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티모테오 4,12-16 루카 7,36-50
오늘 복음에서 죄 많은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와 참회하며, 눈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청합니다.
이 여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잃어버린 평화와 자유를 되찾아 주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가 예수님께 다가와 향유가 든 옥합을 깨어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는 동안
바리사이는 매우 불편해합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여인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자 바리사이와 식탁에 초대된 사람들의 불평이 터집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용서’입니다.
물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그들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어제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 우리는 ‘고통의 무게는 모두 다르지만, 모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여,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은총을 찾고 하느님과 일치하려고 노력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죄 많은 여인은 주님의 용서를 통하여 평화와 자유를 얻지만,
바리사이와 초대된 사람들은 평화와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나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워지고 평화를 되찾으며 크든 작든 우리의 죄도 하느님께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 원주교구 신우식 토마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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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티모테오 4,12-16 루카 7,36-50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처럼 바리사이 집에서 식사를 초대받아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고을의 죄인인 여자가 와서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고 나서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릅니다.
이런 낯선 풍경에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루카 복음 7장 39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시몬을 불러
오백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과 오십 데나리온 빚을 진 사람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질문하십니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루카 복음 7장 41절-42절)
시몬은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루카 복음 7장 43절)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당신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발을 닦아주고 향유를 발라준 여인에 대해서
죄를 용서받았다고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그들 속에 있던 사람들 중에 몇은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라고 반문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향하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 복음 7장 5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루카는 이 여인이 어떤 여자인지를 침묵하고 다만 ‘죄인’이라고 하지만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서 일곱 마귀를 쫒아주신 마리아 막달레나로 보기도 합니다.
구약은 묵은 포도주에 낡은 부대에 그리고 신약은 새 포도주에 새 부대를 나누어
주님께서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구약에 속한 사람들은 구원의 길을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신약의 사람들은 새 포도주에 새 부대의 새로운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율법실천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실천을 따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의인으로 자처하지만 신약에 속한 제자들을 위시해서
모두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새 부대에 포도주를 담고 마시는 사람은 제자들을 위시해서 다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가 그들에게 내리시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하는 이 여인은 주님으로부터 자신의 죄를 용서 받고 떠납니다.
우리는 신약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구약의 율법은 아니더라도
각자의 원칙과 경험에서 오는 가치관을 가지고 새로운 율법을 가지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맞지도 않는 원칙과 가치관을 마치 어떤 특권의 새로운 율법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자유로우신 분이셨습니다. 율법에 묶여 있는 바리사이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실 그분은 사랑의 율법에 충실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율법에 의해 죄인을 단죄하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럼없이 그 여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시고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묶어 놓지만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며 자유롭게 해주는 것입니다.
/ 원주교구 정인준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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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티모테오 4,12-16 루카 7,36-50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루카 복음 7장 48절)
'참 사목자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은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는 말씀'입니다.
죄 많은 여자가 많은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께 큰 사랑을 드러냅니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갖고 계신 하느님'이시며,
'죄인들의 친구이신 하느님'이시라는 메시지와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께로 나아가 죄를 용서받고,
큰 사랑을 드러내는 신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바오로 서간 중에서 '티모테오1.2서와 티토서'를 '사목서간'이라고 부릅니다.
'사목서간'은 사도 바오로가 어느 지역의 신자 공동체에 보낸 것이 아니라,
티모테오와 티토라는 '한 개인에게 보내 편지'입니다.
'편지의 요지'는 '사목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권고'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사목자는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사랑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십시오.
그대가 받은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그대가 더욱 나아지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십시오."
(1티모테오 1서 4장 12절-15절 중에서)
교회 안에 이런 사목자들이 많아야 하는데..
'어느 수녀님의 외침처럼',
유유자적하는 사목자가 아닌 예수님을 닮으려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땀 흘리는 사목자!
가난한 이들의 친구이시고, 죄인들의 친구이신 예수님을 닮은 사목자!
교회 안에 이런 사목자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사목자들의 참본보기가 되어주신 참사목자이신 예수님을 굳게 믿고,
이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교회 안에 참 사목자가 많아지기를 청합시다!
/ 마산교구 이병우 루카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에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