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채화의 대부
*소허 (小虛) 서동진*
수채화가 소허 (小虛) 서동진(1900∼1970) 화가·정치가
대구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다닌 뒤 독학으로 수채화를 그리며 대구의 양화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인성(李仁星)·김용조(金龍祚) 등 불우했던 후배에게 많은 격려와 자극을 주었고,
1928년의 영과회(零科會)와 1930년의 향토회(鄕土會) 등 양화학도들의 모임과 동인작품전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였다.작품에서는 주로 대구 일원의 거리와 마을을 사생한 수채화로 일관하였고
1928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 여러 차례 입선한 그는 항일운동가이자 미술운동가로서
대구 미술의 대부라 할 수 있다.광복 후 1950년의 대구화우회(大邱畵友會)의 창립에 참여한
일을 끝으로, 화가의 위치에서 떠나 신문사 중역 학원 재단이사장 등을 지내다가,
1954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로 나아갔다.
*영과회/ 설립 : 1927년 12월에 노동공제회관에서 창립전./주요활동 : 제1회전(1927, 노동공제회관),
제2회전(1928,조양회관), 제3회전(1929, 조양회관)/구성 : 이상춘, 이갑기, 이인성 등 소년 화가와 소년
작가, 서동진, 박명조, 최화수, 김용준 등의 찬조 작가 /주요성격 : 대구에서 소년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화가와 동요작가 등 다른 예술인들이 참여한 종합 예술제의 성격
*향토회/ 설립 : 1930년 조양회관에서 창립전./주요활동 : 1930(1회전, 조양회관)~1935(6회전,
이비시야 백화점)/구성 : 이인성, 김성암, 박명조, 서동진, 김용준, 최화수, 배명학, 서병기, 서진달,
이현택 등/주요성격 : 선전에서 인정받은 순수 서양화가들이 참가하였고, 대구 서양 화단을 형성하는데
중추역할을 담당.
[작품 감상]

<뒷골목> 종이수채, 49 X 62cm 1932 (제11회 鮮展 出品作)
선전 10회와 11회 입선작인 <오후풍경>(1931) 과 <뒷골목>(1932) 그리고 수채화 팔레트에
그려진 <팔레트 속의 자화상>(1930년대)을 우리 미술관에 소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그의 자유로운 조형의식을 엿보게 하는 현대적 감각의 작품들로서
모두 서동진의 수작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오후풍경 30.3x41.6cm (1931)
팔레트 상자 속의 자화상 나무 위에 유채 물감 16×21.8㎝ 1930년대(초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물 종이에 수채
뒷골목
설경
박명조 초상 종이에 수채 32.5×23.5cm(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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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수용기에 수채화의 중요성을 이식한 수채화가로서 혹은 탁월한 미술운동가로서 지도자로서 그리고 정력적인 사회사업가와 국회의원으로서 소허 서동진은 국가와 민족, 이 고장을 위해 갖 가지 고난에 항거하며 극복하여 70 평생을 바쳐온 `작은 거인’이었다. 화가로서의 형성기 때부터 대구를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던 그는 수채화의 독특한 화풍으로 대구화단의 개성을 수립했다. 대구에서는 일찍부터 수채화에 대한 열이 높아 있었으며, 그것이 이 지방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이는 전적으로 서동진에 의한 것으로 수채화의 특성을 충분히 살려 그 자체 독립된 장르로서 인식하고 수채화의 뿌리를 대구화단에 내렸고 그의 전 작품이 수채화였고 이 지방 많은 작가들이 30년대 한국화단을 수채화로 뒤덮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 결과 대구는 수채화의 본산지로서 주목받게 되었고 오늘도 그 명맥을 잘 이어오고 있다. 20년대 중반부터 30년대 중반까지 대구화단의 활기찬 미술활동이 서동진의 활동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그가 대구화단의 실질적인 주역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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