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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감상

인상주의(6) 니티스 & 카유보트 & 로트레크

작성자신나라|작성시간12.05.01|조회수127 목록 댓글 0

Giuseppe De Nittis

주세페 데 니티스 [Giuseppe de Nittis, 1846.2.22~1884.8.24]

남이탈리아의 팔레타 출생. 나폴리의 미술학교에서 배우면서 사실주의 경향에 관심을 가지고 ‘레지나파’라는 그룹에 들어가 화실 밖에서의 빛의 연구에 몰두했다. 뒤에 나폴리를 찾은 마키아파의 이론가 체시오니와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피렌체로 가서 그쪽 화가들과 사귀고 이듬해 새로운 도약을 위해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는 마네를 비롯한 인상파화가들과 알게 되고 근대생활의 주제에 깊은 감명을 받아 제1회 인상파전(1874)에 작품을 출품했다. 외국 사람으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편이었으나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에 《베수비오산의 연기》《덧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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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인상주의 운동은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난 국지적 미술 운동이 아닙니다.

새로운 미술 운동은 그 영향력을 급격히 팽창하여 파리에 머물던 외국출신의 작가들에게도 큰 감명을 주게 됩니다.

프랑스의 주변 국가인 영국, 독일과 스페인은 물론이고 남쪽으로는 이탈리아로 그리고 신대륙인 미국의 작가도 인상주의 회화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국제적인 미술사조로 부상하게 됩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니티스도 그러한 작가중의 한명 이었지만 아쉽게도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하여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고전주의의 고향 이라고도 할수 있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답게 사실주의적이며 고전주의적 경향이 강한 그의 작품들은 인상주의자들이

추구하던 빛의 추격자로서 사명을 다하려 했음을 그의 작품을 통해 느낄수 있습니다.

The Place de Carrousel and the Ruins of the Tuileries Palace in 1882

Nudo con le Calze Rosse 1879

Return From the Ball 1870

La traversata degli Appennini

Gustave Caillebotte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1848~1894]

인상파에 속한다. 사실성이 강한 작품을 많이 남겼으며, 서민층의 풍속도 및 풍경화를 즐겨 그렸다. 1873년경부터 인상파화가들과 교제, 1877년, 1879년, 1880년, 1882년 인상파의 전람회에 참가하였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친구 화가들을 경제적으로 원조하고, 그들의 작품을 많이 사들여 인상파 작품의 수집가로서도 유명하다. 죽은 후 그의 수집품들은 루브르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대표작으로 《마루를 닦는 사람들》(1875, 인상파미술관 소장)과 《아르장퇴유의 센강 풍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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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유보트의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이 최근에 급격히 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서 여러가지 실험을 하기도 했지만 억지를 써서 그의 작업에

대한 명칭을 부여 한다면 사실주의적 인상파 화가 라고도 할수 있을 겁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사물을 관찰하는듯한 시점의 사용과 사실적임 묘사 뿐만 아니라

그의 일부 그림에서는 현실에 대한 관찰과 비판이 녹아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개성은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에게서는 좀처럼 찿아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Paris Street 1877

Perissoires sur l'Yerres 1877


Floor Strippers 1875 Musée d’Orsay, Paris

The Basin at Argenteuil

Rue Halevy, Seen from the Sixth Floor 1878

Self Portrait 1892

Sunflowers on the Banks of the Seine 1886

White and Yellow Chrysanthemums, Garden at Petit Gennevilliers

The Yerres, Rain 1875

Henri de Toulouse-Lautrec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1.24~1901.9.9]

알비 출생. 처음에는 아버지의 친구인 화가 R.프랭스토에게 배웠고 1882년부터는 파리에서 코르몽(본명 F.A.Piwstre)의 지도를 받으면서 개성 있는 소묘화가()로서 독자적인 자질을 키워나갔다. 이 무렵 고흐, 고갱 등과 알게 되었고 드가의 예술에 끌리기도 하였다. 파리의 환락가 몽마르트르아틀리에를 차리고 그후 13년 동안 술집·매음굴·뮤직홀 등의 정경을 소재로 삼아 정력적으로 작품제작을 하였다. 처음에 풍자적인 화풍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유화와 더불어 석판화도 차차 높은 평가를 받았다.

1889년부터는 앙데팡당전()에 출품하였고 최초의 개인전은 1893년에 파리에서 열었다. 그의 소묘는 날카롭고 박력 있는 표현으로 근대 소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소묘의 힘에 바탕을 둔 유화는 어두우면서도 신선하고 아름다운 색조와 독자적인 작풍으로, 인생에 대한 그의 통찰과 깊은 우수를 공감하게 한다.
30대 이후
알코올중독으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1899년에는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하였다. 입원 중에는 물론 퇴원 후에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그림 그리기를 계속하였으나, 끝내 말로메의 별장에서 요양을 하던 중 37세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어머니는 아틀리에에 남겨진 아들의 작품을 전부 챙겨 고향인 알비시()에 기증하였고, 1922년 알비시에 로트레크미술관이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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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레크는 자신의 불우한 신체 조건만큼이나 굴곡많은 생을 살다간 작가입니다.

인상주의 뿐만 아니라 라파엘전파나 아르누보등 여러방면의 예술사조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영향을 받았던 작가엿습니다.

또한 다른 대부분의 인상주의 작가들이 그렸던 우아한 중산층의 사람들이나 발레리나 등이 아닌 술집의 주정뱅이나 바람둥이

매춘부나 삼류 댄서등이 그의 작품의 주인공들로 등장합니다.

그의 빛에 대한 호기심은 드가의 그것과 아주 비슷하지만 그림의 내용이나 표현기법은 많이 다르고 거칠기만 합니다.

거친 그림 만큼이나 거친 인생을 살아가던 그는 역시 37세의 젊은 나이에 지병과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게 되지만

그의 작품들은 많은 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La toilette

Portrait of Marcelle 1893

Mademoiselle Marcelle Lender dansant dans "Chilperic

The Seated Clowness. From the portfolio Elles 1896

Vincent van Gogh

La bebed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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