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렐리
빅토르 바자렐리는 1908년 헝가리 페치 태생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가 1929년에 ‘부다페스트의 바우하우스’라고 불리던 알렉산데르 보르트니크의 뮈헤이 아카데미에 입학, 그 곳에서 모흘리 –나기를 비롯한 여러 교수들의 지도를 받았으며, 말레비치, 몬드리안 같은 구성주의 미술가들과 칸딘스키, 그로피우스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1930년 파리에 정착하여 판화에 전념하다가 1943년 다시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1947년경 자신의 대표적인 양식인 기하학적 추상의 방법을 발전시켰다.
1944년 드니즈 르네 갤러리와 관련된 미술가 그룹이 창립된 이후부터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살롱 드 메, 살롱 데 쉬르앵데팡당,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과 관련을 맺었다.
1955년경부터 바자렐리는 여러 개의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문들은 광학적인 현상을 미술에 이용하는 것에 관한 최초의 기록으로, 이 분야에서 작업하는 젊은 미술가들에게 작품과 더불어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시네티슴(cinétisme)’이라는 용어를 적용한 작품들을 통하여 시각적 모호함을 통해 움직이는 듯한 환영적 인상을 창출해 내는 방법과 수단을 탐구하였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나오고 들어가는 형태들을 서로 교차시키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또 다른 형태가 나타나도록 단속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성향은 이후 옵 아트로 발전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바자렐리를 옵 아트의 주요 창시자이며 가장 완벽한 실행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1940년대 후반부터 바자렐리는 파리 및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와 미국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옵 아트의 선도적인 미술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64년 구겐하임 상, 1965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에서 1등상, 1967년 도쿄 비엔날레에서 외무성 장관상을 받았다.
전 세계의 주요 공공 컬렉션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Fery
광대
얼룩말
직녀성
행성
혹성의 민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