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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임시 예배처에서의 첫 셀예배가 있는 날이다

작성자개울가|작성시간26.06.12|조회수22 목록 댓글 0

거리가 좀 있으니까, 계단이 가파르니까 좀 일찍 집을 나서야 할것 같다. 옆에사시는 권사님은 오늘 불참하겠다고 전화연락이 있었다. 그분, 말로는 한방병원 가는데 너무 힘들어서라고 했지만, 못듣는 스트레스가 보통은 아닐게다. 옆에 나도 엄청 불편한데 본인은 어떻겠는가. 못보는 불편도 사실 크다. 나역시 돋보기 없으면 거이 까막눈이다. 듣고서도 잊는거나 못듣는것나 피장파장이라고 쉽게 말했지만 그도 아닐게다.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지 못듣는다는게 어찌 쉽겠는가. 자신의 목소리도 못듣는다면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 어찌 들리는지 알수없어서 얼마나 스트레스가 클지 상상이나 할수 있겠는가. 그러고보면 나는 감사할게 더 늘어난 샘인가. 보고 듣고 말하고, 이것만으로도 큰 은혜다. 이런 불편이 있으니라고는 상상도 안했으니까. 조만간 치과에도 가봐야겠다. 의사선생님과 다투기 싫어서 못가고 있는데, 더 심해지기 전에 다녀와야 할것 같다. 치과선생님 말로는 때워서 될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본적인 치료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수긍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꼭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냥 견디어보고 싶어서다. 곧 갈것인데, 치료하고나서 충분히 쓰지 못한다면 아깝지 않겠는가. 그리고 치료 과정도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다. 그래저래 버티고 버티는 중이다. 이 어리섞은 고집을 누가 말리겠는가. 주변사람들만 스트레스겠지. 아니, 누가 관심을 갖기나 할까. 모르겠다. 아들에게서 입금했다는 문자가 들어왔는데, 뒤늦게서야 고맙다는 말을 너무 간단하게 전했다. 그리고 인출했다. 아들이고 딸이고 지들이 더 필요한 돈인데, 나는 그만두라는 말을 못하고 있다. 내가 더 빈궁해질까 두려워서다. 나는 어차피 아끼고 또 아끼는 사람이다. 꼭 쥐고 있으면 어디 가는게 아니지 않는가. 지난해에도 내 장례비로 모았다가 돌려주었다. 작년만 셈하자면 오히려 내돈이 더 간것 같다. 복잡하게 셈하지말고 그만 받고말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해보지만, 그럼에도 주고받는 행동을 하는게 사람사는 노릇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하고, 돈이 곧 권력인데, 어쩌랴 싶기도 하고, 머리 굴리는 것도 쉽지가 않는데, 그냥 빨리 갔으면 제일좋겠다는 생각이다. 휴!

날들은 빨리도 지나가고 있다. 막 시작한듯 싶은데, 벌써 일년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곧 어머니 기일이다.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계실까. 할머니들을 만나셨을까. 어쩌면 만나보고 싶거나 다시 함께하고 싶은 관계는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생각하는 할머니는 결코 같을수 없을태니까. 내게는 고맙고 그리운 분들이다. 우리 모녀의 울타리가 되어주셨던 분들이니까. 그럼에도 어머니가 격었을 평생의 한은 쉽게 설명할수 있는 것은 아닐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버지는 어떠실까. 젊은 나이의 아버지는 자기가 옳다는 일을 하다가 비명에 가셨다. 시국의 희생자이신 셈인데, 아버지의 선택으로 몇사람이 피해를 입엇다는 미안함 같은것은 있으실까. 미안감으로 보상이 되기는 한것일까. 가해자는 국가인데, 보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흔한 국가 유공자라는 대우도 없었으니 헛되고 헛된 죽엄 아닌가 싶다. 명예회복 운동이라도 해야했지만, 더 많은 세월이 흐른다음에나 가능할까. 제주도의 4,3 사테와도 다르다. 그냥 말 그대로 학살이 이루워 졌으니까. 누가 어디에대고 항의 비슷한거라도 해보겠는가. 그리고 그 후손들도 다들 나이가 많아 늙어 죽었거나 부끄러워서 숨듯해왔으니 남은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를일이다. 역사적인 비극이 여기, 내 가슴속에도 이제는 잊혀져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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