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나름 열심히 교횔 다녔는데, 누군가는 현제에도 교회 예밸 참석하기 위해 목슴을 건다고 하잖는가. 북한도 그렇고 이슬람권에서도 그렇다는 얘길 들었다. 우리 대한민국 땅에서는 믿기 어려운 얘기이지만 지구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예배 참석하기가 쉽지 않는 곳이 존제한다고 한다. 이토록이나 귀하고 귀한 예배자리를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물론 온라인예배라는 편리한 예배자리가 있긴 하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찾아온 선물같은 예배방식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에겐 반듯이 필요한 편리일수도 있겠고, 허지만 나같은 게으른 사람에게는 그냥 핑개만 될 뿐일수도 있을게다. 내 선택이 옳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렇더라도 아마 당분간은 온라인 예배로 마음을 정했다. 교횔 안가게 되니까 주일 아침이 참 편하고 한가하게 온라인 예배를 섭렵할수 있어서 좋은점도 있었다. ㅎㅎㅎ 이불 빨래도 했다. 비 온다는 예보는 없었는데, 누군가 이불을 현관 앞에 옮겨주었다. 비가 왔었나 보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 친절이 고마웠다. 나는, 누구에게 친절을 배푼적이 있엇던가. 뛰어난 이기심으로 차 있는 내가 아닌가. 사실 구석구석에 친절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오늘도 세상이 지속되고 있는 중일게다. 어께에 힘주고 잘난척하며 누군가 앞에서 폼내는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이다. 아들은 내일, 다시 출장에 나선다고 햇다. 아들의 일터는 지방 각지에 있다. 아이들에 대한 염려로 늘 걱정이 많은 아들이다. 내 입장에서는, 아들이 지 아빠를 닮지 않아서 참 다행이면서도, 아들이 측은하다. 세상이 그렇다고 하는데도, 마치 내 꼬라지를 닮은 것 같아서다. 부부가 서로 협력하며 살아도 잘 될지 확신이 어려운 새상에 협력은 커녕 서로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면 그처럼 힘들고 어려운일이 또 있을까. 공존, 협력, 배려. 다 쉬운것은 아니다. 어렵기에 함께 풀어가라고 하신걸지도 모르겠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가족으로 만나 함께 살아간다는게 어디 쉬운 인연이겠는가만 가망없는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가혹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포기하고 대충 살면 어떨까. 결국엔 그렇게밖에 어찌하겠는가. 기대할게 없으니 그만두고 싶다는 내 마음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다만 그만두고 싶다고해서 그만 두어지지 않는다는게 문제일뿐이다. 그분께서 손들어주시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잔머리를 굴린다고해서 뭐가 달라지거나 꼼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오늘 하루도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80을 살았는데,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도 알만끔은 아는데, 여전히 낭비하고 있는 나는? 꽃들이 지고 있다. 장미들도. 꽃잎을 미처 떨구지 못하고 가지에 매달린체로 말라가는 모습들은 더이상 아름답지도 않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잖아. 길어야 열흘이다. 사람은 어떤가. 거이 영원에 가깝지 않는가. 사는게 평탄하거나 즐겁고 행복하다면 오래오래 살고 싶어질려나. 기대할게 많다면 죽는게 싫을수도 있을까. 부귀영화 영생복락? 이게 사람들의 꿈일수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줘지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근접해볼수있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최근에도 선거가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당락을 경험했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설령 부귀영화가 지천에 널려있다한들 내것이 아니고 나와 관련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늘 하루도 헛되이 시간을 낭비했다. 그럼에도 감사하다. 감사할수 있으니 감사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