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야夜) | 2006.04.18 10:104 | 조회 : 0 |
| 밤야(夜)자는 달월(月)자와 옷의(衣)가 합쳐진것처럼 보이며 또 그렇게 볼때 달밤(月夜)에 옷을 벗는(裸身) 여인 같은 글자로 오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밤야(夜)자는 하루 온종일 열심히 일하고 피곤한 몸을 또한번(亦) 쉴수있게된 저녁(夕)이 와서 매우 즐겁고 편안하게 쉴수가 있다는 글자이다 그러니까 밤야(夜)자는 또역(亦)자와 저녁석(夕)자가 합쳐진 글자라고 한다 어렵고 힘들게 일하는 낮이 있다면 포근한 잠을 잘수가 있는 밤이 또한 그리운것이다 밤야(夜)자는 인류역사를 지탱해온 반만년 긴세월의 그 절반을 차지하는 5,000년의 시간을 할애받고있는것이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는데 그 절반은 밤이 차지한다고 생각해볼때 밤의 역사는 길고도 아름다운것이 아니라고 할수없겠다 밤에 이루어진 역사를 야화(夜話)라고 한다면 저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千一夜話)를 빼놓을수없다 부정하고 요망스러운 한 여인으로부터 사랑에 배신을 당하고 그 복수로써 매일밤 새 신부를 맞이해 해가 뜨기전에 처형시키는 술탄왕은 세헤라자드라는 한 후궁인 여인으로부터 기기묘묘(奇奇妙妙)하고 흥미진진(興味津津)한 새로운 이야기들로 어느덧 날이 새고 해가 뜨는것을 잊어버리게하였으니 세헤라자드는 기상천외(奇想天外)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약3년간이나 계속되는 날마다의 새로운 이야기속에 술탄왕을 매혹시켜버리었다 이렇게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삼년이라는 세월이 훌러갔으며 술탄왕은 드디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되었고 세헤라를 후궁에서 왕후로 책봉하였다는 중동지역 구전민담(口傳民譚=책으로 기록된것이 아니라 민간으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내려운 이야기)은 인류문화의 또하나의 기념비라고할것이다 쓰임새 1. 야화(夜花)=밤에 피는꽃. 즉 화류춘몽(花流春夢)의 여인 2. 야화(夜話)=역사적인 진실을 따지지않은 구전민담(口傳民譚= 백성들 특히 여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이야기 3.야차(夜叉)=모질고 사나운 귀신=두억시니 4.야차두(夜叉頭)=추악한 형상의 더벅머리 귀신 5.야래향(夜來香)= 달맞이 꽃 = 정비석이 지은 소설이름
술탄 코란에서는 종교적으로 중요한 증시(證示) 또는 권위의 의미로 사용되는 비인격적인 것이었으나, 후세에 특정한 지역을 지배하는 개인의 칭호로 되었다. 875년 아바스왕조의 칼리프 무타미드(재위 870∼892)의 동생이 맨처음으로 이 칭호를 수여받았으나, 13세기 이후 세속권력의 최고권위를 지니는 이슬람 전제군주의 공식칭호로서 투르크계(系)의 가즈나왕조에서부터 사용되었다. 이 칭호를 실제적으로는 셀주크왕조의 투그릴 베그가 최초로 사용하였고, 소아시아의 루므셀주크왕조, 이집트의 맘루크왕조, 오스만투르크제국 등이 이 칭호를 습용(襲用)하였다. 이란에서는 지방지사(地方知事)의 칭호로 사용되었고 모로코 ·아라비아반도 남부 ·카슈미르 ·인도네시아에서는 토호(土豪)나 작은 군주가 정치적 지배자로서 이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오스만투르크제국에서는 왕녀의 칭호로도 사용되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정확한 원제는 <천 한 개의 밤>으로써, 천일야화(千一夜話)라고도 불리는 아랍 세계의 민담집이다. 이는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지드가 동양문학의 커다란 두 산봉우리로 성서와 아라비안 나이트를 손꼽을 만큼 아랍어로 쓰여진 설화의 집대성이기도 하다. 천일야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001일 밤 동안의 이야기이다. 천 일이라는 데에는 1001일 동안이라는 숫자상의 개념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많다는 의미로도 더불어 볼 수 있다. 천일야화의 발상지인 중동지역에서는 1000에 1을 더하는 만큼 ' 많다'라는 의미로 1001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일야화'는 1001일밤 동안 계속된 이야기' 혹은 '수많은 밤의 이야기'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로 볼 수 있다. 사실상 1001일은 3년 정도의 오랜 기간이므로 이같은 중의적 의미를 모두 가진다고 보아도 타당할 것이다. 아라비안 나이트라고도 알려져 있는 천일야화는 어린시절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할 정도로 유명하며, 풍부한 상상력과 동양적 신비의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많은 서구인들을 매료시켜 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정작 아랍 세계에서는, 특히 교육받은 사람들 가운데서는 거의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왔다. 아랍 학자들이 이 책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한 데에는 문화유산에 대한 그들의 보수적인 관점이 작용하였다. 왜냐하면 천일야화는 표준어로 쓰여지지 않은 서민 문학이었기 때문에 표준어로 씌여진 문학에만 관심을 표명하던 학자들에게 외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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