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나주정씨 역사

영광.영성정씨(靈光.靈城丁氏)

작성자丁 石|작성시간09.12.07|조회수595 목록 댓글 0

영광.영성정씨(靈光.靈城丁氏) 

  우리나라 모든 정(丁)씨의 시조 정덕성(丁德盛)은 중국 당나라 사람이다. 신라 문성왕 때 전남 압해도로 유배된 후 우리나라에 정착했다. 그 뒤 고려 때 태학생원(太學生員)을 지낸 정진(丁晋)을 1세조로 한다. 그의 후손 중에서 정찬(丁贊)이 고려 공민왕 때 영성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영광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큰 아들 정열도는 신라 헌안왕 때 오성(지금의 영광)군에 봉해졌다.

 시조의 둘째 아들 정응도는 신라 헌안왕 때 금성(지금의 나주)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정윤종을 파조로 하고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영광정씨에서 선창원파가, 나주정씨에서 후창원파가 각각 갈라진다.

 2000년 현재 나주정씨가 82,863명으로 가장 많으며, 그 다음 영광정씨…21,774명, 창원정씨…16,141명, 영성정씨…10,429명 순이다. 영광.영성정씨는 32,203명이다. 

 영광정씨와 영성정씨는 본관이 같다. 영성은 영광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영성을 본관으로 쓰는 후손들이 많을 뿐이다.     

 조선조 세종 때의 학자인 불우헌(不憂軒) 정극인은 부사직을 지낸 정곤의 아들이다. 단종 원년에 식년문과에 급제, 정언에 이른다. 단종이 왕위를 뺏기자 관직에서 물러나 전북 태인에서 후진을 가르쳤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문학 작품인 "상춘곡"을 지었다. 저서 "불우헌집"이 전한다.

 정정열은 일제시대의 명창이다. 그는 1915년 이후 마산에서 후배들을 가르쳤다. 1925년 상경하여 이동백, 송만갑, 김창룡 등과 함께 조선성악연구회를 결성, 창극의 정립에 힘썼다. 

 주요파는 ▲훈련공파 ▲함열공파 ▲불우헌공파 ▲호군공파 ▲사정공파 ▲서윤공파 ▲생원공파 ▲부사공파 ▲총랑공파 ▲상호군공파 ▲옥과공파 ▲참봉공파 ▲훈도공파 등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