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사소한 일이라도 누구로부터 나 또는 나와 관련된 사람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은 잘 잊히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힌 사람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내 부모를 살인한 자는 결코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철천지원수로 기억될 것이다. 세월이 흐르더라도 원수가 친구가 될 수 없다. 이는 인간의 99.999%가 갖는 심정일 것이다. 길을 가다가 벼락을 맞을 정도의 확률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지만 凡人은 감히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대한민국 파괴와 불법탄핵에 항거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염 속에서 싸워왔던 국민들에게는 거짓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공소장이 탄핵의 기초가 되게 한 자, 돈 한 푼 받은 적이 없는 박대통령을 구속하기까지 한 자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적으로는 부모를 죽인 원수처럼 공적인 살인을 한 사람들로서 원수다.
대한민국의 자유, 정의, 진실, 법치를 파괴한 자가 누구인지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를 찬양하고 박수를 보내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다. 그들도 스스로 보수라고 하는 자들이고 박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잘못되었다고 소리치던 자들이다. 그들이 예수라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악랄했던 그들의 만행을 잊었다는 것인가.
살인자가 살아남기 위해 강도짓을 하고 강도질한 것의 일부를 고단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해서 살인의 피해자 가족이 살인자를 의적이라고 찬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인자는 살인자일 뿐이고 원수는 원수일뿐이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살인자가 강도짓을 하여 나눠주는 동전은 살인자의 면상을 향해 집어던져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조개와 도요새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을 명확히 해두면 조개와 도요새의 싸움에 끼어들어 조개의 편이 되거나 도요새의 편이 되어 응원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등 뒤에 방망이를 감춘 채 지는 석양도 바라보고 먼 산 아래 집에서 밥 짓는 연기 피어오르는 것도 구경하다가 조개와 도요새가 지치면 그때 비로소 몽둥이로 둘을 개 잡듯이 때려잡으면 되는 것이다.
남이 시장 간다고 하니 똥장군을 지고 따라서 시장가는 식으로 원수를 찬양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것을 좌파들이 보고서 혀를 차고 보수를 향해 모멸에 찬 비난을 해도 뭐라고 대꾸할 것인가. 원수는 원수요. 적은 적이라는 것만 분명히 한다면 감히 이러한 찬양하는 행동을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적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하나의 적에게 이기라고 응원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은 적에게 굴종하는 것이고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