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미술이론

80년대 미술 - 모더니즘, 민중미술, 포스트모더니즘

작성자신나라|작성시간14.11.14|조회수156 목록 댓글 0

80년대 미술은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비평적 관심 역시 전,후반기를 통해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전반기는 기본의 모더니즘과 이에 강한 반대적 입장을 취하면서 출발한 민중미술이 크게 화단을 이분화한 대결구도로 몰아갔다면, 후반기는 새롭게 대두한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에 대한 또 하나의 위상을 형성하면서 보다 복잡한 양상을 펼쳐 보인다.

전반기를 제도권과 민중권의 대결구도로, 후반기를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적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결 양상으로 볼 수 있다.

A. 비평가들이 본 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당위성과 옹호론

민중미술의 이론적 근거가 김윤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이미 살펴봤으며, 그것이 80년대 들어와 몇몇 이론가에 의해 적극적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원동석, 성완경,최민 등이 있다. 김윤수가 전체적 틀을 제시했다면, 원동석은 개념설정에, 성완경, 최민은 구체적 실천방향과 지침을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김윤수는 리얼리즘의 회복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50년대 이후 한국미술의 변화 과정을 정리하면서 양적변화에 있어 그칠 뿐 내면적으론 우리 미술의 서구미술에의 편입 과정으로서 재편성에 지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는 70년대 후반까지 과정이 이런 편입 과정의 연속일 뿐이며 그 심화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못박고 있다.

즉 우리 미술의 국제화가 변혁으로 인정될 수 있으나 결코 질적 변화가 아니란 데서 변화 자체의 의미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추상미술은 사람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유리된 예술 양식인 데다가, 우리 미술가들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삶의 문제를 결부시키기를 포기했던 모더니즘의 비사회성과 반대중성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 이라고 한다.

추상미술이 활발히 전개된 50년대 말 자유당 시기, 4.19혁명, 5.16쿠데타와 같은 시기를 몸소 체험했으면서도 추상미술화가들은 “역사적 현실과 고통과 이상을 예술 속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한국 현대미술-모더니즘이 “70년대 정치적.사회적 현실을 외면, 민주화 운동에 배치되는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김윤수의 논지는 미술이 구체적인 현실의 메시지를 담은 형식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것은 곧 리얼리즘 형식을 대안으로 보는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유홍준은 민중미술을 보다 체계적으로 소개한 비평가이다. <80년대 새로운 미술운동의 이념과 형식>은 80년대 전반기의 민중미술운동의 구체적 자료를 대신하고 있다.

그는 “80년대 새로운 미술운동은 기존 미술질서, 유미주의와 형식실험 모두를 거부하고 자신의 의식과 삶, 사회적 현실, 역사의식을 동반한 위치에서 진행됨으로써 종래에는 볼 수 없던 새로운 양식의 작품들” 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원동석은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민중미술이란 개념이 잡히지 않았는데, 그 개념정의에 앞선 섰던 비평가이다.

그는 “민중미술의 개념은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미술’이라는 규정에 드러나 있듯이 미술의 생산과 수용을 동일한 민중의 주체에서 합치하려는 것이며, 이 점에서 주체의 확대는 운동의 실천을 의미한다. 작가가 ‘민중을 위한’ 생산의 입장만을 고집할 때 민중적 수용을 대상으로 보는 분리주의의 한계를 노출한다.

그래서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중에 의한’ 미술운동이 불가피한 것이다”라고 보고 있다. 즉 그는 민중미술은 미술 영역 자체만 머문 것이 아닌 문화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유대에 의해 전개된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이념적 배경은 공동유대에 의한 통일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전반의 이와 같은 움직임을 “민중미술운동”이라 정의하면서 한겨레 신문의 윤재걸 기자는 민중미술의 위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 문화예술운동은 구호문화에 대한 실천문화로서, 지배문화에 대한저항문화로서, 기성문화에 대한 도전문화로서, 그리고 보수문화에 대한 진보문화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게 되었다고 풀이 할 수 있다.”

B. 비평가들이 본 한국 80년대 모더니즘대 민중미술의 방향성과 비판론

80년대 민중미술과 이에 대립된 모더니즘 사이의 갈등 내지 대립관계는 주로 비평적 활동을 통해 매우 강하게 피력되었다. 민중미술이 저항, 도전의 특성을 띠는 만큼 기성의 모더니즘은 수세의 형국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모더니즘 계열에서도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민중미술이 몰고 온 충격파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지니는 구조적 모순을 서서히 지적하기 시작하면 대응의 논리를 갖춰갔다.

실천, 저항, 도전, 진보는 그것의 이념상 기성세대보다는 젊은 세대가 갖는 공유의식이다. 민중미술운동이 주로 신진세대에 의해 전개되었다는 것은 그런 면으로 보면 당연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만큼 형식적인 세련을 기대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저항, 도전의 방식 자체가 난폭성을 부를 수도 있고, 조형적 독선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유홍준은 이 점에 대하 다음과 같이 우려를 표하고 있다.

“80년대 이 새로운 미술운동도 벌써 4년의 연륜을 가진 시점에 서 있다. 이 새로운 미술운동이 우리 미술계에 커다란 성과를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창작 과정의 엄격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소재를 선택하고 그것을 주제로 승화시키는 데 유효한 형식을 찾아내는 긴장이 없이 쉽게 그려버린 작품들이 난무하는 분위기여서는 곤란하다는 얘기이다.”

김복영은 “너무 단선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할지라도 그것이 오늘의 상황에서 제기할 수 있는 주체성의 이념에 대한 재인식에 관한 문제 제기만큼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라고 민중미술이 추진한 주체성 이념의 재인식에선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미술을 전적으로 사회적 존재로 인식, 미술의 역할을 대사회적인 것으로 규정한 점에 대해선 비판적 각도를 유지하고 있다. 작품의 내재성을 거부하고 사회와의 연계성에만 유일한 성립근거를 내세움으로써 그 자체의 도그머에 빠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일은 그러한 민중미술에 대해 교조적인 ‘구호예술’로 지탄의 대상이라고 비판 하고 있다. “슬로건과 강령을 앞세운 교조적인 ‘구호예술’은 결코 살아남지 못한다는 교훈이다. 나로서는 오늘의 이른바 ‘민중미술’이 바로 그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적이 우려되는 것이다.”

서성록의 비판적 시각도 지나친 사회변혁운동에 종사된 민중미술의 방향에 대한 내재성 상실에 맞추어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문화운동으로서 ‘현실과 발언’은 미술의 기능을 한충 신장시키기도 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그 사회변혁운동의 경직된 정치노선에 예속되어 종국에 미적 자율성과 예술적 특수성을 잃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라며 미적 자율성과 예술적 특수성의 상실이 종내 제2세대 민중미술을 결과시킨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또 “미적 영역과 정치 영역은 기본적으로 분리된다고 믿지만, 설사 일치된다 하더라도 그것의 의미 전단은 감동의 형식으로 달성될 때 효용성을 지닌다는 일반론을 너무 하찮게 취급했던 것이다.

또 이런 착오가 제2세대 민중미술 작가들에게 ‘현실 및 체제 변혁의 무기’로써의 미술이라는 끔찍한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라고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미술의 대표적 논객 원동석은 80년대 초반 대두된 민족미술의 개념풀이와 더불어 민중미술이 사회 전체의 변혁운동임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 민족미술이 예술의 자주성을 내세운 민족문화에의 실체확인이라면, 민중미술은 민족구성체로서의 민중주체를 구체적으로 찾아서 지향하려는 운동이다. (중략) 그러나 좀더 엄밀한 차이를 두자면, 80년대 미술의 현실, 비판적 형상주의가 여러 다양한 표현 방법이 동원되기는 하였으나 이념의 방향이 뚜렷하지 못한 차에, 이를 수렴하고 진전시키기 위하여 민족미술론이 대두한 것이며, 또한 작가 중심적 창조주체와 화단수용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민중주체와 수용을 일치시키려는 운동이 민중미술인 것이다.”

민중미술 2세대의 출현은 제2세대 이론가들을 배출시켰는데, 대체로 전반기의 민중미술 이론가들로 김윤수, 원동석, 성완경, 최민, 유홍준 등을 들 수 있는 반면, 제2세대 이론가들은 8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라원식, 최열, 이태호, 심광현, 최석태, 이영철, 이영욱, 이영준, 박신의, 장해솔 등이 있다. 주로 해외에서 활동한 엄혁, 박모 등도 8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세대군이다.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고 출범한 민중미술이 종내는 사회변혁에 봉사하는 문예로 이끌어감으로써 모더니즘에 못지않은 경직된 사고의 틀로 가게 된다. 미술계에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전반에 걸친 가장 왕성한 논의의 초점은 포스트모더니즘이었다.

이에 지금까지 형성되었던 모더니즘대 민중미술의 구조는 점차 와해되면서 모더니즘 및 포스트모더니즘과 비판적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새로운 구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은 대부분 모더니즘이나 그 주변에 있었던 비평가들이 중심이 된 반면, 비판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주로 민중미술 계열의 비평가들이 중심을 이루어 갔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