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적 광기의 예술가 초상, 뒤러의 <멜랑콜리아>
멜랑콜리아, 즉 우울체질은 네 가지 체질(성격) 중 하나다. 중요한 점은 멜랑콜리아의 개념이 뒤러(1471~1528)의 동판화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재해석됐다는 사실이다. 중세 전통에서 멜랑콜리아에 대한 개념은 매우 부정적이다. 검은 담즙이 많아 인색하고, 쉽게 화를 내며, 사악하고, 신앙이 없고, 자주 졸고, 퉁명스럽고, 슬퍼하고, 나태하다. 그리고 결국 담즙이 너무 많아지면 광증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성격 때문에 멜랑콜리 체질인 사람은 혼자 연구하거나 공부하는 데 적격이라고 한다. 뒤러 이전에 멜랑콜리아의 의인화 형상이 그려진 예는 주로 의학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흔히 졸거나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중세에는 일곱 가지 죄악의 하나인 나태와도 결부되었다.
뒤러의 작품에서 멜랑콜리아는 턱을 괴고 앉아 있으나 잠들지 않고 깨어 있다. 그는 행동을 하고 있진 않지만 부릅뜬 눈은 뭔가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생각하고 있다. 이미 파노프스키는 <네 사도>에서도 멜랑콜리 체질인 성 바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뒤러에게 있어 멜랑콜리 체질은 날카로운 지성과 관계된다고 했다. 결국 동판화의 멜랑콜리아는 게으른 게 아니라 생각에 잠겨서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날개 또한 존재의 위상을 높여주며 주위에 널린 지적 활동의 도구들 역시 이 인물이 나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표시한다. 무엇보다도 푸토는 부지런히 뭔가를 쓰고 있어 마치 멜랑콜리아의 내면에서 이 같은 사색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뒤러가 만들어낸 차이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파노프스키의 의미 해석은 사실 무슨 의미인가를 묻기보다는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묻는다. 파노프스키는 이와 같은 멜랑콜리아의 재해석이 바로 중세로부터 내려오는 또 다른 미술 전통인 문예의 알레고리(문헌학적 지식)에서 영감을 받은 결과라고 설명한다. 소위 자유 7과목 중에서 기하학을 나타내는 그림은 뒤러의 <멜랑콜리아1>처럼 온갖 계량도구가 같이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기하학의 알레고리상은 당연히 무기력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결국 멜랑콜리아의 ‘사색적인(원래는 무기력한) 자세’와 ‘기하학의 알레고리’라는 두 가지 동떨어진 도상 전통을 결합해서 뒤러가 이뤄낸 결과물은 재능을 부여받은 예술가 또는 학자의 멜랑콜리이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멜랑콜리아는 전통적인 멜랑콜리아와 무엇이 다른가? 전자는 위대한 성취에 대한 야심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는 소위 고통받는 천재의 좌절이다. 뒤러의 멜랑콜리아를 보면 턱을 괸 손이 주먹을 쥐고 있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멜랑콜리아 도식에서는 물욕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요소였다. 그러나 파노프스키는 여기서는 생각 속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분투와 집념을 나타낸다고 봤다. 또한 전통적으로 멜랑콜리아는 검은 담즙 때문에 얼굴색이 어둡게 표현되었다. 그러나 뒤러는 멜랑콜리아의 두 눈만을 밝게 비춰서 뭔가를 노려보는 듯한 집념에 찬 눈을 강조했다. 따라서 이 여인은 이론(theory)을 뜻하고, 옆에서 부지런히 뭔가를 쓰고 있는 귀여운 푸토는 실행(practice)을 상징하는 것이다.
파노프스키(E. Panofsky, 1892~1968)는 좌절한,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집념의 예술가상으로서 그려진 멜랑콜리아가 당시 사회의 내면에 존재한 어떤 거대한 정신적 경향과 연결된다는 점을 보여야만 했다. 과연 당시의 어떤 정신적 경향성이 뒤러에게 무의식적으로 기하학의 알레고리와 멜랑콜리아의 도상을 결합해서 새로운 멜랑콜리아, 즉 고통 받는 지식인의 알레고리를 창출하게 했는가? 파노프스키는 또 다시 이 질문의 답을 과거의 권위 있는 텍스트에서 찾는다. 이 경우에는 네오플라토니즘을 제시한 마르실리오 피치노(1433~1499)의 사상이다. 더구나 피치노가 플로렌스 사람이었기 때문에 북유럽의 르네상스는 결국 이탈리아로부터 전파되었다는 파노프스키의 문화이식론에도 딱 맞아떨어진다. 중세 내내 부정적인 체질로 이해되어온 멜랑콜리아는 피치노에 의해 새로운 해석을 받게 된다. 피치노에 의하면, 멜랑콜리아 체질인 사람은 자신을 광증으로 몰고 가는 바로 그 충동적인 힘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수준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사유한다. 그래서 철학, 정치, 시에서 뛰어난 인물들 중에는 멜랑콜리아 체질인 사람이 많다는 것인데, 피치노도 스스로 멜랑콜리 체질이라고 믿었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피치노는 플라톤의 신적인 광기(mania) 개념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킨다. 멜랑콜리아 체질인 사람에게 발작적으로 나타나는 광분상태는 건강을 극도로 해치지만 동시에 그의 영혼을 남들이 다다를 수 없는 상태로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멜랑콜리의 발작이라고도 불린다. 피치노는 바로 이 같은 고통과 광증 속에서 극대화되는 지적 영감을 말했을 것이며, 뒤러는 화가로서 이 생각에 매력을 느꼈으리라. 그러나 사실 피치노는 화가가 아니라 문인과 학자를 두고 멜랑콜리 이론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