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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이론

몸과 미디어의 총체예술 한국 퍼포먼스 30년의 궤적

작성자꽃보단|작성시간11.05.16|조회수326 목록 댓글 0

윤진섭(미술비평,호남대학교 교수)

한국의 행위예술은 60년대 말 ‘해프닝’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벤트’,‘퍼포먼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고답적인 예술개념에 대한 도전의 역사를 계속하고 있다. 급변하는 문화지형 속에서 퍼포먼스의 위상은 단순히 몸짓이라는 말로는 더 이상 전체를 포괄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표현영역을 나타내며 그 범주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글은 그러한 흐름을 뒤돌아보며 현대 퍼포먼스의 제 경향들을 살펴본다.

신문 보도에 의하면 문화관광부가 내년을 ‘새로운 예술의 해’로 정했다고 한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문화관광부의 내년도 예산이 전체 예산의 1%를 초과했다는 소식과 함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들린다. ‘새로운 예술’이란 다름아닌 실험적인 예술, 전위적인 예술을 가리킴이요, 실험이야말로 미래 지향적인 예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열리는 해에 문화 예산 1조원 돌파, ‘새로운 예술의 해’ 지정 등 들리는 소식마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내용을 듬뿍 담고 있다. 한편, 비디오·컴퓨터·로봇·신시사이저·레이저·홀로그램 등 미래의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새로운 매체들이 많이 있지만, 퍼포먼스(Performance)만큼 그 양태가 다양한 매체는 없다.

비디오와 컴퓨터는 하드웨어적인 속성이 강한 매체지만, 퍼포먼스는 하드웨어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바로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이다. 손만 대면 황금으로 바뀌었다는 전설 속의 주인공처럼 퍼포먼스는 예술가의 상상력에 따라 광대무변한 공간 속을 누비기도 하는 가공할 만한 매체다.


▲ 정찬승·차명희 <콤포지션> 1969 명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1회 서울 국제현대음악제에서 백남준의 <콤포지션>을 실연하는 장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할 뿐만 아니라,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오직 머릿속에서 상상으로만 행해지기도 한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로봇 팔을 움직이는 호주의 행위예술가 스텔락은 이미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프랑스의 여성 행위예술가 올랑은 자신의 얼굴을 성형수술하는 퍼포먼스로 수백년에 걸친 서양미술사를 풍자하고 있다.

모나리자에게서는 이마를, 바로크 시대의 명화 속에 등장하는 미녀에게서는 뺨을, 또 누구에게서는 입술을… 하는 식으로 자신의 얼굴을 조합·변조하여 고전적인 미의 개념에 저항하는 보디 아트를 시도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작가는 <닳지 않는 자루>라는 프로젝트 작업을 20년째 계속하고 있는데, 매일 밤 자기 아내와 관계를 가지면서 모종의 ‘미실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또, 상대방의 신원을 모르고 즐기는 머드(mud)게임처럼, 익명성을 중시하는 어떤 퍼포먼스는 수백 혹은 수천만명을 상대로 이미 전개되고 있다. 정치는 퍼포먼스의 보고(寶庫)가 아닌가. 결혼도 일종의 퍼포먼스고, 사기도 잘만 치면 가히 수준급의 퍼포먼스인 것이다.

반란과 전위의 기수들

한국에 행위예술(Performance)이 나타난 지도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1967년경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해프닝을 벌였던 청춘들이 어느덧 환갑이 내일 모레인 노년기에 접어들었으니, 이를 일러 인생무상이라 하던가. 1967년 봄, 명동의 음악감상실 세시봉에서 토플리스 차림의 정강자는 <투명풍선과 누드>라는 해프닝을 벌였다. 당시 세시봉은 전위적인 옷차림의 예술가들이 자주 모여 기행(奇行)을 벌였기 때문에 명소가 되었는데, 강국진·정찬승 등과 의기 투합한 정강자가 과감하게 옷을 벗기에 이른 것이다.

▲ 1990년 어느 미술관 앞에서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지노귀 굿을 퍼포먼스 형식으로 펼치고 있는 백남준.

정찬승과 강국진을 비롯한 관객들은 열심히 정강자의 벗은 몸에 투명 풍선을 붙여 나갔다. 이 작품은 소음과 빛 등 환경적인 요소를 관객 참여와 함께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인 것으로 해프닝의 본령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해프닝으로 정강자는 일약 스타가 되었는데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요, 벗을 만한 이유가 있을 때 몽땅 벗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해프닝을 하다 필요하면 작품을 위해 죽을 수도 있어요.”(《한국일보》 1968년 10월 22일자 인터뷰 중에서, 필자 일부 가필)

정찬승은 늘 사고뭉치였다. 장발에 수염, 검정색 굵은 안경테가 인상적인 그는 밥 먹듯이 파출소로 연행되면서도 마치 해프닝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열성적이었다. ‘논꼴’ 동인의 화가이자 해프너로서 그는 전위예술을, 김수영 식으로 표현하자면 ‘온몸으로 밀고’ 나갔다. <한강변의 타살Ⅰ·Ⅱ> <장례의식> <가두시위> <길가의 좌선> <강변 화형식> 등이 그가 출연했거나 직접 만든 해프닝들이다. 이 해프닝들은 그가 혼자 했거나 강국진·정강자 등과 공동으로 벌인 것으로, 그 가운데 <가두시위>는 급기야 경찰에 연행되는 사태를 불러 일으켰다.

이 해프닝이 벌어진 것은 1968년 8월 15일 낮 12시. 정찬승·손일광 등이 사이비 문화인들에게 고하는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해프닝의 막을 열었다. 이들은 선언문을 꽃으로 장식된 관에 넣고 가두시위에 돌입했다. 정찬승과 손일광이 관을 들고, 정강자는 ‘문화인 장례식’이라고 적힌 피켓을 앞세우고 앞장 섰다. 강국진은 장례에 쓰일 도구를 들고 뒤를 따랐다. 이들이 경찰에 연행된 것은 광화문을 돌아 마침 국회의사당(현 코리아나 호텔)에 당도했을 때였다.


▲ 홍오봉 <AIDS DANGER> 1996 일본 나가노 네온홀 제1회 아시아 행위예술제. 에이즈를 주제로지속적인 작업을 했다.
이보다 앞선 1967년 11월 <청년작가연립전>(‘무’‘신전’‘오리진’ 동인 참가) 오프닝에서는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이 열렸는데, 이 작품은 오광수가 대본을 쓰고 ‘신전’과 ‘무’동인들이 출연한 작품이다. 촛불을 손에 든 작가들이 우산을 쓰고 앉아 있는 여인(김영자)의 주변을 빙빙 돌며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라는 동요를 부르다가 나중에는 우산을 찢는, 비교적 단순한 줄거리의 해프닝이었다. 이 작품은 1995년 8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공간의 반란: 한국의 입체·설치·퍼포먼스 1967~1995>(필자 기획)에서 재연된 바 있다. 한편, 이 시기에 활동한 전위예술 그룹으로 ‘제4집단’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김구림(미술)·방태수(연극)·손일광(디자인)·강석희(음악)·이익태(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인 이 그룹은 토털 아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들은 “기성세대는 이미 미학의 빈곤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단절을 통합하기 위해… 무체주의만이 현대인을 구원해 줄 유일한 사상이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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