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와 파괴의 예술정신, Futurists> loser loserthevoyd@yahoo.com 문자 디자인, 미래형 건축 디자인과 그 밖의 실용 디자인에 있어서의 소재주의 혁명, 인더스트리얼 록, 아방가르드 행위 예술, 웅변 연극 등 수많은 현대 예술의 이념 혹은 문화의 원류에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 풀뿌리 디지털 문화의 이념적 효시까지도 이들에게서 찾아질 수 있다. 아울러 변혁을 위해 과거로부터 스스로를 의식적으로 단절하기 위해 선동과 파괴를 운명적으로 선택하는 급진적 혁명가들이 피할 수 없었던 모순까지도 스피드광 예술 혁명가의 선전포고장 오늘 우리는 미래주의를 건설하게 된다. 괴저에 걸려 악취를 풀풀 풍기는 교수와 고고학자, 관광 가이드, 고물 수집가들로부터 이 땅을 해방시키기 위해 - [미래파 선언문] 중에서 1909년은 미래주의의 원년으로 기록된다. 그해 2월 20일,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Le Figaro)]지에 "미래주의 선언문(Manifesto of Futurism)"이 실리면서 처음으로 '미래주의(Futurism)'라는 예술 문화, 정치 사조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청년 시인(당시 32세), 필리뽀 토마쏘 마리네띠(Filippo Tommaso Marinetti)는 그 신문에서 과격하고 정열적인 어조로 당시 전 유럽을 지배하는 전통 예술(특히 문학)사조로 맹공격하면서 유일한 대안은 기존의 모든 문화적 기반에서 완전히 단절되는 것뿐이라고 선언했다. 한 청년운동가의 방약무인한 치기로 치부될 수 있었을 급진적인 전통파괴론은 이어서 제시한 대안으로 양상이 달라졌다. 마리네띠가 내놓은 대안은 '역동성(dynamics)'이었다. 특이한 것은 그 역동성의 근거가 과거 예술가들의 헌사 대상이었던 '생명과 자연의 생성력'이 아니었다는 것. 마리네띠가 최고의 미학적 가치이면서 동시에 신인류의 유토피아적 비전을 위한 기폭제라고 설파했던 것은 '기계문명의 테크놀로지'였다. 그는 동일선 상에서 남성성, 전쟁, 군국주의, 이탈리아 민족주의를 우상화했다. 이 공격적이고 선동적인 강령들은 신세기(1900년대) 문화, 예술, 정치 전반을 대상으로 한 물갈이 선전포고의 총성이 되었고, 순식간에 수많은 열혈 지지자들을 불러 모으게 된다. 급조된 미래파들(Futurists)들은 그러나 군국주의자나 민족주의자, 혹은 신흥 정치가들이 아니라 화가, 조각가, 건축가, 영화인들이었다. 그들은 마리네띠와 혈맹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이념적, 예술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각자 선언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도 미래파의 주요 화가로 기억되는 움베르또 보치오니(Umberto Boccioni)의 "미래파 화가들의 선언문(Manifesto of Futurist Painters, 1910.2.11)", "미래파 조각에 관한 선언문(Manifesto of Futurist Sculpture , 1912 . 4.11)", 발릴라 쁘라텔라(Balilla Pratella)의 "미래파 음악인들의 선언문(Manifest of Futurist Musician, 1912)", 안또니오 산뗄리아(Antonio Sant'Elia)의 "미래파 건축에 관한 선언문(Manifest of Futurist Architecture, 1914)" 등 다수의 미래파 선언문들이 도미노처럼 매해 쏟아져 나왔고, 이는 새로운 화풍과 새로운 음악, 새로운 건물과 새로운 문학, 새로운 영화라는 활기차고 혁신적인 실천의 결과물로 이어졌다. 안티-브루주아지, 네오필리아, 신세기 문화예술 혁명 마리네띠에게 1900년대를 막 넘어선 유럽, 특히 이탈리아의 예술문화는 썩은내가 풍기는 고급 시체안치소처럼 보였다. 수천 번도 더 반복된 전통 예술 양식을 절대예술로 추앙하면서 학교와 박물관을 통해 젊은 세대들로 하여금 창조가 아닌 복제를 하도록 종용하는 형식주의자, 현학주의자, 중산층 돼지들이 가장 문제였다. 그들 때문에 자국 이탈리아의 예술문화는 그리스, 러시아의 영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예술적 식민지로 전락해버렸으니 말이다. 마리네띠는 더이상 그 속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새로운 예술과 새로운 시대를 위해서는 현학적 위선에 가득찬 중산층 계급의 지식인과 후원자들을 몰아내고 전통예술을 살해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자신도 중산층 출신이었지만 혁명을 위해 계급으로부터 이탈해 나온 그는 중산층 문화를 "안락의자주의(armchairism)"이라고 낙인찍었고, 새로운 문화혁명을 위해서는 모색과 타협을 통한 '점진적' 개선과 같은 수동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근본부터 뒤집어 엎는 완전 전복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게 된다. 미래파의 태동엔 신세기에 들어서 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과학 문명의 발달이 가장 큰 배경으로 작용한다. 특히 초고속을 향해 치닫는 통신, 운송수단은 미래파들에게 신세기 과학문명의 판타지를 제공했다. 속도광이었던 마리네띠에게 질주하는 자동차는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초월하여 초현실적 경험으로 무한하게 증폭되는 혁명이자 신세기적 비전으로 보였다. 속도는 동시성, 역동성과 함께 미래파 최고의 예술적 이데아가 된다. 대포알 위에 올라탄 듯 굉음을 지르며 달리는 자동차가 승리의 여신상보다 더 아름답다. - 마리네띠, [미래주의 선언문] 중에서 역동적인 속도의 공간에서 '다중적으로' 드러나는 움직임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 새로운 미학적 가치로 부상했고, 이는 '대상의 실제적 모사'라는 예술의 전통양식에 대한 일대 혁명을 의미했다. 미래파의 기념비적 회화로 손꼽히는 지아꼬모 발라(Giacomo Balla)의 "끈에 묶인 개의 역동성(Dynamism of a dog on a leash, 1912)"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개의 움직임을 평면 위에 실현한 좋은 예다. 큐비즘의 분절성, 반-원근법과 예술방법론의 교류를 보여주기도 하는 미래파의 미학은 당시 크게 발달한 사진술의 '연속 촬영법'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9세기식의 자연과 대상의 재현법(=복제법?)은 미래파의 타도 대상이었고, 혁명적인 시각 이미지의 창출을 통한 세계의 조직적이고 인공적인 재구성이 미래파의 미학적 핵심이 되었다. 우리의 일상적인 세계를 지지하고 미화하라. 그 세계는 승리를 거둔 과학에 의해 끝없이, 그리고 눈부시게 변모될 것이다. - [미래파 화가들을 위한 선언문] 중에서 기계 문명의 천착은 예술의 소재에도 혁명을 가져왔다. 마리네띠의 경우 문학적으로는 구문론과 라틴 경구들을 완전히 몰아내고 의식의 자유로운 흐름을 중시하는 자유시(自由詩)의 시도 뿐만 아니라 인쇄매체와 제본방식에 있어서도 가히 혁명적이라 할만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활자를 이미지화하고 볼트와 같은 금속소재들을 새로운 제본방식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그의 시도는 오늘날의 활자-제본 디자인과의 거리가 극히 가까운 획기적인 것이었다. 또한 조각의 경우 미래파들은 전통 조각 예술에선 쓰지 않는 소재를 사용해서 새로운 조형미를 창조하자고 주장했다. 이렇게 회반죽, 브론즈, 유리, 목재, 그 밖의 모든 가능한 소재들, 즉 서로를 연결시키고 교차시켜주는 분위기를 가진 평면 소재들 속에서 새로운 조형성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것을 나는 '물질적 초월주의(Physical Transcendentalism)'이라고 불러왔다. - 보치오니 [미래파 조각을 위한 선언문] 중에서 음악의 경우는 어떤가? 미래파 작곡가인 루쏠로(Russolo)의 경우 "소음의 예술론(Art of Noise)"을 통해 '인간의 귀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어떤 것이든지 '적법한'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확성기를 붙인 상자 모양의, 루쏠로가 발명한 "소음 조음기(noise-intoner)"는 기계의 폭발음, 마찰음, 삐걱이는 모든 소리들을 만들어냈고 이를 이용해 새로운 형식의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치렀다. 오늘날 쓰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 캬바레 볼테르(Cabaret Boltaire), 나인 인치 네일즈(Nine inch nails)와 같은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록의 대가들의 음악적 원류가 태동한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훗날 종교적인 비전으로까지 극대화되는 기계문명의 판타지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뭐니뭐니해도 건축 분야였다. 19세기의 구습적 장치들을 몰아내고 인간의 유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시의 완전한 재건축이 필요한 건 당연했다. 조각과 마찬가지로 목재, 벽돌, 돌과 같은 기존의 건축소재들이 배격되고 강철, 유리, 콘크리트가 추천되었다. 미래의 건축이 하나의 유기체적 기계로 기능해야 한다고 믿었던 미래파 건축가 산뗄리아는 수많은 건축 스케치들을 통해 미래 도시의 비전을 제시한 최초의 현대적 건축가였으며 이를 토대로 수많은 혁명적인 건축물들이 세워지기도 했다. 프로토 펑크 혹은 프로토 파시스트들이 껌 씹던 방법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를 펑크의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구자로 생각할 수 있다… 미래파들은 이탈리아 중산층 계급 출신이었고 펑크들은 노동계급 출신이었지만 두 운동 모두 귀족 문화와 자폐적인 보헤미안/히피즘 예술 운동에 대해, 그리고 관습성과 노스텔지아를 혐오했다는 측면에서 같다… 이 운동(미래주의)은 시대 착오와 구습으로 가득 찬 이탈리아 자유당을 완전히(utterly)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 카렌 핑커스 [미래주의: 최초의 펑크? (Futurism : Proto Punk?)] 대학, 도서관, 박물관은 미래파들이 가장 혐오한 구시대의 산물이었다. 그것들은 상업성, 신비주의, 엘리티즘, 집단 최면주의, 기회주의, 도덕주의의 기반이었고 그를 통해 중산층 계급들이 이탈리아의 문화와 예술을 장악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고학자, 평론가, 교수, 부유한 예술 후원가들이 미래파의 타도 대상으로 지목되었고 독학(DIY)이 적극 장려되었다. 이와 더불어 여성과 파스타(pasta) 역시 타도 대상의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 미래파 예술인과의 동맹도 활발했었다는 것을 볼 때 그들이 실제로 성차별주의자였다는 혐의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 마리네띠의 부인인 베네데타 카파 마리네띠는 주요 미래파 화가일 뿐만 아니라 마리네띠의 미래파 관련 프로젝트에 있어서도 유능한 동지로 활약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들이 비판한 것은 오히려 사회적 타자로서의 여성의 위치에 대한 비판에 가까운 것이었다. 미래파는 전통 회화의 절대 주제인 '누드화'를 배격했는데, 그로부터 전통 자체에 대한 혐오뿐만 아니라 회화의 생산자가 아닌 소재로서만 참여가능한 여성의 한계에 대한 비판도 읽힌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래파는 오히려 적극적인 여성해방론자였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파스타의 경우, 비트닉이 텔레비전을 혐오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 ?중산층의 고착적 획일주의를 상징한다고 본듯 하다. 속도와 역동성을 찬양하는 젊은 미래파들이 선언문과 새로운 예술품의 제작만으로는 과거를 파괴하고 새로운 혁명을 일으키기에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당연했다. 그들은 거리로 나섰다. 할 수 있다면 광대짓을 해서라도 안이한 대중들을 일깨우고 자극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대중적 취향의 면상 후려 갈기기(A Slap in the Face of Public Taste, 1917)]와 같은 공격적이고 선동적인 선언문이 뒤따랐지만 그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들이 실제로 광대옷을 입고 선전문을 흩뿌리며 다녔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고급 수트와 타이를 빈틈없이 차려 입고 중절모를 즐겨 쓰고 다녔다. 언뜻 중산층 계급을 증오한 그들의 이념과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중산층 순응주의적인 외양과 극단을 달리는 반문화적 행동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그들의 '문화 혁명 작전'이었던 것이다. 문화적 센세이션이 된 미래파들은 매체에 실릴 사진을 찍을 때 유니폼같은 일품 정장을 입고 고의적으로 비웃는 포즈를 취했다. 그러나 반대파들을 가장 열받게 한 것은 훗날 "미래파들의 밤"이라고 불리게 되는 "밤의 쇼(serata)"였다. 그것은 오늘날, 행위예술(퍼포먼스)라고 불리우는 전위 연극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퍼포먼스는 대중의 자기 만족을 산산이 부서지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예술가들에게 '거리로 나와 걸어다니는 것, 극장에서 강한 습격을 하는 것, 예술상의 싸움에서 난투를 벌이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진실, 그것이 그들이 가지고 온 것이었다. - 로스리 골드버그, [행위예술](동문선, 1989) 중에서 당시 오스트리아와의 정치적 분쟁으로 혼란스러웠던 트리에스떼에서 애국적 군국주의와 전쟁을 찬미하고 상업예술과 전통 숭배를 비난한 이들은 곧바로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파스타가 아닌 미래형 음식을 통해 이탈리아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동차 기름, 쇠구슬과 같은 것을 음식에 뒤섞어보일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이중 좌석권을 팔고 관객석에 아교칠을 함으로써 혼란스러워하는 관객들을 드러내놓고 조롱했다. "밤"은 관객들과 미래파 예술가들의 무대 위 난투로 중단되고 경찰에 체포되어 구류형에 처해졌다. 공연이 지속될수록 미래파의 악명이 높아진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틀의 구류를 살고 나온 미래파들은 '돈을 뿌리지 않아도 선전되는' 문화 혁명 작전에 크게 만족했다. 그들에게 감자를 던진 분노한 관객들이야말로 전통의 지적 학살에 희생당하지 않은 '살아있는 가능성'이자 '새로운 의미의 행위 예술가'였던 것이다. 예술이란 결국, 폭력, 잔인성, 그리고 부정(不正)이외의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다. - 마리네띠 "감자 대신에 사고방식을 던져라, 이 바보들아! " - 무대위로 감자, 오렌지 등을 던지는 관객들에게, 미래파 예술가 까를로 까라가 그러나 정체된 전통을 깨기 위해 과학문명의 역동성을 찬양하고 아카데미즘에 맞선 민중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예술가와 감상자의 위치까지 허물어버리려 했던 그들의 혁명정신은 '전쟁'까지도 체제의 완전 전복을 위한 이상적 장치로 보는 극단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다. 반오스트리아 정치노선이 민족주의를 더욱 발화시키고, 그 혁명적 가능성을 무쏠리니에게서 본 미래파들은 열렬한 무쏠리니의 지지자로서 파시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그리고 행동주의자들답게 다수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마리네띠에 의하면 1차 대전은 "유일한 위생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다수의 미래파들은 전사하게 되고 파시즘에 경도된 마리네띠의 동조자들이 점점 줄어들면서 미래주의의 오색등도 점점 빛을 잃어가게 되고 만다. 과격한 반문화 예술가들… 긍정적으로 볼 때 미래파는 예술을 통해 체제를 완전히 이탈해 버리려 했던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다. 특정한 체제를 비판하되 다소 체제 친화적인 코드들을 거치게 될 때 운동의 역동성 자체를 무화시켜버리는 모순이 불가피했던 예들을 떠올릴 때 이들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한다. 그것이 파시즘이라는 '불가피한' 결말을 끌어내었다는 비판 역시 가능하지만, 그것 마저도 혹 미래파가 의도한 순기능적 측면은 아니었을까? 그들 말을 빌자면 '비난 받는 것도 쾌락'일진대 의도적으로 '비난 받을 행위'를 저지름으로써 비난하는 자들의 의식까지 새롭게 환기시킬 수 있다면… 적어도 마리네띠는 이것까지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업적이 달성될 때까지 족히 십 년은 잡고 있다. 우리가 40세가 되었을 때 우리보다도 더 젊고 더 강한 자들이 우리를 쓸모없는 사본처럼 쓰레기통에 버릴지도 모른다고? 우린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 그들, 우리의 후계자들은 아주 먼 곳으로부터 우리에게 반대하기 위해 올 것이다… - 마리네띠 [미래파 선언문] 중에서 (special thanx to : Le-non, JS_H) 1. 미래파 도서관 도서관은 미래파의 금기어지만 이들도 구세기의 유물이 된지 오래니… ^^;; 마리네띠의 미래파 최초 선언문을 위시로 회화, 조각, 건축, 영화분야로 퍼져나간 도미노 선언문들을 모두 구비한 곳이다. 즉, 미래파 포탈 사이트. 미래파의 예술 이념들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곳이 최적격이다. 열정과 선동으로 가득 찬 선언문들의 행간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파시즘과 기계 문명에 대한 유아기적 판타지말고도 수많은 미래파의 반문화적 코드들이 오늘날까지도 주요한 문화 과제로 기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미래파 관련 갤러리들과 주요 작가들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도 다수 링크되어 있다. 2. 미래파 박물관 역시 박물관 혐오자였던 미래파들이니 이 글의 표제를 본다면 모욕감에 침을 뱉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미래파 운동가라면 차라리 자신을 폐기해달라고 협박해야 할 듯… ^^;; 미래주의에 대한 간략하고 핵심적인 정의들을 토대로 전 분야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해 놓았다. 추천할 메뉴는 마리네띠의 활자 및 제본 디자인을 자세히 열람해 놓은 "bolted book". 문자 디자인, 변혁적 레이아웃, 도서 제작을 위한 소재주의의 혁명 등등, 비주얼 아트로서의 텍스트라는 역사가 미래파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충격적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photos"를 클릭하면 모드족(Mods) 을 연상시키는 댄디한 미래파 젊은이들의 사진들도 볼 수도 있다. 3. 미래파 갤러리 초보 방문자들을 위한 팜플렛 구스타프 클림트, 만 레이와 함께 미래파를 진열해 놓은 갤러리. 이탈리아어와 영어, 2개국어로 서비스되고 있다. 미래파의 주요 예술 강령들(도시, 속도, 동시성, 개인, 전쟁등)을 서브메뉴로 늘어놓고 각각을 클릭하면 개요 설명과 함께 연관되는 작품들을 걸어놓은 것이 재미있다. 도식적인 진행방식이긴 하지만 미래파를 간략하게 개괄하기에 적절해 보인다. 4.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하는 미래파 갤러리 순례 미래파의 미술작품들이 진열된 한국 사이트. 한글이라 더 편하다. 메인 페이지의 미래파 교양 강의를 읽고나면 주요 작가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들의 작품명, 제작시기, 소장 박물관등이 명시된 회화, 포스터, 조각작품들을 다수 관람할 수 있다. 5. 무대와 관객석, 배우와 관객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주의 연극인들 : 신(新)미래파 미국 시카고의 '실험극단' 사이트인 이곳은 미래파 연극 예술론을 실천하는 '신 미래파(Neo-Futurists)'들의 연극을 소개한다. "공동으로 쓰여진 각본을 토대로 60분 동안 30개의 드라마를 공연한다"는 소개장이 미래파 후예들이 내던진 당당한 도전장. 주요 연극 장면들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관객석과의 구분이 없는 무대, 부조리 연극 무대보다도 휑한 세팅, 단일 조명등 아래서 분장이나 코스츔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듯한 배우들이 사건이 아닌 무의미한 해프닝을 벌이면서 관객들을 웃긴다. 대사는 '선언'과 '과대 선전', '답을 구하지 않는 존재론적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관객과 배우들간의 쌍방향 소통극' '저예산 DIY 연극'?? 직접 확인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