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행전 11,21ㄴ-26; 13,1-3 마태오 10,7-13
주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능력을 주시고
이어서 당부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제자들은 주님께 거저 받은 권한과 능력을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데 거저 사용하여야 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한과 능력의 은사는, 그들이 완수하여야 할 직무적 사명과 긴밀히 연관됩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할 권한, 병자를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은
하느님 나라를 세우고 고통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주는 사명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님께 거저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 저마다 지닌 은사(카리스마)와 재능(달란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며 공동체를 위해서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 은사와 재능은 그 사람의 사명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고유한 하느님의 선물로 서로 봉사하며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웁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주신 모든 선물은 그 자체로 선하고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명이 되지만,
가끔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자신을 높이는 데 그것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선물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그래서 이 모든 선물을 사용하는 데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은사에 생명을 주고 그 은사가 참됨을 증명할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선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1-13 참조).
/ 서울대교구 최정훈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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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행전 11,21ㄴ-26; 13,1-3 마태오 10,7-13
제1독서는 박해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다른 곳으로 흩어진 이들이 하느님 말씀을 전하면서,
많은 이가 주님을 믿게 된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위로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르나바는
제자들이 맨 처음 ‘그리스도인’으로 불린 안티오키아에 파견되어 사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는데,
하느님의 은총이 그들에게 내린 것에 기뻐하며 그들이 주님께 충실하도록 격려합니다.
더욱이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에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의 중요한 다섯 설교 가운데 하나로 ‘파견 설교’라고 불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보내시면서
그들이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며 마귀를 쫓아내도록 명하십니다.
사실 이는 모두 예수님께서 몸소 하신 일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권한과 사명을 열두 사도들이 계속 이어 가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맡겨진 몫이기도 합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서 거저 받은 것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까? 오히려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이룬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과연 자신의 힘만으로 이룬 것은 얼마나 될까요?
곰곰이 따져 보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거저 주어진 선물이며 은총입니다.
거기에는 생명, 시간, 가족이 있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알게 된 믿음이 있습니다.
나아가 그분을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된 사랑과 기쁨, 희망, 구원, 곧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거저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선물에 먼저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하느님께 받은 것을 하느님을 위해서 세상 모든 형제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 나라 구원의 기쁜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
그리고 주위 형제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관심, 위로와 나눔을 전하는 것입니다.
또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주님의 축복과 평화를 빌어 주는 것입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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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사도행전 11,21ㄴ-26; 13,1-3 마태오 10,7-13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를 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가 정녕 위로의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붙잡아 감옥에 가둘 생각으로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바오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사흘 동안 눈이 멀게 됩니다.
그러다가 다마스쿠스에서 하나니아스를 만나 눈을 뜨고 회심하여,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불신과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교회 공동체 안에 머물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을 찾아가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났지만
선교사가 되지 못한 채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가야만 하였습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바오로는 비로소 선교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를 마련해 준 이가 바로 바르나바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모든 신자가 바오로를 두려워할 때 바르나바만이 그를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인도해 줍니다.
또한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에 파견되었을 때 그곳과 가까운 타르수스에 가서 바오로를 만납니다.
그리하여 철저한 외로움 속에 있던 바오로를 이끌고 안티오키아뿐 아니라
소아시아 일대를 함께 다니며 선교 활동을 합니다.
이렇듯 바르나바는 바오로에게 큰 위로와 격려를 건넨 은인과도 같은 사람입니다.
바르나바는 어떻게 ‘위로의 아들’로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성경에는 이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밝힌 본문이 없습니다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아마도 바르나바는 자신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된 것을 두고두고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아무런 대가 없이 바오로에게 다가가 그를 믿어 주고 인도하였을 것입니다.
/ 제주교구 한재호 루카 신부
- ‘오요안 신부의 가톨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