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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관복음

작성자jssuh7857|작성시간19.06.20|조회수28 목록 댓글 0


독일의 신약성경 비평가 그리스바하(Griesbach, 1745-1812)라는 분이 이 세 성경을 공관복음이라고 한 이후 계속 모든 성경학자들은 이 세 성경을 공관복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말은 "같이 본다"는 뜻이며 그래서 세 성경은 공통점들이 많습니다. 어떤 것은 문자적으로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성경은 아주 다른 특징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관복음이라고 할 때 같은 내용, 같은 사건,

 

같은 관점, 용어, 문장 등에 있어 일치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세 복음서가 공통의 자료에 의거하여 기록하였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1835년 라크만(Lachmann)에 의하여 마가복음 우선설이 나오면서 지금은 누구나 세 복음서 중에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쓰여진 성경이라는 설이 마치 정설같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지난 18세기까지 마태복음이 가장 먼저 쓰여졌으며 마가복음은 마태복음을 발췌하여 간단히 요약한 것이며, 누가복음은 조금 더 보충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8세기말에 들어오면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마가복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가장 오래된 성경,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이며, 가장 중요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발견은 마가복음을 근거로 하여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가복음은 661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마태복음에 606절이, 누가복음에 320절이 병해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채택하지 아니한 55절 중에 31절을 누가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24절만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인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마태나 누가가 복음서를 쓸 때 예수님의 생애의 많은 사건들을 나열할 때 마가의 순서를 참고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자인 마가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본서의 저자 마가는 신약 성경에 그래도 많이 나타나는 인물입니다. 예루살렘 상류 계급의 부인인 마리아의 아들로 그의 집은 초대 교회의 집회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이 요한이라는 이름과 마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한, 마가 또는 요한 마가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요한이 본명일 것이고,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요, 개명한 이름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그의 아버지는 일찌기 세상을 떠난 상태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집은 아주 유명한 집이 되었습니다. 그의 집은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잡수신 장소로 유명하고, 오순절 때 초대 교회가 탄생한 장소였습니다. 그 후 제자들은 이곳에서 자주 모였으며 옥에 갇혔던 베드로 찾아간 곳도 이 곳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이 집은 120명이나 모여 기도할 수 있을 만큼 넓은 2층집이었으며, 집안일을 거두는 하녀가 있을 정도로 부유하게 사는 집이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집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도 파괴되지 않아 현재까지도 보존되고 있는 아주 넓은 홀을 가진 집이었습니다. 현재 이 마가의 다락방은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직제자는 아니었습니다. 후에 마가는 베드로를 수행하면서 베드로의 사랑을 아주 많이 받으면서 신앙이 자라났는데

 

베드로는 이 마가를 가리켜 그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전5:13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그는 유명한 선교사인 바나바의 생질이었습니다. 골4:10에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바나바의 생질이라고 했는데 바나바는 마가의 외삼촌이었을 것입니다. 마가의 집에 제자들이 모여서 어디로 가는 것을 본 마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간 겟세마네 동산으로 찾아갔는데 그 때 마침 예수님이 붙잡혀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이때에 한 청년이 베 홑이불을 두르고 주님을 따르다가 무리에게 잡히게 되니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한 청년이 있다고 쓰고 있는데 이것만이 예수님과 관계된 저자 마가의 자신의 이야기라고 봅니다. (막14:51-52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마가가 본격적으로 교회사에 나타나게 된 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으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였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은 아주 큰 기근이 들었고, 두 사도는 구제금을 모아서 상경한 것이었습니다.

 

두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마가를 데리고 안디옥에 왔으며, 이때 안디옥 교회는 두 사람의 사도를 선교사로 세워 구부로와 아시아 지방을 선교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두 사도는 마가를 데리고 구부로로 갔습니다. 구부로는 바나바의 고향으로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이 때의 전도를 바울의 제1차 전도 여행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지중해를 건너 밤빌리아 지방의 버가라는 항구에 이르렀을 때에 사도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렙으로 돌아갔습니다.(행13:13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그러면 이 때 마가가 왜 선교단에서 이탈하여 떠나갔을 것입니까? 지금 사도들이 가려고 하는 밤빌리아 지방은 세계에서도 가장 험한 길이며, 산적이나 비적들이 습격을 받을 확률이 많았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길이라는 소문 때문에 겁이 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정말 산적이 무서워서 돌아간 것입니까?

 

아마도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선교단에서 바나바의 입지는 좁아지고 점점 더 뒤로 밀려나고 바울의 지도력이 나타나고 영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섭섭한 마음이 들어 떠나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가는 사도 바울이 하는 일 중에 마음에 들지 아니하는 것들이 있어 떠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크리소스톰이라는 주경학자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떠나갔을 것이라고 하는 말을 했지만, 아마도 그것은 재미있는 추측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갔다고 하면 나중에 2차 전도 여행을 앞두고 두 사도가 마가 때문에 그렇게 싸우지는 아니했을 것입니다. 2차 전도여행 시에 바나바는 자기의 생질인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자하였지만,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고 갈라서게 되었습니다.(행15:36-41)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부로 섬으로 갔으며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도가 이렇게 마가를 놓고 다투다가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더욱 더 역사하셔서 더 많은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는 역사로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 후 오랫동안 마가는 교회사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며 마가는 애굽에 내려가 알랙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 후 바울이 옥중에서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할 때에 그 옥에 갇힌 사람 중에 마가라는 분이 있어 함께 안부를 전한다고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골4:10 "나와 같이 갇히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라고 합니다. 마가가 바울과 함께 있었고,

 

마가가 골로새에 이르면 영접하라고 하는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바울과 마가가 언제 다시 만났고, 가깝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마가는 이전의 마가가 아니라 복음 증거하는 아주 유익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그의 신앙이나 인격이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 후 빌레몬서를 쓸 때에 사도 바울은 옥에 있었는데 그 자리에 마가도 있었습니다. 1:24"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후 다시 투옥에 되어 마지막 목회서신을 쓰실 때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이쯤되고 보니 예전에 바나바와 갈라설 때 있었던 마가와의 앙금은 다 사라지고 아주 가까운 동역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인격이 자라나고, 성품이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마가의 신앙이나 인격은 베드로를 만나면서 자나났다고 봅니다. 마가는 베드로를 통하여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내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나를 통하여 새 사람이 되었다는 뜻도 되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가 마가의 집에서 모였고, 초대 교회의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베드로였기 때문에 베드로와 아주 가깝게 지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유명한 역사가인 파피아스라는 사람은 마가는 베드로의 통역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베드로는 아람어 즉 근대화된 히브리어를 말하는 사람이었고, 세계는 희랍어가 공용으로 사용되고 있었기에 통역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마가는 일찍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외국어에 능통하였고, 베드로는 그렇지 못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로마에서 베드로 선교하실 때 교인들은 통역하는 마가에게 부탁하여 예수님의 일생에 대하여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이고, 베드로가 들려준 대로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하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파피아스라는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면 "베드로의 통역자였던 마가는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동을 회상한 내용 전부를 정확하게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하시면서 말씀하시던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을 베드로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마가를 통하여 남겨놓아서 예수님의 공생애가 밝히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순교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기록한 것이라고 하면 65년 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 후에 마가는 알랙산드리아에 가서 순교하였고, 그의 유해는 지중해를 건너 베니스(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로 왔으며 성 마가성당에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 로마는 그 사정이 아주 좋지 못하였습니다. 네로의 박해가 한창 진행되었고, 그 때문에 베드로와 바울 같은 대 지도자들이 순교하엿고, 성도들은 카타곰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정 아래 마가는 먼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무한 용기와 소망을 주어야 했습니다. 위기에 처해있는 성도들에게 순교 신앙을 심어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수난 받으시는 종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마가가 독자들에게 강조하려는 것은 좀 더 강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는 세례요한보다도 사탄보다도 강하신 분이었습니다. 그의 복음서의 마지막에 그는 죽음보다도 강하신 분이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마가의 중요한 관심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셔서 죽음까지도 이기고 부활하신 승리자이셨습니다. 마가복음은 수난의 신학이 아니라, 승리의 신학이여, 승리의 기쁜 소식을 증거 하는 소망의 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은 그 시작이 아주 독특합니다.

 

1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세례요한의 출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탄생이나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하여는 언급도 않고. 예수님은 막1:7의 말씀처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은 능력 많으신 이의 이야기요, 승리자의 복음 유앙겔리온입니다. 유앙겔리온이라는 헬라어는 좋은 소식을 가져온 사람에게 주는 상금이었지만, 차차 좋은 소식 그 자체를 유앙겔리온이라고 했습니다. 주경가인

 

슈니빈트라는 분이 말하는 것처럼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은 대가 승리의 소식과 연결되고 있다고 합니다. 복음이라는 말로 마가복음서를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승리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은 사탄을 향하여 꾸짖고 있습니다.

사탄이 벌벌 떨면서 쫓겨나가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엎드리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망도 그를 영원히 가두어 좋을 수 없었습니다. 마가복음이 기록된 곳이 로마라고 합니다. 베드로 순교하고 바울이 순교한 주후 64년 경에서 70년까지는 로마는 기도교인들이 거주할 곳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당시 네로 황제는 안티움에 주재하고 있는 동안 로마시는 대화재를 입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화재는 황제가 새 도시를 건설하기 위하여 저지른 것으로 알았습니다. 네로 황제의 명령을 받은 군인들이 불을 일으킨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비난을 피할 길이 없었던 네로는 기독교인들이 말세에 불로 심판한다는 교리가 있어 불을 지른 것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이때부터 기독교인들은 잔인한 고문이 가해지게 되었고, 배교를 강요당하였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이때에 바울은 목 베임을 당하여 죽었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4장에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 가에 뿌리운 씨는 사탄이 임하여 말씀을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염려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 하나만으로도 다른 성경과 다르게 당시 교회가 당하는 환난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예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어야 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예수님이 이미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막13장에서 마가의 교회가 당하게 될 핍박이나 미혹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법정에 넘겨지게 될 것고, 매를 맞으며, 이방인의 총독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게 될 것이었습니다. 모든 이방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마가의 교회는 예수님 때문에 받을 수 있는 모든 환난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막13:13의 말씀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산헤드린 법정에 섰으며, 로마 총독 앞에서 심문을 당하였고, 제자들로부터 배반과 버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 교회도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딛고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 교회도 마침내 승리할 것입니다. 마가복음은 그래서 승리의 복음입니다. 소망의 형태로 제시한 승리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오, 고난과 핍박과 죽음보다도 강하신 분이요, 그래서 그를 믿는 자는 어떠한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의 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절대로 배신하지 말고 굳건히 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교회는 바로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적인 로마 제국 아래에 있는 어려운 교회는 더 강하신 분, 승리하신 예수님과 함께 승리하고야 만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1절 말씀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마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이 간단한 한 마디에 엄청난 진리의 말씀이 다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 그의 아들, 예수 , 그리스도, 복음이라는 진리가 다 함축되고 있습니다. 당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예수 믿기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기들과 같은 시대에, 함께 호흡하던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는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밖아 죽인 것도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하나라고 하는 때문에 신성모독죄, 참람한 죄에 해당하여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였으며,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대하신 선생님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그분은 우리 죄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우리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새기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어떤 말씀도 우리의 생명과 관련 있으므로 순종하고 주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어제나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의 구원의 복된 소식을 가지고 가족을 위하고 자녀들을 위하고 우리 가까운 이웃과 마을 을 위하여 좀 더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복된 성도의 삶이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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