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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jssuh7857|작성시간26.06.14|조회수25 목록 댓글 0


[삼선 이야기] 제주 사투리가 암호처럼 들리고 (도솔산 전투 <6>) 
 
2026.4.19. 
 
대한민국 해병, 1949년 4월 15일 창설된다.

미 해병이 필라델피아 선술집에서 창설되었듯이, 한국 해병은 진해 어느 대폿집에서 창설되었으리라. 
 
해병 제1·2기 장정은 진해·마산·부산이 주축이라면,

해병 제3·4기는 전쟁이 발발하고 국경선이 영남과 제주도로 국한될 때 자원 모집한다.  
 
제주 장병 100%로 구성된 3,000여 명, 이들이 도솔산 전투의 주 전투원이다. 
 
어즈버 세월이여~, 울릉도를 개척한 이들이 전라도 초도(草島, 거문도) 사람이듯,

펀치볼(해안분지) 국경선을 확보한 이들은 제주도 사람이다. 
 
이것이 전쟁이다.

이것이 전쟁의 본질이다. 겉보기는 같지만, 본질은 완전히 다르게 변한다.

펀치볼은 광복 후 38선 위쪽에 위치하여 북한 영역이었으나,

도솔산 전투 이후 남한에 편입된다.

완전히 다는 새로운 질서, 그 질서를 만들기 위해 군인은 전투한다. 
 
예나 지금이나 전투는 3축 체계로 이루어진다.

지휘통제(C2, Command & Control)가 두뇌라면,

통신망은 신경계이고,

주 보급로(MSR, main supply route)는 혈관이다. 
 
도솔산 1122 고지 전투, 미군에게 사격 좌표를 주고 포를 요청하면 인민군은 도망가고 없다.

공격 명령을 내리면 인민군은 아군의 정보를 역이용하여 공격한다.

이는 적에게 통신이 감청되었다는 뜻이다. 
 
도솔산 해병은 제주 해병이 아닌가?

“옳거니 이제부터 제주 방언으로 한다.”

마치 미 해병이 태평양 전쟁에서 인디언 ‘나바호(Navajo)’ 족 언어로 교신하여 작전에 성공했듯 우리도 그렇게 한다. 
 
“글로 죽 가당 보믄 큰큰헌 소낭이 나옵니다게. 그듸서 ᄂᆞ단펜으로 돌아상 돌으멍갑서” 
 
현대어로 풀이하면 “그리로 죽 가다가 보면 커다란 소나무가 나옵니다.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아서서 달려가십시오”라는 뜻이다. 
 
나중에 포로로 잡힌 인민군이 “도대체 무슨 암호체계로 사용하였는가?”를 되물을 정도로 완벽한 소통이었다. 하지만 무선통신은 굴곡이 깊은 산악지역에는 전파가 전달되지 않은 음영지역이 많아 결국 유선 통신망을 가설하게 된다. 
 
훗날 통신병으로 미국 은성훈장은 받은 남세창(南世昌) 일등 수병의 기술이 얼마나 신기에 가까웠는지

“수화기(SCR 600/SCR 300)만 들어도 단선인지 합선인지는 물론 고장 난 지점의 위치까지 정확히 파악”하였다고 하며, 무엇보다도 전선(電線)은 캄캄한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아군본부로 돌아오는 길잡이가 되었으니,

등대만 꼭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

 

역사한국전쟁 당시 도솔산 전투에서 제주방언이 맹활약 한 이유

 

양구군 해안면 일대 도솔산전투를 앞두고 한국 해병대 제1연대가 북한군에게 무전기를 빼앗김

당연히 북한군은 무전기를 통해 도청하려했고

한국군은 당시 무전체계 전부를 교체할 시간도 여력도 되지 않았음 암호로 무전을 하려해도 그런 체계 자체도 없었고 시간도 촉박했음

당시 대대장이었던 공정식 해병대 중령이 기가 막힌 묘수를 생각해 내었는데

해병3기와 4기에 제주 출신들이 많은걸 이용해서

제주 출신들을 통신병으로 해서 제주 오리지널 방언으로 무전을 하는거

도솔산 전투에 투입되었던 북한 12사단과 32사단 소속 북한군 중에도 제주츌신이 있을리가 없었고

북한군은 도청은 하는데 오히려 작전에 방해만 되는 제주도 방언때문에 멘붕에 빠졌고

결국 한국군은 도솔산을 탈환하고 승리를 하였음

이 전투에서 북한군 3천여명이 사살되었고 한국군의 피해도 700명 사망이란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음

이 도솔산 전투의 승리로 이승만은 무적해병이란 휘호를 수여했고 오늘날까지도 그 휘호인 무적해병을 사용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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