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 있어야 할 스마트폰이 가방안에서 꺼내놓지 않아서라고 한들 변명이 될까. 화장실엘 다녀왔을때 쯤이 이미 일어날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확인도 안한체, 알람이 울릴때까지 이불속의 편안함을 누리려는 게으름을 누가 말리랴. 뭔가 이상하다 싶은 느낌에 화들짝 시간을 확인했다가 그만 허둥대고 말았다. 9시다. 성서학당이 지나갔다.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꺼지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일상의 기준이 엉망이 된 느낌이다. 이런땐 더는 밍그적거림이나 게으름은 꼬리를 감춘다. 다행인가. 염치일수도 있고. 그렇게 오늘 하루도 시작되었다.지금, 부억이 엉망이다. 내 눈에도 거슬리는데 상황이 어떨지 상상불허다. 치우거나 정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뭘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버려? 그런데 그걸 못한다. 뭘 버리고 뭘 남겨야 할지 막막하다. 쓰고 안쓰고의 기준이 없다. 언제는, 아니 곧 쓸일이 있을수도 있고, 전혀 아닐수도 있는데, 누가 알랴. 병원가는 일도 미루고 미루는 사람이 나 아닌가. 부르실 타임벨소리에 귀 기울인게 언제부터더라? 그러면서도 어제는 식용유를 사들고 왔다. 밀가루를 사려고도 기웃거렸다. 코메디아닌가. 부르실 타임벨소리에 신경쓰면서도 정작 집착에서 벗어난것은 아닌것 같다. 싸구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온갓 잡동상이들도 못버리고 있다. 이게 집착이지 다른게 집착인가.잔돈까지 아귀를 맞추려고 노력아닌 노력을 하고있는 나를 보면서 죽을 생각은 전혀 없는것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소리소문없이 TV를 보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잠을 자다가 가는 것도 좋겠고, 이런저런 기대를 하고는 있으면서도, 정말은 진심은 어떤지 모르겠다. 접시꽃 한구루가 꽃을 다해서 잘라냈다. 소명을 다했으니까 그만 가는것도 좋다는 생각에서다. 누렇게 뜬 모습은 내 눈에도 아니었으니까. 비좁고 영양상테도 불량한 가운대서도 꽃을 피워냈으니 기특하고 장하고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박수를 치고 훈장을 받아야할 그런 장한 접시꽃이었는데,,, 채송화나 다른 꽃들도 마찬가지다. 여건이나 환경이 좋지 않으매도 다들 최선을 다해서 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는? 나만 억망아닌지 모르겠다. 최선은 물건너갔고, 더는 어찌할바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예배룰 위해 목숨도 거는데, 멀다, 혹은 교통편이 만만치않다 핑개를 대고 있다. 종교심인지 신앙심인지 그런게 있기는 할까. 성서학당을 혹은 올포원을 열심히 시청한다고 내 믿음이 자라는 것은 아니지않는가. 80에도 정신 못차리고 산다. 병원가는걸 미루는 어리섞음과 싸구려에 집착하는 우둔함은 같은 묶음이다. 주님, 이런 인생도 불쌍히 여겨주십시요. 하찮고도 하찮은 인생입니다. 주리고 목이 마르니 생수를 먹여주시옵소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