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성 요한의 죽음 (1608)
카라바조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의 성화를 해석하려면 그의 삶을 추적해보아야 한다.
그가 1608년에 몰타에서 그린 <세례자 성 요한의 죽음>은 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1606년 5월 28일에 로마에서 살인죄를 저지른 카라바조는 나폴리를 거쳐
1607년 7월 초에 몰타(Malta)로 도피했다.
그가 나폴리에서의 보장된 성공과 안전을 포기하고 몰타로 이주했던 이유는
기사 작위를 통한 사면의 가능성 때문이었다.
카라바조는 파사지오(Passaggio)라는 관례에 따라
성 요한 기사단에 그림을 헌정하여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싶었을 것이고,
몰타의 대영주와 귀족들은 카라바조의 어두운 과거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사면의 특혜를 주어 카라바조의 그림을 얻고자 했을 것이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삶을 용서받고 새롭게 살겠다는 각오로 <세례자 성 요한의 죽음>에 피의 서명을 했다.
카라바조는 세례자 요한의 잘린 목 밑으로 흥건히 고인 붉은 피를 찍어 ‘f. michel'이라고 서명을 남겼다.
이것은 ‘Frater of Michelangelo'의 약자로 보이는데,
이는 카라바조가 성 요한 기사가 되면서 진심으로 자신의 과오를 씻어버리고,
새롭게 살겠다는 각오를 이름으로 새겨 넣은 것으로 보인다.
<세례자 성 요한의 죽음>은 마태오복음 14장 3-12절과 마르코복음 6장 17-29절이 그 배경이지만,
몰타에서 1565년에 벌어진 대전투(The Great Siege of Malta)에서
장렬하게 목숨을 잃은 120명의 성 요한 기사단 소속 기사들의 영웅적인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작품이다.
그들은 이교도의 침공을 막다가 작렬하게 전사했고,
그들의 시신은 수습되어 <세례자 성 요한의 죽음>이 그려진 산 조반니 대성당에 안치되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하게 <세례자 성 요한의 죽음>에 대한 전통적인 표현을 과감하게 탈피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 장면을 어두운 몰타 감옥에서 벌어진 참혹한 살인 장면으로 그려내고 있다.
카라바조는 다른 그림에서는 표현하지 않은 몰타의 성벽과 대문을 배경으로 그려 넣었다.
또 성벽 오른쪽에는 감옥에 갇혀있는 두 명의 죄수들을 그려 넣어
창살 밖에서 자행되는 끔찍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했다.
중앙 땅바닥에는 두 팔이 뒤로 결박된 채 저항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목이 잘린 채 죽어가고 있는 세례자 요한이 있다.
그의 몸을 가로지르는 붉은색 겉옷은 순교를 상징하듯이
세례자 요한의 붉은 선혈과 함께 상체와 하체를 갈라놓고 있다.
또 세례자 요한이 깔고 엎드린 양털 가죽은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희생되는 무죄한 이의 죽음을 암시한다.
사형집행인은 세례자 요한의 머리채를 잡고 목을 자르기 위해 뒷짐에서 칼을 꺼내고 있다.
그런데 이미 세례자 요한의 목은 잘려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형하는 사람의 단검이나 땅바닥에 놓인 칼에는 피가 묻어있지 않다.
무죄한 이의 죽음 앞에서 나는 죽이지 않았다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심리를 반영한 것이다.
상상만 해도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허리춤에 감옥 열쇠를 차고 있는 간수는 오른쪽 손가락으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잘라 쟁반에 올려놓으라고 지시하고 있고,
나이 많은 여인은 끔찍한 살인 현장을 목격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경악하고 있다.
그 여인은 누구일까?
하녀일까, 아니면 세례자 요한의 노모 엘리사벳일까?
만일 자식의 무죄한 처형을 목격하는 어머니라면 그 심정은 어떨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젊은 여인은 허리를 굽혀 금빛 쟁반을 내리고 있다.
그 여인은 누구일까?
하녀일까, 아니면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일까?
만일 살로메라면 그녀는 왜 무죄한 이의 죽음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쳤을까?
상상만 해도 어리석게 느껴진다.
[출처] 세례자 요한의 죽음 (1608) - 카라바조|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