 다양성, 형태의 간결함, 표현력 의 훌륭함은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예술적인 위대함을 갖춘 까닭으로 바흐의 모든 작품 중에서 마 치 괴테의 작품 중의 서정시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규모 작품의 넓은 규모 와 넘칠 듯한 사상을 교묘하게 반영한 소우주 같은 것이다. 코랄 프렐류드는 찬송가와 직접 연관된 것 으로 코랄 포슈필(Choral Vorspiel: '찬송가 전주'라는 뜻)로도 불린다. 오르간이 회중 찬송의 반주를 맡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이전에는 찬송의 시작을 알리는 전주와 끝맺음을 알리는 후주만을 연주했고 또 성가대의 노래에 오르간 연주로 화답을 해 주는 역할을 했다. 사무엘 샤이트 (Samuel Scheidt: 1587-1654)로부터 바흐까지의 교회 음악가들은 이 코랄 프렐류드에 헌신해 왔는데 이들에게 코랄 멜로디는 중요한 소재와 주제가 되었다. 특히 바흐는 누구보다도 코랄을 가까이하고 그 멜로디와 가사를 익히 알아 칸타타, 오라토리오, 수난곡과 오르간곡 등에 사용하였다. 코랄에 대한 그 의 작품 활동 때문에 교회 음악가로서의 바흐는 헨델과도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
17세기에 들어서 북독일의 대형 오르간 제작은 오르간 연주를 더욱 다양화 시켰다. 함부르크를 중심 으로 한 북독일에는 오르간 연주가 다수 배출되어 북독일 음악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북스 테후데, 뵘, 파헬벨 등은 코랄 프렐류드에 특히 뛰어난 대가들로 바흐의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 는데, 각기 독특한 양식의 작품 활동으로 당대에는 이들을 당할 오르가니스트가 없었다. 파헬벨은 코 랄 푸가로서 코랄 프렐류드를 완성시킨 사람이다. 멜로디의 각 음절은 작은 푸가들로 이루어져 있어 전체적으로 여러개의 작은 푸가들이 코랄 멜로디의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각 음절의 끝부분에는 원래의 코랄 멜로디가 다시 나타난다. 한편 뵘은 완전히 다른 형식의 코랄 프렐류드를 완성시켰는데 네덜란드 스윌링크(Jan Pietersz Sweelinck: 1562-1621) 학파 장식음의 영향을 받아 멜로디를 장식했 으며 반주는 자유로운 화성으로 연주하게 되었다.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는 샤이트와 바흐 사이의 최대의 오르가니스트로서 독일 오르간 토카타를 창조한 사람이었 다. 그의 코랄 프렐류드는 단순한 것부터 예술성 풍부한 것까지 여러 종류의 코랄 판타지이다. 단순한 것이란 멜로디가 제 길을 가는 동안 다른 성부는 단지 화성적으로만 변하는 반주가 되어 멜로디와 동 행하는데 바흐의 코랄 프렐류드는 이러한 형식을 잘 보여준다. 한편, 큰 작품에서는 멜로디가 한 성부 에서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성부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 때문에 마치 번쩍거리며 움직이는 판타지의 폭풍 속을 달리는 느낌을 준다. 멜로디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어느 성부에서도 들을 수 있다.
바흐의 코랄 프렐류드가 그 이전의 대가들과 구별되는 점은, 일찌기 슈바이처 박사가 지적했듯이 바 흐가 전대의 것을 이어받아 그것들을 완성해 냈다는 사실이다. 페터즈사에서 출판된 바흐의 오르간 전 집 9권 중에서 코랄 프렐류드는 모두 90개가 수록되어 있다. 이 코랄 프렐류드는 원래 바흐가 5권으로 묶었던 것이데, 그 첫째가 『오르간 소곡집(1722)』, 둘째가 『피아노 연습곡집 제3부(1739)』, 셋째가 『쉬블러 코랄(1747)』, 넷째가 『크리스마스 성가 "높은 하늘에서 나는 오리라"에 의한 카논 변주 곡』,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가 『18개의 라이프찌히 코랄』이다. 코랄 프렐류드에는 멜로디의 음악화 뿐만 아니라 가사의 의미도 매우 중요한데, 북스테후데도 이 점을 각별히 유의했다. 바흐는 처음에 파 헬벨, 뵘, 북스테후데, 혹은 라인켄의 형식을 습작했는데, 바이마르 후기부터 그의 독자적인 작품을 쓰 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오르간 소곡집』에 수록된 작품들이다. 여기서 멜로디는 정선율로 대개 소프라노 성부에 있는데 이 멜로디는 별다른 변화없이 곡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전체적인 곡은 어 떤 하나의 모티프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모티프는 코랄 멜로디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가사에서 나온 것이다. 즉, 바흐는 시에서 느낀 음악을 언어적인 모티프로 찾아낸 것이다. 이렇게 가사를 순수한 음악 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음악사적으로도 매우 획기적인 일이다. 그의 음악적 언어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고 볼 수 있다. 이런 언어적인 요소가 『오르간 소곡집』전체에 들어 있다. 이 곡집 안에 있는 각각의 찬송가에 사용되는 특징적인 모티프들을 바흐는 같은 내용을 표현하는 다른 곡에다 다시 사용하였기 때문에 『오르간 소곡집』은 바흐의 음악 사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1년 동안의 각 절기에 따라 부르 는 찬송가로 묶어진 『오르간 소곡집』에 비해 『피아노 연습곡집 제3부』는 찬송가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교리서 찬송들로 이루어져 있다. 순서는 루터의 교리서와 같고 모두 루터의 노래들이다. 루터는 대교리와 소교리를 구분했는데, 대교리서에는 교의의 본질을 명시하고 소교리서에는 어린이들을 가르 치고 있다. 이런 루터의 의도를 바흐는 놓치지 않고 각 노래에 2개씩의 프렐류드를 썼는데, 하나는 그 찬송의 중심적인 생각을 충만하게 표현할 만큼 큰 곡이고, 또 다른 한 곡은 페달 없이 단순한 가운데 귀여운 느낌마저 드는 소곡이다. 다만 둘째곡인 <오직 하나님만이 높은 영광 안에 계신다>만큼은 예 외적으로, 이 곡이 삼위일체를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3절의 가사에다 세 개의 큰 곡을 붙였다. 그리고 첫곡인 키리에 부분은 삼위일체의 교리를 확고히 한다는 의도에서 성부, 성자, 성신의 세 키리에 각각 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프렐류드를 작곡하였다. 곡 전체는 Eb장조의 푸가로 끝맺고 있다. 푸가 역시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특징적인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작품 전체에서 삼위일체를 의미하는 3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는데, 세 개의 플랫(b)으로 이루어진 Eb장조, 27개(3× 3×3)의 곡으로 구성된 것, 또 전주와 후주 각각이 3개의 테마를 갖는 것 등이다. 마지막 모음곡집에 있는 『18개의 코랄』은 바이마르, 쾨텐 시절의 작품을 수정, 보완한 것이 많다. 이 작품들은 북스테후 데, 뵘, 파헬벨이 제시했던 형식의 대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업은 만년의 그에게 죽음으로의 길 을 재촉한 무거운 일이었다. 코랄 프렐류드는 오르간을 위해 씌여졌기 때문에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 드를 위한 곡들처럼 간단히 연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는 피아노 스코어로 입수할 수 있으며, 또 한 다수의 곡은 이미 또 한 사람으로 하여금 오르간의 페달 건반 부분만을 아래의 옥타브를 겹치면서 연주하도록 하면 쉽사리 연주할 수 있다.
이제 끝으로 바흐가 우리에게 남겨 놓은 그 많은 걸작들 가운데 인상적인 작품 몇 개를 열거해 본 다면, 먼저 청년 시절 작품으로는 <반음계적 판타지와 푸가(Chromatic Fantasy and Fugue)>가 있 다. 이것은 반음계적 화성의 대담한 사용으로 주목을 끄는 작품으로서 쇼팽의 반음계적 화성을 100년 이나 전에 이미 제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 협주곡(Italian Concerto)>가 있다. 이것은 안토 니오 비발디와 같은 당시의 이탈리아 작곡가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본보기로 하여 만든 곡이며, 명료하 고 간결한 형식, 개운한 스타일, 외부에 간직된 긴장감에 의해 반음계적 판타지의 열광적인 기분과 극 적인 분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음으로는 <C단조 파사칼리아>, <D단조의 토카타와 푸가>와 같은 많은 위대한 오르간곡이 있다. 이것들은 현대의 관현악 편곡자나 영화 제작자의 선정주 의의 해독을 받지 않은 원래의 상태로 연구되거나 들려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인 < 푸가의 기법>이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고도의 대위법을 위한 더 할 수 없이 좋은 교재로 생각되어 왔는데, 과거 20년 동안에 음악 예술의 가장 뛰어난 창작의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 작품은 미완 성이며 B-A-C-H라는 주제가 처음으로 들어오는 곳에서 갑자기 끝나고 있다. 이것은 아마 인간의 생 명의 덧없음과 불멸의 찬란함을 나타내는 표현키 어려운 감동적인 상징일지도 모른다. 바흐의 건반음악 작품을 중요한 4시기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른슈타트 시대(1703-1707) 이 시기에는 합창곡과 오르간곡을 많이 작곡했고 클라비어 작품은 단 3편만이 전해오고 있다. 소나 타 D장조 BWV963, 형 요한 야콥과 요한 크리스토프를 위한 카프리치오 BWV992, 993이 그것이다. 사랑하는 형을 떠나보내며 쓴 B장조 카프리치오는 단 한편의 건반 표제음악이었다. 그는 6악장으로 된 이 카프리치오를 카를 7세의 친위대 트럼펫 주자로 스웨덴으로 떠나는 형 요한 야콥에게 헌정하였 다. 바흐는 자신의 집안의 역사를 음악으로 곧잘 표현했는데, 이 카프리치오에는 상황뿐만 아니라 아 름다운 푸가들도 들어 있다.
바이마르 시대(1708-1717)
이 시기의 바흐의 클라비어 작품은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①클라비어만을 위한 17개의 협주곡: 이 작품들은 비발디, 마르첼로, 텔레만의 협주곡과 자신의 오르간 협주곡 1편을 편곡한 것이다.
②7개의 토카타 BWV910-916: 당시 음악계를 풍미했던 이탈리아 바이올린 협주곡의 영향을 이들 토 카타에서 엿볼 수 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좀 추상적인 푸가와는 반대로 이 토카타의 푸가는 주 제 구성면에서나 전개면에서 클라비어의 특성이 강하다. 이 푸가는 평균율의 푸가보다 길며 호모포니 가 삽입되어 그 순수함이 뿌리깊게 박혀 있다.

쾨텐 시대(1717-1723)
이 시기에는 종교적 작품들이 잠시 뒷전에 놓이면서 많은 클라비어 작품들이 작곡되었다.
①빌헬름 프리데만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교본: 1720년에 씌여진 이 교본은 장남 프리데만을 위한 것 이었다.
②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③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BWV846-869: 1722년에 나온 이 전집은 24개의 프렐류드와 푸가가 모든 조에 걸쳐 있으며, 쾨텐 시대에 나온 가장 방대한 작품일 뿐만 아니라 바흐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이다. 전편에 흐르는 사색적인 철학의 깊이는 인간의 힘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원 경에서 제시해 주고 있다. 바흐에게 있어 프렐류드는 푸가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연주 테크닉상으로 프렐류드는 스케일의 형태나 아르페지오의 모티브에서 발전되어 나간다. 멜로디나 적어도 푸가의 테마 가 진행되는 것에 대한 특징이 프렐류드에 암시되어 있다. 프렐류드와 푸가 사이의 모티프적인 관계는 여러 가지 예를 통해 분명히 볼 수 있다.
④2성·3성의 인벤션 BWV772-801: 바흐는 이 인벤션을 '칸타빌레'로 연주하도록 작곡하였다. 이에 따 르면 이 작품은 쳄발로를 위해 씌여진 것이 아니라 클라비코드를 위해 씌여졌음이 분명해진다. 비브라 토로 건반을 두들겨 울린 음이 질적인 면에서는 영향력을 더 크게 할 수 있으나 쳄발로를 쓰면 이런 효과는 얻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바흐가 클라비코드를 선호했음을 알 수 있다.
⑤영국 모음곡 BWV806-811: '영국풍' 모음곡이라든지 '프랑스풍' 모음곡이라는 명칭이 어떻게 나왔는 지는 명확히 설명할 길이 없다. 바흐 자신이 붙인 것은 아니고 그의 사후에 이 두 모음곡을 구분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된다. 영국 모음곡은 프랑스 모음곡에 비해 더 꽉 채워진 맛이 있고 포괄적 이며 더 격정적이다. 따라서 프랑스 모음곡보다 먼저 작곡된 것이라 추측된다.
⑥프랑스 모음곡 BWV812-817: 프랑스 모음곡의 원형은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1집에 있는데, 눈에 띄게 우아하게 짜여져 있고 작은 형식에만 국한시켰다. 주요 악장에는 철저하게 독일식인 4개의 형식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를 사용했다. 사라방드와 지그 사이에는 폴리포 니 형식으로 되어 있어 마지막에 강도 높은 효과를 가져다주는 춤곡들―미뉴엣, 에어, 가보트, 부레, 폴로네이즈, 루르, 앙글레이즈 등―이 삽입되어 있다.
⑦오르간 소곡집 BWV599-644: 바흐의 초창기 코랄 프렐류드 모음집으로 1년 동안의 각 절기에 따라 부르는 찬송가로 구성되어 있다.

라이프찌히 시대(1723-1750)
이 시기에 작곡된 건반악기를 위한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제2권
②클라비어 연습곡집 제1부: 여기에 나오는 파르티타 BWV825-830은 우리 시대를 통틀어 가장 천재 성이 넘치는 피아노 모음곡이다. 이 작품은 작곡 기법상으로나 내용적으로 유일무이하며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영국 모음곡에서와는 달리 각 파르티타마다 독자적이고 개성이 강한 프렐류드를 앞에 내세 웠고 6개의 각기 다른 표제를 써서 그 차이를 분명히 했다.
③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D단조 BWV903: 이 작품은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이 레퍼토리로 삼고 있 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바흐의 살아 생전에도 이 작품은 사랑을 듬뿍 받았다. 친필본은 없어져 버렸으 나 바흐의 제자들은 모두 이 악보의 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④클라비어 연습곡집 제2부/ 이탈리아 협주곡 F장조 BWV971과 프랑스 서곡 B단조 BWV831: 이탈리 아 협주곡의 특별한 매력이라면 바흐가 요구했던 '포르테'와 '피아노' 사이에 계단식 강약의 대비로 음 이 울린다는 점이다.
⑤클라비어 연습곡집 제3부/ 4개의 듀엣 BWV802-805: 이 역시 숨겨진 보물의 행방을 적은 지도와도 같다 이 작품이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분명히 해석이 난해하고 여러 단락에서 극히 추상적인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4개의 듀엣은 2성 인벤션과 유사한 2성부의 푸가이다.
⑥클라비어 연습곡집 제4부/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988: 1742년에 출판된 이 작품의 원래 명칭은 '30개의 아리아와 변주곡'이었으며 고금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피아노 음악 유산의 하나이다. 하지만 바흐는 이 작품을 쓰기 전까지 변주곡 형식을 하찮게 생각했다고 한다. 후일 베토벤이 디아벨리 변주 곡을 작곡하기 전까지 이에 필적할만한 작품은 나오지 않았다.
⑦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2권 BWV870-893: 24곡의 프렐류드와 푸가로 된 이 작품은 1744년에 나왔 으며 1집과는 달리 작곡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1집이 출판된 지 20년이 지나는 동안 수십편의 프렐류 드와 푸가가 작곡되었고 바흐는 이 곡들을 한데 모아 출판하려고 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이라 는 명칭도 바흐 사후에 붙여진 것이다. 1집과 같은 조성 원칙을 따르기 위해 여러 프렐류드와 푸가에 서 오리지널을 전조시켰다. C#장조 프렐류드가 원본에서는 C장조로 되어 있었고, C#단조 푸가는 C단 조로, A장조 푸가는 F장조로 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렐류드와 푸가의 연관성은 1집만큼 명확 하지 않다.
⑧1대, 2대, 3대, 4대의 클라비어를 위한 협주곡 BWV1052-1065: 1729-36년 사이에 작곡된 이 클라비 어 협주곡들은 원래의 의미로는 클라비어 협주곡이 아니다. 이 작품들에서 클라비어는 독주악기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중 3개를 제 외하고는 오리지널 작곡이 아니고 바흐 자신 및 다른 작곡가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을 편곡한 것이다.
⑨클라비어 연습곡집 제3권 BWV669-689: 1739년에 바흐는 이 연습곡집을 출판하였는데, 그 서문에서 이 곡집이 교리문답가(敎理問答歌)와 기타에 의한 여러 가지 오르간 전주곡으로 되어 있다고 설명하 고, 그것을 그러한 곡의 애호가나 전문가를 위해 썼다고 적고 있다. 내용적으로는 오르간곡집이며, 특 히 루터파 교회에 있어서의 미사의 순서에 일치되도록 곡집이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것을 「독일 오르 간 미사」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는 페달(발건반)을 사용하지 않는 손건반만의 소규모 오르 간 코랄도 있어 그것은 클라비어로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다. 그리고 비록 클라비어로 연주가 가능한 곡이 일부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곡집 전체의 이디엄은 어디까지나 오르간적임을 감안할 때, 어째서 클라비어 연습곡집이라고 이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⑩6개의 코랄 BWV645-650: 이 곡집은 이것을 출판한 슈블러(Sch bler)의 이름을 따서 '슈블러 코랄' 로도 불린다. 다른 오르간 코랄과는 달리 6곡 중 5곡까지(제2곡은 불명)가 칸타타로부터의 전용이다. 그리고 바흐는 이 곡집을 2단의 매뉴얼(건반)과 페달을 가진 오르간으로 연주해야 할 코랄 전주곡집으 로 출판했는데, 높은 품위와 경건한 감정으로 가득차 있다. 출판은 1747경으로 추정된다.
⑪크리스마스의 노래 "높은 하늘에서 나는 왔도다"에 의한 카논 변주곡 BWV769: 2단의 건반과 페달을 가 진 오르간을 위한 5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가지 카논 기법이 무리 없이 구사되고 있다.
⑫18개의 코랄 BWV651-668: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18곡은 모두 바이마르 시대의 작품인데, 곡집으로 출판하기 위해 여기에 가필하고 혹은 수정하여 18개의 코랄로 마무리한 것은 라이프찌히 시대이며, 그 것도 상당히 만년의 일인 듯하다. 그러나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바흐 자신은 보다 많은 곡을 마무리 하려고 하였는데, 결국은 실현되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은 『클라비어 연습곡 집』과 대략 같은 규모, 같은 기법에 의해 씌여져 있으며 동일 곡명(동일 코랄)에 의한 것을 묶어 놓 았을 뿐 곡의 배열에 정해진 순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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