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메리 작사,작곡 동요인 학교종은
전국민이 다 부르는 동요
저도 유치원 시절 배운 동요 중 아직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건
학교종이 유일
학교종은 1948년에 발표되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불리고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을 정도로 가장 유명한 동요입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다 음 -
1.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2.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사이좋게 오늘도 공부 잘하자
가사를 보다 보니 학교종이 2절까지 있다는 것도 까맣게 잊고 살았고
심지어 2절 가사는 오늘 처음보는 듯한 느낌이 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학교종에 2절이 있었군요......
학교종은 4분의 4박자이며 다장조의 기초음악적인 동요곡으로써
단순한 노랫말과 가락 리듬에서 음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동요곡으로써의 예술적인 의미 보다는
교육적인 의미를 더 세게 불어넣은 듯한
느낌을 주는 가사가 인상적입니다.
* 참고문헌 : 한국동요음악사(한용희,세광음악출판사,1987)
학교종은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 교수이던 작곡자 김메리의
유일한 동요작품
▲ 김메리
김메리는 1904년 서울 동숭동에서 외무대신을 지낸 김익승의 셋째 딸로 태어나
1923년 이화학당 문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기상시간, 식사시간, 취침시간, 기도시간 등을 알려주는
종치기 아르바이트로 그 당시에 학교를 졸업했다고 전해집니다.
1927년 앤 아버 소재의 미시간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1935년 석사과정을 마친 후 당시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음악과 교수로 교단에 섰으며
미시간에서 사업을 하던 조오흥과 1936년 서울에서 결혼하여
슬하에 남매를 두었습니다.
1939년 남쳔 조오흥이 일제시대 총독부에 의해 친미파(親美派)라는 이유로
추방되고 김메리는 출국이 금지되기도 하였습니다.
해방 후, 이화여전 음악과 교수로써 한글 음악 교과서 편수작업에 참여하면서
이 때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가 탄생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입학 첫날 등교하는 어린들을을 생각하며 지었다는
'학교종'은 교과서에 수록되어 지금껏 애창되고 있습니다.
1947년 겨우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갈 수 있게 된 김메리는
42세의 나이에 디트로이이트 웨인주립대에서 화학과 미생물학을 공부하며
학사,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종합병원 실험실 연구원으로 취업해서
20년 동안 일하기도 하였다.
그 후 70세 때 美평화봉사단원을 자원하여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영어와 성경을 가르치는 한편,
가슴을 드러내고 다니는 아프리카 현지의 여성들에게
속옷 보급운동을 벌이고
손으로 음식을 먹는 그들에게 숟가락 보급운동을 벌이기도 하였습니다.
1980년 이화여대로부터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뉴욕에 돌아와 YMCA와 한인교회 한국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등 사회적으로 봉사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김메리는 중풍으로 쓰러져 걷지 못하게 되자
대외활동을 중단하고 자서전인 '학교종이 땡땡땡' 집필을 했다
1996년 자서전을 낸 뒤 출판기념회에 참석 차
서울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5년 미국 맨해튼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김메리 여사의 딸인 조귀인 씨는
"어머니가 주무시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