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와 초현실주의 미술운동을 간략히 설명하면서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
다다:원시주의와 관련하여 말할수 있다.
공통점.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은 아방가르드(전위예술)에 해당하는 용어로서 아방가르드란
기존의 예술분야의 패러다임을 일변시키는 혁명적인 예술 경향이나 운동을 의미합니다.
우선 다다이즘은 스위스에서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일어난 예술상의 운동으로서 그때까지의 인류를 찬양하고 보존하려 했던 모든 전통적인 문명의 형식과 정신을 부정하는 움직임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쉽게 말해 혼란한 사회속에서 움튼 반항적 예술사조라고 할 수 있겠죠.그리고 이러한 다다이즘으로 대표되는 전위개념의 확산에 따라 쉬르레알리즘이라고도하는 초현실주의(초현실적인 자유로운 상상을 표현하는 예술 사조)가 프랑스에서 일어나면서 전위예술의 2대 조류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즉, 다다이즘은 20세기 초현실주의의 모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문명화'에 대한 거부에서 출발한다. 제 1 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이 문명화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 사조는 관습에 대한 거부, 고상한 취미에 대한 경멸(유미주의를 떠올려 보세요), 유머와 비합리주의(우리나라의 풍자와 해학이 떠오르는 건 왤까;), 이국적 분위기를 주된 무기로 전통적인 가치와 우상을 파괴하며 개인주의, 쾌락주의, 무정부주의를 찬양한다
차이점
다다이즘 -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관심
다다의 몸짓들에서 공격적이고 허무적이며 동시에 비관적인 그들을 느낄 수가 있다.
다다이즘은 파괴 속에서 원시주의의 성격을 보여주기도 한다. 모든 것의 파괴는 원점 즉 원시를 의미한다. 그들은 이 원시를 보여주어 참다운 새 출발을 시도하려 했던 것이다. 무의 정신은 다다이스트들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원시 부족예술에 눈을 돌리게 하였으며 초혈실주의에 와서는 다다의 예술 부정에 대한 대안으로 인식하의 세계 즉 잠재적 무의식의 세계를 비합리적 방법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이것은 쾌락원리와 현실원리를 화해하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서는 원시인들의 이원적 세계관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다이즘은 처음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 2월 작가 겸 연출가인 H.발이 카바레볼테르를 개점하고, 시인인 T.차라, R.휠젠베크 등과 함께 과거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고 비합리성·반도덕·비심미적인 것을 찬미하였다. 차라는 “새로운 예술가는 항의한다. 새로운 예술가는 이미 설명적·상징적인 복제를 그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돌이나 나무나 쇠로 직접 창조한다. 특급기관차와 같은 새로운 예술가의 유기체는 순간적인 감동을 싣고 모든 방향으로 향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여기에 오늘날 말하는 자유분방한 오브제(objet)가 등장하는데 그것들은 문자 그대로 중립을 선언하면서 스위스에 모인 망명자들의, 밖에서의 참혹한 살육을 의식한 발언이며, 그들은 종래의 예술작품이 외적 폭력에 대해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전쟁 체험을 통하여 느끼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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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에 영향을 받아 꿈과 무의식 즉, 합리적인 법칙이 무력화된 다른 현실에 관심.
초현실주의라는 말은 1917년 시인 아폴리네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초현실주의가 명확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앙드레 브르통이 《쉬르레알리슴 선언》을 발간한 1924년부터이며, 1925년에는 이 운동의 첫 종합전이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초현실주의는 사실주의나 추상예술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쉬우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달리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세밀한 묘사력은 사실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 A.마송, J.미로, M.에른스트의 작풍에도 추상화의 경향을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기술적으로는 사실성·추상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초현실주의 뿌리를 찾는다면 그것은 다다이즘에서 찾아야 한다. 다다이즘은 비합리를 예찬하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향으로 흐르며, 콜라주와 같은 새로운 기법, 오브제와 같은 직접적인 표현도 채택했으며, 초현실주의 강력한 무기인 에로티시즘에 이르러서는 다다이즘의 비도덕적인 자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기원을 더 먼 곳에 찾아본다면, 그것은 당연히 입체주의(입체파)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것은 20세기의 예술운동 속에서 야수파나 표현주의 이상으로, 입체주의는 혁신적인 공간의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원색주의를 택하고 강렬한 감정표현을 주체로 삼았다고 한다면, 입체주의는 종래의 회화를 부정하는 순수한 이념화만을 꾀한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는 그 때까지 빙산처럼 수중에 가리어 있었던 무의식의 영역에 눈을 돌렸다. 즉, 이성(理性)의 반대의 극점, 합리의 반대쪽의 세계이다. 초현실주의가 나타나기 이전에, 예술은 이성과 감성, 정신과 마음이 합치는 지점에 그 초점을 두었다
초현실주의는 종교감정 대신에 프로이트의 리비도설(說)이 도입된다. 따라서 인간의 숨겨진 부분에 상상력을 펼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창조력이란 그것이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현존하는 것을 뛰어넘어, 비구상(非具象)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이와 같이 낭만주의는 자아를 절대시하고, 그것에 무제한의 능력을 부여했을 때에 비로소 초현실주의의 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억압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능한 한 참되게 표현하려고 하는 초현실주의의 갖가지 시도는 시 ·회화 ·사진 ·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연상을 뛰어넘는 불가사의한 것, 비합리적인 것, 우연한 것 등을 표현하였다. 이런 표현은 당시의 모순된 현실과 결부되어 예술일반의 인식을 비약시키고 20세기 특유의 환상예술을 발흥(勃興)시키게 된다.
특히 미술의 경우 초현실주는 종래의 공간의식과는 별도의 비현실세계를 겨냥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테크닉을 필요로 하였다. 이와 같은 테크닉이 충격의 효과를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