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 성 바르나바 (Barnabas) ⭐ |
| 축일 | 6월 11일 |
| 활동년도 | +61년경 |
| 신분 | 사도, 순교자 |
| 지역 | |
| 같은 이름 | 바르나바스 |
성 바르나바 (Barnabas)
1) 개요
- 사도, 순교자(+61년경 전승).
- 사도행전이 증언하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사도 11,24).
- 축일: 6월 11일.
- 열두 사도단에는 속하지 않지만 초대교회에서 사도로 공경.
2) 이름과 출신
- 본명: 요셉(레위인, 키프로스 출신).
- 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으로, 공동체가 붙여 줌(사도 4,36-37).
- 회심 후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봉헌하여 가난한 이들을 도움.
3) 안티오키아와 바오로의 동반자
- 회심한 사울(바오로)을 예루살렘 공동체에 소개·중재(사도 9,26-28).
- 박해로 흩어진 신자들로 형성된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방문·격려(사도 11,19-26).
- 타르수스까지 가서 사울을 안티오키아로 데려옴—일 년간 공동 사도직.
- 기근 때 안티오키아의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에 전달(사도 11,27-30).
4) 제1차 선교 여정
- 성령의 파견으로 바오로와 함께 출발, 요한 마르코가 조수로 동행(사도 13,1-5).
- 키프로스(살라미스→파포스) 선교 후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이동—이때 마르코가 귀환.
-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이코니온·리스트라 등지에서 복음 선포, 이방인 선교로 방향 전환(사도 13–14장).
- 박해와 돌 세례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공동체를 세움.
5) 예루살렘 회의와 갈라섬
- 이방인에게 할례 강제 여부 논쟁으로 소집된 예루살렘 회의에 안티오키아 대표로 참석(사도 15장).
- 사도단 결정(할례 강제 않음)을 전하고 공동체에 기쁜 소식 전달.
- 재방문 계획 중 요한 마르코 동행 문제로 바오로와 의견 대립
—바르나바는 마르코와 키프로스로, 바오로는 실라스와 시리아·킬리키아로(사도 15,36-41).
6) 전승과 순교
-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로마에서도 복음 선포.
- 키프로스 교회의 설립자로 공경되며, 살라미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61년경)했다는 전승.
- 488년 제노 황제 때 살라미스 인근에서 무덤이 발견되었고,
가슴 위에 마태오 복음서 사본이 놓여 있었다는 전승.
7) 문헌과 전례
- 「바르나바의 편지」는 그의 저작이 아니라 130–140년경 알렉산드리아 신자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통설.
- 옛 로마 순교록: 6월 11일—키프로스에서의 순교와 유해 발견 전승을 언급.
- 로마 순교록(2004년판): 사도행전 기록에 따른 행적과 키프로스로의 귀환을 언급하나
순교 여부는 비확정으로 처리.
8) 상징과 공경
- 상징: 복음서(특히 마태오 사본 전승), 지팡이, 두루마리, 올리브 가지(위로·화해).
- 수호: 키프로스의 수호성인, 화해와 중재의 모범.
9) 성경 참조
- 사도 4,36-37 / 9,26-28 / 11,19-30 / 13–14장 /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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