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카라바조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의 성화를 해석하려면
먼저 일상 속에 교묘히 숨겨져 있는 거룩함의 요소를 찾아내야 하고,
그가 살았던 시대정신을 본질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카라바조 회화에 짙게 드리워진 종교성은
트리엔트 공의회를 주도했던 밀라노대교구의 교구장 카를로 보로메오 추기경과
1592년에 교황으로 즉위한 클레멘스 8세와 연관되어 있다.
교황이 된 클레멘스 8세는 밀라노의 보로메오 추기경이 그랬던 것처럼
로마 거리의 매춘부들을 모두 체포하고, 그리스도교적 도덕성 회복을 선언하는 강경조치를 취했다.
교황은 보로메오 추기경이 밀라노에서 했던 것처럼 로마의 모든 성당에 누드화가 걸려있는 것을 금지시켰고,
로마의 성당들을 사목방문하면서 신앙의 경건함을 해치는 그림을 모두 철거하게 했다.
1592년에 카라바조는 로마로 이주를 했고, 델 몬테 추기경의 경제적 후원에 힘입어 안정된 생활을 했는데,
빛과 어둠의 대조가 두드러진 테네브리즘과 주관적인 사실주의 기법으로
르네상스의 이상주의와 매너리즘의 형식주의 극복하고 이탈리아 화단에 돌풍을 일으켰다.
길거리에 오가는 인물들의 일상적인 표정에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읽었던 카라바조는 종교화를 통해 대변신을 시도하는데,
1593-95년에 그린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 첫 작품이다.
이미 중세시대부터 참회의 상징이었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미지는
16세기 후반에 들어 가톨릭교회의 반종교개혁 분위기 속에서
더욱 엄격하고 숭고한 존재로 부각되면서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카라바조는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카라바조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새로운 이미지로 묘사했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듯 몸을 전체적으로 가린 닫힌 유형으로 그렸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는 곳은 광야가 아니다.
그녀는 밝은 조명이 있는 어두운 방안에 앉아 있다. 방안에는 죽음을 묵상할 해골도 없다.
자신을 성찰하는 거울도 없고, 자신의 내면을 비출 촛불도 없으며,
자신을 다그칠 십자가와 채찍도 없고, 그분의 말씀을 되새길 성경도 없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낮은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참회의 눈물만 흘리고 있다.
참회의 눈물이 그녀의 얼굴과 콧등에 맺혔다. 눌러 참은 흐느낌에 그녀의 어깨가 들썩인다.
그녀는 흰색 블라우스가 어깨까지 내려온 것도 모른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다.
흘러내린 흰색 블라우스는 쾌락을 쫓던 방탕했던 과거의 삶을 암시한다.
길게 늘어트린 그녀의 머리카락과 그녀의 발 옆에 놓여있는 향유가 든 유리병은
그녀가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것을 말해주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금붙이와 진주 목걸이는 세속적인 부와 헛된 사치를 포기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녀는 허리에 붉은색 사랑의 끈을 동여매고 있고, 허리를 구부리고 아랫배를 움켜잡듯 두 손을 모으고 있는데,
이 자세는 오랜 금식을 암시한다.
카라바조는 막달레나의 치마에 꽃무늬 장식과 함께 커다란 성작을 그렸다.
그리고 그 위에 빛바랜 포도주색 가운을 놓았고, 그 위에 그녀의 두 손이 놓여 있으며,
그 위에 참회의 눈물이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그녀가 흘린 참회의 눈물은 그녀의 두 손을 거쳐 주님의 거룩한 성작에 담아지게 된다.
참회하는 눈물의 양만큼 우리는 주님께 용서받는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44.47)
밀폐된 어둠 속에서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만이 빛을 듬뿍 받고 있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트에 넘어간 개종자들에게 참회를 축구하는 가톨릭교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카라바조가 그린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에서는
엄격한 도덕주의와 당시 가톨릭교회의 종교적 분위기를 알 수 있으며,
종교화와 풍속화의 경계를 과감하게 허물어트린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출처]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 - 카라바조|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