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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이론

미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신고전주의

작성자참꽃마을|작성시간12.02.18|조회수188 목록 댓글 0

미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신고전주의

그리스 정신의 재창조


김광우의 <프랑스 미술 500년>(미술문화) 중에서






18세기 후반 로코코는 새로운 고전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신고전주의의 이상은 명확한 윤곽선과 단순한 표현, 그리고 우아함보다는 간결하고 솔직함에 있다.
사람들은 실내 장식미술의 달콤한 감상과 에로티시즘에 싫증을 느꼈다.
고대로의 복귀는 처음에 로마적인 것보다는 그리스적인 것을 지향했다.
그것은 남부 이탈리아 및 폼페이에서의 고고학적 발견과 독일의 미술사가이자 고고학자인 요한 요아힘 빙켈만의 이론과 그의 동료 컬렉터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빙켈만은 고전적 이상을 그리스 천재가 만들어낸 것으로 보았으며 그리스 미술과 로마에서의 모작을 확실하게 구별하는 최초의 역사가가 되었다.
그의 저서 『그리스 미술 모방론』은 로마로 떠나기 바로 직전인 1755년 드레스덴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었으며 유럽인의 애독서가 되었다.
신고전주의 이론의 독보적인 존재가 된 빙켈만은 이 책을 출간한 후 이탈리아로 가서 1759~64년에 걸쳐 「헤르쿨라네움 발굴에 관한 비안코니 서한」(사후 간행), 「헤르쿨라네움 발굴에 관한 브륄 서한」(1762년 간행), 「최근의 헤르쿨라네움 발굴에 관한 퓌슬리 보고」(1764년 간행) 등 세 편의 보고서를 집필했다.


<라오콘>75을 고대의 걸작으로 꼽은 빙켈만은 이 작품을 찬양해마지 않았다.


그리스 걸작들의 일반적이며 탁월한 특징은 결국 자세와 표현에서의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이다.
바다의 수면이 사납게 날뛰어도 그 심해는 늘 평온한 것처럼 그리스 조상들은 휘몰아치는 격정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위대한 영혼을 나타냈다.
이 영혼은 격렬한 고통 속에 있는 <라오콘> 군상의 얼굴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 고통은 얼굴뿐 아니라 육체의 모든 근육과 힘줄에도 나타나 있어서, 우리는 얼굴이나 육체의 다른 부분을 보지 않고 고통으로 움츠러든 하복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고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얼굴이나 전체 자세에서는 전혀 고통에 찬 격정이 드러나 있지 않다.
그의 고통은 우리의 영혼에까지 스며들어온다.
그러나 우리가 이 위대한 이처럼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빙켈만이 고대를 모방하라고 한 것은 생명력 없는 모방이 아니라 그리스 정신의 재창조를 원한 것이다.
그리스 미술의 특징에 관해 그가 언급한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 Edle Einfalt und stille Gr슙e”는 미적인 요소와 더불어 윤리적인 요소에도 적용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여전히 여러 양식이 모순과 대립에 의해 존속하고 있었으며 고전주의가 아직은 전투적 입장을 취하면서 서로 경합하던 양식들 속에서 약한 위치에 있었다.
1780년경까지의 고전주의는 대체로 궁정적 예술과 이론적 논쟁을 벌이는 데만 국한되어 있었다.
프랑스 혁명 전야의 화단에는 크게 보아 네 가지 예술 경향이 있었는데, 프라고나르로 대표되는 감각주의적·색채주의적인 로코코 전통, 그뢰즈로 대표되는 감상주의, 샤르댕의 부르주아 자연주의, 비앵의 고전주의였다.
최초의 신고전주의 양식 화가인 조제프-마리 비앵은 초기에 자크-루이 다비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몽펠리에서 출생한 비앵은 24세 때 파리로 왔고 3년 후 로마대상을 수상했으며 장학금을 받고 로마 주재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1743~50년에 유학했다.


프랑스 혁명을 이끈 세력은 자기들에게 가장 적합한 양식으로 고전주의를 선택했다.
이 선택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취미와 형식의 문제라든가 중세 말기와 초기 르네상스의 시민적 예술 이상으로부터 나온 내면성과 친밀성의 원칙이 아니라, 현존하는 여러 경향들 가운데 어떤 것이 애국적·영웅적 이상과 로마적 시민 덕목과 공화주의적 자유이념 등을 포함하는 혁명의 에토스를 표현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가 하는 관점이었다.
시민계급이 발전시킨 도덕개념들 대신에 자유애와 조국애, 영웅정신과 자기희생정신, 스파르타적 엄격성과 스토아 철학에 기초한 자기극복 등의 덕목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비앵의 회화 자체는 아직은 유치하고 어린애 같은 귀여움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뢰즈의 부르주아적 감상주의와 마찬가지로 로코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비앵의 교태스러울 정도의 에로틱한 그림은 모티브만 고전주의적이고 표현방식만 고대풍을 띠었을 뿐, 정신과 성향은 순전히 로코코적이었다.74
젊은 다비드가 고대 미술의 유혹에 빠져들지 않겠다고 각오하고 이탈리아로의 유학길에 오른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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