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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총화' 전문 (한자 풀이 및 해설 포함)

작성자한국인|작성시간13.07.09|조회수1,550 목록 댓글 1

신교총화(神敎總話) 전문

 

신교는 선천(봄)개벽 인류문명의 뿌리인 한민족의 9천년 역사(환국 배달국 단군조선)로부터 내려오던 상제님의 가르침입니다. 유교 불교 도교는 신교의 운수가 다하던 3천년 전부터 갈려져 나간 세 갈래의 가르침입니다.

 

신교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신교의 가르침이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분열이 있으면 다시 통일이 되는 건 천지의 법칙입니다. 신교의 맥은 조선시대말 상제님께 천강을 직접받은 최수운의 동학으로 이 땅에 다시 나타나게 되고, 이후 증산도로 완전히 갱생됩니다.

 

신교총화는 태고시대의 신교에서부터 중국의 역대 왕조는 물론이고 조선 세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신선이 된 자하선생과 그의 제자 팔공진인의 말씀이 1,2부로 나누어져 있어서 내용이 길지만 중요한 내용이 너무도 많습니다. 글자 그대로 신교를 총망라한 대화(총화)입니다. 프린터로 뽑아서 읽으셔도 되고, [환단고기. 안경전 역주]와 같이 읽으시면 큰 배움이 있을 것입니다.

 


 

1부. 자하선생 훈몽(紫霞先生 訓蒙)

 

(1) 자하선생의 소개

 

先生 姓李 名槹 字德和 號紫霞 廣東人 黙然后

선생 성이 명고 자덕화 호자하 광동인 묵연후

生于太白山下九花洞 今年五百四十三歲(壬子王 癸巳年)

생우태백산하구화동 금년오백사십삼세(임자왕 계사년)

與洞賓 恒遊于伽倻 遯人所

여동빈 항유우가야 둔인소

 

스승의 성은 이(李)씨이시고, 이름은 고(橰)이며, 자는 덕화(德和)이며, 호가 자하(紫霞)이시고, 광동(廣東)사람이다. 묵연(黙然)의 후손으로 태백산 아래 구화동에서 태어나셔서 올해(단기 4226, 고종황제 30 癸巳) 543세이시다. 여동빈(呂洞賓)①과 함께 가야산에서 은거하여 노닐고 계신다.

 

※ ① 여동빈(呂洞賓)∶798∼? 당(唐)나라 말기의 도사(道士). 당나라 때 8선(八仙) 가운데 한 사람. 성은 여(呂), 이름은 암(嵒), 자는 동빈(洞賓), 호는 순양자(純陽子)이며, 포주(蒲州) 영락현(永樂縣) 사람으로 자칭 회도인(回道人)이라 불렀다. 측천무후 집권시 두 번이나 과거에 실패하고 46세가 되던 해 다시 과거보러 가다가 술집에서 종리권(鍾離權)을 만나 황량(黃粱)의 꿈을 꾸고 선도(仙道)에 입문하였다. 거화산(居華山)에서 40여년간 수도한 뒤에야 비로소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종남산(終南山)에서 수도를 마친 뒤 유해섬(劉海蟾)과 왕중양(王重陽)을 거두어 법(法)을 전하고 무창(武昌) 황학루(黃鶴樓)에 올라 백일승천(白日昇天)하였다고 한다.

전진도(全眞道)에서는 북오조(北五祖)의 하나로 받든다. 저술로는 백자비(百字碑) 심원춘(沁園春) 고효가(敲爻歌) 생생신수(生生神數) 황학부(黃鶴賦)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를 짓고 도덕경(道德經) 황정내‧외경경(黃庭內外景經) 대동경(大洞經) 등을 주(註)를 달았다. 송(宋)나라 때에 묘통진인(妙通眞人) 원(元)나라 때에 순양연정경화부우제군(純陽演政警化孚佑帝君)에 봉해졌고 그의 탄신일인 음력 4월 14일에는 지금도 기념 재초(齋醮)를 행한다. 여조전서(呂祖全書) 구진상서(九眞上書) 부우상제문집(孚佑上帝文集) 여조진경(呂祖眞經) 동원어록부동원잡영(東園語錄附東園雜詠) 순양비결(純陽秘訣) 팔선(八仙)이 지은 천선금단심법(天仙金丹心法)과 고상옥황심인묘경(高上玉皇心印妙經)이 있다.

 

(2) 동이족(東夷族)의 동서양 통일

 

先生曰 神市天王 造化能力廣大 將爲震兌統一

선생왈 신시천왕 조화능력광대 장위진태통일

自在理數中

자재이수중

 

선생께서 말씀하기를 “신시(배달국)의 천왕(환웅)의 조화의 능력이 넓고 커서 동양과 서양을 장차 통일할 것이니, 리(理)와 수(數) 가운데 있다.

 

(3) 신교(神敎)의 근원과 근본으로의 회귀 필요

 

曰 神敎之爲衆 敎之爲祖 爲母之理 不待呶呶而 略知神道理

왈 신교지위중 교지위조 위모지리 불대노노이 약지신도리

哲之學者 可旣然 流來中葉 人情多私 妄本源而 自主自尊者

철지학자 가기연 유래중엽 인정다사 망본원이 자주자존자

滔滔然 皆是不啻 不究神市敎之本源 如何也.

도도연 개시불시 불구신시교지본원 여하야

 

선생이 말씀하시기를 “신교(神敎)는 모든 종교의 비조(鼻祖)가 되며 모체가 되는 진리이니 여러 말 하지 않아도 대략 알 것이다. 그러나 신교의 도리란 명확한 것을 배우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며,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이다. 신시(神市)가 세상에 비롯된 그때부터 그것의 마지막 지점의 중간이 시점이 되면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던 감성이나 개별적 성정의 근본을 망각하고, 스스로 임금이라 칭하여 제 몸을 제가 높이는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다. 더구나 이처럼 신시가 가르치는 바의 근본을 잊고 연구도 게을리 하고 있으니 어찌할 것인가?”

 

亦自失其源 頭始派 豈不慨然 悲惜處乎

역자실기원 두시파 기불개연 비석처호

 

또한 환인(桓因)으로부터 비롯된 그 근본을 망각하고 어찌 격분하여 몹시 격하게 화내고 분하게 여기어 한탄하고 있으니 어찌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以道敎言之 老子之初生而 自指李(東方木也)

이도교언지 노자지초생이 자지이(동방목야)

李字木子之意 非東方

이자목자지의 비동방

 

도교(道敎)로 말씀하면 노자(老子)가 처음 태어나서 스스로 성을 오얏(李)이라고 하였는데 (동쪽의 나무이다. ) ‘오얏 이(李)’ 글자가 ‘동방의 아들’이란 뜻이며 동쪽의 지방이 아니다.

 

而何以釋迦言之其所 耐苦六年而悟道 不過是尊吾

이하이석가언지기소 내고육년이오도 불과시존오

帝釋之無窮 無窮無無窮 神理之覺圓得如如而來

제석지무궁 무궁무무궁 신리지각원득여여이래

如如而歸之 惺惺一靈 同歸神化

여여리귀지 성성일령 동귀신화

 

석가로 말씀하면 그가 괴롭게 애쓰고 수고를 견디기를 6년 하여 겨우 진리를 깨달은 것은 이래서 이 세상에 ‘내가 가장 높다’하였고 거룩하신 우리 상제님(帝釋=桓因)의 무궁무궁한 신의 이치를 깨달아 모난 데가 없이 둥글둥글하고 복스러워 결점이나 결함이 없음을 여여(如如)히 돌아와 다시 성성(惺惺∶똑똑한 모양)한 하나의 영(靈)이 되어 돌아와 신(神)이 된다.

 

故 平生所工 只此尊天命 務慈悲而已

고 평생소공 지차존천명 무자비이이

(現世僧之口呼喃無佛不過 佛者費乃是神也而已).

(현세승지구호남무불불과 불자비내시신야이이).

 

그러므로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공부하는 것은 다만 이 타고난 수명을 높고 귀하게 하여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어 괴로움을 없애려는 맘이 더 없이 지극함에 힘쓸 뿐이다. <이 세상에 중들은 입으로 부르짖기를 남무불(喃無佛)을 부르는데 지나지 않으니 부처란 이 신(神)을 없앨 뿐이다>.

 

後來僧侶 昧此之理 反釋迦之所慕之神市

후래승려 매차지리 반석가지소모지신시

只知釋迦是佛之先至 設偶像而浪禱不修之福 以失大乘

지지석가시불지선지 설우상이낭도불수지복 이실대승

(自小乘至 大乘之理) 旣不悲哉

자소승지 대승지리 기불비재

 

후세의 승려들은 어두운 이 이치로 석가(釋迦)를 돌이키는 곳에 신시(神市)를 사모할 것이다. 다만 석가가 부처의 처음인 줄로 알아 우상을 아무런 실속없이 빌어 복을 닦지 않으므로써 대승(大乘)①을 잃었으니 ,<소승(小乘)에서부터 대승(大乘)의 이치에 다다름>어찌 슬프지 않는가?

 

※ ① 대승(大乘)∶소승(小乘)의 자리주의(自利主義)를 비판하여 1∼2세기에 일어난 불교 교법의 하나.

 

以孔子敎說之 孔子一生所重 順天命敬天道

이공자교설지 공자일생소중 순천명경천도

以尊上帝之意 世之尊孔子者 尤不知神市天王之神敎

이존상제지의 세지존공자자 우부지신시천왕지신교

只主形而下之道器

지주형이하지도기

 

공자(孔子)①의 가르침으로 말하면 공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은 매우 귀중히 한 것은 천명을 따르고 천도를 공경하여 이러므로써 상제(上帝)②의 뜻을 존경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에서 공자를 높이는 사람들은 더욱 신시천왕(神市天王)의 신교(神敎)를 알지 못하고 다만 형체를 주장하니 도기(道器)③가 아랫 등급이다.

 

※ ① 공자(孔子)∶서기전 551∼서기전 479.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 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창평향(지금 산동성 곡부) 사람이다. 3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교도(敎導)를 받으며 자랐는데 어려서부터 예(禮)를 학습하기를 좋아하였다. 17세에 어머니를 잃고 혼자 생계를 꾸리면서도 부지런히 학문과 예를 익혔다. 20대에 널리 묻고 배웠으며 [노자(老子)에게 예를 물었다는 설도 있다] 30대에는 이미 그의 주요 사상이 형성되었고 제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50대 초반까지 노나라의 벼슬을 하다가 실망스러운 일이 생겨서 노나라를 떠나 14년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게 된다. 68세에 계강자(季康子)의 힘을 입어 노나라에 돌아 왔으나 노나라에서 끝내 그의 정치 사상을 써주지 않았으므로 다시는 벼슬할 생각이 없어지고 오로지 고적 문헌을 정리하고 제자를 모아 가르쳐서 나라를 다스릴 현재(賢才)들을 길러냈다. 73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仁)이고 그 것을 표현시킨 것이 예(禮)이다.

그는 제자들에게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역(易) 춘추(春秋)를 교재로 하여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를 가르쳤다. 그는 시(詩)를 정리하여 간추리고 서(書)를 정리 편찬하면서 해설하고 예(禮)와 악(樂)도 정리하였으며 말년에는 역(易)을 정리하면서 이른바 「십익(十翼)」을 보태었고 춘추(春秋)를 지었다. 그의 학문과 사상과 가르침은 이른바 유학으로 정립되어서 오늘날까지 중국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의 전통문화를 이루고 있다. 그의 언행(言行)을 제자들이 적어 놓은 논어는 우리의 최대 고전의 하나이다.

※ ② 상제(上帝)∶하느님. 옥황상제.

※ ③ 도기(道器)∶형이상의 본체인 이(理)와 형이하의 현상인 기(氣). 곧 이기(理氣). 도를 닦는 기량(器量).

 

說心說性 以作眞理 竟歸不知本之境 何不蕙歎處乎

설심설성 이작진리 경귀부지본지경 하불혜탄처호

(按儒字之形論之則 需於人之義)

안유자지형론지즉 수어인지의

 

맘을 말하고 성품을 설명하여 이것으로써 진리라고 하며 마침내 근본을 알지 못하는 데로 돌아가니 어찌 탄식할 노릇이 아닌가? <생각컨대 ‘선비 유(儒)’ 글자의 모양을 논하면 ‘사람을 기다린다(人+需)의 뜻이다.>

 

以耶蘇談焉 耶蘇不過是受 上帝之命 降于猶大亡國之際

이야소담언 야소불과시수 상제지명 강우유대망국지제

(是亦 震東支派 地方內) 以說明上帝之道

(시역 진동지파 지방내) 이설명상제지도

自東俎西而鼓動平等之說 以警一世 亦不過是上帝

자동조서이고동평등지설 이경일세 역불과시상제

(桓因十人一日一環圍一大也)之一命者而已

(환인십인일일일환위일대야)지일명자이이

其後信徒反以耶蘇 妄稱上帝 亦可戒其失道理也

기후신도반이야소 망칭상제 역가계기실도리야

尤有痛歎矣 外此各各浮浪輩之忘本 而無倫喧豗之說 何足道

우유통탄의 외차각각부랑배지망본 이무윤훤회지설 하족도

 

야소[耶蘇 :예수]①로 말씀하면, 예수 역시 상제의 명을 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왕국이 망할 즈음에 태어나서① <이것 또한 진(震)나라 동쪽에서 갈라 나온 파(派)>상제(上帝)의 도(道)를 설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가서 평등의 설을 부추겨서 용기가 생기게 하여 한 세상을 경계하였으니, 이것이 상제(上帝)② <환인(桓因)은 신인(神人)의 하나로 하루에 한 번씩 돌으니 가장 큰 하나이다> 의 한 가지 명(命)을 받은 자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 뒤 믿는 무리들이 역으로써 예수를 망녕되게 하느님(上帝)이라고 일컫는데 또한 그 도리를 잃은 것을 가히 경계한다. 더욱 몹시 탄식함이 있다. 이 밖에 제각기 부랑자의 무리이니 근본을 잃고 윤리가 없이 시끄럽고 떠들썩한 설이니 어찌 도(道)에 족(足)하랴?

 

※ ① 예수(jesus)∶[4?B.C.~A.D.30]기독교(그리스도)의 개조(開祖). [그리스도의 어원(語源)은 성유(聖油)를 머리에 부음받은 자]로, 곧 구세주(救世主)․왕(王)이란 뜻. 유대왕 헤롯 시대에 목수 요셉의 약혼녀 마리아에 성령(聖靈)으로 잉태되어, 북팔레스티나 베들레헴에서 출생.나사렛에서 살다가 30세 때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洗禮)를 받고, 40일간 광야(廣野)에서 기도(祈禱) 후 하늘 나라의 내림(來臨)과 유대 민족의 회개(悔改), 사해(四海) 동포주의, 정의․사랑의 생활에 의한 하느님의 은총(恩寵)을 절규(絶叫)하고 많은 이적(異蹟)을 행하였음. 공생애(公生涯)의 3년만에 바리새 교인들과 충돌하여 유다의 배반으로 십자가에못박혀 죽음. 3일 만에 부활(復活)하여, 40일간 제자들과 있다가 승천(昇天)하였다 함. 자신의 죽음이 만인(萬人)을 위한 속죄(贖罪)의 희생임을 자각(自覺)했고 그의 제자들은 예수의 부활을 확신하고 이를 구주(救主)로 섬겼으며,이로부터 기독교가 생겼음. 야소(耶蘇). 기독(基督). 상주(賞主).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메시아. 예수와 석가와 공자를 3대성인의 한사람.

※ 유대왕국이 망할 즈음에 태어나서∶이것 역시 진(震)인 동이족(東夷族)의 지파(支派)의 지방 안에 있음.

※ 상제(上帝)∶하느님. 『정역(正易)』의 십십일일지공(十十一一之空), 불교(佛敎)에서 진공묘유(眞空妙有)임. 무극(無極).

 

(4) 신교(神敎)가 넓고 큼

 

曰 道之行於世 不過是 老之遁數延命 迦之抱元含神

왈 도지행어세 불과시 노지둔수연명 가지포원함신

儒之陳紀明倫而已 皆不能違於神敎 涵泓廣大

유지진기명륜이이 개불능위어신교 함홍광대

 

말씀하시기를

“도가 세상 행해짐은 이것은 노자①의 수를 감추어 겨우 목숨을 이으며 살아 나감(遁數延命)과 석가②의 원신(元神)③을 껴안고 머금음(抱元含神)과 유교의 벼리를 펼치고 윤리를 밝히는 것(陳紀明倫)에 지나지 않을 뿐(따름)이다. 물 깊음에 잠기는 것과 같이 넓고 큰 신교를 모두 어길 수가 없다.”

 

※ 遁∶달아날 둔. 涵∶젖을 함. 泓∶물깊을 홍.

※ ① 노자(老子)∶춘추시대 사상가로서 도가학파의 창시인이며, 성은 리(李), 명은 이(耳), 자는 백양(伯陽), 시호는 담(聃). 초(楚)나라 고현(苦縣) 곡인리사람. 주(周) 장실(藏室)의 사관(史官)으로 있다가 사직한 뒤 함곡관(函谷關) 관령(關令)인 윤희(尹喜)의 요청한바 있어 도덕경(道德經) 오천마디 말씀을 남기고 떠난 뒤 자취와 흔적을 알 길이 없다. 상(商) 무정(武丁) 원년(丁巳, 기원전 1265) 음력 3월 15일 탄생. 삼청(三淸)의 하나인 태청궁(太淸宮)의 주인이신 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이시며 태상노군(太上老君)이시다.

※ ② 석가(釋迦)∶불교의 교조(敎祖) 존칭하여 세존(世尊) 또는 석존(釋尊)이라 하며 불(佛) 여래(如來) 등의 10가지 별호가 있고 「석가」라는 말은 종족의 이름이며 「능인(能仁)」이라 번역한다. 중부 인도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가비라성의 성주 정반왕의 왕자로 아명(兒名)은 싯다르타이며 어머니는 마하마야 왕비이다. B.C.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 아래서 탄생. 29세에 생사해탈(生死解脫)의 법을 구하여 출가. 35세에 정각(正覺)을 얻어 부처가 되었다. 갠지스강 가의 녹야원(鹿野苑)에서 4체(諦∶苦集滅道)‧12인연[十二因緣∶중생의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친 생사‧윤회의 인과관계를 12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 곧 무명(无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입(六入)‧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8정도[正道∶불교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의 여덟 가지 성도(聖道). 곧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등의 법을 가르치고 이후 45년간 인도 각지에 법을 선포. B.C.544년 2월 15일 80세로 구시나라(拘尸那羅)의 사라 쌍수 숲속에서 열반(涅槃)하였다.

※ ③ 원신(元神)∶무상무념(無想無念)하여 허(虛)의 극(極)에 이르러 고요함이 돈독히 지킬 때 홀연히 느끼고 깨닫는 진의로서 이 뜻(意)이 하늘과 땅과 만물을 낳고 만들지 않는 것이 없고 변화시키지 않는 바가 없으며 만겁(萬劫)에도 부서지지 않는다. 이 신(神)이 맘에 있어 억지로 이름 짓는 까닭으로 「성(性)」이라 하며 그 것이 흩어지면 기(氣)를 이루고 그 것이 모이면 불[火]을 이룬다. 한 번 오르고 한 번 내려오고 오고감이 순환하여 둘러 흐름이 쉬지 않으며 때와 함께 운행하고 때와 더불어 극(極)과 같이 한다.

 

(5) 모든 것은 충효(忠孝)가 근본이다

 

先生曰 生而守忠孝 死亦爲忠孝神 今世俗 平日不修道德

선생왈 생이수충효 사역위충효신 금세속 평일불수도덕

而死以欲爲靈神 空禱山川 且至於禱 人作之石人

이사이욕위영신 공도산천 차지어도 인작지석인

土木之偶 稱佛有靈 亦可怪也

토목지우 칭불유령 역가괴야

 

※ 禱∶빌 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서 충성과 효도를 지키면 죽어서 또한 충효의 신(神)이 된다. 요즘 세상에 흔히 있는 풍속은 평상시에 도덕을 닦지도 않으면서 죽어서는 영신(靈神)이 되기를 바라며 헛되이 산과 내에 빌고 또 비는 데 까지 이른다. 사람이 돌사람[石人]을 만들고 흙과 나무로 만든 상(像)을 일컬어 ‘부처’라 하고 영(靈)이 있다 하니 또한 가히 괴이하다.”

 

(6) 속이지도 말고 속지도 말아라. (수도자의 근본태도)

 

曰 近日所謂修道者 往往欲取人財物

왈 근일소위수도자 왕왕욕취인재물

曰 禱佛則 換禍轉福之談 鼓動一世

왈 도불즉 환화전복지담 고동일세

愚夫愚婦 不知理說之誤 欺人者之罪 難逃天誅

우부우부 부지이설지오 기인자지죄 난도천주

被欺者 亦不無其責

피기자 역불무기책

 

말씀하시되 “요즈음 이른바 도(道)를 닦는 사람이 이따금 다른 사람의 재물을 취하기 위해 ‘부처에게 기도하면 화가 복으로 바뀐다’ 하는 잘못 이끌음이 한 세상을 부추겨서 용기가 생기게 하고 있다. 어리석은 남자와 어리석은 여자는 이를 알지 못하니 사람을 속인 사람도 하늘이 죄인을 죽이는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요. 속임수를 당하는 사람도 또한 그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니라.”

 

(7) 마귀가 하늘의 이치를 혼란시킴, 신성(神聖)한 도(道)가 서기 2015년에 회복

 

先生曰 從今以後 世路尤險 千私萬魔 以亂天理矣

선생왈 종금이후 세로우험 천사만마 이난천리의

汝輩愼之 神聖之道 必復於七丁兩丙 三回之年 五歸之月

여배신지 신성지도 필복어칠정양병 삼회지년 오귀지월

 

선생(자하진인)이 말씀하시되 “이제부터 이 다음은 세상길이 더욱 험해 온갖 사사로움과 마귀가 하늘의 이치를 어지럽히리니 너희들은 삼가하라. 신성(神聖)의 도는 반드시 칠정양병 삼회지년 오귀의 달에 회복될 것이다.”

 

(8)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외우라

 

先生曰 靈神誥五節 神君所誦 (不可一日休)

선생왈 영신고오절 신군소송 (불가일일휴)

 

※ 誥∶깨우쳐 고할 고..

 

선생(자하진인)이 말씀하시기를 “신령스런 신고(神誥∶삼일신고)의 다섯 대목을 신군(神君)께서 외우는 바이다(하루라도 쉬면 옳지 않다.)”

 

(9) 우리나라의 중흥

 

先生曰 今世之人 只知佛是佛 而不解神市之眞市

선생왈 금세지인 지지불시불 이불해신시지진시

眞理將明於天下 長男運更壯而 小女從之理

진리장명어천하 장남운갱장이 소녀종지리

自然的後世必有垣姓 妄欲崇佛 同歸麗鑑

자연적후세필유원성 망욕숭불 동귀려감

 

※ 垣∶낮은 담 원, 별이름 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의 사람들은 다만 부처만 아는 것이 불교이며 신시(神市)의 진시(眞市)를 헤아리지 않으나 진리(眞理)가 장차 온누리에 밝혀지리라. 동방 한국(震∶長男)의 운이 다시 왕성하게 되며 서방 미국(兌∶少女)이 이를 순종(順從)하게 되는 이치이며 자연적으로 다가오는 세상에는 반드시 원(垣) 성씨도 있게 되고 망녕되이 부처를 높이고 함께 고려(高麗)를 거울삼아 돌아가려 할 것이다.”

 

(10) 하늘에서 선택된 민족

 

先生曰 萬川有源 衆木始本 通萬古大理 故惟我桓祖(雄)

선생왈 만천유원 중목시본 통만고대리 고유아환조(웅)

主震男之理 以木德王 是謂天受命爲皇 皇氏也

주진남지리 이목덕왕 시위천수명위황 황씨야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내(川)는 근원인 샘이 있고 모든 나무는 시작한 뿌리가 있으니 영구히 큰 원리를 통함이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 환조(환웅)께서 진장남(震長男)의 주인이 되는 이치이며 목덕(木德)으로써 왕(王)이 되니 이는 ‘하늘의 명을 받아서 천황이 되었다’고 말하니 천황씨(天皇氏)이니라.”

 

※ 진장남은 복희씨의 선천팔괘도에선 동북이 되고, 문왕후천팔괘도에선 정동이 되고, 김일부선생님의 정역팔괘도에서는 서북이 되며, 일양(一陽)이 이음(二陰)을 뚫고 나가는 상이다. 자연에 있어서는 우뢰를 나타내고, 인간에 있어서는 맏아들을 나타낸다. 신체에 있어서는 발을 나타내고, 동물에 있어서는 용을 나타내고, 성질에 있어서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오행에 있어서는 양목(陽木)을 나타낸다.

 

(11) 사람의 영(靈)은 모든 이치를 통함

 

曰 太陽之明 到中照四方 人物之靈 亘壯通萬理

왈 태양지명 도중조사방 인물지령 긍장통만리

故人生百年普通 而五十知天命

고인생백년보통 이오십지천명

 

말씀하시되 “태양의 밝음은 가운데 이르러 온누리를 비추고 사람의 신령함은 장년(壯年)에 이르러 모든 이치를 통한다. 그러므로 인생은 백년이 보통이며 50세에 천명(天命)을 안다.”

 

※ 亘∶베풀 선.

※ 천명(天命)∶하늘의 명령. 운명. 천수(天數). 타고난 수명. 천수(天壽).

 

(12) 도(道)를 닦음은 맘을 바르게 함에 있다.

 

曰 人之修道不在他 只做底一個正字心 神必靈 神必佑

왈 인지수도불재타 지주저일개정자심 신필영 신필우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도를 닦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고 다만 한 개의 맘(心)을 바르게 짓는 것이다. 신(神)은 반드시 영(靈)이며 신(神)이 반드시 돕는다.”

 

※ 做∶지을 주.

 

(13) 헌원황제께서도 신교의 도(道)를 닦음

 

先生曰 昔黃帝 受西岬王母 大丹珠以後 得陰符三皇玉訣

선생왈 석황제 수서갑왕모 대단주이후 득음부삼황옥결

修而通神敎之道

수이통신교지도

 

※ 岬∶산허리 갑.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황제(黃帝)①가 서갑왕모(西岬王母)②로부터 대단주(大丹珠)를 받은 이후에 음부삼황옥결(陰符三皇玉訣)③을 얻어 신교(神敎)의 도(道)를 닦아 통하였느니라.”

 

※ ① 황제(黃帝)∶기원전 2692∼2592년의 인물. 중국 선사시대의 제왕. 소전씨(少典氏)의 아들로 본성(本姓)은 공손(公孫)이며 희수(姬水)에 살았던 까닭으로 또한 희(姬)씨로 성을 고쳤고 태어나기를 헌원(軒轅)의 언덕에서 태어났으므로 인하여 이름이 헌원이며 54제(帝)의 한 사람. 헌원국(軒轅國)에 곰이 있으므로 인하여 유웅씨(有熊氏)라 한다. 15세에 왕위를 계승하여 훌륭한 치적을 쌓았고 염제(炎帝)의 뒤를 이어 천하를 통일하려는 마음을 품었다. 배달국 치우(蚩尤)천황과 탁록(琢鹿)에서 전쟁하였으나 패하여 신하가 되었다. 배달국 삼청궁의 자부선생에게 도를 배우고 창힐(蒼詰)에게 명하여 처음으로 육서(六書)를 만들었고 진법(陣法)을 제정했으며 율려(律呂)를 정하고 의복(衣服)‧주거(舟車)‧가옥(家屋)‧화폐(貨幣)‧궁시(弓矢)를 처음 만들었다고 전하고 명의(名醫)인 기백(岐伯)과의 문답을 통해서 황제소문(黃帝素問)을 지었고 약초를 시용(試用)하여 의술을 창시한 일 등 인류에게 문화생활을 가져다 준 왕으로 숭앙되었다. 뒤에 토덕(土德)이 있어서 왕을 했다고 해서 누룰 황(黃)자를 넣어서 황제(黃帝)라고 부른다.

 

명산을 돌아다니며 무광자(務光子) 용성공(容成公) 광성자(廣成子) 등 신선을 찾아서 신선되는 길을 묻고 왕옥산(王屋山)에서 구정신단(九鼎神丹)을 불렀다. 그것이 성공하자 왕위를 버리고 배달구 청구산(靑丘山)으로 들어가서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뵙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고 또 청성산(靑城山)에서는 중황장인(中黃丈人)으로부터 ‘신선진일지법(神仙眞一之法)’을 비밀리에 전수받고 다시 운태산(雲台山)에 올라 영선생(寧先生)을 뵙고 용교선경(龍蹻仙經)을 받는다. 드디어 수산(首山)의 구리를 캐어 가지고 형산(荊山)에서 보정(寶鼎)을 완성하니 하늘에서 용이 내려오므로 타고 올라가 신선으로 되었다. 한대(漢代) 이후 신선술(神仙術)과 도교의 개조(開祖)로서 숭배된다. 양(梁)나라 도홍경(陶弘景)이 쓴 진령위업도(眞靈位業圖)에서 신선들의 자리를 매겼는데 원포진인헌원황제(元圃眞人軒轅黃帝)는 제3신 계열의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도장(道藏)에 음부경삼황옥결(陰符經三皇玉訣)과 황제구정신단경(黃帝九鼎神丹經이 실려 있다.

 

※ ② 서갑왕모(西岬王母)∶서왕모로 일컬으며, 성은 회(糸灰), 구 휘(諱)는 회(回), 자는 완령(婉姈) 또는 태허(太虛). 별호는 금모(金母) 금모원군(金母元君) 요지금모(瑤池金母) 귀대금모(龜臺金母)라 한다. 신주(神州)에서 태어났다. 동왕부(東王父)가 남자 신선의 최고의 자리에 있는 것과 상대적으로 서왕모는 여자의 선도(仙道)를 얻은 우두머리인 것이다. 득도를 하거나 신선이 된 여인들은 모두 서왕모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곤륜산(崑崙山)의 채마전과 랑풍(閬風)의 동산과 금으로 된 성과 옥으로 된 다락인 경화(瓊華)의 대궐 안에 푸른 빛이 나는 집에 살며 왼쪽에는 요지(瑤池)라는 못이 있고 오른쪽에는 취수(翠水)라는 개울이 흐른다. 또 산 아래에는 약수라는 강이 흐르는데 그 강물은 아홉겹으로 겹쳐 있고 물결이 만 길이나 되기 때문에 날개가 달린 수레라도 타고 간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 그 옛날(B.C.967) 주(周)나라 목왕(穆王)은 여덟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서쪽을 순행(巡行)하다가 친히 서왕모를 만났고 왕을 위하여 요지가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한(漢)나라 원봉(元封) 원년(元年 B.C.110) 7월 7일 많은 시종들을 거느리고 무제(武帝)를 방문하여 반도(蟠桃) 7개를 진상하며 2개를 스스로 먹고 무제가 씨를 남기려 기다리니 서왕모가 이르기를 “이 복숭아는 세간에서 갖는 물건이 아니며 3천년에 한 번 열리는 열매이다.”라고 하였다.

 

※ ③ 음부경삼황옥결(陰符經三皇玉訣)∶책 이름. 원명(原名)은 원시천존혼원삼황옥결음부경(元始天尊混元三皇玉訣陰符經)으로 3권이며 ≪도장(道藏)≫ 통진부(洞眞部) 옥결류(玉訣類)에 실려 있다. 천문전서(天文篆書)로 3백여자 상권은 천황(天皇) 중권은 지황(地皇) 하권은 인황(人皇)으로 3권으로 나뉘어 살펴보건대 상권은 신선포일지도(神仙抱一之道)이고 중권은 부국안민지법(富國安民之法)이며 하권은 강병전승지술(强兵戰勝之術)을 설명 서문은 헌원황제(軒轅黃帝)가 짓고 황제께서 묻고 공동산의 광성자(廣成子)와 아미산의 천진황인(天眞皇人)이 대답하여 문답식으로 실려 있다.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의 원본이다. 태공망(太公望)을 비롯하여 52인의 주(註)가 세상에 전한다.

 

(14) 본원(本源)인 배달국(倍達國)의 법을 망각

 

先生曰 近日所謂西來市法云者 始於王母之從

선생왈 근일소위서래시법운자 시어왕모지종

神祖而來尊神市 敎時衆愚不曉此 而但尙其末之佛

신조이래존신시 교시중우불효차 이단상기말지불

忘尊其本源市理

망존기본원시리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요즈음 이른바 서쪽에서 온 천시(天市)의 법(法)[인도에서 온 불교]이라 하는 것은 서갑왕모(西山甲王母)께서 신조(神祖∶환웅천왕)①를 따른데서 비롯되어서 신시(神市)를 높여 왔다. 요즘 어리석고 어두운 모든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다만 마지막에 온 부처만 높여 그 본원(本源)인 천시(天市)의 이치를 높이는 것(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잊었다.”

 

※ ① 신조(神祖)∶환인(桓因) 안파견(安巴堅). 그때에 도읍지를 북해(北海 바이칼 호수)의 동편에 정하시니 그 국토의 넓이는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여리에 이르며 나라 이름을 한국(桓國)이라 하였고 7세(七世)를 전하니 나라 다스린 햇수는 3,301년간 이었다. 2세(世)는 혁서(赫胥) 3세는 고시리(古是利) 4세는 주우양(朱于襄) 5세는 석제임(釋提壬) 6세는 구을리(邱乙利) 7세는 지위리(智爲利) 또는 단인(檀仁).

 

(15) 신시 교리는 비는 것이 아니며 백성을 구제함

 

先生曰 惟我神市敎理 不救禍福於虛虛寂滅之中

선생왈 유아신시교리 불구화복어허허적멸지중

以眞理導之 極救生民 輔翊世運 體上帝好生之心

이진리도지 극구생민 보익세운 체상제호생지심

闡列祖同源之旨 扶樹道法於無窮 斯可以上玉淸朝金闕

천열조동원지지 부수도법어무궁 사가이상옥청조금궐

而無愧之眞人

이무괴지진인

 

선생께서 가로되 “오직 우리 신시(神市) 가르침의 이치는 끝없이 넓음으로 사라져 없어지는 가운데 재앙과 자멸[福]을 구하지 않으며 진리로써 인도하여 백성을 구제하는데 다하며 세상이 돌아가는 운수를 도와서 좋은 데로 인도하며 상제(上帝)의 어진 맘이 있어서 죽이고 상하게 함을 싫어하는 맘과 몸이 되고 역대(歷代) 임금은 같은 근원(根源)에서 나온 것을 밝혔다. 도법(道法)①이 끝없이 영원히 계속되게끔 도와서 세우고 이런 까닭에 위로 옥청(玉淸)② 금궐(金闕)③에 조회(朝會)④에 들고 부끄러움이 없는 진인(眞人)이다.”

 

※ 輔∶도울 보.. 翊∶도울 익. 闡∶밝힐 천.

※ ① 도법(道法)∶도가의 모든 법으로 경법(經法) 참법(懺法) 방술(方術) 재초(齋醮) 부주(符呪) 금주(禁呪) 승교(乘嶠) 변화(變化) 은둔(隱遁) 구사(驅邪) 겁온(劫瘟) 섭마(攝魔) 항요(降妖) 소겁(消劫) 양재(禳災) 등을 일컫는다.

※ ② 옥청(玉淸)∶삼청(三淸)의 하나이며 옥청성경(玉淸聖境)이다. 원시천존(元始天尊)께서 다스린다. 삼청(三淸)은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이며 또는 삼천(三天)이라고도 한다. 성인(聖人)의 옥청(玉淸)에 오르고 진인(眞人)은 상청(上淸)에 오르며 선인(仙人)은 태청(太淸)에 오른다.

※ ③ 금궐(金闕)∶도교에서 천제(天帝)가 계신 곳.

※ ④ 조회(朝會)∶아침에 윗사람에게 문안드리고 정사를 아뢰기 위한 모임.

※ ⑤ 진인(眞人)∶참됨을 닦아 도(道)를 얻은 사람이며 무릇 하늘(태청경<太淸境>)에 올라 신선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모두 다 진인(眞人)이라 일컫는다.

 

(16) 근원(根源)을 잊음

 

先生曰 顯世之稱道者 不講道之本源 亥豕眞 贋混淆

선생왈 현세지칭도자 불강도지본원 해시진 안혼효

後之學者 或强爲附合 或互起戈矛 有志者湥可惜

후지학자 혹강위부합 혹호기과모 유지자돌가석

 

※ 豕∶돼지 시. 贋∶바르지 못할 안. 淆∶어지러울 효. 湥∶흐를 돌.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나타나서 도(道)하는 사람이라고 일컫는 이들은 도(道)의 본원을 연구하지 않았으니 해(亥)와 시(豕)를 참과 거짓을 혼돈하여 어지럽다. 뒤에 배우는 사람은 간혹 억지로 끌어다 붙이고 혹은 서로 창을 들고 일어나니 뜻이 있는 사람이 이에 흐르니 가히 안타깝다.”

 

(17) 천명(天命)을 공경과 신시(神市)의 공경

 

先生曰 後必有乾坤不蔽 日月貞明 闡示源流

선생왈 후필유건곤불폐 일월정명 천시원유

發蒙警聵之日矣 小子 敬守天命 崇此神市

발몽경외지일의 소자 경수천명 숭차신시

 

※ 聵∶배내귀머거리 외.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뒤에는 반드시 하늘과 땅이 가려짐없이 해와 달처럼 환히 밝아지리니, 사물이 일어나는 근원을 밝혀 어리석음을 찾아내 배내귀머거리를 경계하는 날이리라. 소자(小子)①가 천명(天命)②을공경하여 지키며 이 신시(神市)를 공경할 것이니라.”

 

※ ① 소자(小子)∶스승이 제자를 부르는 말.

※ ② 천명(天命)∶하늘의 명령. 운명. 천수(天數).

 

(18) 고요히 도(道)를 닦고 때[時]를 기다려라.

 

先生曰 從玆幾年之後 世路多端 天下主動 萬豗相爭

선생왈 종자기년지후 세로다단 천하주동 만회상쟁

人皆滔滔 自欺欺人 天之光明失矣

인개도도 자기기인 천지광명실의

汝輩主靜以俟 七丁兩丙之後

여배주정이사 칠정양병지후

 

※ 豗∶맞부딪칠 회. 滔∶물 창일할 도. 俟∶기다릴 사.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몇년 뒤에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온누리가 온갖 시끄러움을 주동하여 서로 싸우며 사람들이 모두 시대의 조류(潮流)에 따라가니 스스로를 속이고 사람(남)을 속이니 하늘이 밝은 빛을 잃었다. 너희 무리들은 고요함을 주로하여 칠정양병 후를 기다리라.

 

(19) 신(神)의 기틀을 잡음.

 

先生曰 世雖有升天之才 入地之能 若一失神機

선생왈 세수유승천지재 입지지능 약일실신기

自取滅亡 如沈水入火

자취멸망 여침수입화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비록 하늘에 오르는 재주와 땅속에 들어가는 능력이 있어도 만약 신(神)의 기틀(機)① 하나를 잃으면 스스로 멸망을 취함이며 물에 빠지고 불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 ① 신기(神機)∶신묘하여 헤아릴 수 없는 기틀을 뜻한다.

 

(20) 구월산은 단군의 유적지

 

先生曰 九月山 貝葉寺 達摩菴 阿沙峰 乃神祖西巡而

선생왈 구월산 패엽사 달마암 아사봉 내신조서순이

升天時遺跡之地 不可不敬而尊之

승천시유적지지 불가불경이존지

 

스승께서 말씀하시되 “구월산① 패엽사② 달마암③ 아사봉④은 곧 우리 신조(神祖)⑤께서 서쪽을 다니시고, 하늘에 오르실 때의 유적지이니 공경하여 받들 곳이다.”

 

※ ① 구월산(九月山)∶황해도 은률‧신천 사이에 있는 산. 높이 954m. 단군이 도읍한 아사달(阿斯達)의 위치가 구월산이라는 설은 「고려사」 「응제시주(應製詩註)」 「세종실록」을 비롯하여 그후의 사서와 지지(地志)가 모두 이에 따르고 있으나(하얼삔 백두산 장단경이 아사달임) 단정하기는 어렵다. 구월산의 이름은 본시 궁홀산(弓忽山)에서 궐산(闕山)으로 변하였고 이것이 아화(雅化)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된 것이라 한다. 하여간 예로부터 환인‧환웅‧단군을 모시는 삼성사(三聖祠)가 이곳에 있으며 이밖에 단군대(檀君臺)‧어천석(御天石)‧사왕봉(思王峰) 등 단군의 신적(神蹟)이 전한다. 산 주위에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물이 많고 고대 중국과의 교통의 요충지로서 한반도 최고(最古)의 역사광장이었을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고려 이래로 불교의 연총(淵叢)이 되어 사원(寺院)의 수가 대단하였다고 하나 현재 패엽사(貝葉寺)‧월정사(月精寺)만이 전해지고 예부터 산성이 있으며 6. 25 때는 반공(反共)의용군의 격전지가 되었다.

※ ② 패엽사(貝葉寺)∶황해도 신천군 용진면. 구월산에 있는 절. 일명 한산사(寒山寺). 신라 중기 창건. 법심선사(法深禪師)가 세웠다고 하는데 당(唐)나라 중인 패엽대사(貝葉大師)가 지었다고도 전한다. 선교 양종(禪敎兩宗)의 본산으로 이 절에는 한산전(寒山殿)‧삼성전(三聖殿)‧단군의 유적 등이 있다.

※ ③ 달마암(達摩菴)∶패엽사에 딸린 암자.

※ ④ 아사봉(阿沙峰)∶고조선 때 단군왕검이 평양성에서 다시 서울을 옮겼다는 전설의 지명. 아사달(阿斯達)에서 유래. 단기 3805<서기 1472> (조선 성종 3)년에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환인‧환웅‧단군의 세 분을 모셨다. 그러나 한반도 일제강점기에 폐쇄해 버렸다.

※ ⑤ 신조(神祖)∶신시(神市)시대의 제1세(世) 환웅(桓雄) 또는 거발환(居發桓)으로 재위 94년 (기원전 3898∼3804)이었다.

 

(21) 환웅과 단군의 탄신일이 한국의 성탄절

 

曰 天王誕辰 四月十三日 成后誕辰 二月十日

왈 천왕탄신 사월십삼일 성후탄신 이월십일

神祖誕辰 十月三日 西岬誕辰 七月十八日

신조탄신 시월삼일 서갑탄신 칠월십팔일

王母授黃帝大丹珠日 三月八日

왕모수황제대단주일 삼월팔일

 

말씀하시기를 “환웅천왕 탄신일은 4월 13일, 천왕의 성후 탄신일은 2월 10일이며, 단군왕검 탄신일은 10월 3일, 서갑왕모 탄신일은 7월 18일, 서갑왕모께서 헌원황제님께 큰 붉은 구슬을 전한 날은 3월 8일이다.”

 

(22) 도훈과 도원을 공부하라.

 

先生曰 道訓道源 箕聖升天時 命大世 而敎衆生之眞理書

선생왈 도훈도원 기성승천시 명대세 이교중생지진리서

不可不敬讀

불가불경독

 

※ 箕∶별이름 기.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일신고(三一神誥) 가운데 도훈(道訓)과 도원(道源)편은 기자(箕子) 성인께서 하늘에 오를 때 대세(大世)에게 명하여 중생에게 진리를 가르치던 책이니 공경하여 읽지 않을 수가 없다.”

 

※ ① 훈전(訓典)∶교훈이 되는 선왕(先王)‧성현의 전적(典籍).

※ ② 기자(箕子)∶중국 고대 사람. 은(殷)의 주왕(紂王)의 작은아버지. 은(殷)이 멸망된 뒤 기자조선을 세웠다.

 

(23)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쉬지않고 공부하라

 

先生曰 大皇祖 天符經 三寶誥 (精氣神) 靈神 煉神

선생왈 대황조 천부경 삼보고 (정기신) 영신 연신

修養者之大頭腦 不可一日休

수양자지대두뇌 불가일일휴

 

※ 誥∶깨우쳐 고할 고. 煉∶쇠불릴 련. 腦∶머릿골 뇌.

 

스승께서 말씀하시되 “대황조(大皇祖)이신 환웅께서 천부경과 삼보고(三寶誥∶三一神誥)는 정(精)‧기(氣)‧신(神) 영신(靈神)이라 신을 단련함이니 수양하는 사람은 큰 두뇌가 되니 하루라도 쉬면은 아니 된다.”

 

(24) 공경하며 게을르지 말라

 

先生曰 吾言止此 嗚呼小子 敬而勿怠.

선생왈 오언지차 오호소자 경이물태.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말씀은 이에 그치니 아아! 소자(小子)야! 공경함을 게을르지 말지니라.”

 

(25) 큰 도(道)를 공손히 닦으라

 

先生曰 人生百年 有如隙駒 使泯泯以終 毫無裨於人物

선생왈 인생백년 유여극구 사민민이종 호무비어인물

謂之虛生浪死 仁人惜之 汝輩 恭修大道 永作千萬劫

위지허생랑사 인인석지 여배 공수대도 영작천만겁

不死之身

불사지신

 

스승께서 이르기를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인 백년이란 세월은 빨리 흘러가고 인생이 덧없음이 있는 것과 같이 꺼지고 다하게끔 하여 끝마치니 인물을 돕는 것이 전혀 없어 일컫기를 ‘헛되이 태어나서 떠돌아다니다가 객지에서 쓸쓸히 죽으니 어진 사람이 보면 애석하다. 너희 무리들은 큰 도를 공손히 닦아 천만겁을 영구히 죽지 않는 몸이 되라.”

 

※ 구극(駒隙)∶흰 망아지가 틈을 지나감으로 비유해서 세월은 빨리 흘러가고 인생(人生)은 덧없음을 뜻함.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인생일세간(人生一世間) 여백구과극(如白駒過隙)에서 유래된 말.

 

(26) 천지개벽 할 때의 형상이란?

 

或問於先生曰 天地開闢之初 其狀何似

혹문어선생왈 천지개벽지초 기상하사

어떤 사람이 스승님께 묻기를 ‘하늘과 땅이 열리는 시초의 그 형상이 어떤 것과 같습니까?’ 하니

 

(27) 천지 개벽의 형상

 

曰 未易形容 古人之指 近似也 因指菴 前盆沼 令滿貯

왈 미역형용 고인지지 근사야 인지암 전분소 영만저

帶沙水一盆 投以瓦礫數小塊 雜穀豆升許 令人攪水混濁

대사수일분 투이와력수소괴 잡곡두승허 영인교수혼탁

曰 此是混沌未分之狀 待三日後 再來看 開闢至日 而濁

왈 차시혼돈미분지상 대삼일후 재래간 개벽지일 이탁

者淸矣 輕淸上浮 曰 是天開於子 沈底渾泥 此是地闢於丑

자청의 경청상부 왈 시천개어자 침저혼니 차시지벽어축

中間瓦礫出露 此是山陵 是時穀豆芽生 月餘而水中小蟲

중간와력출로 차시산능 시시곡두아생 월여이수중소충

浮沈奔逐 此是人與萬物生於寅 徹底是水包乎 地之象也

부침분축 차시인여만물생어인 철저시수포호 지지상야

地從上下 故 山上銳 而下廣象 量穀堆也

지종상하 고 산상예 이하광상 양곡퇴야

氣化日 繁華日 廣侈日 消耗萬物 毁而生機微 天地雖不毁

기화일 번화일 광치일 소모만물 훼이생기미 천지수불훼

至亥而又混沌之世矣 此時 只在諸明哲之惺惺而已

지해이우혼돈지세의 차시 지재제명철지성성이이

故 自然謂之天 不得不然謂之天 陽亢必旱 久旱必陰

고 자연위지천 부득불연위지천 양항필한 구한필음

久陰必雨 久雨必晴 此之謂自然 君尊臣卑 父坐子立

구음필우 구우필청 차지위자연 군존신비 부좌자립

夫唱婦隨 兄友弟恭 此之謂當然 小役大 弱役强 貧役富

부창부수 형우제공 차지위당연 소역대 약역강 빈역부

賤役貴 此之謂不得不然 心就是天 欺心便是欺天

천역귀 차지위불득불연 심취시천 기심편시기천

事心便是事天 更不須向蒼蒼 上面討吾人 渾是一天故

사심편시사천 경불수향창창 상면토오인 혼시일천고

日用起居 食息念念 時時事事 便當以天自處 濁氣醇淸

일용기거 식식염염 시시사사 편당이천자처 탁기순청

精自一矣 精一則神自靈矣 乃三寶理言之當然 彌六合

정자일의 정일즉신자영의 내삼보이언지당연 미육합

皆動氣之所爲也 精氣一粒 伏在久地之下 以胎之

개동기지소위야 정기일립 복재구지지하 이태지

故動者靜之死鄕 靜者動之生門 無靜不生 無動不死

고동자정지사향 정자동지생문 무정불생 무동불사

靜者常施 動者不還 發大造之全 氣者動也

정자상시 동자불환 발대조지전 기자동야

耗大造之生氣者 亦動也 聖人主靜以涵元理 成乎神

모대조지생기자 역동야 성인주정이함원리 성호신

道家主靜以留元氣 抵於妙 釋氏主靜 歸乎寂 總是尊一

도가주정이유원기 저어묘 석씨주정 귀호적 총시존일

神市天王 昭昭明明之位也 小子銘於心

신시천왕 소소명명지위야 소자명어심

勿若崔生姜生韓生輩之不透眞路 逕落貳岐 嗟嗟小子

물약최생강생한생배지불투진로 경락이기 차차소자

吾言非耄

오언비모

 

말씀하시기를 “형용하기가 쉽지 않으며 옛 사람의 가리킴은 아주 비슷하다.” 암자를 가르킴으로 인하여 물동이처럼 작은 못 앞에 이르러 물을 모아 가득차게 하고 모래와 물 한 동이를 채우고 기와와 자갈을 작은 흙덩어리를 두 세개 던져넣고, 온갖 곡식과 콩을 한 되 정도 넣고 사람으로 하여금 물을 손을 놀려서 섞이어 탁하게 되니 말씀하시기를 “이것이 혼돈하여 아직 맑음과 흐림이 아직 나뉘지 않은 형상이다” 하셨고 3일 뒤 다시 와서 보니 개벽을 볼 수 있다. 하루가 지나면 흐린 것이 맑음이 되어 맑은 것은 위로 뜨니, 말씀하기를 “이것이 우주가 시작될 때에 하늘이 맨 처음으로 지지수자(地支數字)인 자(子)字의 운을 받아 열렸다.”고 하셨다.

아래로 잠기어 흐린 진흙을<가리키어 말씀하시기를>“땅은 하늘이 열린 뒤에 지지(地支)의 숫자 중 둘째 자(字)인 축(丑)字의 운을 받아 열렸다.”고 하셨다.

 

중간에 기와의 깨진 조각이 드러나 보이니 “이것이 산과 언덕이다.” 이 때에 온갖 곡식과 콩과 팥이 싹이 나오고 한 달 남짓 되니 물 속에 작은 벌레가 물 위에 떠오름과 물 속에 잠기며 분주하게 달아나는 모양이었다. “이것이 사람과 만물이 하늘과 땅이 열린 뒤에 지지(地支) 숫자 가운데 셋째 인(寅)字에 운을 받아 생기였다.”

 

속 깊이 밑바닥까지 꿰뚫어 통하니 이것은 물을 싸안은 땅의 상이다. 땅은 위와 아래를 따르는 까닭으로 산이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으며 이것은 온갖 곡식이 수두룩하게 쌓이는 것을 헤아린 상이다. 기화일(氣化日)① 번화일(繁華日)② 광치일(廣侈日)③이 온갖 사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없어진다. 헐면 생기며 기틀이 희미하여 하늘과 땅이 비록 무너지지 않으나 해(亥)에 이르면 또다시 혼돈의 세상이다. 이 때에는 오직 모두 총명하고 사리에 밝고 똑똑하여 영리한 모양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연(自然)을 하늘(天)이라’고 한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하늘’이라 말한다. 양(陽)이 극진하면 반드시 가물고 오래도록 가물면 반드시 흐리고 오래도록 흐리면 반드시 비가 내리고 오랜 비면은 반드시 개인다. 이를 이르기를 자연(自然)이라 한다.

임금은 높고 신하는 낮고 아버지가 앉으면 아들은 서있고 지아비가(남편이) 부르면 지어미(아내)가 따르며 형은 사랑하고 아우는 공경한다. 이것을 일컫기를 당연(當然)이라 한다.

 

작은 것은 힘을 들여 크게 되고 약한 것은 힘을 들여 강하게 되고 가난한 것은 힘을 들여 부자가 되고 천한 것은 힘을 들여서 귀하게 된다. 이것을 일컬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不得不然)’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不然)를 얻지 못함이라. 맘이 곧 이 하늘이다. 맘을 속이는 것은 곧 하늘을 속이는 것과 같다. 맘을 섬기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과 같다.

 

다시 모름지기 맑게 개인 하늘빛을 향하지 않고 위로 향한 쪽의 겉면으로 나(우리 인류)를 구하니 섞이었으니 이것도 같은 하늘인 까닭으로 날마다 쓰며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숨을 쉼을 먹고 늘 맘속으로 생각하고(맘속에 두고) 때때로 일마다 오로지 마땅함으로써 하늘에 자기가 할일을 자기가 직접 처리한다. 탁한 기(氣)가 순수하게 맑은 정(精)이 되니 스스로 하나가 된다. 정일(精一)이 되면 신(神)이 스스로 영(靈)이 된다. 이에 세 가지 보배인 정(精)‧기(氣)‧신(神)이 다스려지고 말씀이 천도(天道)에 꼭 알맞아 당연하게 된다. 두루 온 우주(宇宙)에 모두 기(氣)가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정기(精氣)의 한 알갱이가 콩팥(腎)의 아래 숨어 있음에 따라서 태(胎)이다. 그러므로 움직임(動)은 고요함(靜)이 죽는 고향이고 고요함은 움직임이 생하는 문이다. 고요함이 없으면 생겨나지도 않고 움직임이 없으면 죽지 않는다. 고요함이란 늘 펴고 움직임이란 돌아오지 않는다. 큰 조화의 온전한 기(氣)를 발하는 것은 움직임이요 큰 조화를 생기를 소모하는 것도 또한 움직임이다. 성인은 주로 고요히 함으로써 원리를 용납하여 신(神)을 이룬다.

 

도가(道家)는 고요함을 주장함으로써 원기(元氣)가 머물어 묘(妙)함에 다다른다.

석가께서도 고요함을 주장하여 적<寂∶진정(眞正)한 리체(理體)>으로 돌아온다. 모두다 이것은 신시천왕(神市天王)을 공경하는 하나이며 밝고도 밝아 아주 환하게 밝은 자리이다. 소자(小子)야. 맘에 새기어 만약 최생(崔生) 강생(姜生) 한생(韓生)의 무리들은 참된 길을 통하지 못하며 두개로 갈라지는 길에 떨어지지 말지어라. 슬프고도 슬프다. 소자(小子)야. 내 말씀이 늙지 않았노라.”

 

※ ① 기화일(氣化日)∶액체가 기체로 상태 변화하는 날.

※ ② 번화일(繁華日)∶번성하고 화려한 날.

※ ③ 광치일(廣侈日)∶널리 사치하는 날.

※ ④ 정일(精一)∶서경(書經)에 처음 나오는 말로 순(舜)이 우(禹)에게 “인심은 오직 위태롭고 도심(道心)은 오직 은미하니, 오직 정(精)하고 일(一)해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중용장구 서문에 주자(朱子)는 “精則察其二者之間而不雜也요 一則守其本心之正而不離也 <정(精)은 두 가지의 사이를 잘 살펴서 혼합하지 않는 것이요 일(一)이라는 것은 그 본심의 바름을 지켜서 어기지 않는 것이다”라고 풀이했다.

 


 

2부. 팔공진인 총담(八公眞人 叢談)

 

(1) 팔공진인의 소개

 

眞人姓柳啣成性 號八公 文化人 恒居星州八公山

진인성류함성성 호팔공 문화인 항거성주팔공산

故世人稱八公眞人 時年四百九十六歲 紫霞門人

고세인칭팔공진인 시년사백구십육세 자하문인

 

진인(眞人)의 성은 류씨(柳氏) 이름은 성성(成性)이며, 호는 팔공(八公)이며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늘 경상도 성주(星州) 팔공산(八公山)에 사시는 까닭에 세상 사람들이 팔공진인(八公眞人)이라 일컫는다. 올해(단기 4246)년 496세이시며 자하진인(紫霞眞人)의 문인이시다.

 

(2) 국가의 흥망은 종교에서 기인

 

眞人曰 帝王之興亡 歷代之隆衰 風俗之善惡

진인왈 제왕지흥망 역대지융쇠 풍속지선악

總由於宗敎之眞僞

총유어종교지진위

 

진인(眞人)께서 말씀하시기를 “황제 또는 국가의 흥하고 망함과 차례차례로 전해져 내려온 그 여러 대의 성하고 쇠함과 오래 전부터 전해 오며 지켜지고 있는 생활상의 여러 가지 버릇이 되어 버린 형상의 착함과 악함은 모두다 종교의 참과 거짓에서 연유한다.”

 

(3) 현재는 미래와 과거의 현상

 

曰 天道有一無二 故無私卽云無私 有何不平

왈 천도유일무이 고무사즉운무사 유하불평

顯世人之禍福 不其善惡應非在 卽乃系三生 現前因果

현세인지화복 불기선악응비재 즉내계삼생 현전인과

將來胎盤 必古人一轍 釋氏地獄輪回之說

장래태반 필고인일철 석씨지옥윤회지설

孔聖必有餘慶 餘蘖之談 近是惟吾神敎 其眞得底

공성필유여경 여얼지담 근시유오신교 기진득저

人與天地共矣 不必論 屑瑣之理

인여천지공의 불필론 설쇄지리

 

※ 轍∶바퀴자국 철. 瑣∶자질구레할 쇄.

 

말씀하시기를 “천도(天道)는 단 하나 뿐이고 둘도 없다. 그러므로 사사로움 없이 공평하고 올바름은 곧 무사(無私)라 일컬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세상에 사람의 화(禍)와 복(福)을 나타냄에 그 착하고 악하지 아니한데 응함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곧 전생·현생·후생에 이어져 눈앞의 원인과 결과가 앞으로 닥쳐올 앞날에 태아(胎兒)이다. 반드시 옛 사람들과 같은 자국이다. (먼저 있던 다른 경우와 동일한 길을 밟음을 일컬음). 석가께서 지옥 윤회의 설과 공구(孔丘) 성인(聖人)의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고 남은 앙화가 있다’는 말씀이다.

요즈음 이것이 오직 나의(우리) 신교(神敎)이니 그 참[眞]을 밑에서 얻어 사람과 하늘이 함께 하니 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나니 수고롭고 좀스러운 이치다.”

 

(4) 자하진인은 신(神)이며 맘을 변치 말라.

 

曰 先生 神化 將有亘於萬萬年之度矣

왈 선생 신화 장유선어만만년지도의

更何贊之 知者但膺服 不變其心而已

갱하찬지 지자단응복 불변기심이이

 

말씀하옵기를 “스승(자하진인)께서는 신격화(神格化)되었고 장차 일 억년의 도수(度數)를 펼 것이다. 다시 무엇을 칭찬할 것인가. 아는 사람은 다만 설득시킴을 받으니 그 맘이 변하지 않을 따름이다.”

 

(5) 음양(陰陽)의 이치는 만고의 불변

 

曰 天地雖有 混沌之時 神理正 無沈泯之日 大一歸一

왈 천지수유 혼돈지시 신리정 무침민지일 대일귀일

大三合六 通萬古之不動本理

대삼합육 통만고지부동본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이 비록 혼돈의 때가 있었고 신리(神理)가 옳아서 잠기고 빠지는 날은 없었다. 큰 하나인 하나로 돌아오니 큰 것은 하늘 사람 땅이 음양이 있음에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땅에는 뭍과 큰 바다가 있고 사람에는 사내와 계집이 있어 합하니 여섯이니 아주 옛날로부터 이제까지 움직이지 않는 근본 이치를 통함이다.”

 

(6) 조광윤의 대륙의 통일

 

曰 宋時 神市天皇 使司命眞君 下天書于汀州 黔卒王捷

왈 송시 신시천황 사사명진군 하천서우정주 금졸왕첩

以警 趙氏 將有天下之半區

이경 조씨 장유천하지반구

 

말씀하시기를 “송(宋)①나라 때 신시천황(神市天皇)②께서 사명진군(司命眞君)③으로 하여금 천서(天書)④를 정주(汀州)⑤ 검은 군졸(軍卒)인 왕첩(王捷)에게 주어 경계하였고 조씨(趙氏)⑥가 장차 천하(天下)의 절반을 차지했었다.”

 

※ ① 송(宋)∶중국 주대(周代)에 성왕(成王)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의 형 미자계(微子啓)로 하여금 은나라의 유민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봉한 나라. 지금의 하남성 상구현에 도읍을 두었다. 춘추시대 12제후의 하나가 되어 문화적으로도 번영하였으나 양공(襄公)이 B.C.638년에 초(楚)와 싸워 소위 「송양(宋襄)의 인(仁)」이라는 웃음거리를 남기고 크게 패했다.

※ ② 신시천황(神市天皇)∶신시(神市) 제1세(世) 천황인 환웅(桓雄) 또는 거발환(居發桓) B.C.3898∼3804까지 재위 94년.

※ ③ 사명진군(司命眞君)∶신명(神名). 주로 생사를 맡아보고 하늘을 돕고 조화(造化)를 행하며 악을 벌주고 착함을 보호한다.

※ ④ 천서(天書)∶도교에서는 옥청원시천존의 말씀한 글을 일컫고 하늘에서 내려온 글을 뜻한다.

※ ⑤ 정주(汀州)∶중국 복건성의 고을 이름.

※ ⑥ 조씨(趙氏)∶서기 960년 조광윤(趙匡胤)이 오대후주(五代後周)의 공제(恭帝)의 선위(禪位)를 받아 세운 나라 존속연간 960∼1279년 변경(卞京)에 도읍 하였다.

제8대 휘종(徽宗) 제9대 흠종(欽宗)이 금(金)의 침입을 받아 북쪽으로 붙들려가기 까지를 북송(北宋) 효종(孝宗)의 아우 고종(高宗)이 남으로 옮겨 임안(臨安)에 도읍을 정하고 원(元)의 세조(世祖)에게 망할 때까지를 남송(南宋)이라 한다. 18대 319년만에 망했다.

 

(7) 동방의 명장(名將) 조씨(趙氏)가 출현할 것이다.

 

曰 宋仁孝戊申 又以天書 示于承天門 使其君

왈 송인효무신 우이천서 시우승천문 사기군

以知神道無窮 且現于夢 有神令道 始于東方也

이지신도무궁 차현우몽 유신령도 시우동방야

宋雖得國不正 其受命則天也 後世大震之名將 趙姓可期

송수득국부정 기수명즉천야 후세대진지명장 조성가기

 

말씀하시기를 “단기 2800년에 또 천서를 승천문에 보이게 하여 그 임금으로 하여금 신도가 무궁함을 알게 하고 또한 꿈에 나타나서 신도로 하여금 동방에 처음 있게 하였다. 송(宋)은 비록 나라를 얻고 바르지 못해 그 명령(命令)을 하늘로부터 받았다. 뒤의 세상 대진(大震)의 명장(名將)은 조(趙)씨를 가히 기약한다.”

 

(8) 송(宋)은 유선(儒仙)을 숭상

 

曰 宋仁孝辛亥四年五月 其州城作孔子廟

왈 송인효신해사년오월 기주성작공자묘

敦尙儒術癸丑六年五月 玉淸昭應宮 奉安聖像

돈상유술계축육년오월 옥청소응궁 봉안성상

八月太淸宮又奉安 甲寅七年正月謁老子於毫州

팔월태청궁우봉안 갑인칠년정월알노자어호주

太淸宮加號曰 太上老君 混元上德皇帝

태청궁가호왈 태상노군 혼원상덕황제

 

말씀하옵기를 “송(宋)나라 명제(明帝) 4년 단기 2804,신해(辛亥)년 5월 그 고을과 성(城)에 공자묘(廟)①를 짓고 도타웁게 유술(儒術)을 숭앙했고 명제 6년 단기 2806, 계축(癸丑)년 5월에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②에 성상(聖像)을 봉안(奉安)했고 8월에 태청궁(太淸宮)③에 또 봉안(奉安)했다. 명제 7년 단기 2807, 갑인(甲寅)년 정월에 노자(老子)님을 호주(毫州)에서 뵙고 태청궁에 호(號)를 더하여 이르기를 ‘태상노군(太上老君)’ ‘혼원상덕황제(混元上德皇帝)’라고 높였다.”

 

※ ① 공자묘(孔子廟)∶공자를 모신 묘(廟). 노(魯)나라 애공(哀公) 때에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에 세운 것이 최초이며 당(唐)나라 때 전국의 주(州)‧현(縣)에 건립되었다. 후세에 이르러서는 공자 외에 그 제자와 역대의 뛰어난 유자(儒子)도 함께 모셨다. 문선왕묘(文宣王廟)‧문묘(文廟)‧부자묘(夫子廟)‧공묘(孔廟)라고도 하며 한국에도 성균관(成均館) 안에 문묘(文廟)가 있다.

※ ② 옥청소응궁(玉淸昭應宮)∶옥청궁(玉淸宮)으로 원시천존(元始天尊)이 계신다. 삼청궁(三淸宮)의 하나.

※ ③ 태청궁(太淸宮)∶삼청궁(三淸宮)의 하나로써 도덕천존(道德天尊)이 계신다.

 

(9) 송(宋)때 공자 72제자를 봉하다

 

曰 仁孝己酉三年夏五月 詔追封玄聖文宣王廟 配享從祀

왈 인효기유삼년하오월 조추봉현성문선왕묘 배향종사

顔閔以下九人 以及七十二人 己酉二年夏五月 加號

안민이하구인 이급칠십이인 기유이년하오월 가호

聖祖爲司命天尊

성조위사명천존

 

※ 詔∶조서 조, 가르칠 조. 閔∶병[病] 민, 민망할 민, 성[姓] 민.

 

말씀하시기를 “송(宋) 인효(仁孝) 3년 기유(己酉 단기 274년 5월 여름에 조서(詔書)를 내려 공자 죽은 뒤에 봉(封)하기를 ‘현성문선왕묘(玄聖文宣王廟)’로 신주(神主)를 모셔 문묘(文廟)‧사원(祠院)‧서원(書院) 등에 안자(顔子) 민자(閔子) 등 이하(以下) 아홉 분과 72인에 미치었고 인효 2년(잘못 쓰인 것 같음) 기유(己酉)년 여름 5월에 호(號)를 더하여 성조(聖祖)께서 사명천존(司命天尊)이 되었다.”

 

(10) 동이(東夷)와 중화(中華)가 대동소이

 

曰 余曾聞於先生 先生曰 麗末後李姓爲國

왈 여증문어선생 선생왈 여말후이성위국

而在朝在野之人 多尙宋國之文華學文然 宋之世非但遼夏

이재조재야지인 다상송국지문화학문연 송지세비단요하

金元之幷立 且得不精 又未統一 安得有華夷之別

금원지병립 차득부정 우미통일 안득유화이지별

以一主而多改年號 可知其不務政本 假作外華

이일주이다개년호 가지기불무정본 가작외화

 

말씀하시되 내가 일찍 선생(先生) (자하진인)으로부터 듣기로는 선생님(자하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고려(高麗) 말(末) 뒤 이씨(李氏)의 나라가 되니 조정(朝廷)과 재야(在野)의 사람이었다. 송(宋)나라 문화(文化)와 학문(學文)을 많이 숭상하였다. 송(宋)의 세상은 다만 요(遼)나 하(夏) 금(金)과 원(元)나라들이 아울러 섰으며 또 정(精)을 얻은 것이 아니다. 또 통일(統一)하지 못했고 어찌 중화(中華)와 동이(東夷)가 다른 것이 있겠는가? 한 임금이 년호(年號)를 많이 고쳤고 그 정치(政治)의 근본(根本)에 힘쓰지 않은 것을 가히 알겠도다. 거짓으로 밖으로 화려함을 지었다.”

 

(11) 영토만 크면 정통인가?

 

曰 世人不知本源 在何開口 說尊華攘夷之道

왈 세인부지본원 재하개구 설존화양이지도

胡元滅宋爲不祥於道 云 良可悲也 大道盛衰

호원멸송위불상어도 운 양가비야 대도성쇠

都不在世局姑舍 所謂正統云者 只以大有彊域

도부재세국고사 소위정통운자 지이대유강역

定之而秦始皇 滅六國 漢高帝勝强楚殺英雄

정지이진시황 멸육국 한고제승강초살영웅

唐太宗挾夷力而得 因胡亂而失 宋人不費一箭 奪人國

당태종협이력이득 인호란이실 송인불비일전 탈인국

且況所事之乎 天下猶謂之英武 猶謂之正統

차황소사지호 천하유위지영무 유위지정통

然則 五季諸帝有何惡毛 謂之僭名乎 編支那史者

연즉 오계제제유하악모 위지참명호 편지나사자

吾不知其可也 況乎吾震檀 口頭如是乎

오부지기가야 황호오진단 구두여시호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은 본원(本源)①을 알지 못하니 어찌 입을 열어 중국을 높이고 우리나라를 더는 도(道)를 말이 있겠는가? 오랑캐 원(元)이 송(宋)을 멸망시키니 상서롭지 못한 도(道)이니 이르기를 어진이는 가히 슬프다. 큰 도(道)가 성하고 쇠하며 도무지 세상 시절을 우선 폐하고 이른바 정통(正統)②을 말하는 사람은 다만 크게 나라에 붙은 땅이 큰 데 있으니 정하기는 진시황(秦始皇)③이 여섯 나라(초<楚>‧연<燕>‧제<齊>‧한<漢>‧위<魏>‧조<曹>)를 멸하였고 한고제(漢高帝)④는 강한 초(楚)를 죽여 이긴 영웅(英雄)이며 당태종(唐太宗)⑤은 동이(東夷)를 힘껏 돕다가 오랑캐(胡)의 난(亂)으로 인하여 나라를 잃었다. 송(宋)은 하나의 화살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과 나라를 뺏았었다.

또한 하물며 볼 일인가? 천하(天下)가 오히려 ‘영걸(英傑)하고 매우 용맹스럽다’말하고 오히려 정통(正統)이라고 일컫는다. 그러한즉 중국의 후오대(後五代)의 모든 임금들이 어찌 악모(惡毛)⑥가 있겠으며 분에 넘치는 이름이라 일컫겠는가? 중국의 사학자(史學者)는 기록한 것을 나는 그 옳은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물며 우리 진단(震檀)⑦을 이와 같이 말로 처리하겠는가?”

 

※ ① 본원(本源)∶강 개울 등 흘러 내려오는 것의 근원. 근본(根本).

※ ② 정통(正統)∶바른 계통. 적장(嫡長)의 계통. 임금의 계통. 사물의 중심이 되는 긴요한 부분.

※ ③ 진시황(秦始皇)∶중국 진(秦)나라의 제 36대 황제. 이름은 정(政). 통일 왕조로 진나라의 시조이다. B.C.221년 전국(戰國) 제국을 평정하여 통일을 완성하고 「황제」라 칭하였다. 봉건제를 폐지하고 군현제를 실시했으며 도량형‧문자‧화폐 등을 통일하였다. 법치주의‧분서갱유(焚書坑儒)로 사상통일을 기하고 중앙집권을 확립했으며 만리장성‧교통로‧아방궁 등의 큰 토목공사를 일으키는 등 급격한 개혁을 시도했다.

※ ④ 한고제(漢高帝)∶유방(劉邦)이 초(楚)의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세운 나라(B.C.206∼A.D.220)

※ ⑤ 당태종(唐太宗)∶626∼649. 진(陳)나라 말기 북량(北凉)의 무소왕(武昭王) 고 (暠)의 자손이라 하나 한족(漢族)이 아니고 선비족(鮮卑族)이라는 설(說)도 있다. 수(隋)나라 말기에 태원(太原)의 군벌(軍閥)로서 돌궐졸(突厥族)의 남침을 막고 지방의 치안을 장악하여 차차 세력을 넓히던 이연(李淵∶당고조)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와 더불어 617년 5월에 군사를 일으켜 동년 9월에 수도 장안(長安)을 점령 618년 수(隋)의 양제(煬帝)가 반란군의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살해되자 그 손자 공제(恭帝) 유(侑)를 세웠는데 그 이듬해 공제를 협박하여 선위(禪位) 받아 아버지를 즉위케 하고 국호를 당(唐)이라 하였다.

건국 초에는 각지에 군웅(群雄)이 할거하고 있었으나 차례로 이들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건국과 통일대업은 총명과 지략이 출중한 세민(世民)의 힘이 컸는데 형이며 태자(太子)인 건성(建成)과 동생 원길(元吉)이 시기하자 이들 형제를 죽이고 626년 제2대 황제에 올랐다. 이를 ‘현무문(玄武門)의 난’이라 하며 이세민이 곧 태종(太宗)이다.

 

태종은 즉위하자 최대의 외적(外敵)이던 돌궐(突厥)을 평정하였으며 주변의 여러 종족도 조공(朝貢)하게 되어 국위(國威)를 크게 떨쳐서 한(漢)나라를 능가하는 대제국(大帝國)이 되었다. 우리 고구려에 봉역도(封域圖)를 보내왔으며 629년엔 현장(玄 )이 인도여행을 떠났으며(627년도 출발설도 있음) 630년엔 동돌궐(東突厥)을 멸하고 왜(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였고 왜(일본)도 사신을 당나라 파견(제1회 遣唐使) 635년엔 부병제도(府兵制度)를 완성하여 내치(內治)에도 힘써 637년엔 정관율령(貞觀律令)을 제정하여 치세 20여 년은 ‘정관(貞觀)의 치(治)’라고 하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638년엔 <<씨족지(氏族志)>>를 반포(頒布)하였고 640년엔 고창국(高昌國)을 멸하고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를 두었고 641년엔 문성공주(文成公主)를 토번(吐蕃)으로 출가시켰고 고구려 백제 신라 등 3국에서 유학(留學)을 청해 왔으며 고구려 원정(遠征)(제1차 645 제2차 647 제3차 648)하여 안시성(安始城) 공략에 실패 634년엔 왕현책(王玄策)을 인도에 파견 646년엔 현장(玄 )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완성했고 철륵부(鐵勒部)에 속하는 설연타(薛延陀)를 토벌하였고 647년엔 연연(燕然∶뒤의 安北)에 도호부(都護府)를 설치 649년엔 태종이 죽고 아홉째 아들인 고종(高宗)이 즉위하였다.

※ ⑥ 악모(惡毛)∶붓 속에 섞인 뭉툭한 털. 좋은 것을 추려 내고 남은 찌끼. 악(惡)치.

※ ⑦ 진단(震檀)∶우리 나라를 예스럽게 일컫는 말의 하나. 진단(震壇).

 

(12) 원세조(元世祖)가 정통(正統)

 

曰 自古簡丹之嚴 帝王不能奪 將相不能奪

왈 자고간단지엄 제왕불능탈 장상불능탈

故 齊崔抒敎其兄而舍其弟 晋董獨書以趙 遁弑君

고 제최서교기형이사기제 진동독서이조 둔시군

今此編諸史則 指纂謂正 以正謂僭 比比 秦漢僞史而尤爲

금차편제사즉 지찬위정 이정위참 비비 진한위사이우위

甚焉 噫 人品之降衰 史筆之無力 實由於秦漢以來

심언 희 인품지강쇠 사필지무력 실유어진한이래

失眞食希假之故也 元世祖滅宋 而幷有四夷 其雄威武力

실진식희가지고야 원세조멸송 이병유사이 기웅위무력

彊場宏闊 猶勝秦漢 以正統大統 爲史家分別則

강장굉활 유승진한 이정통대통 위사가분별즉

此四帝外實無可居於正統 天統之名者乎

차사제외실무가거어정통 천통지명자호

 

※ 崔∶산우뚝할 최, 높고 가파를 최, 성[姓] 최, 고을이름 최. 抒∶당길 서, 물자아올릴 서, 쏟을 서, 덜 서, 당길 저 ,북 저. 董∶바를 동, 감독할 동, 굳을 동, 연뿌리 동, 비빔밥 통, 고물 동. 遁∶달아날 둔, 숨을 둔, 피할 둔, 끊을 둔. 晋∶나아갈 진, 억제할 진, 꽂을 진, 나라이름 진, 괘이름 진. 弑∶웃사람죽일 시. 纂∶책편찬할 찬,모을 찬, 이을 찬. 食希∶飾 꾸밀 식, 가선두를 식, 문채날 식, 분바를 식, 정제할 식. 宏∶넓을 굉, 클 굉, 넓힐 굉. 闊∶근고할 활, 어그러질 활, 간단할 활 오활(迂闊)할 활.

 

말씀하시기를 “예전부터 병부[符命]를 엄하게 점고[閱]하면 제왕(帝王)은 빼앗을 능력이 없으며 장수(將帥)와 재상(宰相)은 능히 빼앗을 수 없다. 그래서 제(齊)나라 최서(崔抒)가 그 형(兄)이 가르침을 그 아우를 두었고 진(晋)나라 동독서(董獨書)는 잉어 속에 칼을 숨기고 조(趙)나라의 임금을 죽였다. 이제 이 편(編)을 모든 역사(歷史)가 즉 지어 가리키기를 정(正)이라고도 하며 정(正)으로써 거짓이라고 일컫는다. 무엇이든지 진(秦)과 한(漢)이 ‘거짓 역사’라고 하며 더욱 심하다.

아아! 인품(人品)의 느리고 쇠하니 역사(歷史)를 적는 붓이 힘이 없어 실제로 연유(緣由)하여 진한(秦漢)으로부터 참[眞]을 잃었다. 거짓을 꾸미는 까닭이다.

원(元)나라 세조(世祖∶쿠빌라이 忽必烈)가 단기 3612년 남송(南宋)을 멸하고 북적(北狄)‧남만(南蠻)‧동이(東夷)‧서융(西戎)을 합함이 있었고 그 무력(武力)이 웅장하고 위엄과 큼직하고 시원스럽게 넓은 영토(領土)를 가졌으니 오히려 진(秦)이나 한(漢)보다 나았었고 이것이 정통(正統)으로 왕위(王位)를 계승하는 계통이니 사가(史家)의 분별하면 즉 이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① 송태조(宋太祖)② 원세조(元世祖)③이 네 황제(皇帝) 밖은 실지로 정통(正統)에 가히 놓을 수 없으며 하늘에 명(命)을 받은 계통의 이름이 아닌가?”

 

※ 비비(比比)∶흔히. 매양. 모두. 낱낱이. 무엇이든지.

※ ① 한무제(漢武帝)∶후한(後漢)의 시조(始祖)인 유수(劉秀). 한고조(漢高祖)의 9세손(世孫). 왕망(王莽)의 대군(大軍)을 파(破)하고 즉위(卽位)하여 낙양(洛陽)에 도읍을 세우고 한(漢)을 다시 일으켰음.

※ ② 송태조(宋太祖)∶송(宋)의 태조(太祖). 개국(開國)의 임금. 본 이름은 조광윤(趙光胤) 탁군(琢郡)사람. 성격은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와 용감하고 슬기로웠고 후주(後周)의 양위(讓位)를 받아서 제위(帝位)에 오름. 탐관오리(貪官汚吏)를 물리치고 법(法)을 존중하며 농업을 장려하고 교학(敎學)을 진흥하며 형벌을 가혹히 하지 않고 수렴(收斂)을 적게 하여 통일(統一) 왕업(王業)의 기초를 튼튼히 함.

※ ③ 원세조(元世祖)∶1215∼1294. 이름은 쿠빌라이(忽必烈). 송(宋)을 멸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국호(國號)를 원(元)이라 하고 연경(燕京)에 도읍(都邑)함. 뒤에 왜(倭)를 친 일이 있고 또 면전(緬甸)‧안남(安南)‧조와(爪蛙) 등을 정벌(征伐)하여 영토(領土)가 아주(亞洲) 및 구라파(歐羅巴) 동부(東部)까지 뻗쳐 강토(彊土)의 넓이는 전고(前古)에 비할 바 없이 컸음.

 

(13) 순(舜)임금 원(元)나라 청(淸)은 신조(神祖)의 후예

 

曰 惟我 神祖裔之入支那主天下 始于舜 而中于元

왈 유아 신조예지입지나주천하 시우순 이중우원

終于淸也 朱元璋之謂大震之人 似也非也 其所行所說

종우청야 주원장지위대진지인 사야비야 기소행소설

近似吾曾聞之 南海眞人 朱氏之本 始於高朱蒙云云

근사오증문지 남해진인 주씨지본 시어고주몽운운

疑去上取中苦矣

의거상취중고의

 

※ 裔∶옷뒷자락 예 변방 예 씨 예 방자할 예 갈 예 흐를 예. 舜∶순임금 순 무궁화 순. 璋∶반쪽홀 장.

 

말씀하옵기를 “오직 나는 신조(神祖)의 씨가 중국으로 들어가 천하(天下)의 주인이 된 것은 순(舜)임금으로 부터 시작하여 중간에는 원(元)나라였고 청(淸)나라로 끝마쳤다. 명(明)의 주원장(朱元璋)①은 우리 동방사람(大震之人)이다 아니다 하나 그의 행동과 말을 살펴 보면 내가 듣기로는 남쪽바다의 진인(眞人)이며 주(朱)씨의 시조(始祖)가 고주몽(高朱蒙)②이다 이러이러하다. 의심을 버리고 맞는 것을 찾으려니 괴롭도다.”

 

※ ① 주원장(朱元璋)∶(1328∼1398) 중국 명(明)의 태조. 자(字)는 국서(國瑞). 안휘성(安徽省) 출생. 미천한 빈농(貧農)의 집에 태어나 원말(元末)의 혼란기에 홍건적(紅巾賊)의 1병졸에서 몸을 일으켜 장강(長江) 일대를 평정하고 남경(南京)을 점령 한(漢)민족을 재통일하여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명 연호를 홍무(洪武)라 했다. 관제(官制)를 개혁하고 재위 31년간에 안으로 다스리고 밖으로 쳐서 많은 치적(治績)을 올렸다.

 

※ ② 고주몽(高朱蒙)∶동명왕(東明王) B.C.58∼B.C.19(유리왕 1) 고구려의 시조. 재위 B.C.37∼B.C.19. 성은 고(高) 휘(諱)는 주몽‧추모(鄒牟)‧상해(象解)‧도모(都慕)‧동명성왕(東明聖王). 아버지는 동부여왕(東夫餘王) 김와(金蛙)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 류화(柳花). 「삼국사기」에 의하면 동부여왕 해부루(解夫婁)가 죽고 김와가 즉위하여 류화를 부인으로 삼았으나 천제(天帝)의 아들이라고 하는 해모수(解慕漱)와 가까이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류화를 궁실에 유폐하였다. 류화는 햇볕을 받고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와 성장하니 주몽(부여의 속어로 활을 잘 쏜다는 뜻)이라 불렀다. 김와의 아들 7형제의 재주가 모두 주몽만 못하였고 왕이 반대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남 대소(帶素)는 여러 형제와 신하들과 같이 주몽을 죽이려 하므로 난(亂)을 피하여 졸본(卒本)에 도읍하고 국호를 고구려 성(姓)을 고(高)라 하였다. B.C.34(유리왕 4)에 성곽궁실(城郭宮室)을 짓고 B.C.32 행인국(荇人國)을 멸망시켰으며 B.C.27 북옥저(北沃沮)를 합쳤다. 죽은 뒤 용산(龍山)에 장사지냈다.

 

(14) 신성(神聖)의 도(道)로써 스승 삼아라

 

曰 人當以神聖之道 爲師一節之士 不足學也

왈 인당이신성지도 위사일절지사 부족학야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마땅히 신성(神聖)의 도(道)로써 스승이 되니 변함 없는 절개(節介)의 선비는 넉넉하지 못한(모자람) 배움(공부)이다.”

 

(15) 군자는 결백하여 의(義)를 중히 여긴다

 

曰 凡治國治家 處會之法 不可君子小人勢同

왈 범치국치가 처회지법 불가군자소인세동

氷炭同處必爭 一爭之後 小人必勝 君子必敗 何者小人

빙탄동처필쟁 일쟁지후 소인필승 군자필패 하자소인

貪利忍恥擊之難去 君子 潔白重義 阻之則 引去

탐리인치격지난거 군자 결백중의 조지즉 인거

 

※ 阻∶막힐 조, 어려울 조, 근심할 조, 그칠 조, 의심할 조..

 

말씀하시기를 “무릇 나라를 다스리고 집을 다스리고 정하여 모이는 법(法)이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형세가 같지 않다. 얼음과 숯[氷炭]①이 같은 곳에 있으면 반드시 싸우니 한 번 싸운 뒤에 소인(小人)이 반드시 이기고 군자(君子)는 반드시 패한다. 어떠한 사람이 소인(小人)인가? 이익을 탐하고 치욕을 참으며 쳐서 어려우면 도망간다. 어떠한 사람이 군자(君子)인가? 맘씨와 행실이 조촐하고 깨끗하여 아무런 허물이 없고 의(義)②를 소중히 여기며 막히면 서로 이끌어 간다.

 

※ ① 얼음과 숯[氷炭]∶서로 정반대(正反對)가 되어 조화(調和)되지 못함. 또는 그러한 사물의 비유.

※ ② 의(義)∶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 오상(五常)의 하나임.

 

(16) 후천(後天)에 신인(神人)이 천서(天書)를 찾아 사용한다

 

曰 天之度數之循環正理 詳載在於神祖命祭天之時

왈 천지도수지순환정리 상재재어신조명제천지시

藏于大太 白岩石間 後天必有索用之神人

장우대태 백암석간 후천필유색용지신인

宋之世所謂觀天曆法 芽於天書 然未得縱詳也

송지세소위관천역법 아어천서 연미득종상야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도수(度數)의 순환(循環) 바른 이치는 신조(神祖) 명(命)에 상세히 실려 있으니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이니 큰 태백산(太白山) 바위 또는 돌 사이에 감추었으니 후천(後天)에 신인(神人)이 반드시 찾아 사용할 것이다.

송(宋)나라 세상의 이른바 관천역법(觀天曆法)이니 천서(天書)에서 처음 생겼다. 그러나 아직 얻지 못하여 자세히 모른다.”

 

(17) 사람의 올바르고 큰 심법(心法)이란?

 

曰 人之禽氣修精 在淸直勇 淸而不耀 直而不激

왈 인지금기수정 재청직용 청이불요 직이불격

勇而能溫 是人 正大心法

용이능온 시인 정대심법

 

※ 耀∶빛날 요.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기(氣)를 사로잡아 정(精)을 닦음은 맑고 곧고 용맹함에 있으니 맑으니 빛나지 않으며 곧으니 심하지(거세지)않으며 날래니 능히 따뜻하다. 이것이 사람의 올바르고 큰 심법(心法)이다.”

 

(18) 조광윤은 가법(家法)이 아름답지 않다

 

曰 世人以官爵爲榮 乃知道者之所笑然 贈諡追奪之醜行

왈 세인이관작위영 내지도자지소소연 증시추탈지추행

始于趙宋氏而鄙陋莫甚 作史者往往以宋爲中原

시우조송씨이비누막심 작사자왕왕이송위중원

主大不經矣 我國之人 多稱趙宋 然趙氏之殺弟戮侄

주대불경의 아국지인 다칭조송 연조씨지살제착질

而家法稱美可乎 眞不思之甚也.

이가법칭미가호 진불사지심야.

 

※ 익(謚)은 잘못 시(諡)가 옳음. 행장 시, 시호 시. 鄙∶더러울(더럽힐) 비, 시골 비, 변방 비, 인색할 비. 陋∶좁을 루, 추할 루, 더러울 루. 戮∶창으로 찌를 착. 질(侄)은 잘못 질(姪)이 옳음. 추(麤)는 추(醜)의 속자 성길 추, 클 추, 거칠(추할) 추.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은 관직(官職)과 작위(爵位)로서 영화(榮華)①가 된다 하나 비로소 도(道)를 아는 사람은 웃으며 ‘그렇다’ 하는 바이며 거칠고 경솔히 행동하여 죽은 사람의 시호를 주기도하고 빼앗기도 한다. 처음 시작은 조광윤(趙匡胤)씨이니 행동이 천하고 맘이 지저분함이 극히 심했다. 역사를 짓는 사람은 이따금(때때로)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으로서 중원(中原)의 주인이 된다고 하나 하늘에 상도(常道)②에는 어그러진다. 우리나라 사람은 많이 조광윤 송태조를 일컫는다. 그러나 조씨는 아우를 죽이고 조카를 창으로 찔렀으니 가법(家法)③이 가히 아름답다 일컫겠는가? 참으로 생각 없음이 심하도다.”

 

※ ① 영화(榮華)∶귀하게 되어서 몸이 세상에 드러나고 이름이 빛남. 영예(榮譽)에 가득한 행복.

※ ② 상도(常道)∶변하지 않는 떳떳한 도리(道理). 항상 지켜야 할 도리.

※ ③ 가법(家法)∶한 집안의 법도 또는 규율. 가헌(家憲). 가령(家令).

 

(19) 옛 강토를 찾고 신인(神人)의 나라가 된다

 

曰 余於壬辰之亂 隱居九月山 淸修菴 經過其亂之有世

왈 여어임진지난 은거구월산 청수암 경과기난지유세

癸巳二月 移居伽倻山 而經三年 其間詳聞諸道

계사이월 이거가야산 이경삼년 기간상문제도

有兵亂之極 欲一次出世 救衆生則

유병난지극 욕일차출세 구중생즉

先生曰 此乃天運 非知道者所關

선생왈 차내천운 비지도자소관

余問曰 此亂將何如乎

여문왈 차난장하여호

先生曰 余思之 有神通謀略者 無幾人而 只有郭再祐

선생왈 여사지 유신통모략자 무기인이 지유곽재우

李舜臣 趙憲 權慄 金德齡諸輩 舜臣憲慄 略通天文地理

이순신 조헌 권율 김덕령제배 순신헌율 약통천문지리

兵機之學 別無神妙之術 德齡 小有神術 薄福之人

병기지학 별무신묘지술 덕령 소유신술 박복지인

必不成功 且性情偏狹 難終命 趙李輩 亦運蹇 不得其命

필불성공 차성정편협 난종명 조이배 역운건 부득기명

但再祐承其母之神術 必見太平而終其命矣

단재우승기모지신술 필견태평이종기명의

今番之亂 國終無事 五六之後 必更有事於四八之間

금번지난 국종무사 오륙지후 필경유사어사팔지간

此亂 跡 則兵不血忍權歸其手矣

차난섭적 즉병불혈인권귀기수의

大震古彊之盡 入其圖籍 後運回于神人之邦矣

대진고강지진 입기도적 후운회우신인지방의

 

※ 祐∶도울 우, 다행할 우. 慄∶두려울 률, 쭈그릴 률, 슬플 률, 떨 률,송구할 률. 齡∶나이 령. 偏∶치우칠 편, 불공평할 편, 반신 편, 무리 편, 오십명 편,(오십 사람을 한반으로 한 일컬음) 간사한 모양 편, 넓을 편, 한마음 편, 왼쪽획 편(만들은 글자의 왼쪽의 획). 狹∶좁을 협. 蹇∶(다리∶足) 절 건, 험할 건, 교만할 건.∶밝을 섭, 신신을 섭, 오를 섭. 彊∶지경(갈피) 강, 굳셀 강, 변방 강, 한끝 강.

 

가로되 “나는 임진(壬辰∶임진왜란)의 난리에 구월산(九月山) 청수암(淸修菴)에 숨어 살았다. 그 난리에 세상에 있어 사건(事件)이 지나가는 모양을 보고 들었다. 계사(癸巳∶단기 3926)년 2월에 가야산(伽倻山)으로 옮겨 3년을 지내며 그사이 모든 길로 상세히 들으니 병난(兵亂)의 극함이 있어 한 차례 세상에 나와 중생(衆生)을 구하려고 하였다.”

스승(자하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은 비로소 하늘의 운(運)이니 도(道)를 아는 사람이 관여할 바가 아니다”고 하셨다.

내가 물어 말하기를 “이 난리는 앞으로 어떻겠습니까?”

스승(자하진인)께서 말씀하옵기를 “내 생각으로는 신통모략(神通謀略)①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곽재우(郭再祐)② 이순신(李舜臣)③ 조헌(趙憲)④ 권률(權慄)⑤ 김덕령(金德齡)⑥ 등 여러 무리가 있다. 순신 헌 률은 천문(天文) 지리(地理)를 약간 통했고 병기(兵機)의 학문은 다른 신묘(神妙)의 술(術)은 없도다. 덕령이 조금 신술(神術)이 있으나 복(福)이 엷은 사람이라 반드시 공(功)을 이루지 못한다. 또 성질과 심정이 맘이 한쪽으로 치우치고 좁아서 천명(天命)을 마치기 어렵다.

조헌(趙憲)과 이순신(李舜臣) 무리는 또한 운(運)이 험하여 그 목숨을 얻기 어렵다. 다만 곽재우는 그 어머니의 신술(神術)을 이어 받아 반드시 태평(太平)을 보고 그 천명(天命)을 마친다.

이번의 난리에 나라는 마침내 아무 탈 없으며 30년 뒤에 반드시 사변(事變)이나 큰 사건(事件)이 다시 동쪽과 서쪽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 난리는 자취와 흔적을 밟으면 병사(兵士)는 피를 흘리지 않고 참으니 권리(權利)가 그 손으로 돌아간다. 우리나라 옛 강토가 다하여 그 지도(地圖)와 호적(戶籍)이 들어오니 뒤에 운(運)이 돌아와 신인(神人)의 나라가 된다.”

 

※ ① 신통모략(神通謀略)∶계략(計略)이나 계책(計策)이 신기하고도 묘하게 아는 것이 깊어 통달함.

 

※ ② 곽재우(郭再祐)∶1552(명종 7)∼1617(광해군 9) 조선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자(字)는 계수(季綏) 호(號)는 망우(忘憂) 시호는 충익(忠翼), 본관은 현풍(玄風). 황해도 관찰사 월(越)의 아들.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여러 고을이 연이어 함락되고 임금이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의령(宜寧)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홍의(紅衣)를 입고 선두에서 싸워 많은 전공(戰功)을 세워서 홍의장군이라 불리었다. 정유재란(1597) 때도 각군(各郡)이 모조리 함락되었지만 곽재우는 끝까지 의령을 지켰으며 그 뒤 찰리사(察理使)‧절도사(節度使)를 지냈고 1609(광해군 1)에 영남절도사‧수군통제사에 임명하였으나 모두 사퇴하였다. 1612(광해군 4)에 서울로 불려가서 부총관(副摠管) 좌윤(左尹)을 거쳐 함경감사(咸鏡監司)를 지냈다. 문헌∶『지장집략(誌狀輯略)』

 

※ ③ 이순신(李舜臣)∶1545(인종 1)∼1598(선조 31) 조선 때의 명장(名將) 자(字)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 ,본관은 덕수(德水),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변(邊)의 후손. 서울 건천동(乾川洞)에서 출생. 1576년(선조 9)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權知訓鍊院奉事)로 처음 관직에 나섰으며 발포만호(鉢浦萬戶)를 거쳐 1586년(선조 19)에 사복시주부가 되고 이어 조산만호(造山萬戶) 겸 녹도 둔전사의(鹿島 屯田事宜)가 되어 그해 가을 적은 병력으로 호인(胡人)이 침입하여 많은 양민을 학살하니 순신은 홀로 이를 맞아 싸워 포로 60여명을 탈환하였고 그 일로 해임되었다. 그뒤 전라도 순찰사 이광(李珖)에게 발탁되어 전라도 조방장(助防將)‧선전관(宣傳官) 등이 되고 1589년(선조 22) 정읍현감으로 있을 때 류성룡(柳成龍)에게 추천되어 고사리첨사(高沙里僉使)로 승진 이어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만포(滿浦)첨사‧진도군수(珍島郡守) 등을 지내고 47세가 되던 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全羅左道 水軍節度使)가 되었다. 함대를 이끌고 적의 수군과 싸워 도처에서 격파했으니 제1차는 옥포(玉浦)‧적진포(赤珍浦)에서 제2차는 사천(泗川)‧당포(唐浦)‧율포(栗浦)에서 제3차는 한산도(閑山島)‧안골포(安骨浦)에서 제4차는 부산포(釜山浦)에서 적선을 모조리 격파하여 대승리를 거두며 완전히 제해권(制海權)을 장악 조정에서는 위의 공으로 그에게 정헌대부(正憲大夫)의 벼슬을 주고 최초로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에 임명 그러나 순신의 공을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1595년(선조 29) 2월 서울에 압송 고문 끝에 사형을 받게 된 것을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정탁(鄭琢)의 반대로 사형이 면제되어 4월 1일 권률(權慄)의 휘하에서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되었다. 12척의 배로써 8월 15일 적의 대부대를 명량(鳴梁)에서 대파하고 11월 18일 노량(露粱)에서 적을 섬멸하였으나 적의 유탄을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마치니 이때 나이 54세였다. 순신은 지극한 충성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으로 보아 위대한 인물이니 명(明)나라 진인(陳璘)도 그를 평하여 <有經天緯地之才 補天浴日之功>이라 하여 그를 칭찬하였다. 선조는 특사를 보내어 이를 조문 시호를 내리고 선무일등공신(宣武一等功臣)의 호를 주어 덕풍군(德豊君)에 봉했으며 우의정 및 좌의정을 추증하였다. 고향에는 충신문(忠臣門)을 세우고 정조(正祖) 때에는 영의정을 추증 임금이 친히 지은 비문을 하사하였다.

 

※ ④ 조헌(趙憲)∶서기 1544(중종 39)∼1592(선조 25)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의병장. 자(字)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 시호는 문열(文烈). 본관은 백천(白川). 응지(應祉)의 아들. 1567년(명종 22) 식년 문과에 급제 교서관(校書館)에 속했다가 정주교수(定州敎授)와 파주(坡州)교수 1572년(선조 5) 홍문관정자(正字)로 왕의 불공(佛供)이 옳지 않음을 극간(極諫)하다 파면 1574년 질정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그곳 문물‧제도의 따를만한 것을 조목조목 적어 「동환봉사(東還封事)」를 내놓았다. 뒤에 박사(博士) 호‧예 이조좌랑 전적(典籍) 감찰 등을 거쳐 통진(通津)현감으로 잘 다스리다가 법을 어긴 내노(內奴)를 취조중 장살(杖殺)하고 부평(富平)에 귀양갔다. 1581년(선조 14) 공조좌랑에 임명 전라도사(全羅都事)로 나가 소(疏)를 올려 연산군 때 공안(貢案)으로 민폐가 되는 점을 개혁할 것을 청하고 율곡(栗谷)등 어진 선비들과 깊이 사귀었다. 1582년 보은(報恩)현감으로 소를 올려 노산군(魯山君∶단종)의 후사(後嗣)를 세울 것과 사육신(死六臣)의 정문(旌門)을 세워 표충(表忠)할 것을 청하고 1586년 공주제독(公州提督)이 되어 선비들의 규율을 엄하게 하고 앞장서서 실천하니 원근(遠近)에서 찾아드는 선비가 많았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沃川)에서 의병을 일으켜 보은의 통로를 차단하는 등 공이 있었으나 순찰사(巡察使) 윤선각(尹先覺)의 시기를 받고 홍성(洪城) 지방에 옮겨가서 의병을 모아 승장(僧將) 영규(靈圭)와 금산(錦山)에서 전라도로 침입하려는 적과 싸우다 700 의병과 함께 전사(戰死)했다. 율곡의 문인(門人) 중 가장 뛰어난 학자의 한 사람으로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을 지지하여 율곡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켰다.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행조(行朝)에서는 봉상첨정(奉常僉正)에 임명 이에 또 이조참판동지경연 의금부춘추관사(吏曹參判同知經筵 義禁府春秋館事)에 추증 1604년(선조 37) 이조판서를 가증(加贈)하고 그 사당이 설립 1609년(광해군 1) 표충(表忠)이라는 액(額)이 하사 1663년(현종 4) 고경명(高敬命)‧류팽로(柳彭老)와 함께 모신 금산 순의단(殉義壇)에 액(額)을 하사 1734년(영조 10) 일찌기 그가 질정관(質正官)으로 있던 1574년(선조 7)에 수사(手寫)한 「조천록(朝天錄)」이 왕명으로 간행 1754년(영조 30) 영의정이 추증 뒤에 공자묘(孔子廟)에 함께 모셨다. 그는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임진사충신(壬辰四忠臣)의 하나다.

 

※ ⑤ 권률(權慄)∶1537(중종 32)∼1599(선조 32) 조선 선조 때의 도원수.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모악(暮嶽). 시호는 충장(忠莊). 본관은 안동(安東). 철(轍)의 아들. 1582년(선조 15) 식년(式年) 병과(丙科)에 급제 예조좌랑‧호조정랑의 벼슬을 지냈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광주(光州)목사로 군병을 모집하여 방어사 곽영(郭嶸)에 예속되었다. 용인(龍仁)싸움에서 패했으므로 다시 광주(光州)에 가서 천여 명의 군병을 모집하여 남원(南原)싸움에서 적을 대파하고 나주(羅州)목사가 되어 부임전에 전라도순찰사가 되었다. 전주에서 병사 만 여명을 인솔하고 수원 독산(禿山)에 진치고 적의 서진(西進)을 막았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어검을 하사하여 군율을 엄정하게 하였다.

행주산성(幸州山城)의 싸움에서는 2천 3백명의 관군과 오백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왜병 2만 4천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대첩(大捷)의 공으로 6월에 도원수(都元帥)가 되어 전군(全軍)을 지휘 1596년 충청도관찰사에 취임하였고 다시 도원수가 되어 어마(御馬)의 하사(下賜)를 받았다. 죽은 뒤 전공으로 영의정을 추증하고 영가부원군(永嘉府院君)의 추봉(追封)을 받았다.

 

※ ⑥ 김덕령(金德齡)∶1567(명종 22)∼1596(선조 29)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자(字)는 경수(景樹) 시호(諡號)는 충장(忠壯). 본관은 광산(光山). 붕섭(鵬燮)의 아들. 어려서 글을 배워 장성하면서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門下)에서 수학하였다. 1593년(선조 26) 담양(潭陽)에서 의병을 일으켜 정돈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된 후 권율(權慄)의 휘하에 들어가서 왜병의 호남 진출을 막고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와 협력하여 여러 차례 걸쳐 대군을 무찔렀다. 호익장군(虎翼將軍)이라고 사호(賜號)를 받았으나 1595년(선조 28) 이몽학(李夢鶴)의 난 때에 적의 책략으로 적장과 통한다는 말이 나와 서울로 압송되어 고문에 지쳐 옥중에서 죽었다. 1681년(숙종 7) 그 억울함이 알려져 병조판서로 추증(追贈)되고 광주(光州) 의열사(義烈祠)에 배향(配享)되고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20) 사람과 귀(鬼)가 같은 길로 펼치다

 

曰 戊子之歲 余侍坐先生 先生偶然歎曰 余觀天象

왈 무자지세 여시좌선생 선생우연탄왈 여관천상

東洋不過五六年 大有兵火 五十年間 人不得安靜之志

동양불과오륙년 대유병화 오십년간 인부득안정지지

然 西洋不過三十年 一大革命 人畜多傷 其時東洋

연 서양불과삼십년 일대혁명 인축다상 기시동양

別無大損 年當赤鼠 天下大一動之象 而繼此五年

별무대손 년당적서 천하대일동지상 이계차오년

선人鬼同路矣 生者幾何 汝亦知之乎 余起而問救人之道

선인귀동로의 생자기하 여역지지호 여기이문구인지도

 

※ 鼠∶쥐 서, 우물쭈물할 서, 산이름 서, 좀도둑 서, 근심할 서.∶베풀 선, 구할 선, 펼 선, 굳셀 환.

 

왈(曰) “무자(戊子)의 해에 나는 스승(자하진인)을 모시고 앉았는데, 스승께서 뜻밖에 마치 탄식하여 말씀하시옵기를 ‘내가 하늘의 상(象)을 관찰하니 동양(東洋)은 30년을 지나지 않아 큰 병화(兵火)가 있으며 50년간 사람들이 편안하고 조용한 뜻을 얻지 못한다. 그리고 서양(西洋)은 30년을 지나지 못하여 하나의 큰 혁명(革命)이니 사람과 가축이 많이 다치며 그 때 동양(東洋)은 큰 손해는 별로 없고 병자(丙子)년에 당하면 온누리에 큰 하나의 움직이는 상(象)이며 이어서 5년이 되면 사람과 귀(鬼)가 같은 길을 구하도다. 살아있는 사람은 어떠한가? 너는 또한 알겠느냐?’하셨다. 나는 일어나 사람을 구하는 길(道)을 여쭈었다.”

 

(21) 양백(兩白)을 알고 삼풍(三豊)을 깨달아야 산다

 

先生曰 使人人 知兩白 覺三豊則 可以生矣

선생왈 사인인 지양백 각삼풍즉 가이생의

余曰 兩白何辭

여왈 양백하사

 

스승(자하―진인)님이 말씀하시되 “사람들이 양백(兩白∶似仙‧非仙 또는 浮金‧冷金)을 알고 삼풍(三豊∶精‧氣‧神)을 깨달으면 가히 살리라.”

내가 말하되 양백(兩白)이 무슨 말입니까?

 

※양백(兩白) : 일적십거도(一積十鉅圖)에서 흑점 45는 소백(小白)이며 그 으뜸이 소백산(小白山)이다. 또 백점 55는 태백(太白)이며 그 으뜸이 태백산(太白山)이다.―『혼돈과 파천왕』최동환 저(著)―

※ 삼풍(三豊) : 곧 삼천(三天)으로 일적십거도의 중앙36궁이며 양백사이에 삼풍 즉 삼천이 자리하면 양지(兩地)가 생기며 흑점30으로 역경의상경 30괘이며 백점 34로 역경의 하경 34괘가 생긴다.―『천부경의 예언최동환론』 저(著)

 

(22)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라

 

先生曰 此乃洞賓之遊 靑鶴之所 以驚世人 使知道說

선생왈 차내동빈지유 청학지소 이경세인 사지도설

是似仙 非仙之道 乃神敎言之三豊. 乃有後人藏穀之岐

시사선 비선지도 내신교언지삼풍. 내유후인장곡지기

而待歲事 實是指勤農 乃生之敎.

이대세사 실시지근농 내생지교.

 

※ 岐∶두갈래 기, 둥둥떠다닐 기.

 

스승(자하진인)님이 말씀하시기를 “여동빈(呂洞賓)하고 청학(靑鶴)이란 곳에서 노닐면서 세상 사람들을 경종(警鍾)케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도(道)를 알게끔 말하니 이것이 신선같으나 신선의 도(道)가 아니며 이에 신교(神敎)의 말씀의 삼풍(三豊∶精‧氣‧神)은 뒤에 사람이 곡식을 감추는 갈림길에서 다음해를 기다리니 진실로 이것이 부지런히 농사짓는 것을 가리키며 살아가는 가르침이니라.” 하셨다.

 

(23) 정기신(精氣神)으로 진리(眞理)에 들다

 

曰 人不講三寶之終 終難入於眞理 而自墜于坑

왈 인불강삼보지종 종난입어진리 이자추우갱

 

※ 墜∶떨어질 추, 잃을 추. 坑∶빠질 갱, 묻을 갱, 구덩이 갱.

 

가로되 “사람이 정(精)‧기(氣)‧신(神)의 끝마침을 강의하지 않으면 마침내 어렵게 참 도리(眞理)에 들어오며 스스로 구덩이에 떨어지도다.”

 

※ 삼보(三寶)∶선천(先天) 삼보와 후천(後天) 삼보가 있으니 선천삼보(先天三寶)는 선천진일지신(先天眞一之神) 선천진일지기(先天眞一之氣)와 선천진일지정(先天眞一之精)이며 후천삼보(後天三寶)는 사려신(思慮神) 호흡기(呼吸氣)와 교감정(交感精)이다. 선천삼보는 단(丹)을 가히 만들고 후천삼보는 능히 단(丹)을 만들 수 없다.

 

(24) 자하도(紫霞島)란?

 

曰 人不知紫霞島之如何 則可爲正墻面而立

왈 인부지자하도지여하 즉가위정장면이립

 

※ 霞∶노을 하, 멀 하.

 

가로되 “사람이 자하도(紫霞島)가 어떠한가를 알지 못하니 곧 정면에 담을 보고 서있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25) 진시(眞市)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曰 人不辯眞市 假佛之理 其餘不足論

왈 인불변진시 가불지리 기여부족론

 

가로되 “사람이 진시(眞市)를 말할 수 없으며 거짓 부처의 이치의 그 나머지는 논하기는 넉넉하지 못하다(모자람).”

 

(26) 사람이 참되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라

 

曰 人只做浮生 底事其將來何

왈 인지주부생 저사기장래하

 

※ 做∶지을 자, 지을 주.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덧없는 인생을 짓고 무슨 일을 그 장래(將來)가 어떠한가?”

 

(27) 동심(童心)인 천진(天眞)으로 돌아가라

 

曰 衆生愚駭 欲溯本源者鮮

왈 중생우해 욕삭본원자선

 

※ 駭∶놀랄 해, 북울릴 해. 溯∶빨래한물 삭, 물이름 삭, 거슬러 올라갈 소.

 

말씀하시기를 “중생(衆生)이 어리석게 놀래니 주장이 되는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사람은 드물다.”

 

(28) 선조(先祖)의 도(道)를 알고 행하라

 

曰 人不知其祖先之道 而只從他 便是風痲漢

왈 인부지기조선지도 이지종타 편시풍마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그 선조(先祖)의 도(道)를 알지 못하고 다만 다른 것을 쫓는다(따른다). 이것이 풍마(風魔)①한 놈이다.”

 

※ ① 풍미한(風痲漢)은 잘못. 풍마한(風魔漢)이 옳음. 미친놈 실성한 놈, 정신이 이상해진 놈.

 

(29) 술과 색(色)을 경계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알맞게 하라

 

曰 人之長生之妙 戒酒色節飮食 最上 第一要法

왈 인지장생지묘 계주색절음식 최상 제일요법

在生食一道 後天自然從先天法者衆矣

재생식일도 후천자연종선천법자중의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장생(長生)①의 묘는 술과 계집을 경계함(삼가함)과 먹고 마시는 것을 알맞게 하는 것이 맨 위 가장 좋은 중요한 법(法)이니 식물을 날 것으로 먹는 하나의 길에 있다. 뒤에 세상에는 자연(自然)에 쫓아 선천(先天)②의 법을 따르는 사람이 여럿일 것이다.”

 

※ ① 장생(長生)∶장구(長久)히 삶. 오래도록 삶. 육신(肉身)의 장수(長壽) 영(靈)의 불멸(不滅) 사업의 유전(遺傳)을 합하여 일컫는 말. 불구속지득장생(不求俗地得長生: 세속의 욕망을 구하지 말고 장생을 얻으라. -증산도 도전)

※ ② 선천(先天)∶생성(生成)된 이전(以前).

 

(30) 공부하는 사람은 태을(太乙)을 아니할 수 없다.

 

曰 太乙 天下人測正神 做工者 不可不善呼名

왈 태을 천하인측정신 주공자 불가불선호명

 

※ 做∶지을 주.

 

말씀하시기를 “태을(太乙)①은 온누리의 사람이 올바른 신(神)을 헤아림이다. 공부 법을 만들은 사람은 아니할 다른 도리가 없으므로 마땅히 좋은 이름을 부를 것이다.”

 

※ ① 태을(太乙)∶㉠ 태일(太一‧泰一) ㉡ 태을성(太乙星). 중국 철학에서 천지 만물의 출현 또는 성립의 근원. 우주의 본체. 도교(道敎)에서 천(天)을 주재하는 신(神)의 이름 또는 그 천신(天神)이 살고 있다고 여겨지는 별. 곧 태을성, 『태을신수(太乙神數)』.

 

(31) 평생(平生) 상제(上帝)를 공경하라

 

曰 人之平生做工 敬上帝如對第一要法

왈 인지평생주공 경상제여대제일요법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일을 하는 것은 상제(上帝)①를 대하는 것과 같이 공경함이 가장 좋은 중요한 법이다.”

 

※ ① 상제(上帝)∶옥청천(玉淸天)의 원시천존(元始天尊). 옥황상제.

 

(32) 정(正)으로써 하나(一)가 된다

 

曰 人之工夫 以正爲一 衆愚不知要領 只從衆口 殆若一犬

왈 인지공부 이정위일 중우부지요령 지종중구 이약일견

吠月 衆犬吠聲

폐월 중견폐성

 

※ 吠∶짖을 폐, 땅이름 폐.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공부는 정(正)으로써 하나(一)가 된다. 중생(衆生)들이 어리석어 일을 하는 데에 꼭 필요한 묘리(妙理)를 알지 못하고 다만 여러 입(뭇입)에 따르는 것이니 위태롭다. 만일 개 한 마리가 달을 보고 짖으면 뭇 개들이 따라서 짖다(진상도 모르는 채 남따라 말하다).”

 

(33) 겉은 화려하나 실속은 없다

 

曰 自麗中至今 上無其君 下無其臣 但知軋轢爲尙

왈 자려중지금 상무기군 하무기신 단지알력위상

今人言必稱宋毁元 然 乃不過是知事浮華 從風無覺

금인언필칭송훼원 연 내불과시지사부화 종풍무각

元是吾族中人也 可悲

원시오족중인야 가비

 

※ 軋∶앗을 알, 버틸 알, 수레 삐걱거릴 알. 轢∶수레바퀴에 치일 력, 서로 부닥칠 력.

 

말씀하시기를 “고려(高麗) 중기(中期)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위로는 그 임금이 없고 아래로는 그 신하가 없었다. 다만 서로 의견이 맞지 아니하여 사이가 좋지 않고 자주 다툼을 숭상하게 된 것을 알겠다.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말을 할 때마다 반드시 송(宋)나라를 무너뜨린 것은 원(元)나라라고 한다. 그러나 비로소 이것이 겉은 화려하나 실속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데 지나지 못한다. 바람을 쫓는 것이어서 깨달음이 없다. 먼저 이것이 우리 겨레 안의 사람이다. 가히 슬프다.”

 

(34) 군졸이 공자묘를 지키다

 

曰 元本是金 而至粘沒鳴時 橫行支那諸州 破宋慶府時

왈 원본시금 이지점몰명시 횡행지나제주 파송경부시

(今充州府) 衍聖公孔端 反避亂南去 而軍卒

(금충주부) 연성공공단 반피난남거 이군졸

欲掘孔子墓者 卽斬之 告於衆 曰孔子時中 聖人不可犯也

욕굴공자묘자 즉참지 고어중 왈공자시중 성인불가범야

告示曰 若犯慶府 曲阜縣西北八里孔子墓者斬

고시왈 약범경부 곡부현서북팔리공자묘자참

此亦知道者也

차역지도자야

 

※ 粘∶붙을 점, 붙일 점, 끈끈할 점. 衍∶성할 연, 넓을 연, 물이넘칠 연, 벋을 연, 상자 연, 방자할 연, 놀 연, 걸찬 땅 연, 아름다울 연, 흐를 연. 掘∶팔 굴, 굴팔 굴, 우뚝할 굴, 뚫을 궐. 斬∶끊을 참 ,베일 참, 목베일 참, 죽일 참, 상복에 도련아니할 참, 거상입을 참.

 

말씀하시기를 “원(元)①나라 뿌리는 이것이 금(金)②나라이며 붙이여 생활을 꾸려나갈 방편이 없을 때 이르러 중국의 모든 고을을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여 송(宋)나라의 경부(慶府) (지금의 充州府)를 파할 때 구성공단(衢聖公端)이 도리어 난리를 피하여 남쪽으로 가게 되니 공자묘(孔子墓)를 파려고 하자 군졸(軍卒)이 곧 칼로 베고 여러 사람에게 고(告)하기를 ‘공자(孔子) 생존 할 때 성인(聖人)은 가히 범하지 못한다. ’ 고시(告示)하여 이르기를 ‘만일 경부(慶府) 곡부현(曲阜縣) 서북(西北) 8리(里) 공자묘(孔子墓)를 범하는 사람은 참(斬)한다. ’ 하였으니 이 또한 도(道)를 아는 사람이다.”

 

※ ① 원(元)∶중국 왕조의 하나. 13세기 중엽 몽고 민족이 중국에 침입하여 세운 나라. 다른 민족으로써 중원(中原)을 통일 지배한 최초의 나라임. 존속(A. D. 1271∼1368년간).

※ ② 금(金)∶퉁구스족계의 여진족(女眞族)에 의하여 건립한 왕조. 12세기 초 북만주에서 아골타(阿骨打)의 지도 아래 금조를 건국하고 이어 송(宋)을 멸하였음. 도읍은 회령(會寧) 뒤에 연경(燕京) 변경(卞京)으로 옮겼음. 9세(世)로 원(元)나라 태종(太宗)에게 망했음. 존속(A. D. 1115∼1234)

※ ③ 공문(孔門)∶공자(孔子)의 유학(儒學)을 믿고 따르는 학문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

 

(35) 돈을 허비하며 우상(偶像)을 숭배한다

 

曰 人情多私 空費良金 虛禱偶像者 多矣

왈 인정다사 공비양금 허도우상자 다의

此不過是誤落虛影子

차불과시오락허영자

 

※ 禱∶빌 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심정이 개인의 일(개인적인 성질)이 많으며 좋은 금(金)을 쓸데없는 비용을 하고 우상(偶像)①에게 헛되이 비는 사람이 많다.

이는 헛된 그림자에 잘못 떨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① 우상(偶像)∶나무‧돌 또는 쇠붙이 따위로 만든 신불(神佛)이나 사람의 상(像). 미신(迷信) 등의 대상이 되는 신(神). 하느님에 대하여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들어 낸 신(神)의 형상이나 개념.

 

(36) 살아있는 동안에 덕(德)을 닦아라

 

曰 近世所謂死而未榮者 都被欺於僧徒之浮說

왈 근세소위사이미영자 도피기어승도지부설

生時不修德 安敢望死后榮

생시불수덕 안감망사후영

 

말씀하시기를 “가까운 지난날의 세상에 이른바 죽어서 아직 영화하지 못한 것은 중[僧]들의 근거가 없는 소문에 모두 속임을 당한 것이며 살아있는 동안 덕(德)을 닦지 않고 어찌 감히 죽은 뒤에 영화를 바라겠는가?”

 

(37) 큰 도(道)는 중용(中庸)이며 진리이다

 

曰 大道無偏黨 只做底眞理

왈 대도무편당 지주저진리

말씀하시기를 “큰 도(道)는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고(중립의 태도를 가짐) 다만 진리(眞理)를 만든다(짓는다).”

 

(38) 생사(生死)는 자연의 도리이다

 

曰 人之生死 如雨而晴 晴而雨之 不過

왈 인지생사 여우이청 청이우지 불과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태어나고 죽음이란 비가 내리면 개이고 개이면 비가 내리고 하는 것과 같음에 지나지 않는다.”

 

(39) 도(道)란 음양(陰陽)이다

 

曰 古之人曰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以乾坤之理

왈 고지인왈 군자지도 조단호부부 이건곤지리

言道其實 陰陽不過

언도기실 음양불과

 

말씀하시기를 “옛 사람(子思)이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의 도(道)의 처음은 부부(夫婦)에서 만들어진다. ’는 까닭은 건곤(乾坤)의 이치이며 여기서 도(道)란 그 실제로 음양(陰陽)에 지나지 않는다.”

 

(40) 음양(陰陽)은 상하(上下)가 없는 일체(一體)이며 도(道)이다

 

曰 世俗 以夫重婦輕爲說 此不過各自尊之意 論陰陽之理

왈 세속 이부중부경위설 차불과각자존지의 논음양지리

無上下而 只是一體是道.

무상하이 지시일체시도.

 

말씀하시기를 “세상에 흔히 있는 풍속에서 지아비는 무겁고 지어미는 가볍다는 설(說)이 있으나 이는 각자 스스로 높이는 뜻에 지나지 않으며 음양(陰陽)의 이치는 논하면 위와 아래가 없으면 다만 이것이 한 몸(一體)이며 이것이 도(道)이다.”

 

(41) 온누리가 공전법(公田法)을 시행한다

 

曰 從玆而後 未及一甲 天下大同 用公田法矣

왈 종자이후 미급일갑 천하대동 용공전법의

 

말씀하시기를 “이 뒤의 60년이 못미치어 온누리가 번영하여 화평하게 되면 공전법(公田法)①을 쓰게 되리라.”

 

※ ① 공전법(公田法)∶소유권(所有權)과 수조권(收租權)이 국가 기관에 있는 토지제도.

 

(42) 삼정(三精)과 구령(九靈)을 수련하다

 

曰 人身之最可修煉 三精九靈

왈 인신지최가수련 삼정구령

 

말씀하시기를 “사람 몸으로 가장 옳게 수련할 것은 삼정(三精)①과 구령(九靈)②이다.”

 

※ ① 삼정(三精)∶도문(道門)에서는 인간(人間)은 태청(太淸) 양화(陽和)의 기(氣)로 이루어진 태광(台光) 음기(陰氣)가 변하여 이루어진 상령(爽靈) 잡다(雜多)한 음기(陰氣)로 이루어진 유정(幽精)등 세가지 혼(魂)이 있어 수련자(修煉者)는 음잡(陰雜)의 기(氣)를 제어(制御)하여 인체(人體)에 청양(淸陽)의 기(氣)가 늘 머물도록 하여 늙지 않는데에 이르게 하는 섭양(攝養)의 법(法)이 있다. <태상제삼시구충보생경(太上除三尸九蟲保生經)>에 의하면 삼정(三精) 또는 삼혼(三魂)은 앞에서 언급(言及)한 바와 같이 상령(爽靈)‧태광(台光)‧유정(幽精)을 말하는데 “간장(肝臟) 밑에 사람의 모습을 하고 푸른 옷(靑衣)속에 누런 옷(黃衣)을 걸치고 있으며 매월 초 3일‧13일‧23일 저녁이 되면 밖에 나가 노니는데 응당히 위를 향하여 반듯이 눕고 베개를 없애고 발을 펴고 손을 가슴위에서 교차하고 눈(眼)을 합하고 숨을 멈추고 세번 이(齒)를 마주 치고 이렇게 세번을 하면 심중(心中)의 붉은 기(赤氣)가 커져 달걀처럼 되고 인후(咽喉)의 안[內]으로부터 쫓아 진광(眞光)이 흩어져 나와 온몸을 덮는 것처럼 하여 미열(微熱)이 느껴질때 삼정(三精)의 이름을 부르고 진언(眞言)을 외우면 혼신(魂身)이 안정(安靜)되고 재환(災患)이 일어나지 않고 사마(邪魔)가 복종하고 몸은 편안해지고 도(道)가 이루어지고 영원히 우고(憂苦)가 없어지리라.” 하였다.

옥추보경(玉樞寶經)안의 백옥섬(白玉蟾)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태광(台光)은 남녀가 서로 성교(性交)하여 아이를 갖는데서 비롯함이며 상령(爽靈)은 혼(魂)이요 유정(幽精)은 넋(魄)이다.”하였다.

 

※ ② 구정(九精)∶사람의 몸안의 본신(本神)이니 천생(天生)은 현빈(玄牝)이며 무영(無英)은 젖먹이 유아(乳兒)이며 현주(玄珠)는 곡신(谷神)이며 정중(正中)은 니환부인(泥丸夫人)이며 혈단(孑丹)은 영대신(靈臺神)이며 회회(回回)는 귀권신(貴券神)이며 단원(丹元)은 심신(心神)이며 태연(太淵)은 신궁(腎宮)이며 영동(靈童)은 오장(五臟)을 다스리는 신(神)이다.”

 

(43) 기(氣)를 타는 것은 신(神)과 기(氣)이다

 

曰 人之所乘氣 龍虎而已

왈 인지소승기 용호이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기(氣)를 타는 것은 용(龍∶神)과 호(虎∶氣)일 따름(뿐)이다.”

 

※ 용(龍∶神)과 호(虎∶氣)가 서로 교합하여 심장(心臟)의 정양(正陽)의 기(氣)를 캔다.

 

(44) 옛 역법(曆法)은 천지인(天地人)으로 나누었다

 

曰 古人之曆法 各分而天地人 三要而已

왈 고인지역법 각분이천지인 삼요이이

 

“말씀하시기를 옛사람들의 역법①은 “하늘‧땅‧사람 세 가지 중요한 것으로 나누었을 뿐이다.”

 

※ ① 역법(曆法)∶천체(天體)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基準)하여 절후(節候)와 날짜를 정하는 방법. 책력(冊曆)을 만드는 방법.

 

(45) 온누리가 앞으로 천력(天曆)을 쓸 것이다

 

曰 天地有而人爲主 故人曆最先 天地繼後 後又用人曆

왈 천지유이인위주 고인역최선 천지계후 후우용인력

更用天曆 通萬古循環之理 後天之先天 在此矣

갱용천역 통만고순환지리 후천지선천 재차의

天下將用天曆而已 西方之曆 本於東圓天之理

천하장용천역이이 서방지역 본어동원천지리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이 있어 사람이 주인이 되며 그러므로 사람의 역(曆)이 가장 먼저 나와 하늘과 땅의 뒤를 잇고 뒤에 또 인력(人曆)을 사용하였고 다시 천력(天曆)을 사용하니 한없이 오랜 세월을 통하여 사물(事物)이 성하고 쇠하여짐이 서로 바뀌어 도는 이치를 통하였으니 후천(後天)①과 선천(先天)②에 있다. 온누리가 앞으로 천력(天曆)③을 쓸 뿐이며 서방(西方)의 역(曆)은 본시 동방(東方)의 둥근 하늘의 이치이다.”

 

※ ① 後天∶㉠ 생성(生成)된 이후(以後). ㉡ 성질 체질 질환 등을 태어난 후에 여러 가지 경험이나 지식에 의하여 지니게 된 것. ㉢ 가을개벽 이후의 세상. 선천 5만년에 대비되어 후천 5만년이라고 한다.

※ ② 선천(先天)∶㉠ 생성(生成)되기 이전(以前). ㉡ 성격 체질 병 등을 날 때부터 몸에 지니고 있음. ㉢ 봄개벽 이후를 선천이라고 한다.

※ ③ 천력(天曆)∶태양력(太陽曆). 지구(地球)가 해의 둘레를 1회전(回轉)하는 동안을 1년으로 한 달력. 신력(新曆). 줄여서 양력(陽曆).

 

(46) 혼춘(渾春)과 양평(壤平) 사이에 도읍이 정해진다

 

曰 世人口稱鷄龍 是將國都 此皆不知天理而妄誕說

왈 세인구칭계룡 시장국도 차개부지천리이망탄설

後天國都 渾椿壤平間 不知天道者迷矣

후천국도 혼춘양평간 부지천도자미의

 

※ 誕∶클 탄, 이에 탄, 기를 탄, 속일 탄, 넓을 탄, 허탄할 탄, 탄생할 탄, 방탕할 탄. 渾∶흐릴 혼, 오랑캐 혼, 섞을 혼, 혼후할 혼. 椿∶참죽나무 춘, 대추나무 춘, 어르신네 춘.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이 입으로 충청도 계룡산(鷄龍山)을 일컬어 이것이 장차 나라의 도읍지라고 하나 이 모두다 하늘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망녕되이 속이는 말이다. 후천(後天) 세상의 나라 도읍은 혼춘(渾春)과 양평(壤平)사이에 정해질 것이다. 하늘의 도(道)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미혹할 것이다.”

 

(47) 제3파 협야종(挾野種)에서 천황(天皇)들이 나온다

 

鷄龍之名 不透理 亦難曉 天之終五說 天五地五人五

계룡지명 불투리 역난효 천지종오설 천오지오인오

天地人正數 不可違 鷄龍乃東一之時 神道尊崇之地

천지인정수 불가위 계룡내동일지시 신도존숭지지

神敎化師 以國師 居而以敎導天下之神都地

신교화사 이국사 거이이교도천하지신도지

非王子都之地 先生旣有敎

비왕자도지지 선생기유교

曰 後天開拓神祖故彊 必是天皇 第三派挾野種在焉

왈 후천개척신조고강 필시천황 제삼파협야종재언

 

※ 彊∶지경 강, 갈피 강, 굳셀 강, 변방 강, 한끝 강. 挾∶낄 협, 가질 협, 도울 협, 감출 협, 품을 협, 띠 협.

 

계룡(鷄龍)의 이름은 이치에 통하지 못하며 또한 깨닫기 어렵다. 하늘의 다섯으로 끝마치는 설(說)이니 천오(天五) 지오(地五) 인오(人五)이니 하늘‧땅‧사람에 바른 수(正數)이니 가히 어길 수 없다. 계룡(鷄龍)은 비로소 동방(東方) 한 때이니 신도(神道)를 높이 숭앙하는 땅(곳)이다. 신교(神敎)는 국사(國師)로써 스승을 삼고 신도지(神都地)에 살면서 온누리를 가르쳐 이끌어 주니 임금의 도읍의 곳이 아니다. 선생(자하진인)께서 이미 가르침이 있었으니 말씀하시기를 “후천(後天)에는 신조(神祖)의 옛 영토(領土)를 개척(開拓)하니 반드시 이것이 천황(天皇)이며 제3파의 협야종(挾野種)에 있다.” 하였다.

 

(48) 1만 2천 도인이 출세 대교주(大敎主) 출현

 

曰 後天井 有萬二千道 有萬二千人 人能日行萬里

왈 후천정 유만이천도 유만이천인 인능일행만리

飛揚天地如鳶飛 處處生不夜城 然後 眞正大敎主出矣

비양천지여연비 처처생불야성 연후 진정대교주출의

 

※ 鳶∶솔개 연, 연 연.

 

말씀하시기를 “후천(後天) 맨 처음에 1만2천 도인(道人)이 출세하며 이때에는 사람마다 하루에 만리를 가는데 천리를 날아 다니는 것이 솔개가 하늘을 날으는 모양 같더라. 곳곳에 불야성(不夜城)①을 이루며 참되고 바른 대교주(大敎主)가 출현하리라.”

 

※ ① 불야성(不夜城)∶밤에도 대낮같이 밝고 번화한 곳.

 

(49) 서리를 밟으면 겨울이 닥치니라

 

曰 大明之萌 根於金之用 大明曆之日 天道之機微

왈 대명지맹 근어금지용 대명력지일 천도지기미

未嘗不 履霜而堅氷至矣

미상불 이상이견빙지의

 

※ 履∶가죽신 리, 신을 리, 밟을 리 ,녹 리. 萌∶풀싹 맹, 비롯할 맹, 맹동할 맹, 밭갈 맹, 움직이지 않는 모양 맹.

 

말씀하시기를 “환하게 밝은 싹은 가을 결실(結實) 기운[金]을 쓰는 때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환하게 밝은 태양력(太陽曆)을 쓰며 하늘의 도(道)와 기틀이 희미함이 아닌게 아니라 서리를 밟으면 앞으로 물이 얼 겨울이 닥치니라.”

 

(50) 우리 종교가 세계의 제일의 진리가 된다

 

曰 惟我倧敎之 將爲天下一 其機微 萌於仁祖也

왈 유아종교지 장위천하일 기기미 맹어인조야

 

※ 倧∶한배 종, 신인 종.

 

말씀하시기를 “오직 우리의 종교가 장차 온 누리의 제일의 진리가 되니 그 기틀은 어진 조상으로부터 싹 텄다.”

 

(51) 묵묵히 앉아 맑은 맘으로 천리(天理)를 체득(體得)하라

 

曰 修養之法 不在多言 但黙坐澄心 體認天理 自然無一毫

왈 수양지법 부재다언 단묵좌징심 체인천리 자연무일호

私欲之發 斯眞是思皇 如此之久 充養完粹 無復圭角氣

사욕지발 사진시사황 여차지구 충양완수 무복규각기

 

※ 澄∶맑을 징, 술이름 징. 粹∶정할 수, 순수할 수. 圭∶홀규 일영표 규, 달 규, 저울눈 이름 규.

 

말씀하시기를 “맘과 몸을 단련하여 품성이나 지식이나 도덕을 닦는 법(法)은 수다스럽게 말이 많은데 있지 않고 다만 말 없이 조용히 앉아 맑은 맘으로 천지(天地) 자연(自然)의 이치를 인식(認識)①하여 저절로 사사로이 하려하는 것이 한 개의 가는 털(극히 작은 정도) 만큼도 없게 하고 이 참됨으로 이것이 황제를 생각함이니 이와같이 오래되면 기르는 것이 가득차서 완전히 순수하여 다시는 규각(圭角)②의 기(氣)가 없을 것이다.”

 

※ ① 인식(認識)∶㉠ 어떤 사항에 관하여 분명히 알고 그 뜻을 바로 이해하는 일. ㉡ 심리학에서는 대상을 감지(感知)하고 이것을 분별 판단하는 의식의 작용. ㉢ 철학에서는 이성(理性)에 의하여 사물의 성질 사물간의 관계에 관하여 바른 판단을 내리는 일.

※ ② 규각(圭角)∶㉠ 물건이 서로 들어맞지 않음. ㉡ 말이나 행동이나 뜻이 서로 맞지 않음.

 

(52) 정성껏 삼일신고(三一神誥)」를 외우라

 

曰 修工之時 擇處山中 精室終日端坐 誦誥眞是要法

왈 수공지시 택처산중 정실종일단좌 송고진시요법

如此日久 精純之氣 達于面目

여차일구 정순지기 달우면목

 

※ 誥∶깨우쳐고할 고, 가르칠 고.

 

말씀하시기를 “도(道)를 닦는 공부를 할때는 산(山) 속에 고요한 집을 택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사이에 단정(端正)하게 앉아 삼일신고(三一神誥)①를 외우니 참으로 이것이 중요한 방법이며 이와 같이 날이 오래 되면 정순(精純)한 기가 얼굴과 눈에 사무치리라.”

 

※ ① 삼일신고(三一神誥)∶단군(檀君)이 가르쳤다고 하는 말. 이것을 신지(神誌)가 써 둔 고문(古文)은 모두 없어졌고 지금은 고구려 때 번역하고 발해(渤海)때 해석한 한문(漢文)으로 된 것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53) 여러 사람들이 지름길을 택함으로 마귀의 길로 떨어진다

 

曰 衆人每每多耽捷俓 墜於魔路

왈 중인매매다탐첩경 추어마로

 

※ 耽∶귀축처질 탐, 즐길 탐, 웅크리고볼 탐, 즐거운 탐, 길고 멀 탐, 그릇될 탐. 捷∶사냥할 첩, 이길 첩, 첩서 첩, 빠를 첩. 石巠??은 잘못 쓰임. 俓이 옳음. 곧을 경. 墜∶떨어질 추, 잃을 추. 魔∶마귀 마, 귀신 마, 마술 마.

 

말씀하시기를 “여러 사람들은 번번히(늘) 많이 빠른 것을 탐함으로 마귀의 길로 떨어진다.”

 

(54) 큰 도는 천지인신(天地人神)을 꿰뚫었다

 

曰 吾皇大道 卽天卽地卽人卽神 一貫而已 亘古亘今

왈 오황대도 즉천즉지즉인즉신 일관이이 긍고긍금

道說多岐 皆유乎此 範圍中

도설다기 개유호차 범위중

 

※囿∶엔담 유, 고루할 유, 논밭 유, 나라동산 육. 亘∶베풀 선, 구할 선, 펼 선, 굳셀 환, 뻗칠 긍, 통할 긍, 극진할 긍, 마침 긍.

 

말씀하시기를 “나의 옥황(玉皇) 큰 도(道)는 곧 하늘이며 곧 땅이며 곧 사람이며 곧 신(神)이니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일을 꿰뚫을 뿐(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통하여 도(道)의 설명은 갈림길이 많으나 모두다 이 범위(範圍) 가운데에 있다”

 

(55) 승천하신 단군과 기자는 신(神)으로 변함

 

曰 世人稱 檀君墓 箕子墓 皆是衣履之葬 實非體魄地

왈 세인칭 단군묘 기자묘 개시의리지장 실비체백지

化神升天之人 肉體不脫也 而與天地共矣 不知者

화신승천지인 육체불탈야 이여천지공의 부지자

以此說歸誕中

이차설귀탄중

 

※ 箕∶별이름 기, 키 기, 바람의신 기, 걸터앉을 기. 魄∶넋 백, 넋잃을 박, 넋잃을 탁.

 

말씀하시기를 「‘단군묘(檀君墓)’ ‘기자묘(箕子墓)’를 말하나 이것은 옷과 신발을 장사지낸 것이며 두 분은 신(神)이 되어 하늘에 올라 실지 송장을 남기지 않으신 분이기 때문에 하늘과 땅과 더불어 같으시다.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설(說)이 속이는 것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

 

(56) 정기신(精氣神)의 참을 닦아 기르라

 

曰 人之命 都不有定數 殤者夭者 莫不由乎

왈 인지명 도불유정수 상자요자 막불유호

衆之不得其養 三寶之眞

중지부득기양 삼보지진

 

※ 殤∶어려서죽을 상. 夭∶어여뿔 요, 얼굴빛 화할 요, 무성할 요, 재앙 요, 일찍 죽을 요, 굴할 요, 배속에 든 아이 요, 끊어 죽일 오, 어릴 오.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목숨은 모두 정해진 수(數)에 있지 않으니 어려서 죽는 사람이 있고 일찍 죽는 사람이 있으니 뭇 사람들이 그 정기신(精氣神) 세 보배의 진리를 수양(修養)하는 방법(方法)을 얻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가?”

 

(57)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삿된 것이 침범한다

 

曰 大道有正邪 何有侵被邪者 其心先不正

왈 대도유정사 하유침피사자 기심선부정

故 世人之做出邪說者 總是心病

고 세인지주출사설자 총시심병

 

말씀하시기를 “대도(大道)는 정(正)과 사(邪)가 있으며 어째서 삿된 것의 침범을 받음이 있는가? 그 맘(心)이 먼저 바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설(邪說)을 만들어 내는 것은 모두 이것이 심병(心病)이다.”

 

(58) 선후천(先後天)의 바른 진리로 헤아리라

 

曰 先天後天 正理一揆.

왈 선천후천 정리일규.

 

※ 揆∶헤아릴 규, 법도 규, 벼슬 규.

 

말씀하시기를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의 바른 이치를 하나로 헤아린다.”

 

(59) 천부경의 도원(道源) 도훈(道訓)은 입도의 관건

 

神祖天符一部 修道者之一命脈 斯須之道源 道訓

신조천부일부 수도자지일명맥 사수지도원 도훈

入道之一關鍵

입도지일관건

 

※ 鍵∶열쇠 건, 수레굴대 건.

 

"신조(神祖)①의 천부(天符)② 한 부분은 도(道)를 닦는 사람들의 하나의 명맥(命脈)③이며 이는 모름지기 도원(道源)과 도훈(道訓)은 입도(入道)④의 하나의 관건(關鍵)이다."

 

※ ① 신조(神祖)∶신시(神市)의 제1세왕으로 환웅(桓雄) 또는 거발환(居發桓) 서역(西曆) B.C.3898∼3804로 재위 94년.

※ ② 천부(天符)∶천부경. 삼일신고(三一神誥) 참전계경(參佺戒經)과 더불어 신교 3대 경전에 속한다. 환웅의 명을 받고 천부경을 녹서(鹿書)로 신지(神誌)가 표기(表記)한 태백산에 있는 단군전비(檀君篆碑)를 최치원(崔致遠)님이 이두로 번역하였고 오늘날의 것은 묘향산에서 10년간 수도한 계연수(桂延壽)가 1916년에 암벽에 새겨진 내용을 발견하여 이듬해 대종교에 전하였다. 81자로 구성되었는데 이것의 연역이 360자로 이루어진 삼일신고이고 삼일신고의 귀납은 다시 이 경전이 된다고 한다.

※ ③ 명맥(命脈)∶㉠ 목숨과 혈맥(血脈). ㉡ 살아가는 데 요긴한 것. 목숨을 이어가는 근본. ≪전(轉)≫ 중요한 사물을 뜻함.

※ ④ 입도(入道)∶㉠ 불도(佛道)에 들어가는 일 또는 그 사람. ㉡ 도교(道敎)를 믿어 도사(道士)가 됨.

※ ⑤ 관건(關鍵)∶㉠ 빗장과 자물쇠. 열쇠. 문단속. ㉡ 사물의 중요한 부분.

 

(60) 수도자는 그림자도 부끄럽지 않다

 

曰 今人身爲惡 而祈福于物象 何福之有 可愧者此也

왈 금인신위악 이기복우물상 하복지유 가괴자차야

修道者之行 獨行不愧影 獨寢不愧衾而已

수도자지행 독행불괴영 독침불괴금이이  

 

※ 衾∶이불 금.

 

말씀하시기를 “지금 사람이 몸이 모질게 되는 것은 물상(物象)①에게 복을 빌면은 무슨 복(福)이 있겠는가? 이는 가히 부끄러운 것이다. 도(道)를 닦는 사람의 행동은 혼자서 길을 걸어가도 그림자가 부끄럽지 않고 혼자서 잠을 자도 이불이 부끄럽지 않을 따름(뿐)이다.”

 

※ 물상(物象)∶㉠ 물체의 모습. ㉡ 자연의 풍경(風景).

 

(61) 천자(天子)란 통일천하를 이룬 뒤에 말하라

 

曰 上古以降 中國與東方 勿論編史氏 不知天道之正 曰

왈 상고이강 중국여동방 물론편사씨 부지천도지정 왈

正統閏位 纂賊之說 區別甚矣 此皆不過自私其私也

정통윤위 찬적지설 구별심의 차개불과자사기사야

非正論 三代以後 稱天吏者無矣 國法異於私家之計

비정론 삼대이후 칭천리자무의 국법이어사가지계

宗支一片 區區爲王 非天命者 周末之西漢蜀 唐宋之後孫

종지일편 구구위왕 비천명자 주말지서한촉 당송지후손

稱帝稱王 難免列國例 盖天子之稱 統一天下然後說也

칭제칭왕 난면열국예 개천자지칭 통일천하연후설야

世人口稱 宋德隆盛云 汝曾聞於先生則

세인구칭 송덕융성운 여증문어선생즉

曰 宋不可稱有正統云 宋之區國時 金夏遼鼎足 不入貢

왈 송불가칭유정통운 송지구국시 금하요정족 불입공

亦是列國而已 所謂宋朝論臣 不過事纂朝之餘也

역시열국이이 소위송조논신 불과사찬조지여야

 

※ 纂∶책편찬할 찬, 모을 찬, 이을 찬. 蜀∶촉규화벌레(해바라기벌레) 촉, 큰닭 촉, 땅이름 촉. 遼∶멀 료, 강이름 료, 나라이름 료. 鼎∶솥 정, 바야흐로 정, 늘어질 정, 새로울 정, 마땅할 정, 세갈래 정. 宋∶송나라 송, 성[姓]송.

 

말씀하시기를 “오랜 예날 이후(以後)로 중국(中國)과 동방(東方)은 역사(歷史)를 편집(編輯)하여 엮는 분은 말할 것도 없이 천도(天道)가 바른(正) 것을 알지 못하였다.” 말씀하시기를 ‘정통(正統)과 정통(正統)이 아닌 왕위(王位)는 도적이라고 책을 편찬하여 견해나 주장하는 바로 서로 다름을 구별(區別)함이 심하다. 이는 모두 그 사사로움이 스스로(저절로) 사사롭게 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정론(正論)①이 아니고 삼대(三代)② 이후로 천리(天吏)③라고 일컫는 것은 없다. 나라 법(法)이 사삿집의 계획과는 다르다. 종중(宗中)에서의 종파(宗派)와 지파(支派)의 계통의 한 조각을 구구(區區)④히 왕(王)이 되나 하늘의 명(命)을 받은 것이 아니다.

 

주(周)나라 말(末)의 서쪽에 한촉(漢蜀)과 당(唐) 송(宋)의 후손(後孫)들이 황제(皇帝)라 일컫고 임금이라 일컫는 것이 여러 나라였는데 예(例)⑤를 면하기(벗기) 어렵다. 무릇 천자(天子)라 일컬음은 온 누리를 하나의 유기적(有機的)인 통일체로 되게 한 연후(然後)에 설(說)이다. 세상 사람들은 입으로 일컫기를 ‘송(宋)나라 덕(德)이 몹시 성하고 기운차게 일어났다’고 하나 너희들은 일찍이 스승(자하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송(宋)은 가히 정통(正統)이 있다고 일컬음은 옳지 않다’고 하셨으며 송(宋)이 한 구역의 나라였을 때 금(金)나라 하(夏)나라 요(遼)나라 세 나라가 같이 서로 벌여 대립(對立)하고 있었기에 조공(朝貢)⑥이란 옳지 않고 또한 이것이 여러 나라일 뿐(따름)이다. 이른바 송(宋)나라 조정의 신하를 논(論)하면 신하가 임금의 자리를 빼앗는데 남음이 지나지 않는 일이다.”

 

※ ① 정론(正論)∶이치에 합당한 의견이나 주장.

※ ② 삼대(三代)∶하(夏)‧은(殷)‧주(周).

※ ③ 천리(天吏)∶㉠ 천명(天命)을 받드는 관리(官吏)라는 뜻으로 꼭 천도(天道)를 행하는 덕(德)이 있는 제왕(帝王).

※ ④ 구구(區區)∶㉠ 견해나 주장하는 바가 서로 다름. ㉡ 구차하고 떳떳하지 못함. ㉢ 조잡하고 용렬함.

※ ⑤ 예(例)∶㉠ 세상에 널리 있는 흔한 것. ㉡ 본보기나 표준이 될만한 사물이나 현상. ㉢ 예의 형으로 쓰이어 이미 말한바 있는 바로 그의 뜻을 나타냄.

※ ⑥ 조공(朝貢)∶옛날 속국(屬國)이 종주국(宗主國)에게 때 맞추어 예물(禮物)로 물건을 바치던 일.

 

(62) 천하를 취함에 첫번째 덕(德)이고 두번째로 힘(力)이다

 

曰 丘瓊山所論 許衡比楊雄 然丘氏之說 萬萬無理

왈 구경산소론 허형비양웅 연구씨지설 만만무리

如此之人 何可加筆史書 王莽則世世漢臣 而纂漢故

여차지인 하가가필사서 왕망즉세세한신 이찬한고

楊雄之仕莽 後世鄙之也 元何比於莽 而論許衡耶

양웅지사망 후세비지야 원하비어망 이논허형야

元之得天下 毫無拘碍於宋與金而不 曰 宋之非義而

원지득천하 호무구애어송여금이불 왈 송지비의이

反論元氏耶 取天下者 有二道 一曰以德 二曰以力

반론원씨야 취천하자 유이도 일왈이덕 이왈이력

堯舜禹以德 湯武秦漢唐元以力 莽與魏晉宋 皆非其道耳

요순우이덕 탕무진한당원이력 망여위진송 개비기도이

 

※ 瓊∶붉은옥 경. 衡∶저울 형, 수레멍에 형, 눈퉁이 형, 옥형 형, 난간 형, 북두성의 가운데별 형, 산이름 형, 벼슬이름 형, 가로 횡. 莽∶추솔할 무, 풀우거질 망, 엽귀풀 망, 추솔할 망, 묵은풀 모. 鄙∶더러울 비, 더럽힐 비, 시골 비, 변방 비, 인색할 비, 비천할 비. 碍∶막힐 애, 거리낄 애. 堯∶높을 요, 멀 요, 요임금 요. 舜∶순임금 순, 무궁화 순. 禹∶하우씨 우, 성[姓] 우, 펼 우, 느지러질 우. 秦∶진벼 진, 진나라 진. 魏∶위나라 위, 대궐 위, 클 위, 우뚝할 위. 晉∶나아갈 진, 억제할 진, 꽂을 진, 나라이름 진, 괘이름 진. 宋∶송나라 송, 성[姓] 송.

 

말씀하시기를 “구경산(丘瓊山)①이 허형(許衡)②을 양웅(楊雄)③에 견주어 논(論)한 바이다. 그러나 구씨(丘氏)의 설(說)은 절대로 이치에 맞지 않으며 이와 같은 사람이 어찌 사서(史書)를 다시 붓을 대어 고치거나 보태거나 하는 것이 옳은가? 왕망(王莽)④이 대대(代代)로 한(漢)나라 신하로 한(漢)나라 역사를 지은 까닭이며 양웅(楊雄)의 벼슬은 왕망(王莽)과 뒷 세상의 비천(卑賤)할 것이다. 원(元)나라를 어찌 왕망(王莽)에게 견주며 허형(許衡)을 논(論)할 것이랴! 원(元)은 천하(天下)를 얻어 송(宋)과 금(金)나라에 거리낌이 전혀 없음이 아닌가?”

 

말씀하기를 “송(宋)나라의 옳지 않다라고 하나 반론(反論)할 것은 원씨(元氏)이다. 천하(天下)를 취한 것은 두 가지 길이 있으니 첫번째는 덕(德)으로써이고 두번째는 힘으로써이니 요(堯)‧순(舜)‧우(禹)는 덕(德)으로써이며 탕왕(湯王)‧무왕(武王)‧진시황(秦始皇)‧한고조(漢高祖)‧당태종(唐太宗)‧원(元)의 쿠빌라이(忽必烈) 등은 힘으로써이다. 전한(前漢)을 타도하고 신(新)나라를 세운 왕망(王莽)과 한말(漢末)에 조조(曹操)가 후한조(後漢朝) 최후의 황제인 헌제(獻帝)를 옹립한 위(魏)와 삼국(三國)의 위(魏)를 이어 신신(信臣) 사마염(司馬炎)이 세운 진(晉)과 동진(東晉)의 권신(權臣) 유유(劉裕)가 자기가 옹립한 공제(恭帝)의 선양(禪讓)을 받아 세운 송(宋)은 모두다 그 도(道)가 아니다.”

 

※ ① 구경산(丘瓊山)∶구준(邱濬). 중국 명(明)나라의 학자‧정치가. 광동성(廣東省) 경산현(瓊山縣) 출생. 자(字)는 중심(仲深). 호(號)는 경산(瓊山). 시호는 문장(文莊). 원래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1454년(경태 5) 진사가 된 후 서길사(庶吉士)에서 차차 벼슬이 올라 효종(孝宗) 때 예부상서(禮部尙書)가 되고 문연각대학사(文淵閣大學士)를 겸하여 정무에 참여 상서로서 내각에 들어간 것은 그가 처음이다. 특히 전고(典故)에 능통하였으며 정치가로서 경세(經世)의 뜻을 가지고 시폐(時弊)를 직언(直言)하여 황제를 잘 보필하였다. ≪영종실록(英宗實錄≫ ≪헌종실록(憲宗實錄≫을 편찬하였고 주자학(朱子學)에 정통(精通)하고 진덕수(陳德秀)의 저서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증보한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를 완성하였는데 그의 글들은 매우 웅혼장려(雄渾壯麗)하다.

 

※ ② 허형(許衡)∶1209∼1281 중국 원(元)나라 때의 주자학자(朱子學者). 자(字)는 중평(仲平). 호(號)는 노재(魯齋). 허난성(河南省) 필양(泌陽) 사람. 농민출신이었으나 학문에 정진 원나라 초기의 명신(名臣) 보묵(寶黙)에게 불로백가(不老百家)를 배우고 이어 도추(桃樞)에게 주자학을 배웠다. 이 두 사람의 추거(推擧)로 남송(南宋) 멸망 이전에 세조(世祖)를 받들었으며 후에 학계의 중진이 되었다. 오징(吳澄)과 함께 원나라의 2대 거유(巨儒)로 불렀다. 주자학의 실천에 힘쓴 사실은 저서 ≪노제전집≫ ≪노제심법(魯齊心法)≫에 잘 나타나 있다.

 

※ ③ 양웅(楊雄)∶B.C.53(55?)∼A. D. 18 중국 전한(前漢)말의 학자. 문인 사상가. 촉≪蜀∶사천성(泗川省) 성도(成都)≫ 사람. 자(字)는 자운(子雲). 청년시절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생각이 깊었다. 부귀와 명성에는 관심이 없고 사마 상여(司馬相如)와 굴원(屈原) 작품을 좋아하여 스스로도 부(賦)를 지었다. 굴원의 ≪이소(離騷)≫에 몹시 감격했으나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여 자살한 굴원의 삶에 반론을 펴서 유명한 ≪반이소(反離騷)≫를 저술했다. 41세에 처음으로 문재(文才)를 인정받아 성제(成帝) 때 궁정문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성제의 여행에 수행하며 쓴 ≪감천부(甘泉賦)≫ ≪하동부(河東賦)≫ ≪우렵부(羽獵賦)≫ ≪장양부(長楊賦)≫등은 화려한 문장이면서도 성제의 사치를 꼬집는 풍자도 잊지 않았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자신의 불우한 원인을 묘사한 ≪해조(解嘲)≫ ≪해난(解難)≫도 독특한 여운을 주는 산문(散文)이다. 학자로서 각 지방의 언어를 집성한 ≪방언(方言)≫ 역경(易經)에 바탕을 둔 ≪태현경(太玄經≫과 ≪논어(論語)≫의 문체를 모방한 ≪법언(法言)≫ 등을 저술 ≪법언≫에서는 왕도(王道)를 논하여 도덕정치를 역설했다. 당시의 학자들 중에는 그의 재능을 절찬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만년에 정권을 찬탈한 왕망(王莽)을 섬기고 새 정권을 찬미하는 문자을 썼고 괴뢰정권에 협조하였기 때문에 지조가 없는 사람으로 송학(宋學) 이후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그의 식견은 한(漢)나라를 대표하였다.

 

※ ④ 왕망(王莽)∶B.C.45∼A. D. 23 중국 전한(前漢) 말의 정치가. 한(漢)의 제위(帝位)를 빼앗아 ‘신(新)’왕조(A. D. 8∼24)의 건국자. 자(字)는 거군(巨君). 산동(山東) 출생. 중국 역사상 선양혁명(禪讓革命)의 방식을 최초로 현실화 하여 전한(前漢)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하여 신을 수립하였으며 ≪주례(周禮)≫에서 볼 수 있는 고문파(古文派)의 유교에 바탕을 두고 이상사회를 구현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한 제11대 황제인 원제(元帝)의 왕후인 왕(王)씨 서모의 동생인 왕만(王曼)의 둘째 아들이다. 원후가 낳은 자식이 성제(成帝∶재위 B.C.33∼B.C.7)로 즉위하자 왕씨 일족이 외척으로 대두하여 원후의 남동생 7명이 모두 열후(列候)에 봉해져 대사마(大司馬)의 직을 순차적으로 차지하며 군사권을 장악했다. 왕망은 부친이 일찍 죽어 왕씨 일족 중에서 혼자만 불우했는데 마침내 왕씨 내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여 성제 말년에 자신도 스스로 대사마가 되었다. B.C.7년 애제(哀帝)가 즉위하여 아들도 없이 갑자기 죽자 원후와 왕망은 쿠데타와 다름없는 수법으로 단숨에 실권을 쥐고 원제의 손자인 9세의 평제(平帝)를 옹립하여 국정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게 되었다.

 

A. D. 5년 평제를 독살하고 스스로 섭황제(攝皇帝)가 된 후 왕망의 왕조 찬탈(纂奪)의 의도가 본격화 되었다. 당시 지배적인 시대사조였던 천의(天意)는 서상(瑞祥)‧재이(災異)‧부명[(符命∶신비적인 형태를 수반하여 인간에게 제시되는 천명(天命)에 의해 인간계에 제시된다고 하는 참위설(讖緯說)]을 작위적으로 이용하여 마침내 9년에 스스로 천자의 자리에 올랐다. 왕망은 즉위 후 관제의 개혁 관명(官名)‧지명의 개칭 토지제도‧화폐제도의 개혁 상공업의 통제 등 복고적(復古的)인 여러 정책을 실시하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강대화된 각 고장 호족층(豪族層)의 대토지소유를 제한했고 일반 자영농민의 토지 상실에 따른 빈민화(貧民化)‧유민화(流民化)를 방지하는 등 전한말에 나타난 커다란 사회문제에 대응하려는 것이었으나 오히려 사회 혼란을 증대시켜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또한 대흉노(對匈奴)정책도 실패하여 산동(山東)에 발생한 농민반란(赤眉의 亂 등)과 이어진 남양(南陽)의 유씨(劉氏)를 대표로 하는 호족의 반란으로 23년 장안(長安)의 성내의 미앙궁(未央宮)에서 경시제군(更始帝君)에게 살해당했다. 왕망의 죽음으로 신왕조는 막을 내리고 후한(後漢)이 뒤를 이었다.

 

(63) 순(舜) 임금은 단족(檀族)의 중흥기(中興期) 였다

 

曰 吾元仁宗 可謂英傑之主也 吾檀族之王天下 自舜以後

왈 오원인종 가위영걸지주야 오단족지왕천하 자순이후

可謂中興也

가위중흥야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 인종(仁宗)은 영특하고 걸출한 임금이라 할만하며 우리 단족(檀族)의 왕으로 순(舜)임금 이후로 가히 중흥기(中興期)①라 하리라.”

 

※ ① 중흥기(中興期)∶국운의 쇠망하여 가던 세력을 다시 일으키는 때.

 

(64) 중엽 이후로 국론을 논한 사람은 대동소이하다

 

曰 中葉以來 論國論人者 皆不過五十步笑百步

왈 중엽이래 논국논인자 개불과오십보소백보

 

말씀하시기를 “중엽(中葉)① 이후(以後)로 국론(國論)②을 논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③이니라.”

 

※ ① 중엽(中葉)∶초엽 중엽 말엽의 3기로 구분할 때의 그 중간의 시대. 시대나 세기(世紀)의 중간 무렵.

※ ② 국론(國論)∶국민 일반의 여론. 나라안의 공론(公論). 나라 공론(公論).

※ ③ 오십보소백보(五十步笑百步)∶중국 양(梁)나라 혜왕(惠王)이 맹자(孟子)에게 정사(政事)에 관해서 물었을 때 맹자가 전쟁에 패하여 어떤 자는 백보를 또 어떤자는 오십 보를 도망하였다고 할 때 백걸음을 물러간 사람이나 오십 걸음을 물러간 사람이나 도망갔다는 그 자체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대답한 고사(故事)에서 온 말로 조금 낮고 못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本質的)으로 같다는 뜻. [맹자 양혜왕 상편].

 

(65) 원(元)나라 말기에 태을성군께 제사를 많이 지내 나라를 그르쳤다

 

曰 元末之時 有上至下 多祭太乙星君 誤國

왈 원말지시 유상지하 다제태을성군 오국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 끝무렵의 때 위에서 시작하여 아래에 이르기까지 태을성군(太乙星君)①께 제사를 많이 지내므로 국력이 낭비되어 나라를 그르쳤다.”

 

※ ① 태을성군(太乙星君)∶선도(仙道) 최고(最高)의 천신(天神).

 

(66) 원(元)나라 때에 은(殷)나라 사람에게 세가지 인(仁)을 봉했다

 

曰 元之時 封殷之三仁 箕子仁獻公 微子仁靖公

왈 원지시 봉은지삼인 기자인헌공 미자인정공

比干仁顯忠列公也

비간인현충열공야

 

※ 殷∶많을 은, 무리 은, 클 은, 가운데 은, 은나라 은, 융성할 은, 천둥소리 은, 검붉을 안. 箕∶별이름 기, 키 기, 바람의 신 기, 걸터앉을 기. 靖∶꾀할 정, 다스릴 정, 화할 정, 편안할 정, 생각할 정.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 때에 은(殷)①나라의 세가지 인(仁)을 봉했으니 기자(箕子)②는 인헌공(仁獻公) 미자(微子)③는 인정공(仁靖公) 비간(比干)④은 인현충열공(仁顯忠列公)이니라.”

 

※ ① 은(殷)∶중국 고대의 왕조(王朝) 이름. 자체의 이름은 상(商)이라고 하며 이를 멸한 주(周)가 전대 왕조를 은(殷)이라 일컬었다. 현재의 중국에서는 「상(商)」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연대(年代)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으나 대략 B.C.17세기∼B.C.16세기경에서 B.C.11세기 중반까지로 생각되고 있다.

※ ② 기자(箕子)∶기자조선(箕子朝鮮)의 건국자. 이름은 서여(胥餘)‧수유(須臾).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빼앗자 B.C.1122년 동쪽으로 도망하여 조선에 들어와 기자조선을 건국 조선민에게 예의(禮儀)‧전잠(田蠶)‧방직(紡織)‧팔조법금(八條法禁)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은 중국의 사료(史料)에서도 서로 모순(矛盾)되고 연대(年代)도 각기 틀려 부정되고 있다. 고려 숙종(肅宗) 7년(1102)에 건립된 기자묘 중수기적비(箕子墓 重修記蹟碑)의 사료로 보아 당시의 사대사상(事大思想)에서 생긴 꾸며진 설화(說話)로 여겨진다. 지금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準王)의 성(姓)이 한씨(韓氏)임에 미루어 보아서 기자조선은 우리나라 사람이 세운 부족 국가인 한씨조선(韓氏朝鮮)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그러므로 기자의 동래설은 중국의 명현(名賢)을 조상으로 하고 있다는 가문(家門) 우위성(優位性)을 입증(立證)하기 위해 기자조선을 은나라의 현자가 조선으로 건너와 세웠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도원경(道元經》이 전하며 평양에 기자묘(箕子墓)가 있다.

※ ③ 미자(微子)∶주대(周代) 송(宋)나라의 시조(始祖).

※ ④ 비간(比干)∶상대(商代) 주왕(紂王)의 숙부(叔父).

 

(67) 원(元)나라는 백련교와 홍건적에 의해 망했다

 

曰 元之亡國之兆 邪術者 白蓮紅巾 始而終於好術

왈 원지망국지조 사술자 백연홍건 시이종어호술

山童之歌起

산동지가기

 

※ 巾∶수건 건 머리건 건 건 건 덮을 건.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의 망국(亡國)의 조짐은 삿된 술(術)이니 백련교(白蓮敎)①와 홍건적(紅巾賊)②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술(術)을 좋아했고 백련교도(白蓮敎徒) 한산동(韓山童)의 노래에서 일어났다.” 

 

※ ① 백련교(白蓮敎)∶중국 송(宋)‧원(元)‧청(淸)나라에 걸쳐 성행했던 민간종교의 하나. 그 기원은 남송(南宋)시대의 모자원(茅子元∶법명 慈照)의 백련종(白蓮宗)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자원이 일으킨 백련종은 오계(五戒)를 철저히 지키며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념(念)하여 정토(淨土)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염불결사(念佛結社)였다. 그 교단은 지도층이 승(僧)‧속(俗)이 뒤섞인 대처자(帶妻者)였다는 점에 특색이 있으며 또 채식주의(菜食主義)를 주장한 사실로 백년채(白蓮菜)로도 불리었다. 모자원은 또 불교의 교리를 「보(普)‧각(覺)‧묘(妙)‧도(道)」의 네 글자로 요약하여 신자를 지도했다. 백련종은 고종(高宗)의 호의로 그 시대(1127∼1162)의 민간에게 침투했는데 모자원이 죽은 후 점차 반체제적(反體制的) 경향을 띠어 갔다. 원나라 중엽에 장보도(蔣普度)가 나와≪여산 연종보감(廬山蓮宗寶鑑)≫ (전 10권)을 저술 백련종의 정화를 호소했는데 그 저서에는 민간 신도 중에 「미륵불하생(彌勒佛下生)」을 주장하며 사언(邪言)을 전수(傳授) 밤에만 모였다 새벽녘에 흩어져가는 자들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어 백련종이 반체제적인 운동의 온상이 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원나라 말이 되면서 도처에서 백련교도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한산동(韓山童)집단과 서수휘(徐壽輝)집단에 의한 반란이다. 이들은 다 「천하대란 미륵불하생(天下大亂 彌勒佛下生∶천하가 크게 어지러우니 미륵불 밑에서 살라)」이라는 뜻을 구호(口號)로 내세우고 소왕국을 세웠다. 명나라에 들어와 더욱더 많은 사건이 발생했는데 ≪명실록(明實錄)≫에 따르면 80여 회에 걸친 백련교 관련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사건은 말엽에 산동(山東)에서 일어난 왕삼(王森)‧서홍유(徐鴻儒)의 난(1622)이다.

 

또 명나라에 와서 백련교계(系)의 교단들에서는 포교를 위한 경전이 제작되었다. ≪보권(寶卷)≫으로 불리는 그 경전 속에는 「진공가향(眞空家鄕)」 「무생부모(無生父母)」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를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에 걸쳐서는 백련교의 「팔자진언(八字眞言)」이라 일컫게 되었다.

이 「팔자진언」은 민중이 부모나 집‧고향과의 관계 즉 지연(地緣)‧혈연(血緣)관계를 부정하고 반체제적 행동을 위해 헌신할 때에 유효하게 작용하는 사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청나라에 들어와서는 지재(持齋)‧염불(念佛)‧계탐(戒貪)‧계음(戒淫) 등의 수행에 의해 부처가 되고 선인(仙人)이 되기를 추구한 백련교도의 활동은 활발하여 가경조(嘉慶朝) (1796∼1804)에는 혼원교(混元敎)의 유송(劉松)의 제자 유지협(劉之協)이 중심이 되어 명나라 후손이라는 우팔(牛八)을 내세워 유사아(劉四兒)를 미륵불의 태어남이라 하여 그를 돕는 동시에 혼원교를 다시 삼양교(三陽敎)로 개칭 대규모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 ② 홍건적(紅巾賊)의 난(亂)∶중국 원(元)나라 순제(順帝) 지정(至正) 11년(1351) 허뻬이성(河北省)에서 백련교(白蓮敎)‧미륵교(彌勒敎) 교도들이 일으킨 농민폭동. 이 무리들은 머리에 붉은 수건을 두르고 그 것을 표지로 삼았기 때문에 홍두적(紅頭賊)‧홍적(紅賊)이라고 불렀다. 허뻬이성에 한산동(韓山童)이란 자가 나타나 자기 자신은 미륵불(彌勒佛)의 환생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는데 허난성(河南省)‧안후이성(安徽省) 등 각지에는 그를 믿는 신도가 많았다. 그때 황허강(黃河)의 범람으로 인하여 제방 수리를 위해 많은 농민이 동원되어 노역을 강제당하자 그는 이에 불만을 품은 민심을 선동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토벌군을 보내어 난군을 토벌하였으며 이때 한산동이 토벌군에게 살해당하자 유복통(劉福通) 등이 한산동의 아들 한림아(韓林兒)를 받들고 송(宋)이라는 국호를 내건 다음 전국에 격문을 돌렸다.

 

그러자 안후이성에서 곽자흥(郭子興)‧주원장(朱元璋) 등이 일어나고 후베이성(湖北省)에서는 서수휘(徐壽輝)가 일어나 그 세력이 한때 화북(華北)과 화중(華中)지방에까지 널리 미쳤다. 그러나 내부 분열 때문에 비적(匪賊)으로 전락하였으며 원군(元軍)에게 쫓기던 무리는 랴오둥(遼東)방면으로 들어갔다. 고려 공민왕 8년(1359) 홍건적의 장수 모거경(毛居敬) 등은 4만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고려에 침입해 들어왔다. 이들 난적들은 파죽지세로 의주(義州)‧정주(定州)‧인주(麟州)‧철주(鐵州) 등을 차례로 함락하고 이어서 서경(西京∶平壤)까지 함락하였다. 고려에서는 이방실(李芳實) 등이 관군을 이끌고 나아가서 맹공하여 서경을 탈환하였고 이어 패주하는 적을 뒤쫓아 궤멸시키자 압록강을 건너 달아난 무리는 겨우 300여명에 불과하였다.

 

그 후에도 난적들은 간혹 배를 이용하여 황해도‧평안도의 해안지대를 침투하다가 공민왕 10년(1361) 10월 반성(潘城)‧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 등이 이끄는 10여 만 명의 홍건적이 압록강의 결빙을 이용하여 재침해 왔다. 제2차 침입은 대규모여서 절령(岊嶺∶慈悲嶺)의 방책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계속하여 남하(南下)한다는 보고가 개경(開京)에 들어오자 공민왕은 왕비(노국대장공주)와 함께 태후(太后)를 받들고 남쪽으로 피난하였다. 왕의 피난행렬이 경기도 이천(利川)에 이르렀을 때 개경이 홍건적에게 함락되었다.

 

이후 여러 달 동안 홍건적은 개경에 머물면서 갖은 약탈과 만행을 저질렀으며 일부는 원주(原州)‧안주(安州∶평남 북서단) 등지에까지 몰려가 약탈을 자행하였다. 공민왕은 그해 12월경 복주(福州∶安東)에 이르러 정세운(鄭世雲)을 총병관(摠兵官)으로 삼아 홍건적을 토벌하도록 명하였다. 공민왕 11년(1362) 정월에 정세운은 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이방실 등 여러 장수들과 합세하여 개경에 머물러 있던 홍건적을 대파하여 도성을 회복하고 남은 적을 소탕하여 난은 평정되었다.

이때 동북면(東北面) 상만호(上萬戶)로 있던 이성계(李成桂)는 휘하의 친병(親兵) 2, 000명을 이끌고 앞장서서 적괴(賊魁) 사유‧관선생 등의 목을 베고 수많은 적의 목을 치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와 같이 중국 중원(中原)에서 일어나 원나라를 쇠락(衰落)의 길로 몰아넣었던 홍건적은 고려에 침입했다가 궤멸됨으로써 사라져 버렸다.

고려도 수도가 짓밟히는 등 막대한 타격을 입어 쇠퇴하게 되었는데 다만 주원장만은 착실하게 지반을 닦아 중국 천하를 지배하여 명(明)나라를 세우는데 성공하였다.

 

(68) 부금냉금(浮金冷金)을 따르라

 

曰 朝鮮九變之中 必是靑林大冠 濁亂世路 只唱太乙

왈 조선구변지중 필시청림대관 탁난세로 지창태을

而忘三皇則 人多隨損 當其時浮金冷金 北有走肖之將

이망삼황즉 인다수손 당기시부금냉금 북유주초지장

南有水姓之賢 可以救人種之正矣

남유수성지현 가이구인종지정의

 

말씀하시기를 “조선(朝鮮)이 아홉 번 변하는 가운데 반드시 이것이 푸른 수풀(靑林)이 큰 관(冠)이니 정치나 사회가 흐리고 어지런 세상 길이다. 다만 태을(太乙)①을 노래하며 삼황(三皇)②을 잊으면 사람이 많이 더는데 이른다. 그 때에 당하면 뜬 쇠(浮金)가 찬 쇠(冷金)이며(금산사 미륵불 전설 참고), 북쪽에 조(趙)씨의 장군이 있고 남쪽에는 수성(水姓)③의 현인(賢人)이 있어서 사람의 종자를 옳게 구제함으로써 바르다.”

 

※ ① 태을(太乙)∶태일(太一). 중국철학에서 천지만물의 출현 또는 성립의 근원 곧 우주의 본체. 대일(大一)‧태일(泰一)이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장자(莊子)≫등에는 「도(道)」의 동의어로 씌여 있다. ≪회남자(淮南子)≫ 「천문훈(天文訓)」에는 「자궁(紫宮)은 태일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씌어 있고 정현(鄭玄)은 「태일은 북신(北辰∶북극성)의 이름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나중에는 천계(天界)의 자미궁(紫微宮)에서 거쳐하는 북극성의 신명(神名)이 되었고 그 후 한(漢)나라에서는 우주의 최고신이라고 여겼다. 경서(經書)에 나오는 천황대제(天皇大帝) 또는 호천상제(昊天上帝)와도 동일시 되었다. 태을의 신격화(神格化)는 B.C.2세기의 한나라 무제(武帝)때에 장안성(長安城)의 남동쪽 교외에 박기태일(薄忌太一)이라는 사단(祠壇)이 만들어진 것이 그 최초인데 그곳에는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의 세 신이 모셔졌다. B.C.112년(元鼎 5)에는 운양(雲陽∶陜西省 淳化縣)에 있는 감천궁(甘泉宮)의 남쪽에 태치(泰峙)라는 태일 사단이 만들어졌다. 태치는 자주색의 3층 8각형으로 되어 있고 보좌신(補佐神)인 청(靑)‧적(赤)‧ 황(黃)‧백(白)‧흑(黑)색으로 된 5제(五帝)의 단(壇)이 동그란 고리 모양으로 빙 둘러싸고 있으며 태일신의 제사는 오로지 이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 ② 삼황(三皇)∶중국 고대(古代)의 임금. 천황씨(天皇氏)‧지황씨(地皇氏)‧인황씨(人皇氏)로 복희씨(伏羲氏)‧신농씨(神農氏)‧황제씨(黃帝氏).

※ ③ 수성(水姓)∶오행(五行)의 수(水)에 해당한 성(姓). 성자(姓字)를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의 다섯 음(音)에 나누어서 오행에 벌여 붙인 것임. 오(吳) 허(許) 유(劉) 여(呂) 우(禹) 표(表) 소(蘇) 노(魯) 변(卞) 마(馬) 반(潘) 복(卜) 용(龍) 모(牟) 금(禁) 공(公) 경(庚) 익(益) 기(奇) 여(余) 천(千) 맹(孟) 매(梅) 상(尙) 어(魚) 고(皐) 모(毛) 먀(乜 ) 남궁(南宮) 황보(皇甫) 선우(鮮于) 동방(東方).

 

(69) 자하진인의 도(道)는 신(神)도 알지 못한다

 

曰 先生之道 本於天 鎔於人 神不知之矣

왈 선생지도 본어천 용어인 신부지지의

 

※ 鎔∶불릴 용, 녹일 용, 거푸집 용.

 

말씀하시되 “스승(자하진인)의 도(道)는 바탕이 하늘이며 사람을 녹이니 신(神)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70) 근본을 잃지 않고 지각이 있어야 살아 남는다

 

曰 甲子一紀後 難農難商 可謂風風雨雨 萬民苦苦

왈 갑자일기후 난농난상 가위풍풍우우 만민고고

其何堪去 至此時 有知覺者生 無知覺者死 奈何

기하감거 지차시 유지각자생 무지각자사 내하

不忘本 第一生路

불망본 제일생로

 

※ 堪∶견딜 감, 이길 감, 맡을 감, 하늘 감, 산모양이 기괴할 감.

 

말씀하여 이르기를 “갑자(甲子) (60년)하고 12년 뒤에는 농업(農業)도 어렵고 상업(商業)도 어려우니 좋게 말하자면 세상의 갖가지 쓰라림(시련∶試鍊)이니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그 어떻게 견디어 갈 수 있으리오. 여기에 이르렀을 때에는 지각(知覺) 있는 사람은 살고 지각(知覺)이 없으면 죽으니 어찌 하랴! 근본을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아 살아날 수 있는 길(살아나갈 방도)이니라.”

 

(71) 자하진인과 여순양진인을 연구하라

 

曰 後來家家人人皆弗人 人弗人 人人之生道失矣

왈 후래가가인인개불인 인불인 인인지생도실의

難免神誅 從我遊者 深硏究此 避之此

난면신주 종아유자 심연구차 피지차

乃先生之入紫霞島時 所敎也

내선생지입자하도시 소교야

 

※ 紫∶ 자주색 자. 霞: 노을 하, 멀 하. 誅∶벨 주, 꾸지람 주, 벌줄 주, 갈길 주.

 

말씀하옵기를 “장래(將來)에는 집집마다 사람마다 모두다 사람이 아니며 사람이 사람이 아니니 사람들은 살아가는 길을 잃었다. 신(神)이 베어 죽이는 것을 면하기 어렵고 나를 따라 노니는 사람은 이를 깊이 연구(硏究)하라 이는 피함이다. 이에 스승인 자하진인께서 자하도(紫霞島)①에 들어가실 때 가르친 바이다.”

 

※ ① 자하도(紫霞島)∶석존(釋尊)의 극락(極樂)이며 공자(孔子)의 시중(時中)이요 노자(老子)의 현묘(玄妙)요 예수의 십자가(十字架)요 김일부(金一夫)의 십십일일지공(十十一一之空)인 시공(時空)을 초월한 곳과 때. 

 

(72) 독립정신이 일제강점기에 있을 것이다

 

曰 獨立于靑邱中 五千餘年 獨我檀域而於李氏朝鮮

왈 독립우청구중 오천여년 독아단역이어이씨조선

失之終也 必更獨立精神 皆委人矣 勢也奈何

실지종야 필경독립정신 개위인의 세야내하

 

※ 邱∶언덕 구, 땅이름 구.

 

말씀하시기를 “독립(獨立)은 우리나라 안에서 5000여년을 홀로 나의 단역(檀域)을 이씨조선(李氏朝鮮)이 잃고 끝마치었다. 반드시 독립정신(獨立精神)이 다시 있을 것이니 모두 왜(倭∶일본)의 세력이니 어찌하랴!”

 

(73) 좋게 거하면 살아가는 길이 있다

 

曰 君輩欲知運回之泰 人人日行千里 屋上加屋 家家藥局

왈 군배욕지운회지태 인인일행천리 옥상가옥 가가약국

處處鍾鳴 善居生路 在鳥棲 此枝彼枝之間

처처종명 선거생로 재조서 차지피지지간

 

※ 棲∶쉴 서, 깃들일 서, 평상 서, 서성거릴 서, 물풀이름 서.

 

말씀하시기를 “그대 무리들은 운(運)이 돌아와 태평할 때를 알고자 하면 사람마다 하루에 천리를 다닐 것이며 집 위에 집이 올라서고(빌딩) 집집마다 약국(藥局)이며 곳곳마다 종소리(교회 절)가 울리고 좋게 거하며 살아가는 길은 새가 이 가지에서 저 가지 사이로 깃드는데 있도다.”

 

(74) 남방사람을 박삼태가 구하리라

 

曰 李氏國朝 中人將來受帝命 救南方人命之衆 朴三台也

왈 이씨국조 중인장래수제명 구남방인명지중 박삼태야

此人本天箕星中在職 謫下人間時 職帶察人物而其時

차인본천기성중재직 적하인간시 직대찰인물이기시

危厄甚矣 普德仙娘救之

위액심의 보덕선낭구지

 

※ 台∶별 태(삼태성), 늙을 태, 나 이, 기쁠 이, 기를 이. 謫∶귀양갈 적, 꾸짖을 적, 일식할 적, 흉볼 적.

 

말씀하시기를 “이씨조선(李氏朝鮮) 때 중인(中人)의 후예에서 앞으로 임금의 명(命)을 받을 것이니 남방(南方) 사람의 목숨의 여러 사람을 구하니 박삼태(朴三台)①이다. 이 사람은 본디 하늘의 남쪽 별인 기성(箕星)에서 직책(職責)에 있다가 아래로 귀양 온 인간(人間)이니 인물(人物)을 살피는 직책을 띠었을 때 그 때가 액(厄)이 위험함이 심하리라. 보덕선낭(普德仙娘)②이 구하리라.”

 

※ ①박삼태(朴三台)∶고(故) 박정희(朴正熙)대통령(?)

※ ②보덕선낭(普德仙娘)∶박근혜 대통령(?). 한국의 선맥(仙脈)은 크게 두가지 흐름이 있으니 고유선맥과 왜래선맥이다. 고유선맥을 기술한 선사(仙史)가 조여적(趙汝籍)의 「청학집(靑鶴集)」에 인용된 변지(卞沚)의 「기수사문록(記壽四聞錄)에 1. 종통(宗統)∶광성자(廣成子) → 명유(明由) → 환인(桓仁) → 환웅(桓雄) → 단군(檀君) → 문박씨(文朴氏) → 영랑(永郞) → 보덕(普德) 8선,」 2. 보덕분파(普德分派)∶옥보고(玉寶高)‧이순보(李純甫) 2선.

 

(75) 불의 심판이 있으리라

 

自古戰爭之法 隋時而變 最初以拳相鬪 繼而木 繼而金

자고전쟁지법 수시이변 최초이권상투 계이목 계이금

繼而水火 繼而戰于空中之境 人畜俱滅之境 終則 神以神

계이수화 계이전우공중지경 인축구멸지경 종즉 신이신

道以道 然後 乾坤復明 在五四 後一期前 大火歲紀也

도이도 연후 건곤복명 재오사 후일기전 대화세기야

 

“예전부터 전쟁(戰爭)의 법(法)은 때에 따라 변하니 가장 처음에는 주먹으로 서로 싸우고 이어서 나무로 이어서 쇠로 이어서 물과 불로 이어서 공중에서 전쟁하는 지경에 이르러 사람과 가축이 다 함께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리라. 마침내 신(神)을 신(神)으로써 도(道)를 도(道)로써한 그런 뒤에 하늘과 땅이 다시 밝아짐이 20년이 있고 후에 일주년(一周年) 전에 큰 불(火)의 해인 세기(世紀)①로다.”

 

※ ① 세기(世紀)∶연대. 시대. 서력(西曆)에서 100년을 일기(一期)로 세는 연대의 단위.

 

(76) 상고(上古)의 법(法)을 쓰는 것이 살아갈 길이다

 

曰 太大紀 前一後一 庚呼之聲 震動天地 富亡貧碎

왈 태대기 전일후일 경호지성 진동천지 부망빈쇄

其情慽矣 抵此機 人人用上古之法 第一生路也

기정척의 저차기 인인용상고지법 제일생로야

 

※ 震∶벼락칠 진, 진동할 진, 위엄 진, 두려울 진, 괘이름 진, 지진 진. 碎∶부슬 쇄, 부서질 쇄, 잘 쇄. 慽∶근심할 척, 슬플 척.

 

말씀하시기를 “1000년을 앞으로 100년 뒤로 100년은 고치어 부르는 소리가 온 누리를 매우 울리어 움직이니(세상에 멀리 퍼짐) 부자는 망하고 가난한 사람은 부서지니 그 사정이 슬프다. 대저 이 기틀은 사람마다 아주 옛날의 법(法)을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살아갈 길이다.”

 

(77) 미국이 막강해도 한국에 순종치 않을 수 없다

 

曰 太女雖强 其於震男 不可不順從 乃其德夫

왈 태녀수강 기어진남 불가불순종 내기덕부

 

※ 兌∶기쁠 태, 지름길 태, 모일 태, 통할 태, 곧을 태, 구멍 태, 바꿀 태, 괘이름 태, 날카로울 예.

 

말씀하시기를 “태소녀(兌∶少女∶서방 미국)가 비록 막강하다 하더라도 진장남(震長男∶동방 한국)에게는 순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으니 이는 그의 덕부(德夫 덕이 있는 지아비)가 아닌가.”

 

(78) 궁궁을을(弓弓乙乙)의 이치

 

曰 後天啓泰 只在三一 天地之道 一而三 三而一而已

왈 후천계태 지재삼일 천지지도 일이삼 삼이일이이

三一掛於七上 處處然後 眞是 明明 神神 化化 正正 乙乙

삼일괘어칠상 처처연후 진시 명명 신신 화화 정정 을을

弓弓 衛我神 嗚呼小子 敬守一止 詳着西天月 佩天符

궁궁 위아신 오호소자 경수일지 상착서천월 패천부

服地精哉 (天符三印圖 地精十二支誥)

복지정재 천부삼인도 지정십이지고

 

※ 佩∶패옥 패 (옛날 의복제도로서 큰 띠에 붙이는 장식하는 구슬). 찰 패, 맘에 먹을 패, 물이 흘러서 합할 패. 誥∶깨우쳐 고할 고, 가르칠 고.

 

말씀하시기를 “후천(後天)의 태평한 세상을 여는 길은 다만 천인지(天人地) 합하여 하나로 되는 하늘과 땅의 길이니 분리되면 셋(하늘‧사람‧땅)이 되고 합하면 하나(一)가 될 뿐이다. 삼일(三一) 위에 일곱(七)이 걸린다. 곳곳이 그런 뒤에 이것이 참으로 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스러우며 화(化)하고 화(化)하며 바르고 바르며 을을궁궁[乙乙弓弓]이 나의 정신을 지키어 주리라. 아아 소자(小子)야! 공경하여 하나(一)에 그칠지니 서쪽 하늘에 달을 자세히 보아라. 천부(天符)를 차고 지정(地精)을 입었도다.” (풍백(風伯)의 거울(鏡) 우사(雨師)의 북(鼓) 운사(雲師)의 칼(劍)의 그림과 땅의 정(精)인 쥐(鼠) 소(牛) 범(虎) 토끼(兎) 용(龍) 뱀(蛇) 말(馬) 양(羊) 잔나비(猴) 닭(鷄) 개(狗) 돼지(猪)인 십이지지(十二支地)에 깨우쳐 고하는 것임.)

 

(79)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행하라

 

曰 自古至今 國家之權利 異箇人範圍 有其力則

왈 자고지금 국가지권리 이개인범위 유기력즉

四海能一 有德之世 以德一之 無德之世 以力用

사해능일 유덕지세 이덕일지 무덕지세 이역용

而有衆生之多 以後 有德小有力多 道德文學 卽江湖山林

이유중생지다 이후 유덕소유력다 도덕문학 즉강호산림

潔意尙志者 自樂自行 件事 非治國衛民之要也 世降以後

결의상지자 자락자행 건사 비치국위민지요야 세강이후

尙此而已 汚儒乘世 衰之機 虛買虛名 或當出世

상차이이 오유승세 쇠지기 허매허명 혹당출세

 

※ 迂∶굽을 오, 피할 오, 멀 오, 굽을 우, 피할 우, 멀 우.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권리는 다른 하나의 사람의 테두리이니 그 힘이 있으면 온 누리에 능히 하나이며 덕(德)①이 있는 세상에는 덕(德)으로써 하나가 된다. 덕(德)이 없는 세상에는 힘으로써 쓰니 중생(衆生)의 많음이 있다.

이 다음은 덕(德)은 작고 힘은 많음이 있어 도덕(道德)과 문학(文學)이 곧 강(江)과 호수② 산과 숲③에 있게 되고 맑은 뜻과 생각하는 뜻을 고상(高尙)히 하는 사람은 스스로 즐겁게 행하여 가지의 일은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지키는 요점(要點)이 아니다. 세상에 내려 온 이 다음은 오히려 이를 따름(뿐)이다. 굽은 선비(儒)가 세상을 다스리니 쇠하는 기틀이며 헛되이 이름을 아마 마땅히 출세(出世)④한다.

 

※ ① 덕(德)∶정도(正道)를 행하여 얻음.

※ ② 가람과 호수(江湖)∶은자(隱者)나 시인(詩人) 문객(墨客)들이 어지러운 속세를 떠나 자연에 묻혀 생활하던 곳을 일컫는 말.

※ ③ 산과 숲(山林)∶벼슬이나 속세를 떠나 산골이나 시골에 파묻혀 글 읽기를 즐기며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말.

※ ④ 출세(出世)∶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훌륭하게 됨 또는 그 일. 불교에서는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속세로 나옴.

 

(80) 문무(文武)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

 

曰 不以時務 勸君坐談 三代文弱之始 武衰之萌

왈 불이시무 권군좌담 삼대문약지시 무쇠지맹

莫不由此 嗚呼 秦漢以來 唐宋元之所亡國 皆是此流之弊

막불유차 오호 진한이래 당송원지소망국 개시차류지폐

尤有甚焉者 尙佛虛無也 夫此是隣國曾鑑

우유심언자 상불허무야 부차시인국증감

我東亦自新羅以降 亦如是 而至李朝中 其情何可盡道哉

아동역자신라이강 역여시 이지이조중 기정하가진도재

 

※ 萌∶풀싹 맹, 비롯할 맹, 맹돌할 맹, 밭갈 맹, 움직이지 않는 맹.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앉아서 바둑을 두는 것이 때라고 여기지 않는다. 중국 상대(上代)의 하(夏) 은(殷) 주(周)의 세 왕조(王朝)에서 글만 숭상하여 실천과는 멀어져 나약(懦弱)함이 비롯되어 군사(軍事)나 무술(武術)이 쇠하여지는 것이 비롯되었으니 이것으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아아! 진한(秦漢) 이후로 당‧송‧원(唐宋元)의 망하는 바가 모두 이것은 이 흐름의 폐단(弊端)이며 더욱 심함이 있는 것은 불교의 허무(虛無)를 숭상함이다.

무릇 이것은 이웃 나라를 일찍 거울삼아야 한다. 우리 동방(東方)은 또 신라(新羅) 이후(以後)로 또 이와 같고 이것이 이조(李朝)의 중에 이르니 그 사정(事情)이 어찌 도(道)가 가히 다함인져.”

 

(81) 통치자가 올바라야 한다

 

曰 人君爲衆之表本 人君之先正 萬衆同一其理

왈 인군위중지표본 인군지선정 만중동일기리

何人心 猶印板 然 板本不差 雖摹千萬 紙皆不差

하인심 유인판 연 판본불차 수모천만 지개불차

本旣差矣 摹之於紙 無不差者之說 古人格當道矣

본기차의 모지어지 무불차자지설 고인격당도의

 

※ 摹∶규모 모 모뜰 모 본뜰 모 체받을 모 닮을 모.

 

말씀하시기를 “임금이 여러 사람의 근본을 나타냄이니 임금이 먼저 옳아야 모든 사람들이 동일(同一)하게 된다. 어떤 것이 사람들의 맘인가? 오히려 널판지에 찍는 것이니 그래서 판목(板木)①으로 인쇄한 책이니 어긋나지 않도다. 비록 천만(千萬)을 본떠도 종이는 모두 층나지 않으니 근본이 이미 어긋나면 종이를 본떠도 어긋남이 없다는 설(說)이니 옛사람들의 격(格)이 응당 도(道)이다.”

 

※ ① 판목(板木)∶인쇄하기 위하여 글자나 그림을 새긴 나무.

 

(82) 원과 고구려는 형제의 나라

 

曰 元之封古麗王之例 始於胡 必烈也

왈 원지봉고려왕지예 시어호 필열야

此是兄弟之誼源故也 俗不知其本 惜哉

차시형제지의원고야 속부지기본 석재

 

※ 의(誼)∶옳을 의, 다스릴 의, 의 의.

 

말씀하시기를 “원(元)나라는 옛 고구려 임금의 예(例)이니 서기 1260년 몽고(蒙古)의 쿠빌라이(忽必烈)①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형제(兄弟)의 의에서 근원한 연고(緣故)이다. 속세(俗世)에서는 근본을 알지 못하니 안타깝다.”

 

※ ① 쿠빌라이칸(忽必烈汗)∶1215∼1294 몽고제국 제5대 칸(汗). (재위 1260∼1294). 중국 원(元)나라의 시조. 묘호(廟號)는 세조(世祖). 아버지 툴루이는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케레이트족(族)의 소르코크타니 베키이다. 1251년 형 몽케가 즉위했을때 쿠빌라이는 남송(南宋) 원정(遠征)의 대총독으로 임명되어 대싱안링(大興安嶺) 산맥 남부의 내몽고 방면에 이주하는 동시에 산시(山西)의 징자오(京兆∶西安)를 영지로 삼아 경영했다.

1253년 티베트를 넘어 남송의 남서쪽 윈난(雲南)의 대리국(大理國)으로 원정하고 1257년 남송을 침입할 때에도 원정군을 지휘했다. 1259년 형 몽케가 사망하자 60년 내몽고에서 즉위하고 외몽고의 수도 카람코룸 방면에서 즉위한 동생 아리크부가를 제압하여 1264년 외몽고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형제가 싸우는 중이던 1262년 쿠빌라이측의 한인(漢人) 호족 이단(李 )이 남송과 제휴(提携)하여 반항했으므로 이를 타도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한인 호족들의 권리를 누르고 몽고 판도에 있는 화이허강(淮河) 이북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했다.

 

또 내각에 해당되는 중서성(中書省) 군사를 관장하는 추밀원(樞密院) 감찰을 맡은 어사대(御史臺) 등의 정부기구를 점차 정비하고 1271년에는 대원(大元)이라는 국호를 제정했다. 한편 1279년에는 남송을 평정하여 전 중국을 판도에 끌어넣었다.

그리고 미얀마‧참파‧고려‧일본 등지에 출병(出兵)했다. 쿠빌라이는 유목생활의 습관에 따라 여름에는 신선한 상도(上都∶내몽고) 또 겨울에는 남쪽의 대도(大都∶北京)를 거처로 삼아 해마다 규칙적으로 왕복하며 내몽고와 중국을 지배했다. 지방을 통치하는데는 여러 아들들에게 왕호(王號)를 주어 분봉(分封)하여 통치를 맡기기도 하고 중앙정부의 출장 행정부[行省]를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쿠빌라이를 제국의 수장(首長)으로 인정하지 않는 동족은 많았다. 예컨대 칭기즈 칸의 여러 아들들의 계통에서는 오고타이의 손자 하이두가 중앙 아시아의 반(反)쿠빌라이 세력을 결집하여 대항했다. 한편 대싱안링에서부터 랴오둥(遼東)방면의 칭기즈 칸의 여러 동생들의 계통에서는 셋째 동생 오치긴의 자손인 나얀을 우두머리로 받들고 1287년 하이두와 내통하여 반항했으므로 쿠빌라이는 그들을 타도하기 위해 대군을 동원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황후 차부이(훈기라트族)를 주축으로 인척관계로 맺어진 내몽고의 유력집단 자라이르족‧훈기라트족 등이었다.

쿠빌라이는 즉위한 후 병력의 강화를 위해 킵차크인 등의 색목인(色目人)과 한인(漢人)으로 조직된 많은 직속 근위군단(近衛軍團)을 창설했다. 쿠빌라이는 1294년에 기련곡(起蓮谷)의 여러 칸의 능에 매장되었다. 그의 후계자로 일찍 죽은 황태자 친킴의 두 아들 카마라와 테무르가 서로 다투었으나 황태자의 옥새를 확보하고 조종(祖宗)의 법을 잘 아는 테무르(鐵木眞)가 즉위했다.

 

※ 색목인(色目人)∶원(元)나라 때 그 치하(治下)의 터어키‧이란‧아라비아 등 여러 종족에 딸린 사람의 통틀어 일컬음. 피부나 눈의 빛깔이 다르기 때문에 생긴 이름임.

 

(83) 순임금 같은 사람이 후천(後天)에는 다시 있을 것이다

 

曰 紫霞先生曰 惟我神族之統一 自舜爲始 後天則

왈 자하선생왈 유아신족지통일 자순위시 후천즉

又有其人於東方矣

우유기인어동방의

 

팔공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스승이신 자하진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신족(神族)의 통일(統一)은 순(舜)①임금부터 비롯되었으며 후천(後天)에도 또 그러한 사람이 동방(東方)에서 다시 있을 것이다.’ 하셨다.

 

※ ① 순(舜)∶중국에서 전해지는 전설상의 제왕이자 태양신. 5제(五帝)의 한 사람. 성(姓)은 우(虞) 또는 유우(有虞). 이름은 중화(重華). 순에 관한 이야기는 2가지가 전해져 오고 있는데 하나는 요(堯)‧우(虞)와 함께 유덕(有德)한 성인제왕(聖人帝王)의 대표적인 인물로 여기는 유가(儒家)에 의해 전해지는 설화이며 다른 하나는 민간설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으로서의 이야기다.

전자(前者)는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에 의하면 순은 전욱( 頊)의 6세손으로 눈먼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이복동생의 미움을 받아 그들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몇 번씩 살해당할 뻔한 사건들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효행의 도를 다하고 형제의 우의를 지킴으로서 천자(天子)인 요(堯)의 사위가 되었다.

50세때 요의 섭정(攝政)을 맡아 천하의 인심을 얻은 후에 61세 때는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나 즉위한지 39년만에 사냥을 하던 도중 병으로 죽었다. 항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후자의 설화에 의하면 순은 암흑신 고수( 臾)의 아들로 희화(羲和)와 상아( 娥)를 아내로 거느린 태양신이다.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아내 희화는 해를 낳았고 상아는 12개의 달을 낳아 세상을 밝혔다고 한다.

순은 역시 전자의 설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이복동생 상(象)의 미움을 받아 몇 번이나 살해당할 뻔한 위기를 넘겼는데 그 후 남쪽으로 내려가 창오(蒼梧)에서 사망 구의산(九疑山)에 묻혔다고 한다.

 

曰 余少年時 曾受敎於先生時 先生曰 自李氏纂國以來

왈 여소년시 증수교어선생시 선생왈 자이씨찬국이래

三百年間則 徒尙文學之弊 久蠹滋 邇來尤甚 非無佳士

삼백년간즉 도상문학지폐 구두자 이래우심 비무가사

潁出窮經學古者 或病詞華 愼德礪行者 難究其蘊奧

영출궁경학고자 혹병사화 신덕여행자 난구기온오

高才大器者 往往局於纖悉繩墨之末 爲官者 甚冗而才愈

고재대기자 왕왕국어섬실승묵지말 위관자 심용이재유

乏家 殊俗而風益漓 至於冒國 法以苟營 假路冠而挾策

핍가 수속이풍익리 지어모국 법이구영 가로관이협책

俚言辭雅 剿說趨時 使習之者 反賊其良 從此又二百年則

리언사아 초설추시 사습지자 반적기량 종차우이백년즉

人皆弗人 人道必亡 人必委人 然後 神祖古域 必復而後

인개불인 인도필망 인필위인 연후 신조고역 필복이후

神人之道 大明於世 五德冠天下矣

신인지도 대명어세 오덕관천하의

 

※ 蠹.∶좀 두, 벌레먹을 두. 滋∶맛 자 ,많을 자 ,번성할 자, 진액 자, 잠길 자, 흐릴 자. 邇∶가까울 이. 潁∶이삭 영, 송곳끝 영 빼어날 영. 礪∶숫돌 려, 갈 려. 蘊∶마름 온, 쌓일 운, 익힐 운. 奧∶속 오, 아랫목 오, 물의 굽이 쳐들어간 낭떨어진 곳 오, 비밀 오, 맨끝 오, 깊을 오 ,쌓을 오, 삶을 오, 돼지우리 오, 따스할 욱, 모퉁이 욱. 纖∶가늘 섬, 아낄 섬. 悉∶다알 실, 궁구할 실, 다 실. 繩∶노 승, 먹줄 승, 법 승, 다스릴 승, 많을 승, 칭찬할 승. 冗∶번잡할 용, 바쁠 용, 긴치않을 용, 떠돌아다닐 용. 乏∶없을 핍, 궁색할 핍, 폐할 핍, 가죽으로 만든 실막이 핍. 漓∶물스밀 리. 冒∶가릴 모, 쓰개 모, 시기할 모, 거짓쓸 모, 겁내지 않을 모, 무릅쓸 모, 받힐 모, 간섭할 모, 공격할 모, 탐할 묵, 범할 묵, 무릅쓸 묵, 선우이름 묵. 挾∶낄 협, 가질 협, 도울 협, 감출 협, 품을 협, 띠 협. 俚∶속될 리, 상말 리, 좀말 리, 상노래 리, 힘입을 리. 剿∶수고로울 초, 말전주할 초 경첩(輕捷)할 초, 빼앗을 초, 망할 초, 죽일 초. 趨∶추창할 추.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린 나이였을 때 일찍이 스승(자하진인)께서 가르침을 받을 때에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씨(李氏)가 나라를 빼앗은 이후(以後) 300년간은 헛되이 문학(文學)을 숭상하는 폐단(弊端)이 오래되어 좀이(벌레먹음이)번성하여 가까이(요즈음)까지 더욱 심했다.

품행(品行)이 올바른 사람이 없지 않느냐?’ 뛰어나서 나타나서 유교(儒敎)를 연구하는 학문과 유물(遺物)과 유적(遺跡)에 의하여 옛 일을 연구 고찰(考察)하는 사람들은 혹 사화(詞華)①에 병들었고 덕(德)을 신중히 하고 행동을 깨끗이 하는 사람들은 그 학문‧기예(技藝)의 심오한 뜻을 연구하기 어렵고 우수한 재능이 있는 사람과 위대한 인물은 이따금 시절의 세미(細微)한데까지 두루 미치나 승묵(繩墨)②의 끝에까지 이르고 벼슬하는 사람은 긴치 않음이 심하며 재주가 넘치고 집이 결핍되니 풍속이 다르고 풍속이 더욱더 물스밀듯하여 나라를 범하는데까지 이르며 법(法)으로써 겨우(근근이) 다스리며 임시로 빌린 관(冠)을 쓰고 책략(策略)을 감췄다. 이언(俚言)③이 우아(優雅)한 말씀이니 초설(剿說)④을 추창할 때 풍습(風習)으로 하여금 반대로 도적이 그 어질도다. 이에 따라 또 200년은 사람이 모두 사람이 아니고 사람의 길이 반드시 망하기를 왜(倭 일본)에게 망한다. 그런 뒤에 배달국 (환웅(桓雄))의 옛날 땅(영토)을 반드시 회복한 뒤에 단군왕검께서 전해 주신 가르침이 세상을 크게 밝히는 세상이 되며 오덕관(五德冠)이 그 중심이 된다.”

 

※ ① 사화(詞華)∶말의 수사(修辭). 아름답게 꾸며진 말. 뛰어난 시문(詩文).

※ ② 승묵(繩墨)∶먹줄. 규칙. 법도. 법.

※ ③ 이언(俚言)∶항간(巷間)에 흔히 쓰이는 속된 말. 상말. 이어(俚語). 속언(俗言). 속어(俗語). 이사(俚辭). 방언(方言).

※ ④ 초설(剿說)∶남의 학설(學說)을 훔쳐서 자기의 학설로 삼는 것. 표절(剽竊).

※ 신조(神祖)∶배달국(倍達國) 제1세(世) 천황(天皇)인 환웅(桓雄).

※ 신인(神人)∶고조선(古朝鮮) 제1세(世) 단군(檀君)인 왕검(王儉).

※ 오덕관(五德冠)∶오덕지(五德地). 오룡산(五龍山) 덕산(德山) 계관산(鷄冠山)이 둘러싸고 있는 대분지. 계룡(鷄龍)의 수도(首都).

 

(84) 사도(邪道)에 사로잡히지 말라.

 

曰 後世人心 多邪曲 故 逕入邪道 不知眞僞 奈何

왈 후세인심 다사곡 고 경입사도 부지진위 내하

三鮮九壬後 人多鬼魔 所使而如狂也

삼선구임후 인다귀마 소사이여광야

 

※ 逕∶동안뜰 경, 길 경, 곧을 경, 가까울 경, 이를 경.

 

말씀하시기를 “뒷 세상에 사람의 맘이 사곡(邪曲)①이 많아 그런 까닭으로 사도(邪道)②에 들어가고 참과 거짓을 알지 못하니 어찌하랴! 세번째 조선(朝鮮)에 임(壬)이 아홉이 지난 뒤에는 사람이 많이 귀마(鬼魔)에게 잡히어 가는 것이 미친 것 같으리라.”

 

※ ① 사곡(邪曲)∶사사롭고 맘이 바르지 않음.

※ ② 사도(邪道)∶삿된 길. 올바르지 않은 길.

 

(85) 도(道)를 닦으면 도(道)를 알 수 있다.

 

曰 人能修道 與天地 俱存 是爲知道也.

왈 인능수도 여천지 구존 시위지도야.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능히 도(道)를 닦으면 하늘과 땅 더불어 함께 존재(存在)하니 이것이 도(道)를 아는 것이 된다.”

 

(86) 고조선의 천황(天皇)은 왕(王)씨 였다

 

曰 倭國之一名 日本 以取日初出之地故也

왈 왜국지일명 일본 이취일초출지지고야

以壬爲姓 效我大震人之稱 神祖以壬儉之意 以壬行之也

이임위성 효아대진인지칭 신조이임검지의 이임행지야

 

말씀하시기를 “왜국(倭國)이란 일명(一名) 일본(日本)이며 태양(해)이 처음 나오는 땅(곳)이란 까닭으로 취했다. 왕(王)으로써 성(姓)씨가 되니 대진(大震∶동방) 사람을 일컬음이며 배달국 제1세 환웅(桓雄) 천황으로써 고조선(古朝鮮)의 왕검(王儉)의 뜻이니 왕(王)으로써 행하는 것이다.”

 

(87) 몽고의 문자(文字)의 출현과 천하통일

 

曰 將來蒙古文字復出則 天下一統

왈 장래몽고문자복출즉 천하일통

歸于大震理之昭昭明明也

귀우대진리지소소명명야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몽고(蒙古)의 문자(文字)가 다시 출현하면 온 누리가 하나로 통치(統治)하니 대진(大震∶우리나라)의 이치가 밝은 모양이 또렷또렷하고 분명하리라.”

 

(88) 36 천도로써 천하를 운행

 

曰 神祖時 神誌氏之所造 不過三十六而能天下行矣

왈 신조시 신지씨지소조 불과삼십육이능천하행의

今姑神藏 凡人之不可圖得也

금고신장 범인지불가도득야

 

말씀하시기를 “배달국(倍達國) 때 신지(神誌氏)①는 불과 36을 만들어 능히 천하(天下)를 행하였으나 이제 아직 신(神)이 감추어 보통 사람들은 그림②을 얻기가 옳지 않았다.”

 

※ ① 신지씨(神誌氏)∶배달국(倍達國) 및 단군조선(檀君朝鮮) 때 기록을 맡아보았던 벼슬 이름. 당시 사람들은 선인(仙人)이라 불렀다.

※ ② 그림(圖)∶진단구변도(震檀九變圖). 36은 천부경(天符經) 일적십거(一積十鉅)의 중앙 36이며 이 36은 바둑판에 적용될 때 36×6〓216은 건지책(乾之策)으로 바둑판의 외곽이고 36×4〓144는 곤지책(坤之策)으로 바둑판의 내부이며(화점 9의 안) 36×10〓360으로 건지책과 곤지책의 합으로 바둑판의 천원(天元)을 제외한 총점수이다.

 

(87) 12만 9천 6백억의 지구상 인구세대 후 천지의 혼돈

 

曰 地球上 人命 十二萬九千六百億數

왈 지구상 인명 십이만구천육백억수

然後 天地更混沌焉

연후 천지갱혼돈언

 

※ 沌∶기운덩어리 돈, 뭉킬 돈, 물기운 돈 돌[轉轉] 돈, 막힐 돈.

 

말씀하시기를 “지구상의 살았던 이야기는 인명 총수는 12만 9천 6백억수이다. 그런 뒤에 천지(天地)는 다시 혼돈(混沌)①이 있으리라.”

 

※ ① 혼돈(混沌)∶천지가 개벽할 때에 하늘과 땅이 아직 나뉘지 아니한 상태. 뒤엉켜 갈피를 잡을 수 없음. 뚜렷한 표식이 없어 사물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고 흐리멍텅함. 혼륜(混淪).

 

(89) 사람의 길은 충성과 효도

 

曰 人生之道 皆出於 爲子當孝 爲臣當忠

왈 인생지도 개출어 위자당효 위신당충

 

말씀하시기를 “인생(人生)의 길은 모두다 자식이 되어서는 응당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응당 충성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90) 부부는 음양 건곤 심기(心氣)의 길.

 

曰 正心正氣 莫如乾坤 乾坤陰陽 夫婦之道

왈 정심정기 막여건곤 건곤음양 부부지도

 

말씀하시기를 “바른 맘 바른 기(氣)는 하늘과 땅만 같은 것이 없으니 하늘과 땅 음(陰)과 양(陽)은 부부(夫婦)의 길이니라.”

 

(91) 송말(宋末)엔 육수부 장세걸 문천상이 훌륭했다.

 

曰 今人 言必稱宋駁元 宋之末在君在臣 皆皆暗徒

왈 금인 언필칭송박원 송지말재군재신 개개암도

尙佛法虛文而 陸秀夫 張世桀 文天祥 幾個人 世傑之歎歌

상불법허문이 육수부 장세걸 문천상 기개인 세걸지탄가

大水茫茫 隔煙霧 我期借劒斬 侫臣 黃金橫帶 爲何人

대수망망 격연무 아기차검참 녕신 황금횡대 위하인

又歌曰 颶風起兮 海水飛 噫 文武盡兮 火德微 噫

우가왈 구풍기혜 해수비 희 문무진혜 화덕미 희

鷹鸇相擊兮 靡所施 噫 鴻鵠欲擧兮 將安歸 噫

응전상격혜 미소시 희 홍곡욕거혜 장안귀 희

獨抱春秋兮 莫我知 噫 其所歎歌 皆評其朝廷之意顯矣.

독포춘추혜 막아지 희 기소탄가 개평기조정지의현의.

 

※ 桀은 傑의 잘못 쓰임. 駁∶얼룩말 박, 고라말 박, 유부루말 섞일 박, 논박할 박. 隔∶막을 격, 막힐 격, 멀 격.∶재주 녕, 재주있는 사람 녕, 아첨할 령(재주가 있고 맘이 정직하지 못함).∶사방풍 구, 회리바람 구. 噫∶느낄 희, 한숨쉴 희, 대답소리 애. 鷹∶매 응∶새매 전, 구진매 전. 靡∶없을 미, 사치할 미, 어여뿔 미, 쓰러질 미, 붙좇을 미, 벋을 미, 흐트러질 미, 얽을 미, 썩을 미, 물크러질 미, 허비할 미. 鵠∶고니 곡, 따오기 곡, 과녁 곡.

 

말씀하시기를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말을 할 때마다 반드시 송(宋)나라로써 원(元) 나라를 논박하나 송(宋)나라의 끝무렵은 임금이 있고 신하가 있었어도 모두 어두운 무리여서 오히려 불법(佛法)과 겉치레를 숭상하였다. 육수부(陸秀夫)① 장세걸(張世傑)② 문천상(文天祥)③ 몇 사람이다.

장세걸이 탄식하여 노래하기를,

‘큰 물은 한없이 넓고 멀어 연기와 안개로 막힌 것 같고 나는 칼을 빌려서 간사하고 아첨하는 신하를 죽이려고 기약했는데 황금으로 띠를 가로한 어떠한 사람이 되는가?

또 노래하여 이르기를,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니 바닷물이 날고 아아! 문무(文武)가 다하니 불 덕(德)이 희미하네.

아아! 매와 새매가 서로 싸우며 흐트러지는 바를 미치도다.

아아! 기러기와 고니가 나르려 하니 앞으로 어느 곳으로 돌아갈까?

아아! 홀로 봄과 가을을 품었으니 나를 알지 못하겠다.

아아! 그 곳을 탄식하여 노래한다. ’

모두다 그 조정(朝廷)의 뜻을 나타내여 평(評)하였다.”

 

※ ① 육수부(陸秀夫)∶송(宋)나라 염성(鹽城) 사람. 자(字)는 군실(君實). 경정초(景定初)에 진사(進士). 성품(性稟)은 맘이 가라앉아 고요하였고 세상에 알려지기를 극(極)히 꺼림. 관(官)은 단명전학사(端明殿學士)‧첨서추밀원사(僉書樞密院事).

 

※ ② 장세걸(張世傑)∶?∼1279 중국 남송(南宋) 말기의 무장(武將). 허베이성(河北省) 출신으로 일찍이 무관으로 출세하여 관직이 월국공(越國公)에 이르렀다. 재임중에 원(元)나라 군사가 쳐들어오자 양쯔강(揚子江) 유역의 여러 곳에서 적과 대항하여 싸웠다. 그 후 함순(咸淳) 10년(1274)에 원나라 장수 백안(伯安)이 다시 쳐들어오자 문천상(文天祥) 등과 뜻을 같이하여 싸우기를 주장하였으나 승상(丞相) 진의중(陳宜中)의 반대로 수포로 돌아갔다. 임안(臨安∶杭州)이 적에게 함락되자 푸저우(福州)로 피신하였으나 원나라 장수 장홍범(張弘範)이 계속 공격해 오므로 안난(安南)으로 가서 재기(再起)를 꾀하려고 배를 탓다가 태풍을 만나 배가 전복되어 익사(溺死). 송(宋)나라의 멸망과 운명을 함께 하였다.

 

※ ③ 문천상(文天祥)∶1236∼1282 중국 남송(南宋) 말의 정치가. 장지성 지수이(江西省吉水) 출생. 20세에 진사시(進士試)에 장원급제했다. 1259년 몽고군이 쓰촨(四川)에 침입하여 천도설(遷都說)이 일어나자 일개 지방 관리에 지나지 않았던 그는 이를 크게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났다. 그후 복직 되었으나 가사도(賈似道)와 대립하여 사직했다.

1276년 원군(元軍)이 수도 임안(臨安)에 육박해 오자 의용군 1만을 거느리고 분전했으나 패하고 송(宋)은 원(元)에 항복했다. 강화(講和)를 위해 원의 승상 바얀과 회견하는 중에 말다툼을 하다가 구류(拘留)되었으나 탈출하여 푸저우(福州)에서 익왕(益王)을 모시고 송(宋)의 패잔병(敗殘兵)을 모아 싸웠다. 그러나 다시 원군에 잡혀 자살하기 위해 음독(飮毒)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도(大都∶北平)에 이송되었다.

원에 사관(仕官)하도록 권유받았으나 거부하고 옥중에 3년을 갇혀 있다가 ≪정기가(正氣歌)≫를 남기고 형사(刑死)했다.

 

(92) 문천상(文天祥)은 의(義)롭다.

 

曰 文天祥之一日存國 一日忠 二日存國 二日忠

왈 문천상지일일존국 일일충 이일존국 이일충

其說近是 其在元國 獄中之歌(正氣歌) 天地有正氣

기설근시 기재원국 옥중지가(정기가) 천지유정기

雜然賦流形 下則有河獄 上則有日星 於人曰浩然

잡연부유형 하즉유하옥 상즉유일성 어인왈호연

沛乎塞蒼溟 皇路當淸夷 含和吐明庭

패호색창명 황로당청이 함화토명정

時窮節乃見 一一垂丹靑云 其亦有義者也

시궁절내견 일일수단청운 기역유의자야

 

※ 沛∶패수 패 고을이름 패 둥둥뜰 패 비쏟아질 패 넉넉할 패 자빠질 패 젊잔을 패 클 패. ○원본에는 庭이 빠짐.

 

말씀하시기를 “문천상의 ‘하루를 나라에 있으면 하루의 충성이며 2일을 나라에 존재하니 이틀의 충성이다’ 그 설(說)이 가까우나 그는 원(元)나라에 있었으며 감옥 속의 노래(정기가)에 ‘하늘과 땅 사이에 일종의 정기(正氣)가 있어 천변(千變) 만화(萬化)의 형체에 따른다.

아래(땅)에서는 물과 산악의 정령(精靈)이요 위(하늘)에서는 해와 별의 광명(光明)이라. 사람에 있어서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피어 일어나면 천지에 가득찰 수 있다. 국가가 태평할 때에는 상서로운 화(和)의 기운을 머금어 광명(光明)을 조정에 나타내고 시국(時局)이 곤궁할 때에는 충절(忠節)을 이루어 하나하나가 단청(丹靑)에 드리운다. 이러하다고 하니 그 또한 의(義)로움이 있다.

 

(93) 육수부(陸秀夫)의 절개

 

曰 陸秀夫負君投江 亦一節可取也

왈 육수부부군투강 역일절가취야

 

말씀하시기를 “육수부(陸秀夫)가 임금을 업고 강에 몸을 던진 것은 또한 하나의 절개이니 가히 취할 것이다.”

 

(94) 믿으며 시기하지 않고 의심 않는 동이와 북적

 

曰 總論治國得國之道 宋元顯殊 宋朝則 全行奸權

왈 총론치국득국지도 송원현수 송조즉 전행간권

不經之道 元朝則 親賢遠奸 任用忠良 而君不君 臣不臣者

불경지도 원조즉 친현원간 임용충량 이군불군 신불신자

謂之中華 上下相孚 君臣無猜疑者 謂之夷狄 仕元者

위지중화 상하상부 군신무시의자 위지이적 사원자

爲後世嘲弄 此等書史與口法 皆出於支那 人手也

위후세조롱 차등서사여구법 개출어지나 인수야

難免其井蛙 所謂李朝稱儒者 不理數 如何排斥金人遼人

난면기정와 소위이조칭유자 불리수 여하배척금인요인

元朝自負夷狄 辱祖甚矣

원조자부이적 욕조심의

何能講究我檀君之道 後世必有王者 興辯其可否

하능강구아단군지도 후세필유왕자 흥변기가부

 

※ 孚∶믿을 부, 옥문채 부, 기를 부, 알[卵]부, 씨 부, 알을깔 부, 괘이름 부. 猜∶의심낼 시, 시기할 시, 샘낼 시, 두려워할 시, 사나울 시. 狄∶북방오랑캐 적, 아래벼슬 적, 악공 적, 꿩그린옷 적, 멀 적, 음성빠를 적. 嘲∶희롱할 조, 경멸할 조. 蛙∶개구리 왜(와) 음란한소리 왜(와). 遼∶멀 료, 강이름 료, 나라이름 료.

 

말씀하시기를 “모두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얻는 길을 논(論)하였으니 송(宋)나라가 다르며 송(宋) 왕조는 완전 간사한 권력이라 상도(常道)①에 벗어났고(합리적이지 못함) 원(元)나라 왕조(王朝)는 어진 사람을 친하고 간사한 사람을 멀리하여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을 직무를 맡겨서 부렸다.

임금이 임금이 아니고 신하가 또한 신하가 아닌 것이 중화(中華∶중국)라 일컬는다. 위와 아래가 서로 믿고 임금과 신하가 시기하지 않고 의심내지 않는 것은 동이(東夷)와 북적(北狄)이다.

 

원나라에 벼슬한 사람은 뒷 세상에 깔보고 비웃으면서 놀림조로 대하니 이것들은 서사(書史)②와 구법(口法)③이 모두다 지나(支那∶중국)사람의 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 것이 우물안에 개구리를 면하기 어렵다. 이른바 이씨(李氏) 왕조(王朝)에 선비라고 일컬으는 사람들은 이(理)④와 수(數)⑤를 알지 못하고 사정이 어떠하던 금(金)나라 사람과 요(遼)나라 사람을 반대하여 물리쳐 내뜨렸으며 원(元) 왕조(王朝)는 동쪽 오랑캐(夷)와 북쪽 오랑캐(狄)를 자부(自負)⑥하였으며 조상(祖上)을 욕보임이 심했다. 우리 단군(檀君)의 도(道)를 어찌 능히 강구(講究)⑦하지 않으리오.

뒷 세상에 반드시 임금이 나와 그 옳고 그름을 크게 일어남을 말하리라.”

 

※ ① 상도(常道)∶변하지 않는 떳떳한 도리(道理). 늘 지켜야 할 도리.

※ ② 서사(書史)∶책(冊). 경서(經書)와 사기(史記).

※ ③ 구법(口法)∶입버릇. 말버릇.

※ ④ 이(理)∶다스려짐. 법칙. 규율. 나아가서 형이상(形而上)의 원리.

※ ⑤ 수(數)∶낱낱의 것을 셈하여 본 결과의 값. 술수(術數).

※ ⑥ 자부(自負)∶자기의 가치나 능력에 대하여 스스로 자신을 가지거나 능력을 스스로 믿음. 자지(自持). 자신(自信).

※ ⑦ 강구(講究)∶좋은 방법과 꾀를 찾아 내도록 연구하여 대책을 취함.

 

(95) 신교(神敎) 대교주 출현

 

曰 未百年 壬人依神敎 先導矣 其時蒼生運厄 有知覺者

왈 미백년 임인의신교 선도의 기시창생운액 유지각자

靜而修道 以待其時也

정이수도 이대기시야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백년이 못되어 이 대교주(壬人)는 신교(神敎)에 의해 앞장서서 안내하리라. 그 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액(厄)이 운행(運行)하니 알아서 깨달음을 갖춘 사람들은 조용히(고요히) 도(道)를 닦음으로써 그 때를 기다려라.”

 

(96) 후천(後天)이 도래 때 하늘과 땅이 마찰한다.

 

曰 世運之變 換在黑白 相磨之時 天火地火 天 地師

왈 세운지변 환재흑백 상마지시 천화지화 천구지사

人何能堪生 乾坤之定 只在也

인하능감생 건곤지정 지재야

 

※姤∶만날 구, 어여뿔 구, 괘이름 구. 堪∶견딜 감, 이길 감, 맡을 감, 하늘 감, 산모양이 기괴할 감.

 

말씀하시기를 “세상 운수(運數)의 변함은 천부경(天符經)의 일적십거도(一積十鉅圖)의 선천이 뜻하는 흰 점 55와 후천을 뜻하는 검은 점 45가 서로 마찰할 때 곧 선천이 끝나고 후천이 닥쳐 올 때 하늘에 불이 떨어지고 땅의 불이 일어나며 천풍구괘(☰☴ )와 지수사괘(☷☳ )이니 사람이 어찌 능히 견디어 살아날 수 있겠는가? 하늘과 땅이 정하여짐은 다만 이 곳에 있다.”

 

(97) 뒷 세상엔 삿됨이 많음.

 

曰 後世人多邪唱邪說多矣 必有元世祖之焚雜道書 然後

왈 후세인다사창사설다의 필유원세조지분잡도서 연후

道歸統一矣

도귀통일의

 

말씀하시기를 “후세 사람들은 삿된 것을 부르는 것이 많으며 삿된 설(說)이 많으리라. 반드시 원(元)나라 세조(世祖)의 잡된 도서(道書)를 불사른 그런 다음에야 도(道)가 통일(統一)로 돌아오리라.”

 

(98) 왕도(王道)는 조선의 세종대왕과 원나라 세조이다.

 

曰 李朝世宗 有元祖之風 未能盡善而其後 不必論王道也.

왈 이조세종 유원조지풍 미능진선이기후 불필론왕도야.

 

말씀하시기를 “이씨(李氏) 왕조(王朝) 세종(世宗)①대왕은 원(元)나라 세조(世祖)②의 기풍(氣風)이 있으며 아직 능히 착함을 다한 그 후에는 ‘임금의 길’(王道)을 반드시 논(論)할 필요가 없도다.”

 

※ 세종대왕(世宗大王)∶1397(태조 6)∼1450(세종 32) 조선 제4대 왕. 1418∼1450년. 휘는 도(祹) 자는 원정(元正) 시호는 장헌(莊憲). 태종의 셋째아들. 원경왕후(元敬王后) 민씨 소생 비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에 봉해지고 1413년 충녕대군에 진봉(進封)된 후 1418년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세자 자리에서 쫓겨나자 세자로 책봉되어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였다. 왕은 즉위한 뒤 정음청(正音廳)을 두어 「훈민정음(訓民正音∶한글)」을 창제하고 집현전(集賢殿)을 설치 국내의 우수한 학자들을 총망라하여 학문을 강론케 하였고 활자를 개량하여 학자들을 지도해서 학문을 장려하고 서적편찬에 힘썼다.

 

세종 자신이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비롯하여 정인지‧권제(權 )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정초(鄭招)‧변계문(卞季文)의 「농사직설(農事直說)」 정인지‧김종서의 「고려사(高麗史)」 설순(楔循)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윤회(尹淮)‧신색(申穡)의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이석형(李石亨)의 「치평요람(治平要覽)」 수양대군의 「석보상절(釋譜詳節)」 김순의(金循義)‧최윤(崔潤) 등의 「의방유취(醫方類聚)」 등 각 분야의 서적을 편찬하였으며 관습도감(慣習都監)을 두어 박연(朴堧)으로 하여금 아악(雅樂)을 정리케 하였다. 이밖에 농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간의(大簡儀)‧소간의(小簡儀)‧혼의(渾儀)‧혼상(渾象)‧일구(日咎)‧앙부일구(仰釜日咎)‧자격루(自擊漏)‧누호(漏壺)‧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등 천문기계를 제작하게 했으며 고금의 천문도(天文圖)를 참작하여 새 천문도를 만들게 했다.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 등 역서를 짓게 했고 세계 최초로 측우기(測雨器)를 제작하게 하여 우량(雨量)을 측정케 했다.

 

농잠(農簪)에 관한 서적의 간행 환곡법(還穀法)의 철저한 실시 조선통보(朝鮮通寶)의 주조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를 설치하여 공정한 전세제도(田稅制度)의 확립 등으로 경제생활 향상에 전력했다. 사대사고(四大史庫)를 정비하고 「효행록(孝行錄)」 등을 간행하여 유교를 장려하는 한편 불교에 대해서 초년에는 억압정책을 썼으나 만년에는 내불당(內佛堂)을 지어 불교를 독신(篤信)하고 승과(僧科)를 설치하는 등 불교를 장려했다. 일본에 대해선 세견선(歲遣船)을 허락하는 등으로 회유책을 썼고 1419년 왜구가 침입하자 이종무(李從茂)를 시켜 그 소굴 쓰시마(對馬島)를 정벌케 했으나 다시 본래의 평화주의로 돌아가 쓰시마 사람들을 위해 삼포(三浦)를 개항했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명(明)에 대해 금‧은 세공을 말[馬]과 포(布)로 대신토록 외교에 성공하고 여진(女眞)과의 관계는 김종서(金宗瑞)와 이천(李蕆)으로 6진(鎭)과 4군(郡)을 설치하게 하였으며 능(陵)은 여주(驪州)의 영릉(英陵)이다.

 

※ 원세조(元世祖)∶1215∼1294. 이름 쿠빌라이(忽必烈). 칭기즈칸의 손자. 몽고제국 제5대 가한(可汗). 재위(在位) 1260∼1294년)1251년 형 몽케가 제4대 칸의 자리에 오르자 그는 중국 방면의 대총독에 임명되었다. 그는 고비사막 남쪽의 금연천(金淵川∶뒷날의 上都開平府)을 근거지로 삼고 지금의 중국 윈난성(雲南省)에 있던 대리국(大理國)을 멸망시켰으며 티베트와 베트남까지도 경략하였다. 그리고 형주분지(邢州分地∶河北)에 안무사(按撫司) 허난(河南)에 경략사(經略司) 경조분지(京兆分地∶陜西)에 선무사(宣撫司)를 두고 중국의 통치에 타고난 재질을 보였다. 1244년 유생(儒生) 왕악(王鄂 )을 고비사막 이북 지역(현재의 外蒙古)으로 초청하는 등 일찍부터 한(漢)나라 문화에 관심을 보였는데 특히 1253년 부터는 성리학자(性理學者) 왕순(王恂)에게 명하여 맏아들 친킴(眞金)의 교육을 맡겼다. 그리하여 그의 휘하에는 유병충(劉秉忠) 요추(姚樞) 허형(許衡) 등 특별히 성리학계의 중국 지식인들이 모이게 되었다. 1259년 남송(南宋)을 몸소 무찌르던 형 몽케칸이 쓰촨(四川)의 병영에서 병사하였다.

 

쿠빌라이는 국도(國都) 카라코룸을 지키고 있는 막내 아우 아리크부카의 야망에 선수를 써서 이듬해 이례적으로 중국의 카이핑부(開平府)에서 대칸(大汗)의 자리에 올랐으며 중국식으로 건원(建元)하여 중통(中統)이라 하였다. 그 뒤로 두 칸이 싸우기를 4년 마침내 아리크부카를 굴복시킨 쿠빌라이는 도읍을 연경(燕京∶北京)으로 옮겨 대도(大都)라 일컫고 이어 1271년 ≪역경(易經)≫에 입각하여 나라 이름을 원(元)이라 하였다. 원나라가 남송을 멸망시키고 이민족으로서 최초의 중국 통일을 이룬 것은 1279년의 일이다.

 

그러나 아리크부카의 잔당인 하이두(오고타이의 손자)와 도와(차가타이의 고손자)의 반란을 계기로 몽골제국의 분열이 일어났다. 30여년에 걸친 동서 두 칸의 실력항쟁기(1268∼1303)를 통하여 원나라는 뱃길로 일한국(汗國∶이란)과 친교를 계속하는 일만으로써 세계 제국의 면목을 유지하였다. 세조는 35년간의 치세에서 안으로는 툴루이가(家) 분지(分地)의 실력가인 진정(眞定)의 사(史)씨와 고성(藁城)의 동(董)씨의 협력하에 끈질긴 한인(漢人)의 세습적 봉건제후제(封建諸侯制)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제를 확립하였다. 또 금(金)나라와 당(唐)나라의 제도를 본받아 관제(官制)를 정하고 세제(稅制)를 정비하였다. 밖으로는 미얀마‧참파‧자바‧일본 등을 쳐서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대부분을 그 영역 안에 넣었다. 다만 외정(外政)의 강행으로 말미암은 재정난의 증대는 세조가 이재(理財)의 신하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아하마(이슬람교도) 노세영(盧世榮∶漢人)‧상가(위그루인) 마르코폴로 등 주로 색목인(色目人) 계통의 상인적 정치가의 활약을 허용하였다. 세조가 죽은 뒤 그의 뒤를 이은 성종(成宗)은 일찍 죽은 황태자 친킴의 아들이다.

 

(99) 구변(九變)의 도(道)는 중요하다

 

曰 神誌氏九變之道 將有其理 大道之人 不屑屑言

왈 신지씨구변지도 장유기리 대도지인 불설설언

不微微談 然 三朝鮮九壬之五 天下動 十壬平

불미미담 연 삼조선구임지오 천하동 십임평

 

※ 屑∶조촐할 설 수고로울 설 가루 설 맘이 편치 않을 설 가벼이 볼 설 좋아하지 않을 설.

※ 설설(屑屑)∶번거롭고 침착하지 못한 모양 부지런한 모양.

 

말씀하시기를 “신지(神誌)의 구변(九變)의 도(道)는 앞으로 그 이치가 대도(大道)의 인물에게 있게 되며 이는 하찮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셋 조선(朝鮮)에 임(壬)이 아홉번 지나고 5년을 더한 해에 천하(天下)가 움직이고 열 번째 임(壬)년에 평온이 있으리라.”

 

(100) 분열과 통일의 원리

 

曰 天下合而分 分而合 亦理之常 知者先察其機而隨行焉.

왈 천하합이분 분이합 역리지상 지자선찰기기이수행언.

 

말씀하시기를 “천하(天下)가 합쳐졌다가 나뉘어지고 나뉘어졌다가 합쳐지는 것은 또한 일반 원칙이기에 이를 아는 사람은 먼저 그 낌새(기틀‧기미‧징조)를 살피고 행하여야 하리라.”

 

(101)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道)를 좋아함

 

曰 江南之人 宋亡諸路 築天慶觀 奉宋太祖之神位

왈 강남지인 송망제로 축천경관 봉송태조지신위

至元成宗 變爲玄妙觀毁主也 惟我大震之人 好從他道

지원성종 변위현묘관훼주야 유아대진지인 호종타도

他邦風俗 自新羅以後 奉我檀君者鮮 只於民間

타방풍속 자신라이후 봉아단군자선 지어민간

口稱三神 奉安之風 千歲無知道者 不言可知也

구칭삼신 봉안지풍 천세무지도자 불언가지야

 

말씀하시기를 “양자강(揚子江) 이남의 지역 사람들은 송(宋)이 망하니 모든 길은 천경관(天慶觀)을 건축(建築)하여 송(宋) 태조(太祖∶조광윤)의 신위(神位)를 받들어 모셨다. 원(元)나라 성종(成宗)에 이르러서 현묘관(玄妙觀)으로 변하여 신주(神主)를 헐게 되었다.

오직 우리 대진(大震)의 사람들은 다른 도(道)를 좋아하여 따르며 이것은 다른 나라 풍속(風俗)이며 신라(新羅)로부터 이후로는 단군(檀君)을 받들어 모시는 사람은 드물었고 다만 민간(民間)에서 삼신(三神)①이라고 말로 일컬으며 받들어 모시는 풍속(風俗)이니 천년 동안 도(道)를 아는 사람이 없었고 말씀이 없었음을 가히 알겠느니라.”

 

※ ① 삼신(三神)∶상고(上古)시대에 우리 나라의 국토를 마련했다는 세 신. 즉 환인(桓因)과 환웅(桓雄)과 단군(檀君). 삼성(三聖).

 

(102) 도(道)는 불변 법(法)은 가변(可變)

 

曰 道則尋源而行 法則古今異宜 不必相沿

왈 도즉심원이행 법즉고금이의 불필상연

但取其宜於今者 今人不知有別 道法之間 豈不愚哉

단취기의어금자 금인부지유별 도법지간 기불우재

設宮室非構木之時 劍戟之爭 非拳鬪之日也

설궁실비구목지시 검극지쟁 비권투지일야

小子深究 此理焉

소자심구 차리언

 

※ 構∶얽어맬 구, 당길 구. 戟∶갈래진창 극.

 

말씀하시기를 “도(道)의 근원(根源)이 깊으니 행하는 법(法)은 예나 지금이나 응당 다르며 반드시 서로 좇지 않으며 다만 지금은 그 마땅함을 취하며 지금 사람은 다름이 있음을 알지 못하며 도(道)와 법(法)의 사이가 어찌 어리석지 않겠는가? 궁실(宮室)을 설치함에 나무를 얽어매는 때가 아니며 칼과 갈래진창의 싸움이 아니며 주먹으로 싸우는 날이 아니다. 소자(小子)야. 깊이 연구하라 이 이치를…”

 

(103)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반드시 알아야 함

 

曰 自上古 自天子至庶人 三年之喪 三年內設神位

왈 자상고 자천자지서인 삼년지상 삼년내설신위

朝夕供之 如生人朔望 有尊之理 諸君知之

조석공지 여생인삭망 유존지리 제군지지

 

말씀하시기를 “상고(上古) 때 부터 천자(天子)로 부터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3년의 상(喪)과 3년 안은 신위(神位)를 설치하고 아침과 저녁으로 음식을 올리고 살아 계신 것과 같이 그믐과 보름으로 공경하는 이치가 있으니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104) 상례(喪禮) 제례(祭禮)엔 남녀가 평등

 

余曾聞於紫霞先生曰 人之始生 三年能知父母與天地人

여증문어자하선생왈 인지시생 삼년능지부모여천지인

故 死而歸源亦三年成源 此前如生存例 待之朔與望

고 사이귀원역삼년성원 차전여생존예 대지삭여망

天五地五人五數 三合變幻故 示其表準也 今人母之喪

천오지오인오수 삼합변환고 시기표준야 금인모지상

父在則三年上食 只以朞年終之 此禮後人誤解誤定

부재즉삼년상식 지이기년종지 차례후인오해오정

爲子孫者 服期在殺 設或可也 供食父母之禮 父在不在

위자손자 복기재살 설혹가야 공식부모지례 부재부재

豈可有長短之理 設筵奉上之禮 父在母亦同 三年可也

기가유장단지리 설연봉상지례 부재모역동 삼년가야

如此之禮弊 皆生於男尊女卑之故 後世必變者矣

여차지례폐 개생어남존여비지고 후세필변자의

 

※ 朞∶돌 기, 두루할 기. 筵∶대자리 연, 왕이강하는자리 연.

 

내가 일찍 자하선생님께 듣기로는 왈(曰) “사람이 비로소 태어나서 3년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하늘과 땅과 사람을 능히 안다. 그러므로 죽으면 근원(根源)으로 돌아 올려면 또한 3년에 근원(根源)을 이룬다. 이것은 앞의 생존(生存)한 것과 같은 예(例∶보기)이며 초하루와 보름날을 기다림은 하늘이 5와 땅의 5와 사람의 5수(數)인 셋이 합치면 별안간 나타났다 없어졌다 하여 생각으로 미루어서는 종잡을 수 없는 변화인 까닭으로 그 표준(表準)을 나타냄이다.

 

지금 사람은 어머니의 상(喪)을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3년을 상가(喪家)에서 아침 저녁으로 영좌(靈座)에 음식을 차려 놓는다. 다만 상기(喪朞)①의 장기(杖朞)②와 불장기(不杖朞)가 끝마친다. 이 예(禮)는 후세 사람이 뜻을 잘못 아는 것과 잘못 정하여진 것이며 자손(子孫)된 사람은 옷을 입는 기간을 없애는데 있으니 설치하는 것은 아마도 가(可)하다.

 

음식을 갖추는 것은 부모의 예(禮)이며 아버지 살아 계시고 아버지 아니 계시는 것이 어찌 길고 짧음의 이치가 가히 있으리오. 대자리를 베풀어 위를 받드는 예(禮)이니 아버지가 살아 계셔도 어머니도 똑같이 3년함이 옳다. 이와같은 예(禮)는 없애야 한다. 모두 다 남자는 높이고 여자는 낮추는 것에서 생겼다. 그러므로 뒷 세상에는 반드시 변하리라.”

 

※ ① 상기(喪朞)∶상제 노릇을 하는 동안. 거상을 입는 동안.

※ ② 장기(杖朞)∶상례(喪禮)에서 상장(喪杖)을 짚고 삼베로 지은 상복을 1년 동안 입던 옛날의 거상.

 

(105) 서양인은 땅과 어머니를 모른다

 

曰 先生曾敎曰 後世滅乾坤 大德端始於現 兌方之人

왈 선생증교왈 후세멸건곤 대덕단시어현 태방지인

只呼父而不知母之恩 妄誕之說道也 世豈有有天無地無

지호부이부지모지은 망탄지설도야 세기유유천무지무

有父無母之理 兌人之所謂 尊天父無地母 將來人類

유부무모지리 태인지소위 존천부무지모 장래인류

皆歸禽獸之兆 況此不祀其祖而稱魔之境 此何曰人乎哉

개귀금수지조 황차불사기조이칭마지경 차하왈인호재

 

※ 兌∶기쁠 태, 지름길 태, 모일 태, 통할 태, 곧을 태, 구멍 태, 바꿀 태, 괘이름 괘, 날카로울 예.

誕∶클 탄, 이에 탄, 기를 탄, 속일 탄, 넓을 탄 ,허탄할 탄, 방탕할 탄.

 

자하진인께서 일찌기 가르쳐 말씀하시옵기를 “후세(後世)에 하늘과 땅이 멸망하리니 큰 덕(德)이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 서양(西洋: 兌方)사람들은 다만 아버지만 알고 어머니의 은혜는 모르며 허무(虛無)하고 터무니 없는 거짓의 길(道)이니라. 세상에 어찌 하늘은 있으나 땅이 없고 아버지는 있으나 어머니가 없는 이치가 있으리요. 서양 사람[兌人]들은 이른바 하늘과 아버지는 높이면서 땅과 어머니는 모르니 앞으로 인류(人類)가 모두 날짐승과 길짐승으로 돌아갈 조짐이라. 이는 조상에게도 하물며 제사(祭祀)도 지내주지 않으며 마귀(魔鬼)라고 일컬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으니 그를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요.”

 

(106) 천지 변화 시대

 

曰 天地變易之時 先滅其種者 兌人乎

왈 천지변역지시 선멸기종자 태인.

말씀하시기를 “하늘과 땅이 변하여 바뀌는 때에 먼저 그 씨앗(자손)을 망하는 사람은 서양 사람(兌=西)들이라 하리오?”

 

(107) 천지의 도(道)가 자연히 다시 밝음

 

曰 回此運極之時 乾坤之道 自然復明 神其神矣

왈 회차운극지시 건곤지도 자연복명 신기신의

말씀하시기를 “이 운(運)이 다하는 때에 돌아오니 하늘과 땅의 길(道)이 저절로 밝은 세계가 돌아오니 신(神)이 그 신(神)이니라.

 

(108) 서양사람들은 하나님이 벌을 주리라

 

曰 烏能返哺其養 亦祭其所生 況乎人不如禽獸

왈 오능반포기양 달역제기소생 황호인불여금수

將來兌人之所謂文明 只主相殺之心而已 天帝必誅之矣

장래태인지소위문명 지주상살지심이이 천제필주지의

 

※ 哺∶씹어먹을 포, 먹일 포.∶물개 달. 誅∶벨 주, 꾸지람 주, 벌줄 주, 갈길 주.

 

말씀하시기를 “까마귀도 능히 반포(返哺)①의 효도로 그 어미를 봉양(奉養)하고 물개 또한 그 태어난 곳에 제사를 올린다 하는데 하물며 사람이 날짐승과 길짐승과 같아야 겠는가? 장래(將來)에 서양 사람들의 이른바 문명(文明)이란 것은 다만 서로 죽이는 맘을 주로 하니 하느님(天帝)이 반드시 이들을 벌줄 것이니라.”

 

※ ① 반포∶까마귀는 새끼가 깨면 60일 동안 먹이를 물어다가 먹이는데 그 까마귀가 자라면 역시 60일 동안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길러 준 은혜를 갚는다는 중국 고래(古來)의 전설. 곧 자식이 어버이를 봉양하여 그 은혜를 갚는 효행.

 

(109) 동방의 나무임금시대

 

曰 東方寅木 壬則水 水生木之理也

왈 동방인목 임즉수 수생목지리야

壬儉之道 必使壬姓人先遵 噴水器于天下理也

임검지도 필사임성인선준 분수기우천하이야

 

※ 噴∶뿜을 분, 코소리낼 분, 재채기할 분, 후내불 분, 꾸짖을 분.

 

말씀하시기를 “우리 동방(東方)은 인목(寅木)이니 임(壬)은 곧 수(水)로써 수생목(水生木∶물은 나무를 살려줌)하는 이치이니라. 단군(檀君) 임검(壬儉)의 도(道 신교)는 반드시 임성인(壬姓人)①이 먼저 행할지니 물을 높이 뿜어 오르게 하는 기구는 천하(天下∶인간세상)의 이치이니라.

 

※ ① 임성인(壬姓人)∶임(壬)은 일태극수(一太極水)로 태극제(太極帝)를 일컬음.

 

(110) 신인(神人)이 출현

 

曰 火炎則 水益噴機之正也 三回之年五四後 赤鼠之令

왈 화염즉 수익분기지정야 삼회지년오사후 적서지령

世事蒼黃 生機者幾人 神之神之

세사창황 생기자기인 신지신지

 

※ 鼠∶쥐 서, 우물쭈물할 서, 산이름 서, 좀도둑 서, 근심할 서.

 

말씀하시기를 “불꽃이면 물을 더 뿜어 올리는 기계가 올바르다. 삼회지년오사년 후 적서(赤鼠)의 달에 세상 일이 허둥지둥 당황하는 모양이니 기틀을 생(生)하는 사람 몇 사람인가? 신(神)이며 신(神)이다.

 

(111) 도(道)의 기틀은 하느님의 명령이 있어야 함

 

曰 大道大機 非人所可盡道盡知 乃在帝命 諸君

왈 대도대기 비인소가진도진지 내재제명 제군

若當其時 勿有帝乃震怒 爲主 焉 吾言止此. 戒之愼之.

약당기시 물유제내진노 위주탈언 오언지차 계지신지.

 

※ 震∶벼락칠 진 진동할 진 위엄 진 두려울 진 괘이름 진 지진 진.∶깍을 탈 칠 탈.

 

말씀하시기를 “큰 길(道)과 큰 기틀은 사람이 아니면 가히 도(道)를 다하고 알음을 다하는 것이다. 이에는 하느님(天帝)의 명령이 있어야 한다. 여러분은 만일 그 때에 응당 하나님의 노여움이 있어도 막지 말지니, 주인(主)을 치는 것이 된다. 나의 말씀은 이에 그치니 경계하고 삼가하라.”

 

(112) 두문동 72인 가운데 김자수(金子粹)가 가장 훌륭했다

 

余曾待坐 先生曰 我東方國代 易姓方圓之分合 頻數其中

여증대좌 선생왈 아동방국대 역성방원지분합 빈수기중

王氏之末 立節死義之人 最多而世最稱道 李穡 鄭夢周

왕씨지말 입절사의지인 최다이세최칭도 이색 정몽주

吉再 以余其時目擊論之則 李之出見李朝不可曰無疵

길재 이여기시목격논지즉 이지출견이조불가왈무자

難歸于一止 鄭之死 被人所害 非自淨 以一國重任

난귀우일지 정지사 피인소해 비자정 이일국중임

不能運籌 乃輕其身 其心則其然 其無器量道德可知

불능운주 내경기신 기심즉기연 기무기량도덕가지

吉之則後處事 行隱文字 多有齟齬 不足論義節

길지전후처사 행은문자. 다유저어 부족논의절

外此諸人 各守其節與趣也 世稱七十二人中

외차제인 각수기절여취야 세칭칠십이인중

金子粹之死節于廣州 可謂從容中道 其退居與其節

김자수지사절우광주 가위종용중도 기퇴거여기절

前後一色 得正麗立節之人 以余所料 此人 第一云

전후일색 득정여립절지인 이여소료 차인 제일운

 

※ 穡∶거둘 색, 아낄 색, 농사 색. 疵∶즉은깨 자, 흠 자, 흠집 자, 병(病) 자. 籌∶셈대 주, 숫가지 주, 셈놓을 주, 투호살 주, 모략할 주, 제비 주. 齟∶이어긋날 저 씹을 저. 齬∶이어긋날 어.

※ 저어(齟齬)∶① 아래 웃니가 서로 잘 맞지 않음. ② 사물(事物)이 서로 어긋남. 사물이 서로 모순(矛盾)됨.

 

말씀하시기를 “내가 일찌기 자하선생님을 모시고 앉았을 때 선생께서 말씀하옵기를 ‘우리 동방(東方) 나라의 세대는 역성(易姓)은 네모(方)와 동그라미(圓)의 나뉘고 합함이 매우 잦았으니 그 가운데 고려 왕씨(王氏)의 끝무렵의 한평생 절개를 굽히지 않고 정의(正義)를 위하여 죽은 사람이 가장 많았으니 세상에서 최고의 도(道)로 말한다. 이색(李穡)① 정몽주(鄭夢周)② 길재(吉再)③등을 내가 그 때 자리에서 실제로 본 것을 논(論)한다면 이씨(李氏)는 옳지 않다. 또 말씀하시기를 “잘못은 없다. 어렵게 하나로 그치는데 돌아왔다. 정몽주(鄭夢周)의 죽음은 사람들이 해로움을 입은 바니 스스로 깨끗하지 않았고 한 나라의 중대(重大)한 임무인 연고로 운(運)을 셈놓을 수 없었고 그 몸을 가볍게 했으니 그 맘은 그렇고 그릇이 없어도 도덕(道德)의 헤아림은 가히 알 수 있다. 길재(吉再)의 이조의 개국 전과 개국 후의 처사(處事)는 문자(文字)로 숨어서 행하였으니 서로 어긋남이 많이 있어 정의(正義)와 절개(節介)를 논함을 족하지 않으며 그 밖에 모든 사람들은 그 절개와 취향(趣向)을 제각기 지켰다.

 

세상 사람들이 일컫는 72인(人) 안에 김자수(金子粹)④는 광주(廣州)에서 절개로 죽었으니 좋게 말한다면 중도(中道)를 꾀어서 권하였으니 그 물러나서 사는 것과 그 절개는 앞뒤가 하나의 빛깔이니 고려(高麗)가 바르게 얻음을 한평생 절개를 굽히지 않은 사람이니 나로써는 생각하는 것이니 이 사람이 가장 훌륭했다고 말하겠다.”

 

※ ① 이색(李穡)∶1328(충숙왕 15)∼1396(조선 태조 5) 고려 말의 성리학자. 여말(麗末) 삼은(三隱)의 한 사람. 자(字)는 영숙(穎叔)호(號)는 목은(牧隱). 시호는 문정(文靖). 본관은 한산(韓山). 찬성사(贊成事) 곡(穀)의 아들. 어려서부터 총기가 뛰어나 14세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 중서사 전부(中瑞司典簿)로 원나라에서 일을 보던 아버지로 인해 1348(충목왕 4년) 원나라의 국자감(國子監) 생원(生員)이 되었고 3년간을 유학해 성리학을 연구했고 아버지의 상(喪)을 입자 귀국하였다. 1352년(공민왕 1) 그의 학문의 경향과 정견(政見)의 윤곽을 피력한 의견서를 왕에게 제출하였고 1353년(공민왕 2) 괴과(魁科)에 들었으며 다시 정동성(征東省) 향시(鄕試)에 장원으로 합격되어 서장관에 임명된 후 원나라에 들어가 다시 문과에 급제 한림지제고(翰林知制誥)가 되었다. 귀국하여 내서사인(內書舍人)에 올랐으며 밀직제학 동지춘추관사(密直提學同知春秋館事)가 되자 이로부터 국정에 참여 1361년 홍건적(紅巾賊)의 입구(入寇)로 왕이 남행할 때 호종 1등공신이 되었고. 1367년(공민왕 16) 성균대사성이 되었고 정몽주(鄭夢周)‧김구용(金九容) 등과 명륜당에서 학문을 강론하니 이에 정주(程朱)의 성리학(性理學)이 처음으로 일어났다.

1371년(공민왕 20) 정당문학(政堂文學)이 되고 문충보절찬화공신(文忠保節贊化功臣)의 호를 받았으며 1373년(공민왕 22) 한산군(韓山君)에 피봉 다시 1377년(우왕 3) 추충보절동덕찬화공신(推忠保節同德贊化功臣)의 호를 받고 우왕(禑王)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공양왕 때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가 되었고 그후 오사충(吳思忠)의 상소로 장단(長湍)‧함안(咸安) 등에 귀양갔으나 돌아와 다시 한산부원군에 피봉 예문 춘추관사(藝文春秋館事)로 임명되었다.

정몽주가 피살되자 관련되어 다시 금천(衿川)‧여흥(驪興)‧장흥(長興) 등지로 유배된 뒤에 석방되었다. 조선 개국 후 태조는 그의 인재를 아끼어 1395년(태조 4) 한산백(韓山伯)으로 봉하며 예를 다하여 출사(出仕)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固辭)하고 망국의 사대부(士大夫)는 오로지 해골을 고산(故山)에 파묻을 뿐이라고 하였다. 다음해 피서차(避署次)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 갑자기 죽으므로 그 사인(死因)에 대하여는 후세에 의혹을 남기고 있다. 후한조(後漢朝)의 양팽(陽膨)에 비겨서 그 절개를 특필하고 있다.

문하(門下)에 권근(權近)‧김종직(金宗直)‧변계량(卞季良)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룩 하였으며 한편 불교에 대한 조예도 깊었으며 고려 말기에 학문과 정치에 거족(巨足)을 남긴 존재였다.《목은집(牧隱集)》 55권이 전한다.

 

※ ② 정몽주(鄭夢周)∶1337(충숙왕 복위 6)∼1392(공양왕 4) 고려 말기의 충신.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字)는 달가(達可) 호(號)는 포은(圃隱)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본관은 영일(迎日) 고려의 명유(名儒)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습명(襲明)의 후손 관(瓘)의 아들. 1360년(공민왕 9) 삼장(三場)에 연달아 장원 급제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을 거쳐 1364년(공민왕 13) 병마사(兵馬使) 이성계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여진(女眞)의 삼선(三善)‧삼개(三介)를 화주(和州)에서 격퇴하였다. 전농시승(典農寺丞)‧예조정랑(禮曹正郞)‧사성(司成)을 거쳐 1372년(공민왕 21)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1375년(우왕 1)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를 거쳐 대사성(大司成)으로 북원(北元)을 섬기지 말 것을 주장하다가 권신 이인임(李仁任)에 의해 귀향갔으며 또 사신으로 일본에 가서 해구(海寇)를 금지할 것을 교섭하고 돌아왔다. 1380년(우왕 6) 이성계를 따라 운봉(雲峯)에서 해구(海寇)를 친 공으로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고 1384년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명(明)나라에 가서 국교(國交)를 두텁게 하고 돌아왔다. 1386년(우왕 12)에 또 명(明)에 들어가서 세공(歲貢)을 면제할 것을 청하고 돌아와 영원군(永原君)에 피봉 삼사좌사(三司左使)를 거쳐 1389년(창왕 1) 대제학(大提學)이 되었다. 이성계와 같이 공양왕을 세우고 문하찬성(文下贊成) 등 여러 벼슬을 받고 익양군충의군(益陽君忠義君)에 피봉 좌명공신(佐命功臣)의 호(號)를 받았으며 1392년(공양왕 4) 대명률(大明律)을 새로 찬정(撰定)해 바쳤다. 당시 이성계의 위력(威力)이 나날이 커져서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 등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우선 조준을 제거하려 하는 동시에 고려조(高麗朝)를 끝까지 떠받들고자 하다가 이방원(李芳遠∶조선태종)의 문객 조영규(趙英珪) 등에게 선죽교(善竹橋)에서 피살되었다. 성미가 호방하고 매서웠고 충효로 일관했으며 성리학에 매우 밝아 오부학당(五部學堂)‧향교(鄕校)를 설치하여 유학(儒學)을 진흥시켰다. 시문(詩文)도 호방하여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태종 때 대광보국 숭록대부 영의정부사 수문전대제학 감예문춘추관사 익양부원군(大匡輔國崇祿大夫領議政府事修文殿大提學監藝文春秋館事益陽府院君)이 추증(追贈)되고 시호가 내렸으며 중종(中宗) 때 문묘(文廟)에 모셨다. 《포은집(圃隱集)》이 전한다.

 

※ ③ 길재(吉再)∶1353년(공민왕 2)∼1419(세종 1) 고려말‧조선 초기의 학자. 자(字)는 재부(再父) 호(號)는 야은(冶隱)‧금오산인(金烏山人). 시호(諡號)는 충절(忠節). 본관은 해평(海平).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권근(權近)의 제자이며 성리학을 공부하였다. 1386년(우왕 12)에 진사에 합격 청주목(淸州牧)의 사록(司祿)을 주었으나 받지 않았고 1387년에 성균관 학정(成均館學正)이 되고 박사에 이르러 공직에서는 국자감의 학생들을 집에서는 양가자제(良家子弟)를 교육하였다. 1389년(창왕 1)에 문하주서(門下注書)의 직을 내렸으나 늙은 어머니가 있음을 핑계로 다음해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를 섬겼다. 고려가 망하고 1400년(정종 2)에 친교가 있던 태자 방원(芳遠)이 불러서 태상박사(太常博士)를 내렸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하여 끝내 나가지 않았다. 세상은 그의 충절(忠節)을 존경하여 목은‧포은과 함께 고려의 삼은(三隱)이라 하였다. ꡔ야은집(冶隱集)ꡕ이 전한다.

 

※ ④ 김자수(金子粹)∶고려 우왕 때의 현신. 자(字)는 순중(純中) 호(號)는 상촌(桑村). 본관은 경주. 공민왕 때에 문과에 급제 덕녕부주부(德寧府注簿)가 되었고 우왕 때에 정언(正言)으로서 경상도도순문사 조민수(曺敏修)의 전공축하(戰功祝賀) 회교(回敎)를 작성하라는 왕명을 완강히 거절한 죄로 돌산(突山)에 유배되었다. 뒤에 전교부령(典校副令)을 거쳐 판사재시사(判司宰寺事)에 이르렀고 공양왕 때에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세자좌보덕(世子左輔德)이 되었다. 이때 천변(天變)이 자주 일어나자 글을 올려 봉불(奉佛)의 잘못을 말하고 연복사탑(演福寺塔)의 중수공사 중지를 역설 왕의 숭불을 통박하였다. 뒤에 전교시판사(典校寺判事)를 거쳐 좌상시(左常侍)‧형조판서에 이르렀으나 고려가 망하자 안동(安東)에 은거하였다. 조선 태종이 형조판서로 불렀으나 거절하고 고려가 망한 것을 비관하고 자결하였다.

 

(113) 조선 때에 중용을 행한 윤탁(尹倬)

 

先生曰 李朝之世稱曰儒林云云者多也 無偏無黨

선생왈 이조지세칭왈유림운운자다야 무편무당

勤於敎導後生 尹倬近可 李滉李珥彷佛也

근어교도후생 윤탁근가 이황이이방불야

珥之文 往往有過激之病痛也

이지문 왕왕유과격지병통야

 

※ 偏∶치우칠 편 불공평할 편 반신 편 무리 편 오십명 편(오십 사람을 한반으로 한 것을 일컬음) 간사한 모양 편 넓을 편 하맘 편 왼쪽획 편(만들은 글자의 왼쪽의 획). 倬∶클 탁 환할 탁. 滉∶물깊고 넓을 황. 珥∶귀막이옥 이 귀고리 이 해무리 이. 彷∶방황할 방 어정거릴 방 비슷할 방. 彿∶비스름할 불 비슷할 불.

※ 방불(彷佛)∶① 거의 비슷함 근사(近似)함. ② 멍하여 분명하지 못한 모양.

 

자하선생께서 말씀하시옵기를 “이씨(李氏) 조선(朝鮮)은 세상 사람들이 이르기를 ‘유림(儒林)이다’라고 이러이러 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아니하여 (중정(中正)의 입장(立場)을 지킴) 후생(後生)을 가르쳐 인도함을 부지런히 한 사람은 윤탁(尹倬)이 가히 가깝고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는 거의 비슷하다. 이이(李珥)의 글월은 이따금(때때로) 지나치게 격렬한 것이 결점(과실)이다”

 

(114) 이씨 조선 때엔 세종대왕의 치적이 훌륭함

 

先生曰 以余所量 李朝之治國 自世宗以後 無可觀也

선생왈 이여소량 이조지치국 자세종이후 무가관야

其末 廷多背義之人 必少立節者矣 此亦世運

기말 정다배의지인 필소입절자의 차역세운

其反本之道 非人所能也

기반본지도 비인소능야

 

자하선생님께서 말씀하시옵기를 “내가 헤아리는 것은 이씨 조선의 나라를 다스림은 세종대왕 이후로는 가히 볼 것이 없느니라. 그 끝무렵에 조정(朝廷)에 정의(正義)를 등진 사람들이 많았으며 반드시 한평생 절개를 굽히지 않는 사람은 적었다. 이 또한 세상의 운(運)이니 그 근본(根本)을 돌이키는 길이니 사람이 능한 바가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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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국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7.09 내용이 길어서 힘드네욤 ㅜㅜ;; 어쨋든 동서고금을 먼저 알아야 천하사에 대한 안목을 키울수 있죠. 위글은 신선들의 고담준론이니 꼭들 읽어 보세요. 이해하기 쉽게 주석도 많이 있고.... 담에 시간나면 사진을 첨부해서 더 재미있게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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