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먹어야 산다.
그러기에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물음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이 걸린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인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이 말씀은 당신의 살로 육체의 허기를 채우라는 뜻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 의미를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헤아려 보자.
시골에 살던 구두 수선공 세몬은 외투 하나를 아내와 함께 입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외상값만 받으면 새 외투를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마련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외상값을 받으러 시내에 나갔다.
하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하자 울화가 치민 세몬은, 외투를 사려고 준비한 돈으로 술을 마시고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그는 교회 모퉁이에서 벌거벗은 채 쓰러져 있던 한 남자를 만난다.
세몬은 처음에는 지나치려 했지만, 결국 그를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하나뿐인 외투를 입혀 집으로 데려온다.
세몬의 아내는 기가 막혔지만, 곧 측은한 마음이 들어 남편과 나그네에게 따뜻한 음식을 차려 준다.
그 나그네의 이름은 미카엘이었다. 그때 미카엘은 처음으로 미소 짓는다.
미카엘은 세몬에게 구두 만드는 일을 배워 성실하게 일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부자가 매우 값비싼 가죽을 가져와 목이 긴 장화를 주문한다.
그런데 그 부자가 돌아가자마자 미카엘은 장화가 아니라 목이 짧은 장례용 신발을 만든다.
모두가 의아하게 생각하던 중, 한 시간 뒤 부잣집 하인이 와서 장화가 아니라 장례용 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방금 장화를 주문했던 그 부자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 어느 날 한 귀부인이 쌍둥이 소녀를 데리고 신발을 맞추러 온다.
그들을 본 미카엘은 몹시 놀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사실 그는 하느님의 천사였다.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천사 미카엘에게 한 여인의 목숨을 거두어 오라고 명령하셨다.
지상에 내려온 미카엘은 남편 없이 쌍둥이 딸을 낳은 그 여인이 너무도 가련하여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못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미카엘을 땅으로 추방하시며 세 가지 물음의 답을 찾으라고 하셨다.
그 답을 찾아야만 다시 하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첫 번째 물음은 이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땅에 떨어진 미카엘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 세몬에게 발견되었다.
세몬의 집에서 따뜻한 식사를 대접받으며 미카엘은 첫 번째 물음의 답을 발견했다.
그는 세몬과 그의 아내의 마음속에서 ‘사랑’을 보았다.
가난에 찌든 남편,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는 듯한 그 가정 안에도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미카엘은 미소 지었다.
두 번째 물음은 이것이었다.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미카엘은 목이 긴 장화를 주문하는 부자의 등 뒤에 서 있는 죽음의 천사를 보고 그 답을 깨달았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결정적인 것은 자신의 운명을 아는 지혜다.
인간은 언제 죽을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하느님의 두 번째 물음은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하는 질문이었다.
세 번째 물음은 이것이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신발을 맞추러 온 쌍둥이 소녀들은 몇 년 전, 미카엘이 목숨을 거두어야 했던 그 가련한 여인의 딸들이었다.
그 여인은 쌍둥이 딸을 낳은 뒤 죽고 말았지만,
아이들은 이웃의 착한 여인이 거두어 잘 키웠고, 벌써 여섯 살이 되었다.
미카엘이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살리려 했던 그 여인의 딸들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어머니가 없어도 이웃 여인의 따뜻한 사랑을 먹고 살아온 것이다.
그 여인에게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본 미카엘은 마침내 깨닫는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이렇게 미카엘은 세 가지 진리를 깨닫고 하늘로 돌아간다.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이 있다.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운명을 아는 일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 산다. 이 이야기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질문: ‘내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능한 남편,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처럼,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은 인간다움의 표지다.
두 번째 질문: ‘나에게는 무엇이 허락되어 있지 않은가?’
각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 언제 죽을지 모르던 부자처럼
우리 역시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는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생명의 주인이 아니다.
마지막 질문: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것은 삶의 근원에 대한 물음이다. 미카엘은 고아로 남은 아이들을 돌본 여인에게서 살아 계신 하느님을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사람이 자기 일을 걱정하고 애쓰는 힘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사람은 사실 사랑에 의지해 살아간다.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사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당신을 먹고, 당신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이 말씀 안에 성체의 신비와 생명의 이치가 담겨 있다.
누구나 먹어야 산다. 그런데 우리가 먹는 밥은 단순한 음식물이 아니다.
식물은 햇빛과 공기와 물을 먹고산다. 그 안에는 생명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깃들어 있다.
인간과 동물은 식물이나 다른 생명체를 먹고 산다.
그것 역시 모든 생명이 서로 기대어 살도록 마련하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결국 모든 생명체는 사랑을 먹고 산다.
오늘 첫 독서는 이렇게 전한다.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인간은 말씀으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으로 산다.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먹어야 산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젖이 아니다. 어머니의 생명이며 사랑이다.
어른은 밥을 먹고 산다. 그러나 밥도 단순한 음식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농부의 땀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
벼가 자라도록 햇볕을 비추시고 비를 내려 주신 하느님의 은총이 스며 있다.
또한 쌀을 씻고 밥을 지어 식탁에 올린 사람의 수고와 사랑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단순히 한 그릇의 음식이 아니라, 한 그릇의 사랑이다. 생명은 사랑을 먹고 산다.
성경은 말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요한 4,16)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먹고 살 생명의 양식으로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선언하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한 조각의 밀떡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지, 한 잔의 포도주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피가 되는지
우리는 신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설명보다 먼저 분명한 진리가 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먹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자기 안에 간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사람은 이제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없다.
주님께서 주신 생명은 우리도 주님처럼 자신을 밥으로 내어 주도록 이끈다.
삶에 지치고 사랑과 위로에 굶주린 이웃에게 자신을 내어 주어 그 생명을 살리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예수님처럼 생명의 빵이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둘째 독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일이다.
성혈을 마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실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그리스도처럼 사랑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가장 깊은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 이 거룩한 성체 안에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을 만난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주님께 청하자.
‘주님, 저희가 당신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실 때마다, 당신의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저희가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저희도 누군가에게 생명의 빵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