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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때꺼리

남궁민 루카신부님 / 연중 제12주일 가해

작성자whtjd|작성시간26.06.20|조회수20 목록 댓글 0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성경 말씀은 신앙 때문에, 주님을 증언해야 하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과 박해에 관해 이야기한다.

구약의 예언자들로부터 예수님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박해는 신앙고백과 떼어놓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신앙은 언제나 세상의 반대와 맞닥뜨릴 수 있다. 그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을 느낀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두려움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지, 신앙인의 길을 보여준다.

첫 독서에서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두고 이렇게 수군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전해야 했고, 그 결과 조롱과 고발과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었기 때문에 받는 손가락질과 고발 앞에서 더욱 주님께 의탁하였다.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하느님을 찬미한다.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파견하셨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러기에 세상의 비난과 위협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그들에게 닥칠 박해를 미리 알려 주신다.

그리고 세 번이나 거듭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첫 번째 이유는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거짓은 끝까지 진리를 덮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복음을 감추지 말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참된 생명이 인간의 손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예수님은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은 육신을 해칠 수는 있어도, 하느님께 속한 생명을 빼앗을 수 없다.

참된 생명은 세상의 권력이나 인간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께 달려 있다.

세 번째 이유는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 때문이다.

그래서 “참새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라고 이르신다.

하느님께서는 작은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아신다. 하물며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모르실 리 없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다.

세상의 박해와 두려움을 이긴 신앙인들 가운데 한국 순교 성인들을 빼놓을 수 없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명서 베드로 성인은 가난한 옹기장수였고, 결핵을 앓고 있었다.

그가 체포되어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

남겨질 어린 자식들과 생계를 걱정한 아내가 울부짖으며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때 성인은 아내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전해진다.

여보, 울지 마시오. 나약한 내 목숨은 거두어 가실지라도,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당신과 우리 아이들의 참된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것이오.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면 결코 굶기지 않으실 것이니,

낙심하지 말고 훗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집시다.”

성인은 46세에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하였다. 그리고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 되었다.

이명서 베드로 성인의 삶은 오늘 복음 말씀을 그대로 보여 준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는 자식과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 순교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그들을 사랑했기에, 그들의 삶까지 하느님께 맡길 수 있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믿었다.

참새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이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울부짖는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뒤로하고 순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우리는 세상의 칼과 권력 앞에서도 “하느님께서 내 편에 계신다.”는 믿음으로 당당했던 순교자들의 후손이다.

오늘날 우리는 순교자들이 겪은 것과 같은 박해를 직접 겪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혼란, 전쟁, 재난, 질병, 경제적 불안, 인간관계의 상처, 미래에 대한 걱정 속에서 여

전히 두려움을 경험한다. 평범한 일상 안에도 우리 삶을 흔드는 두려움은 수시로 닥친다.

그런데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실존주의 심리학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함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통제하려 할 때 깊은 불안이 시작된다고 본다.

곧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려 할 때 두려움은 더 커진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 앞에서 우리는 불안해진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삶의 참된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곧. 참새 한 마리의 생사까지 아시는 분, 우리 머리카락까지 세어 두신 분께 삶을 맡긴 사람들이다.

세상과 인생의 참된 주인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맡길 때, 두려움을 넘어서고,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다운 자유와 평화가 시작된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마라.” 세상은 우리를 흔들 수 있다. 현실의 어려움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지키시며,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도 순교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삶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기에 주님께 의탁하며, 우리 삶을 지켜 주시는 주님을 찬미하자.

두려움이 다가올 때마다 기억하자.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내 생명의 마지막 권한도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다. 그리고 그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

 

 

[출처] 연중 제12주일 가해 - 두려워하지 말라|작성자 말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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