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경. 성화로 읽기

그리스도의 체포 (1603) - 카라바조

작성자whtjd|작성시간26.06.12|조회수12 목록 댓글 0

그리스도의 체포 (1603)

카라바조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는 자신의 화풍을 끊임없이 변혁시켜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재편했다.

그는 종교적 주제를 더욱 간결하게 표현했고, 자기가 겪은 신앙적 체험을 그림으로 전달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빛과 어둠, 성과 속, 삶과 죽음, 구원과 심판이 공존한다.

속된 세상은 성스러움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양면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의 양극성도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과 심판의 양면성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빛과 어둠의 양극성도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 세계에서 서로 공존하는 것이다.

카라바조는 공존하는 이중성을 자기 그림 속에 드라마처럼 그렸다.

 

그가 1603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체포>는 자의식이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치리아코 마테이(Ciriaco Mattei) 후작이 주문한 작품이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을 1603년에 완성했고, 주문자로부터 125스쿠디를 받았다.

그 후 이 작품은 더블린의 예수회 수도원에 걸려 있었고,

1990년에야 진품으로 인정되어 지금은 더블린 국립미술관에 영구 임대 형식으로 전시하게 되었다.

이 그림은 마태오복음 26장 47-56절, 마르코복음 14장 43-50절,

루카복음 22장 47-53, 요한복음 18장 1-11절이 그 배경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으로 가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번 거기에 모이셨기 때문에, 그분을 팔아넘길 유다도 그곳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다는 성전 경비병들을 데리고 그리로 갔다. 그들은 등불과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있었다.(요한 18,1-3)

그분을 팔아넘길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으시오.”

하고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다.

그는 곧바로 예수님께 다가가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나서 그분께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마트 14,44-46.30)

 

이 그림에는 일곱 사람이 어둠 속에 등장하고, 배반의 현장 속에 있는 사람들을 각기 다른 표정으로 포착했다.

깍지 낀 이가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볼에 입 맞추는 이가 유다이며,

겁에 질려 달아나는 이가 요한이고, 등불을 들고 있는 이가 바로 카라바조다.

그리고 무장한 성전 경비병 세 명이 있다.

 

유다는 가증스럽게도 예수님을 끌어안으며 입을 들이대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있고, 그의 깊은 눈에는 죽음의 빛이 감돌고 있다.

스승을 배신하는 마음은 편하지 않고, 배신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는 죽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을 <배신하는 유다>가 <의심하는 토마스>와 동일 인물이란 게 흥미롭다.

그는 배신과 의심을 똑같게 본 것이다.

의심이 불신이고, 불신이 그리스도에 대한 배신이며,

의심과 배신은 모두 믿음에 역행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유다는 무장한 군인들과 함께 등장했다.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온 군인들의 검은 갑옷과 투구는 어둠 속에서 더욱 반짝이고 있다.

그중 군인 한 명의 억센 팔이 중앙을 가로질러 그리스도의 멱살을 잡고 있다.

멱살을 잡는다는 것은 숨을 조이는 것이고, 숨을 조이면 꼼짝달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배신당하는 예수님은 수심과 고뇌에 가득 차 있다.

그분은 싫지만,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분은 슬프지만, 거부도 하지 않았다.

그분은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듯 양손을 깍지 낀 채로 의연히 버텼다.

그런데 그분은 붉은색 속옷과 푸른색 겉옷을 입고 있다. 붉은색은 사랑을 상징하고 푸른색은 하늘을 상징한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인내는 제자에 대한 스승의 사랑이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림의 왼편에는 요한이 겁에 질려 혼비백산 달아나고 있다.

그는 자기만 살겠다고 예수님과 등을 돌려 황급히 도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붉은색 겉옷을 펄럭이고 있고, 그 펄럭이는 붉은색 옷자락이 예수님과 유다의 얼굴을 더욱 부각하여,

제자의 배신을 받아들이는 스승의 사랑을 더 절절히 느끼게 한다.

또 배신하는 제자들 사이에 예수님의 얼굴이 있어 그분이 더 애처롭게 보인다.

 

그림의 오른편에는 등불을 치켜들고 이를 지켜보는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서른 살의 카라바조이다.

그는 유다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군사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다루는지,

요한이 지금 어떻게 하는지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고 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어두운 세상, 폭력으로 가득 찬 암흑의 세상에서 등불을 들고 빛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는 배신의 입맞춤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그리스도에게 쏟아지는 신비의 빛에서 구원의 빛을 발견했고,

불량배들과 함께 로마의 밤거리를 배회하면서 배신을 일삼았던 자기도

언젠가는 구원의 빛을 보리라는 희망으로 자기 모습을 그려 넣은 것이다.

 

 

[출처] 그리스도의 체포 (1603) - 카라바조|작성자 말씀과 성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