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는 19세기 미국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우선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었고 감정 묘사와 더불어 유머도 담을 수 있었죠.
때에 따라서는 교육용 재료로도 가능한 풍속화이고 보니 19세기 미국 화단에는 풍속화를 주로 그리는,
대단한 실력의 화가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20세기를 전후해서 가장 유명한 풍속화가 중 한 명이라는 평을 받았던
해리 허먼 로즈랜드 (Harry Herman Roseland / c.1867~1950)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쪽 잠 The Snooze / 1904 / 36.2cm x 51.44cm
여인이 살짝 잠이 든 곳은 어디일까요? 혹시 갈 곳이 없어 대합실 한 곳에 잠시 기대 앉았다가 잠이 든 걸까요?
한 손에 든 부채는 여인의 모습만큼 후줄근한 모습입니다. 그 나마 잠이 든 여인은 그 부채들 든 손마저 소파에
내려 놓았습니다. 떨어질 듯 말 듯 손가락에 걸린 책은 성경책처럼 보입니다.
맑은 날 우산을 든 모습의 사람에게서 삶의 피곤함이 느껴지듯 여인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산도
힘들어 보이는 여인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잠깐의 잠이지만 꿈을 꾼다면 손가락으로 쥐고 있는 성경 속 어느 한 장면이 배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은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했지요.
살아 있는 세상도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어야겠지만 여전히 먼 훗날의 이야기입니다.
간혹 저도 저렇게 쪽 잠 속에서 고단함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로즈랜드 --- 이름이 참 좋군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장미나라가 되는 건가요? 그의 출생 년도는 모호합니다.
제가 들여다 본 자료에는 그가 태어난 해가 1866년, 1867년, 1868년으로 각각 표기 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자료에는 1867년경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1867년경 태어난 것으로 쓰겠습니다.
출생 기록이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렇게 유복했거나 많이 배운 부모를 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입만 더 One More Spoon /1889 /53.34cm x 66.04cm
자, 이제 한 입만 더 먹자.
아이는 의자 밑에 놓아둔 인형과 빨리 놀고 싶지만 계속 한 입만 하는 소리에 의자에서 내려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입을 벌리자 스푼을 든 여인의 입에도 살짝 미소가 걸렸습니다.
저는 그림 속 여인을 엄마로 봤고 아내는 아이의 할머니로 봤습니다.
분위기는 할머니와 손자처럼 보이지만 엄마의 부재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밥 한 그릇을 먹이는 것은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습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가 먹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는 모르고 부모는 알기 때문이죠.
튼튼하게 잘 커주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아이들이 이해할 때까지 10년은 넘게 걸렸던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아마 이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질 것 같습니다. 어느 때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준비되어 있는 시절이니
굳이 밥이 아니어도 되기 때문이죠.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로즈랜드는 평생을 그 곳에서 살았고 그림도 거의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간혹 독학으로 경지에 오른 화가들의 이야기를 쓸 때면 어김없이 미술은, 재능 없이는 어렵다는 말에 손을 들고
싶습니다. 물론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재능이 없다면 너무 먼 길을 돌아가게 되는 경우를
봤기 때문이죠.
코니 아일랜드의 해변 풍경 Beach Scene, Coney Island / 1891/ 88.9cm x 114.94cm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쯤의 미국 해변가입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저와 아내가 동시에 떠 올린 단어는
‘해운대’ 였습니다. 한 여름 해운대 풍경과 너무 닮았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드려다 보면 다른 점이 많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몸매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름 휴가를 앞두고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요즘보다는 훨씬 ‘자유스러운
몸매’를 가진 여인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빨간색 수영복이 유행이었을까요? 유독 빨간색이 많이 보입니다.
예전 유행했던 ‘월리를 찾아라’의 월리가 있을 것 같은 해변 풍경을 보면서 로즈랜드의 꼼꼼함을 떠올렸습니다.
올 여름, 또 어딘가에는 100여 년 전 해변의 모습과 같은 풍경이 나타나겠지요.
당시 미국의 많은 젊은 화가들은 그림 공부를 위해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파리와 뮌헨 그리고 뒤셀도르프와 헤이그였습니다. 더러는 이탈리아에도 갔지만 로즈랜드는
단 한 번도 유럽을 간 적이 없었습니다. 브루클린의 터줏대감이자 유럽 물을 먹어 보지 않은 그를 두고 편협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지만 정작 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심각한 상황 A Serious Case / 1899 / 54cm x 71.1cm
이렇게 혀를 내밀어 볼래?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아이가 입을 동그랗게 하고 혀를 내밀었습니다. 한 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
또 한 손에는 약병을 든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진지합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는 아이에 대한 연민도 느껴집니다.
그런 의사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에도 간절함이 어렸습니다. 손녀를 안고 있는 손이 유난히도 커 보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손녀의 상황이 걱정스러워서 굵은 핏줄이 일어날 정도로 손에 힘을 쥐고 있습니다.
큰 일 아니겠지요. 간절함과 진지함이 더 해지면 신께서도 안아 주신다는 이야기를 저는 여러 번 들었거든요.
윌리엄 휘테커로부터 잠깐 그림 지도를 받은 로즈랜드는 풍경화와 정물화로 화가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화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에게 친숙한 것을 묘사하는 기술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로즈랜드는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단순하기 기본적인 것이지만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중 하나입니다. 물론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을
옮기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집안의 등불 The Light of the Home / 20.32cm x 27.94cm
‘집안의 등불’이라고 제 멋대로 제목을 옮기고 보니 그럴 듯 해 보입니다. 잠이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고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미소 또한 곱습니다. 창 밖에서 들어 온 빛이 아이의
얼굴 위에서 하얗게 부서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아이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합니다. 방을 환하게 만드는 것도,
훗날 잘 커서 집안의 기둥이 되는 것도 모두 아이의 몫이니 집안의 등불이라고 해도 그리 어색한 것은 아니군요.
이런 그림을 볼 때마다 아이였던 저를 내려다 보셨을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아내가 가끔 저를 내려다 보지만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제가 그들을 보았듯이 저를 내려다 보겠지요.
처음 로즈랜드의 작품 주제는 매우 감상적이거나 이상적인 시골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남북 전쟁 이후 북부의
발전을 지탱해주는 힘 중에 하나였던 흑인들을 보고 나서는 그림에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에 흑인의 모습을 담은 화가는 그 이전에 이미 이스트맨 존슨 (http://blog.naver.com/dkseon00/140126354465)
같은 화가들이 있었지요.
가장 높은 경매가를 부른 사람에게로 To the Highest Bidder / 1906 / 152.4cm x 81.28cm
노예시장입니다. 모녀가 함께 경매 대상이 되었습니다.
경매에 참가한 사람은 아마 어린 아이에게는 관심이 없고 엄마에게만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 낸 사람에게로 팔려 가게 된 순간, 엄마와 딸은 이별을 해야 합니다.
불안감이 가득 찬 눈을 한 모녀의 표정에는 절망감도 흐르고 있습니다.
엄마의 치맛단을 잡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아이의 얼굴과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와 헤어질 수 없다는 듯이
아이를 꽉 움켜 잡은 엄마의 핏줄 선 손등이 슬픕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잊어 버리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푸른 녹이 슨 청동 거울’을 늘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 속에 잠겨 있는 일그러진 모습을 그 거울에 비춰 봐야 역사는 진화합니다.
윈프리 오프라가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림 수집을 시작했다고 해서 더 알려진 작품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1913년 로즈랜드의 작품 중 대표작인 To the Highest Bidder가 브르클린 예술화관으로부터 전시 거부를 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작품의 내용이 ‘잊어 버렸으면 좋았을 일을 다시 생생하게 떠 올리게 만들었다’라는 이유였습니다.
부끄러운 것을 당연히 덮고 싶었겠지요. 이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그는 그림 그리는 일에 흥미를 잃기 시작합니다.
축복의 기도 The Blessing / c.1905 / 76.2cm x 122cm
이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 떠 올랐습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분위기가 비슷했습니다.
식탁에 놓은 음식이 별로 없지만 한끼 식사를 앞에 놓고 축복의 기도를 올리는 순간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라고 합니다.
한끼의 식사를 먹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우리 주위를 돌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기도를 올리는 작은 소녀도 그 깊은 뜻을 곧 알겠지요.
1888년,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로즈랜드는 브루클린 미술 클럽으로부터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이 때부터 시작된 그의 상복은 그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1871년에 스케치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가
샐마건디 아트 클럽 (Salmagundi Art Club)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도 활발하게 전시회와 화가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단체에도 가입 합니다. 적어도 미국 사회에서 확실한 미술가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죠.
크리스마스 아침 Christmas Morning / 1915 / 63.5cm x 76.2cm
오늘 본 그림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부유한 배경입니다.
천정에 닿을 듯 높이 솟은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부부가 아이와 함께 앉았습니다.
1년 중에 가장 행복하고 따듯해야 할 성탄절 아침, 그림에서는 찬바람이 불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여인도 남자도 굳어 있는 얼굴입니다. 앞 서 본 그림들이 비록 가난하지만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면
이 작품은 돈 냄새 이외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로즈랜드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묘사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저라면 차라리 ‘축복의 기도’가 있는 그 곳에서 성탄절 아침을 맞고 싶습니다.
이후 로즈랜드는 뉴욕과 뉴잉글랜드 지역의 해변 풍경과 그 지역 노동자들의 모습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 작품 보다는 덜 관심을 끌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명성은 여전했습니다. 여든 셋까지 살았으니 화가를
떠나 한 인간의 삶으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퀴즈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 로즈랜드의 그림 속
흑인 여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찾으셨는지요?
제 생각에는 여인들의 치마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있는 털실입니다. 왜 그림마다 등장했는지 알 수 없군요.
어치 관찰 Watching the Blue Jay / 45.7cm x 61cm
푸른 털을 가진 어치 한 마리가 새 장에 갇혔습니다. 아이들이 펴 놓은 책은 아마 어치에 관한 것 같은데 두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어치 관찰에 열중하는 모습입니다. 새를 가까이서 구경하기는 쉽지 않죠. 새장에 있을 때나
자세히 살필 수 있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인 경우 새와 아이들의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이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쳐다 보는 어치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혹시 새장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마음을 저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원래 있던 곳에서 자기 방법대로 살아 가는 것, 그 것은 사람에게나 새에게나 모두 절실한 일이지요.
원래 제가 소개하는 모든 화가의 작품들을 가져 가실 수 있도록 해 놓았지만, 작가 사후 70년이 아직 지나지 않은
관계로 저작권을 위반할 수 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여 이를 위반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으로 이 번 포스팅은
퍼 가실 수 없게 해 놓았습니다.
이웃님들의 양해를 간절히 바랍니다.
모든 것이 다 카드 안에 담겨 있지 It's All in the Cards / 1898 / 50.8cm x 76.84cm
카드점을 위한 배치가 끝났습니다. 소파에 깔아 놓은 카드를 보면서 점쟁이가 패를 읽기 시작합니다.
아가씨, 금년에는 ----
점쟁이의 점괘 설명이 길어 질수록 점을 보는 여인의 고개가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한 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아가씨, 정말로 카드에 당신의 운명이 쓰여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지요?
점괘 읽기 Reading the Cards / 1903 / 60.96cm x 87.63cm
이 번에는 여인 둘이 점을 보고 있군요. 모자를 벗은 여인의 표정이 심각한 것을 보니 그녀의 점괘인 것 같습니다.
역시 얼굴이 어두운 것을 보니 생각했던 것 보다는 좋은 점괘가 아닌 모양입니다.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각자의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지겨울까요?
모르기 때문에 자기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인생의 궁금함은 점쟁이 입에 맡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이 담긴 머리와 손에 맡겨야 합니다.
찻잎점 Reading the Tea Leaves / 1910 / 51.75cm x 77.47cm
차를 마시고 난 다음, 찻잔에 남아 있는 찻잎을 보고 점을 치는 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터키에는 커피를 마시고 난 뒤의 흔적을 가지고 점괘를 말하는 점도 있다고 합니다. 찻잎점과 커피점이죠. 인간의 운명이나 미래가 먹고 난 찻잔에, 커피잔에 남는다는 발상은 유쾌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입니다.
그런데 가운데 여인의 표정은 거의 울기 직전입니다.
혹시 사랑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면 점쟁이 앞에 있는 시간을 아껴 그 남자에게로 달려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좋아하는 우리 옛 가요 중 ‘산팔자 물팔자’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가사 중에 ‘ --- 손금에 쓰인 글자, 풀지 못할 내 운명, 인심이나 쓰다가 가자, 사는 대로 살아보자 --–‘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는 대로 살아가는 것, 쉽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로즈랜드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주제 중의 하나는 백인 여성의 손금이나 찻잎 점을 봐주는 흑인 여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왜 흑인 여성이 점쟁이로 활동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북전쟁 전과 후를 비교해 보면
세상이 뒤집어졌으니 그 것 자체가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었겠지요. 그의 이런 작품은 우편 엽서 크기로 인쇄되어
미국 전역에 배포 되었고 신문사에서는 그의 작품을 천연색으로 인쇄해서 일요판에 넣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