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샅과 가슴⊙
그녀는 다시 흥분했다. 콧소리가 신음하듯 입가로 터지고
있었다. 대단한 여자였다. 그녀의 몸은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이었다.
그때 밴드 음악이 멈추었다.
두 사람은 마치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되는 양 부리나케 떨
어졌다. 그런 모양이 우스웠던지 두 사람 모두 웃고 말았
다.
잠시 후 음악은 디스코풍의 경쾌한 템포로 바뀌었다. 사람
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제서야 황여사는 자세를 바로
고쳐 동철 곁에서 약간 떨어져 앉았다. 동철은 속으로 웃음
이 터져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랬다. 어쩌면 사람은 속마음과는 달리 다양한 가면을 써
야 하는지 모른다. 선남 선녀의 탈, 악마의 탈, 탈 탈
탈…. 카멜레온이 아무리 변신의 귀재라고 한들 사람만할
까.
두 사람은 바로 조금 전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
해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함을 가장했다.
춤을 추던 박여사와 오창환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 사람은 갈증이 났는지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물수건으
로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동철은 짐짓 그들을 바라보
며 말을 건넸다.
「어떠셨습니까, 박여사님! 플로어에서 오선생님을 감정하
신 첫 소감 말입니다. 보석입디까, 짱돌입디까? 하하하.」
「강지배인, 정말 고마워요. 오선생님은 보석 중에 보석,
바로 다이아몬드였어요. 정말 좋은 분을 만나 즐겁게 잘 놀
았어요. 오랜만에 춤다운 춤을 추니까 스트레스가 싹 풀렸
어요. 호호호.」
「과찬을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기분 전환을 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박여사님 같은 분과 춤을 추게 되어 저도
즐거웠습니다.」
오창환이 한발짝 뒤로 슬쩍 물러났다. 그러자 동철이 말했
다.
「박여사님? 아니, 오선생님이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좋으
셨습니까? 여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는 중개료나
챙겨야겠는데요. 얼른 주세요!」
「오선생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강지배인, 언제 제가
한턱 톡톡히 낼게요. 나도 통 큰 여자예요. 호호호.」
박여사는 대만족감을 표했다. 그럴 법했다. 그녀는 오창환
이 춤 선생이라는 사실을 아직 몰랐다. 오창환은 왕제비였
다. 상대방 여자의 실력을 가늠해 가며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춤의 응용 동작을 리드했다. 밀어주고 당겨주는
것은 기본이고 온갖 춤의 동작과 테크닉으로 여자의 혼을
완전히 빼놓았다. 블루스 곡에 지르박 또는 캉캉을 추어도
박자가 척척 맞을 정도였으니 여자들은 껌뻑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오창환의 춤은 환상의 예술이라고 불렸다. 그래서 보는 이
를 즐겁게 하고 상대를 신데렐라라도 된 듯한 도취감에 빠
뜨려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였다. 오창환은 경쾌하고 빠르
게, 끈적끈적하면서도 감칠맛 나게 상대를 리드하는 등 변
화무쌍한 테크닉을 구사했다. 그러다 상대가 힘들어하는 기
색을 보이면 템포를 줄여 땀을 식힐 여유를 주었다. 그때
단추나 지퍼가 내려가 있으면 여유 있게 천천히 챙겨주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서 여자의 샅과 가슴을 건드리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었다. 그저 놀다 만난 사람 같으면 경계심
에 제비로 오인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강지배인의 소
개였기 때문에 박여사는 마음 편하게 그를 대하다 보니 즐
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들은 갈증을 맥주로 달래며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달아오른 얼굴에서는 연신 땀이 송글송글 배어 나왔다. 한
참 움직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자연히 생기는 현상이었
다.
박여사는 비닐 속의 물수건을 꺼내 오창환의 얼굴을 닦아주
었다. 한번의 춤의 효과로는 진도가 많이 나간 모양이었다.
그들은 벌써 한번의 춤으로 그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춤의
세계를 모르는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화
이다. 춤의 매력은 그랬다. 10년을 함께 산 이웃집 남자보
다 한번의 춤을 춘 남자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들은 손을 놓지 않고 앉아 있었다. 지금까지 잡고 놀던
손이라 별로 어색할 것도 없는 터였다. 더욱이 그들은 춤을
추면서 옷만 입었을 뿐 밀착될 대로 밀착된 상태이고 서로
의 열기를 확인했다. 키스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 터에
손을 좀 잡았다 해서 손을 빼서 상대를 무안하게 하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었다. 아무리 새침데기 여자라도 그러기에는
이미 냉정함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그렇다. 뭐든
처음의 고비만 잘 넘기면 그 다음부터는 한결 수월해지는
것은 남녀 관계의 정한 이치 아닌가.
황여사가 좀 짓궂게 물었다.
「아니, 박여사? 언제부터 이 남자를 알았다고 그러는 거
야. 세 살 적에 못 만난 것이 한이겠어? 호호호.」
「그럼! 그게 한이지.」
박여사는 보란 듯이 옆자리에 앉은 오창환의 볼에 뽀뽀를
하는 것이었다. 놀라운 속도였다.
동철은 속으로 잘됐다 싶었다. 저토록 관계가 급진전된 마
당에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하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그것 외에 동철이 은근히 반색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
었다.
동철이 오창환에게 괜찮은 여자를 소개하는 대신 그가 동철
에게 춤을 가르쳐 주기로 한 것이다. 동철은 오창환과 미리
그런 약속을 했었다. 일이 자기 뜻대로 진행되어 동철은 신
이 났다.
동철은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기로 작정하였다. 특히 지난번
고향에 다녀온 후로 더욱 그랬다. 어차피 속고 속이는 세
상, 자신도 마음껏 등쳐먹기로 작정한 것이다. 여자를 울려
서라도 돈을 뜯어내 마음껏 쓰며 황제처럼 살고 싶었다. 그
것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저주였고 자신을 향한 복수였다.
자신을 망가뜨리고 싶었다.
물론 춤을 배울 생각은 지배인 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했
다. 하지만 좀처럼 그런 기회가 없었다. 어줍잖게 댄서 아
르바이트를 하는 여자로부터 배우기도 했지만 성에 차지 않
았다. 동철은 프로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오늘에야
비로소 자신의 소원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서로 저렇게 흡
족해 하는 것을 보며 동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동철이 춤을 못 추는 바람에 황여사도 피해가 많았다. 그런
탓에 동철과 황여사는 대부분 특실 안에서 포옹과 키스로
대신했다. 물론 그녀는 싫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황여사가
오기만 하면 특실을 비워놓고 대부분 그곳에서 즐겼다. 특
실은 룸으로 되어 있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 나름의 분위기에 아주 만족을 표했다. 하
지만 동철은 그녀 몰래 춤을 배워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
다.
두 커플은 땀이 마르기가 무섭게 플로어로 나갔다. 다시 춤
을 추는 것이다. 오창환은 가만히 있었으나 박여사의 성화
로 다시 춤판을 벌이게 된 것이다. 동철은 춤의 마력을 알
고는 있었으나, 막상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자 새삼
춤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박여사는 오늘 임자를
만난 듯했다. 전에 없이 살짝살짝 아양을 떠는 모양이 발정
난 암코양이가 따로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춤을 배운 이래 오늘처럼 호흡이
잘 맞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춤을 추면서 자신의 춤 실력
이 이렇게 대단했나 착각마저 할 정도였다. 경쾌하다가 스
피드하게 그러다간 쫙 가라앉았다. 슬로로 추다 매가 먹이
를 채듯 온몸을 집어삼킬 듯이 포옹을 했다가는 일순 살짝
떨어지며 부드럽게 워킹을 한 다음, 360도 회전을 하고 상
체를 40도쯤 꺾어 젖히는가 하면 오창환의 허벅다리가 치부
를 강하게 밀어붙이며 시원하고 감칠맛 나게 드나드는 것이
었다. 체면과 염치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듯 오
창환은 환상의 세계로 그녀를 몰아붙이며 혼을 빼놓는 것이
었다. 연신 터져나오는 탄성을 그녀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들은 무대에 나간 지 무려 1시간쯤 지나 룸으로 돌아왔
다. 온몸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
다. 그러고는 맥주로 갈증을 달래며 물수건으로 연신 송글
송글 맺힌 땀을 닦아내곤 하였다. 웨이터는 그들이 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미리 대기했다 얼른 얼음덩어리가 수북이 담
겨 있는 물수건을 가져다 바치곤 하였다.
박여사는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가 그칠 줄 몰랐다.
자정이 조금 넘자 박여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동
철을 보며 빙긋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황여사 잘 좀 부탁해요. 너무 격하게 하지 말고….
호호호. 내가 좀 주책이었나.」
「…….」
박여사가 일어나자 오창환도 즐겁게 잘 놀았다며 그녀의 뒤
를 따라 룸을 나갔다. 여전히 두 손은 떼지 않고 꼭 붙든
채 걸어가고 있었다. 동철은 그들을 배웅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황여사는 몸을 혼자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해 있었다. 한잔
한잔 마신 양주에 취기가 오르는 듯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
고 몸을 소파에 기대 정신을 가다듬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
력했다. 문득 그녀의 눈길이 동철을 바라보았다.
「누님, 걱정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모시겠습니다.」
동철은 그녀를 부축하여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타고 단골
호텔로 곧장 옮겼다.
그렇게 스탠드바의 하루는 저물었다.
새벽 4시. 인사불성이 되어 줄창 잠에 빠져 있던 황여사는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주위를 살펴본 그녀는 곁에 동철이
누워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동철은 잠결에 그녀에게 팔을 내주며 포근히 감싸안았다.
하지만 동철도 몹시 피곤했는지 아직 반응을 일으키지는 않
았다. 그녀는 넓디넓은 동철의 가슴에 깊이 안겨 그와 섹스
하는 장면을 연상하며 설핏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도 어
지간히 지쳐 몸을 움직이지는 못하였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에는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눈을 뜨기가 무섭게 세수를
하고는 말끔히 단장을 하였다. 아침이면 나이는 못 속이는
지 피부가 부풀어 올라 원래 나이로 보이는 것은 그녀로서
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애인에게만큼은 자신
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이 든 여자의 본능일지
도 모른다. 그녀는 동철이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아니, 왜요? 오늘은 일요일인데 좀더 자요.」
「아니야, 동생. 오늘 나랑 어디 갈 데가 있어. 그러니까
동생도 좀 서둘러.」
「가긴 어딜 가요? 피곤해 죽겠는데. 가려면 이따 가도 되
잖아요? 안 그래요? 예?」
「아이 참 그게 아니라니까. 이럴 때는 꼭 애들 같다니까.
자, 어서 일어나요.」
그녀의 성화에 못 이겨 동철은 할 수 없이 일어났다. 세수
를 하고는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 황여사와 하나씩 나눠
마셨다. 컬컬하던 목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 들며 기분
이 상쾌했다.
두 사람은 호텔을 나와 간단한 식사를 하였다. 그러고는 택
시를 탔다. 동철은 멍하니 그녀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택시는 종로4가 세운상가 앞에 멈췄다.
황여사가 금은 도매상가로 갈 것이라는 동철의 예측과 달리
발걸음을 세운상가 건물 안으로 향하였다.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녀를 따라 엘리베
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이윽고 7층에서 멈췄다. 그녀는
마치 아는 집을 찾아가듯 앞장서서 걸어갔다. 이윽고 2호실
앞에 당도한 그녀는 핸드백을 열어 열쇠를 꺼내더니 잠겨
있는 문을 열었다. 동철은 뜻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