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켠디션 문제일수도 있다. 콧물이 나오고 목이 따끔거리고 하는걸보면 그냥 실내온도 탓은 아닐수 있다. 한겨울엔 18-9도를 유지했었는데, 25-6도면 춥다는게 말이 안된다. 아닌가. 겨울엔 옷이 두꺼웠고, 이불도 두꺼웠고, 창문도 굳게 닫혀있긴 했으니까. 한번쯤 앓을때도 되긴 했다. 내 나이정도면 늘 여기저기 아프게 마련이니까. 아니, 어께가 심할정도로 아팠던 것도, 아직 아프고 있는 중인것은 뭔데? 감기인지 비염인지는 몰라도 밤새 앓는소리를 냈다. 그리고 아침 먹자마자 약을 먹었다. 다행히 약발은 잘 받는다. 옷을 입을만끔 챙겨입었다. 어께엔 보관중이던 숄을 둘렀다. 딸이 사준것인데, 별로 쓸일이 없어서 보관만 했던 것이다. 이렇게라도 요긴하게 쓰면 되지 싶다. 또 재치기다. 어제는 딸이 가저다준 작으마한 손가방을 들고 교횔다녀왔다. 내게 있는 것들은 대게 딸이 사준거다. 뭐 비싼것은 아니라니 그런가보다 한다. 나는, 물건 볼줄 모른다. 안목이 없어서다. 물건에 대한 내 소견은, 요긴하게 잘 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정도다. 돈이 여유가 있다면 같은 물건이라도 좀 더주고 사고, 돈이 적다면 싼 물건을 사도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가난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돈을 더주고 사면 당연히 좋은 물건일게다. 비싼걸 척척 살수있다면 그도 분명 좋을일일게다. 그렇지만 형편껏 사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아무리 필요하다 싶어도 비싸면 못산다. 아니, 안산다. 딸 형편은 나보다는 나은가. 모르겠다. 일단은 전업주부로 살고있다. 턱없이 모자라면 생업전선에 뛰어들겠지. 지가 안벌어도 살아갈만하면 뭐 유유자적 사는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긴하다. 그래도 가끔은 딸도 돈을 벌었으면 하는 생각을 할때도 있다. 딸이 돈을 벌면 내가 얻어쓰는게 덜 부담스럽지 않을까도 싶다. 물론 가진 재주가 없긴하다. 들어오는 돈에비해 헛고생만 할것같아서 전업주부를 택했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의미에서는 옳은 선택일수도 있으리라. 나도 뭔가 할수 있으리라는 허영심에서 떠밀려 다니는 것 보다는 말이다. 나는, 사실 선택이고 뭐고가 없었다. 당장 생계비를 모른척하고 살수는 없었다. 남편은, 일은 했지만, 수입이 자신의 지출을 따르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보면 그게 그사람의 생존 방법이었던 것 같다. 왕외톨이가 안되고 서로 어울려 직장생활을 하려면, 술사고 밥사고 화투도 함께치고 해서 지낼수밖에 없었다면,,, 가족은 그에게 그냥 짐이고 부담이었을것이다. 책임감 1도 없는 사람이었다. 성실하지도 않았고, 의무간도 전무했다. 이런 사람에게 무었을 기대할수 있었을까. 무협판타지 세계에서나 있는 역전을 그에게서 바랐다면 나야말로 정신병자겠다. 약효가 나타난것인가. 콧물도 멈칫하고 재치기도 그친듯 하다. 등에 걸친 숄은 걷었다가 덥었다가를 거듭하고 있다. 오늘은 주말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일이 뭐더라. 그래, 금요일 오후를 좋아하고 반겼다. 날마다가 주말이고 휴일인데도 그렇다. 앞으로 얼마가 남았을까. 거듭되고 반복되는 요일들을맞고 보내면서 내가 할일이 있기는 한것일가. 누구도 오래사는게 재앙이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 80이면 얼마나 많은 나이인가. 그런데 조금씩 익숙하게 되는 것도 같다. 교리속에는 영생이란 말도 있다. 누군가는 영생도 바라는 것일까. 나는 소멸쪽을 택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말이다. 하나님을 다 아는것도, 이해한다고 말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내가 아는것은 작디작은 어린 조개껍대기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지 모른다. 이땅에 와서 사람으로 살다가 가는데, 기적이고 은혜가 아닌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불평했던 것은 잘 몰라서였다. 맞다. 내가 앎이 부족했다. 감사하다. 내가 내 정신일때 갈수 있엇으면 좋겠다. 혼자서 살고있으니 대화중에 갈수는 없을테고, TV를 히죽거리며 보다가. 혹은 단정히 앉아서 책을 읽는 도중에 살그머니 갈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언제고 가도 좋다는 마음 변함없기를, 미련 같은것은 더욱 없었으면 좋겠다. 뒤볼아볼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더는 변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