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Leonard Shlain
역자 : 김진영
Chapter 1. 환영 /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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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술 |
물 리 |
겉으로는 조화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상 이 둘은 하나의 근본적인 특징으로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는 학문이다. |
| 이미지와 은유를 이용 | 수와 방정식을 이용 | |
| 미학적 특성을 가진 상상력의 세계를 포괄 | 수학적 관계와 물질의 물리적 성질이 객관적으로 정의되는 세계 속에서만 존재 | |
| 정서에서 이끌어낸 환영을 창조해 왔음 | 분석력을 이끌어내는 정확한 과학적 지식으로 존속해 왔다. |
저자는 혁신적인 미술이 문명의 '언어 형성 이전의 상태'로 이해 되어져서, 세계를 예술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어떻게 문명을 변화시키는 주요한 흐름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 이 책의 전반에 걸쳐서 논증을 하고 있으며, 미술가들의 작업이 그 이후에 나타난 과학의 이론에 의해 설명되어지는 사실에 대해 미술과 과학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술과 물리에서는 공통적으로 잘 사용하는 용어들이 있는데, - 분량, 공간, 집단, 힘, 빛, 색, 긴장, 관계, 비중 등이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미술가와 과학자들의 연합체는 실재에 대한 자각에서 언어와 국가의 경계를 말소하고 있다. 빛(Light)은 파동과 입자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미술과 물리학은 파동과 입자와의 관계처럼 통합된 이원성이라 볼 수 있다.
이 통합된 미술과 물리학은 놀라움과 현명함의 결과 속에 시작된, 더욱 종합적인 지각을 부추켰다. 서로 연관성이 없을 것 같은 분야가 마치 연결된 것처럼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발견들에서 연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는 사실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설명하는 설명자는 시대정신(zeitgeist)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다.
시대정신 (時代精神, Zeitgeist)한시대의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적 태도나 양식(樣式) 또는 이념. 가령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볼 때 어느 것을 그 시대의 대표작으로 보고 또한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는 역사가의 사관(史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Chapter 2. 고대미술 / 관념철학
공간·시간·빛은 물리학자들과 미술가들 모두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분야이다.
고대 그리스 이후 자연철학자들은 이러한 세 가지 요소들 사이의 관련성을 가려내기 위한 반복적인 시도를 하였다.
화가들과 조각가들도 역시 공간, 시간, 빛 들 사이의 상호 작용을 이해하기 위하여 온 힘을 쏟아왔다.
- 공간 :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공간에 대한 연구를 기하학이라는 학문 분야로 발전 시켰다. 미술계에서는 존 화이트의 저서 '회화적 공간의 탄생과 재탄생'에서 그리스 설화와 미술 양쪽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지적하였다. 즉, 모든 형식들은 단일한 계획 안에 있으며 모든 움직임은 하나의 방향 속에 있다는 것이다.
- 시간 : 시간은 일찍이 신화의 속박에서 벗어났는데 그것은 역사가 가능했던 그리스에서부터 였다. 공간에 있는 대상과 시간적인 사건 사이를 연계시키는 직선에 대한 집착은 종교적 교리에 대한 믿음에 가깝다. 세계의 모든 유력한 종교가 우리의 유동하는 감각 아래 통합적인 원칙이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한 것처럼, 과학도 유클리드의 직선적인 체계 내에서 그 자체의 추론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종교의 가정에는 무한히 많은 곡선이 있지만, 과학에는 오로지 직선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증명은 피타고라스의 신비의식으로 통합되었다.
- 빛 : 공간과 시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개념화시키기 위해, 그리스 철학자들은 빛의 본질을 알고자 노력하였다. 고대 그리스 이전에는 '눈(eye)'과 '빛(light)'을 구별하지 않았다. 즉 각 단어들은 사랑받거나 또는 칭송받는 어떤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된곤 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눈을 '지성의 문'이라고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의 서두에서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시각의 방식에 대하여 말하였다.
'어떤 다른 감각보다 시각은 이성이다. 시각은 사물들 사이의 많은 차이점을 우리에게 밝혀주며 일깨워 준다.' 우리가 상상력이라 부르는 단어는 그리스 어'phantasia'에서 유래하는데, 이것은 'phaos(빛)'가 그 어원이다. 왜냐하면 빛이 없이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Chapter 3. 성 / 속(종교적인것과 종교적이지 못한것)
4~5세기 로마 제국 몰락부터 15세기 르네상스 시대까지를 중세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동안 논리의 규칙은 완전히 사라졌다.
유클리드의 평평한 공간은 성서의 권위아래 산산조각이 났고 공간이 분리되고 연계성이 사라졌던 것처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연속의 외양만 존재하게 되었으며 헝클어지고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초기 기독교의 공간 개념을 위한 완벽한 은유의 표현 형식으로 타일과 색칠된 조그만 정사각형 유리 조각들이 함께 모여 구성된 거대한 모자이크의 등장이다. 또한 가느다란 실내 기둥을 비추는 잔물결 치는 색채 광선의 효과는 물질이 실질적인 것과 관련이 없는 비실체적인 것으로 생각되게 만들었다.
공간, 시간, 빛에 관한 기독교적인 세계관은 천 년 동안 서구의 사고를 지배하였다. 이 시대의 신앙에서는 독창적이고, 복잡하며, 신학적인 믿음의 체계가 과학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거의 무지에 가까운 이런 상태에서 시작한 미술가들은 이러한 시대의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은유를 만들어내었다.
모자이크는 직접적으로 공간, 시간, 빛의 개념을 말할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뿔뿔이 흩어진 다양한 다른 측면들에 대해서도 만하는 것이다.
천년의 기간 동안 고대의 세계관에 대한 기독교의 근본적인 반응은 극과 극에서 끌어당기는 밧줄처럼 팽팽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 반발력은 서구 문명을 다시 저 먼 과거인 고대 그리스로 되돌려 놓을 정도였다.
Chapter 4. 고정된 원근법 / 절대적 정지
14세기 초엽은 인류 역사에서 창안적인 시기였다. 이전 시기부터의 기술에 대한 강력한 관심은 기술 혁신의 속도를 촉진시켰으며 중세 후반기를 고동치게 하였다. 그 당시 인간의 지성과 정신을 향상시킨 사람들 중의 한 명이 화가 지오토였다.
Giotto di Bondone (1266? - 1337)이탈리아의 화가·조각가·건축가. 피렌체파 회화의 창시자로서 그 명성은 동시대의 시인 단테의 《신곡》 <연옥편 제11가>에서 G.치마부에와 대비, 찬양되고, F.페트라르카나 보카치오 등의 저작에서도 나온다. |
수많은 기하학적 공리를 이해하지 않고도 지오토는 유클리드의 공간 개념으로 되돌아가 미술의 화면에 도입하였다. 그 결과 천년간 이어져오던 평면의 화면은 갑자기 3차원적 깊이를 요구하게 되었다.
미술과 물리학 사이에 특별한 일치가 발생한 것은 지오토가 회화적 공간을 창안한 이후 2~3년이 지난 후였다. 1360년대의 중세의 신학자 니콜은 과학적 작용의 도면을 위해 그래픽 방식을 도입하였다.
지오토가 죽은지 1세기가 지난 후 1435년 알베르티는 수평선과 수직선이 직각을 이루는 곳에 놓여있는 '소실점'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체계화한 원근법에 대한 논문을 출판하였다. 알베르티의 논문에 부합되는, 그와 동시대의 화가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음영을 미술에 도입하였고, 그것으로 빛의 본질에 대한 위대한 진리를 소개하였다.
폴란드의 성직자이고 천문학자인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는 세계에 대한 교회의 권위적인 시각을 의심하였다. 코페르니쿠스는 행성의 신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미술가가 원근법에 가지는 의문과 유사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기를 '지구 중심으로가 아닌 태양 중심으로 본다면 행성의 궤도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태양계를 원근법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진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계를 원근법으로 관찰하여 행성과 태양의 위치를 재정위하였다. 그의 혁신은 지오토가 미술의 영역에서 시행하였던 원근법을 과학에 적용한 것이다.
Chapter 5. 원추곡선 / 타원궤도
지오토가 자연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열쇠가 원추곡선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파악한 지 300년 후, 알베르티가 원추곡선의 기초를 포함하여 원근법의 기하학적인 묘사를 소개한지 거의 200여년이 지난 후인 1618년에 케플러는 그의 모든 행성의 운동에 대한 세가지 법칙을 출판했다. 1639년 프랑스의 수학자 데자르그는 사영 기하학(projective geometry)의 모든 복잡한 것을 밝혔는데 이 새로운 기하학에서는 원근법의 정밀한 묘사를 허락하였으며, 두개의 평행선은 한 점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무한성과 소실점에 대한 미술가들의 관심은 데카르트가 공간은 무한하다고 생각했던 때보다 수백 년 앞서는 것이다. 미술가들은 절대적으로 정지된 곳에 있는 고정적인 관찰자의 중요성을 과학자들이 인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이전부터 직관적인 미술가들의 예견은 분석적인 과학자들의 발전을 암시하고 있었다.
Chapter 6. 미술가 - 과학자 / 신비주의자 - 물리학자
| ※ 레오나르도 다 빈치 와 뉴턴의 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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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는 부지런한 농촌 여자의 사생아였고 뉴턴은 부지런한 농부인 아버지의 죽음 후 태어났다. |
| 둘 다 오린시절을 통해 친구가 거의 없었고, 매우 민감하며 몽상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
| 둘 다 가장 훌륭한 상상력을 기계 장치, 경이로운 기계 조작, 통찰력있는 고안물들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다. 그리고 뉴턴의 발견들은 방정식으로 표현되었고, 레오나르도의 발견들은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
| 양자 모두 인간 정신의 최고 표현으로서 순수 수학을 믿었다. 레오나르도는 '수학적 과학을 적용시키지 못하거나, 수학적 과학을 근본으로 하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명확성도 없다'라고 진술했다. 또한 뉴턴은 그의 '원리' 서론에 쓰기를 '나의 이 작업은 철학에 수학적 원칙을 공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의 막중한 과제는 이러한 것에서 구성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 뉴턴과 레오나르도는 빛의 연구에 관한한 개척자였으며, 둘 다 빛의 실체에 관한 혁명적인 통찰을 하였다. 레오나르도는 이미지가 망막에서 뒤집어지는 것을 이해하였으며 뉴턴은 프리즘을 통해 백색광이 굴절작용으로 여러 색으로 분해되는 것을 설명하였다. |
| 뉴턴과 레오나르도는 두뇌의 최고 기능인 추상이라는 순화된 대기를 여행하고 있었다. 뉴턴이 발명한 미적분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추상적 사유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단계를 요구하였다. 유사하게 레오나르도도 추상적 도안에 흥미를 가졌었다. 그는 그의 회화론에서 '창안 정신을 자극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 하였다. |
| 두 사람은 그들의 대부분의 저서들은 출판하지 않았지만 많은 주제에 관해 저술한 다작의 저술가였다. |
Chapter 7. 합리성 / 비합리성
18세기 후반동안, 유럽인들은 인간의 사명에 대해 일반적인 낙관주의를 표명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신감은 그들 주위에서 나타나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서 기인했다.
뉴턴의 전통적 연구에 근거하여, 과학자들은 세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종교적인 개념을 거부하는 대체 이론을 제시하였다.
합리주의 시대 동안의 회화는 특별히 현실적이었다. 원근법은 기하학적 방식의 형태로 환원되었고, 기하학의 범위인 측정과 법칙은 많은 미술가들에 의해 직관보다 더욱 높게 평가되었다.
미술가들은 물리학자들처럼 공간을 수학적으로 구성하였고, '신고전주의'라는 용어는 앵그르, 다비드와 이 시기의 다른 미술가들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직선으로 이루어진 공간과, 분명하며 정확한 논리의 공정함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르네 데카르트는 이성적 담화를 논리의 극한까지 의심하였다. 바티칸의 몰락과 유럽 철학의 부흥 사이의 최정점에 출현한 젊은 데카르트는 모든 그의 신념을 하나 하나 체계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철학과 과학에 대한 데카르트의 수많은 기여 중에서 가장 지속적인 것은 분석적인 기하학의 발견이었다. 그는 두 분류의 수학인 방정식과 기하학의 구조적인 동일성을 증명하였다. 분석 기하학은 가장 순수한 추상적인 정신의 기능을 구체적인 시각 형태로 변형하였다.
Descartes, RenA (1596 -1650)프랑스의 철학자·수학자·물리학자. 투렌라에 출생. 근세사상의 기본틀을 처음으로 확립함으로써 근세철학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그는 세계를 몰가치적(沒價値的)·합리적으로 보는 태도(과학적 자연관)를 정신의 내면성의 강조 (정신의 형이상학)와 연결지워 이를 이원론(二元論)이라고 하였다. 이원론은 동시에 근세사상 전체에 통하는 이원성의 표현이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카르트는 수학자로서는 기하학에 대수적 해법을 적용한 해석기하학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학문에서 확실한 기초를 세우려 하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불확실한 것은 모두 의심해 보아야 하는데, 세계의 모든 것의 존재를 의심스러운 것으로 치더라도 이런 생각, 즉 의심을 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라는 근본원리가 《방법서설》에서 확립되어, 이 확실성에서 세계에 관한 모든 인식이 유도된다. 의심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에서 무한히 완전한 존재자의 관념이 결과할 리가 없다는 데서 신의 존재가 증명되고, 신의 성실이라는 것을 매개로 하여 물체의 존재도 증명된다. 더욱이 정신은 사고하는 것만으로, 다시 말하면 신체 없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심신의 실재적 구별도 확정된다. 이리하여 정신과 물체가 서로 독립된 실체로 세워지고 이 물심이원론에 의해 기계론적 자연관의 입장의 기초가 마련된다. |
칸트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하여 거기에는 지식의 성층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우리가 감각 경험에서 독립된 지식을 가질 수가 있다면, 그것은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선천적인 것인가?라고 묻는다. 만일 그러한 것이 가능하다면, 칸트에게는 절대적인 지식과 절대적인 과학이 가능할 것이다. 칸트는 이러한 의문에서 경험은 세계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줄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초기에는 계몽주의자였으며, 후에 낭만적, 시적으로 경도된 장자크 루소는 직관과 느낌이 이성의 초절성을 막을 수 있다며, 엄격한 논리의 번창을 막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는데, 왜냐하면 '나는 우리의 실존이 감각을 통해 인지된 순간의 계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소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재구성하여,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느낀다.'라고 말하였다.
서구 정신의 반미학적 경향을 반대하는 데 가장 격렬했던 선지자는 미술가이자 시인인 블레이크였다. 블레이크는 일상적으로 몽상적인 광경을 경험하는 신비주의자였다. 또한 그는 시인들 중 몇 안되는 시각 예술가였다. 원근법의 오랜 통치에서 정확한 원근법의 관계로 형태를 그리길 거부한 특별한 인물이었다.
Chapter 8. 현대 미술 / 뉴턴에 대한 승리
차가운 얼음으로 둘러싸여 있던 서구 예술과 사상은 19세기 중엽에 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갈라진 틈사이로 당시 지배적이었던 뉴턴의 사고 방식과 엄격한 원근법의 처계에 유입물이 침투하여 침식되기 시작하였다. 마네는 1863년에 미술가들이 공공적인 살롱에 반대하여 개최한 낙선전에 '풀밭 위의 점심'을 출품하였다. 많은 미술사가들은 이것을 현대 미술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옆의 그림의 인물은 서로의 연관성도 없고, 더욱이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옷을 걸치지 않은 전면의 여인은 정장을 한 두 명의 남자가 어떠한 한담을 나누는 것에 비해 물끄러미 감상자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이 파리의 비평가들을 격분시켰다.
또한 마네는 의도적으로 정교한 원근법의 법칙을 파괴하고 있어 암암리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유클리드의 공간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이성과 원근법에 기초한 완전한 패러다임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마네가 공간에 대한 인식을 고려하는 몇 가지 근본적인 가정을 문제시 하고 있는 동안, 그와 같은 시대의 혁신적인 동료인 모네는 르네상스 이후 시간을 탐구하는 최초의 미술가가 되었다. 1891년 모네는 하루 중 매시간마다 같은 장소에서 보여지는 장면을 반복적으로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루앙 대성당의 입구를 40가지로 구분되는 작품들을 그렸다. 연속적으로 그려진 대성당의 그림을 보면 이 그림이 시간상 뿐만 아니라 공간 속에서도 삼차원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일련의 연속적인 그림의 도입으로, 모네는 미술의 동결된 순간 속에 변화하는 시간의 개념을 통합시켰다. 일련의 '연쇄적'이라는 말자체는 미술의 용어라기 보다는 수학에서 차용해온 것이며 연속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연속성은 시간의 척추이다.
현대의 세 번째 거장인 세잔느는 공간, 빛, 물질의 연관성을 연구하면서 그의 일생을 보냈다. 세잔느의 후기 작품에서 빛은 점차적으로 발산되었는데, 왜냐하면 빛의 원천과 방향을 분별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후기작품 프로방스 지방의 '생트 빅트와르 산'은 빛이 가로지르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덮어씌우는 듯이 그려졌다.
많은 세잔느의 풍경화에서 직선적인 빛은 흩어져서 빛의 근원적인 방향을 알 수 없게 되어있다. 또한 세잔느는 지선의 고결함을 더럽힘으로써 공간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변경시켰다. 그의 정물에서 테이블보의 주름은 그가 그린 대상들이 고정되어 있는 테이블의 귀퉁이 부분들을 언제나 불명료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그림에서 나타나는 귀퉁이의 직선의 각진 곳은 필연적으로 파괴되어졌으며 연속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마네는 최초로 지평선을 굽어지게 하였으며, 모네는 그의 직선의 경계를 흐려 놓았으며, 세잔느는 그의 테이블의 직선적인 귀퉁이를 분열시켰다.
Chapter 9. 아인슈타인 / 공간, 시간, 빛
아인슈타인 이전에, 서양의 정신은 공간과 시간을 분리된 조화로 인식했다. 각각의 척도는 자로 인치를 재는 것과 시간을 말해주는 시계처럼 명백한, 서로 양적으로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지구의 경계에 존속하는 매우 느린 속도에서 자유로워지면 시간과 공간은 보완적인 한 쌍이 되며 친밀하게 한데 얽혀진다. 즉, 시간이 팽창할 때 공간은 축소되고 시간이 축소될 때 공간은 확장된다.
또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완성은 다음의 원리들이 전적으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개념으로 통합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 공간과 시간은 상대적이고 상호 조화로운 것이다. 그리고 차원을 형성하기 위해 결합한다. 그것들은 연속적이지 않고 절대적이지 않으며 분리되지도 않는다. - 애호하는 관점과 같은 그런 것은 없다. 실체의 대상에게는 절대적 정지에서의 관성계란 없으며, 에테르도 존재하지 않는다. - 색은 물체의 고유한 속성일 뿐만 아니라, 역시 관찰자의 상대적 속도에 의존한다. - 보편적 현재의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Chapter 10. 나이브 아트 / 비직선적 시간
1860년대 이전의 서구 미술에는 아이들을 독자적인 주제로 삼은 작품이 거의 없었다.
르네상스 이후로부터, 미술가들은 많은 유아들을 천동의 형태로 청년들은 결혼 적령기의 성적인 존재 즉 실제 젊은이들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5살과 15살 연령 사이의 인간을 나타낸 그림은 없었다. 이러한 이상한 부재 현상은 르네상스 유럽 문화에서 아이들이 지니는 가치들이 적극적으로 억압받고 있었다는 실마리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세관 공무원이며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앙리 루소는 1880년대에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어린 아이들의 기법을 도입하였다.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보여진 세계는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또는 아카데이 시대에 활약하였던 훌륭한 미술가들의 작품에는 나타나지 않은 세계였다. 루소는 그의 원근법에 대하여 자신의 직감을 따랐고, 그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무성한 정글 식물을 그렸으며, 그의 꿈에서 주제를 선택했다.
19세기가 끝나갈 무렵, 몇몇 다른 미술가들은 그들 작품 속에 아이와 같은 재미있는 요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재미를 예술에 통합시키려는 이러한 초기 시도들은 다다운동에서 폭발되었다. 이 운동은 1916년에 조용한 도시 쮜리히에서 시작되어 다른 모든 곳으로 폭발적으로 번져 나갔다. 이 운동에 동참했던 시인들, 화가들, 조각가들 그리고 희곡 작가들은 경쟁적으로 아이들의 행동을 이상화시켰다. 빅토리아 시대의 대중들은, 미술과 문학에 있어 어린 아이들의 가치관이 등장하는 것에 당황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곧 모든 사람이 시공의 왜곡된 놀이동산의 거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유아로 되돌아 가서 그것을 보아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Chapter 11. 원시미술 / 비유클리드적 공간
원시적이란 말은 많은 집단들에서 경멸적인 의미의 함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술계 내에서는 특정한 양식이나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데 원시 예술은 가시적 문자가 청각적 의미의 우위성을 타파하지 못한 사회를 나타내거나, 그 사회에서 발생한 것을 가리킨다.
원시 예술가들은 그들의 외적인 외양보다는 내적인 시각에 적합한 작품들을 창조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원시 예술가들은 자연을 모방하는 미메시스가 인격의 타고난 충동이라고 믿었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직접적으로 모순된다.
르네상스 초기 서구문명이 원시 문화를 발견할 때마다 그들은 그 문화를 경멸하였다. 하지만 당시 학자들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원시적인 개념화가 유럽의 백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진보된 관념들보다, 시공과 비유클리드의 기하학과 더욱 일치한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19세기 낭만주의 화가인 제리코는 그의 작품 '메두사의 뗏목'에서 원시적인 패러다임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력을 인식한 최초의 유럽인 중 하나였다.제리코는 그의 작품에서 수수께끼마녕 그리고 우의적으로 원시인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1880년대에 제리코의 직관을 세련되게 다듬은 것같은 고갱은 프랑스 아카데미의 경직되고 규칙으로 가득찬 세계와 정력적인 원시인의 여역을 뒤섞기 시작하였다.
이후 피카소는 그의 친구인 브라크와 함께 큐비즘이라는 양식에 몰두하였는데, 그의 큐비즘적인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작품에서 공간에 대한 혼란스러운 처리와 여인들의 불안정한 시각이 담겨져 있다.
미술사가들은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큐비즘적인 암시 때문에 이 작품을 20세기의 생명력있는 회화들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
Chapter 12. 동양 / 서양
동양의 미술가들은 데카르트와 칸트의 철학처럼 수동적인 관찰자를 객관적인 세계로부터 분리하여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보도록 위치시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서양에서 신성불가침인 원근법을 그들 스스로 자체적으로 개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선적인 원근법을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고대 중국의 산수화 화가들은 공간을 구성하기 위한 일관성 있는 도식을 개발시켰다.
서양에서처럼 캔버스의 안과 밖의 어떤 한 곳의 관점을 확립하는 대신, 중심점은 풍경 안 즉 그 내부에 있다. 그들의 산수화는 관찰자가 본 것과 우리에게 묘사된 관점과의 연관성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는 작품 내의 대상에 대해 더 많은 연속성을 관조자의 정신 안에서 창조한다.
서양의 미술가들이 캔버스 위에 외부 세계를 충실히 재창조하였던 반면에 대표적인 동양의 미술가들은 자연을 실제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유치하고 어리석은 짓으로 간주해 왔다. 그들 미술의 목표는 그들이 명상하는 데 도움이 될 그러한 미의 형식들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동양 미술의 기술을 진정으로 습득하기 위해서는 관찰의 힘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니라 더 중요한, 성찰하는 능력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Chapter 13. 야수파 / 빛
1860년대 인상주의의 도래와 함께 색은 더욱 밝아지고 가벼워졌다. 마네는 색의 반점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어두운 색조 위에 가벼운 색조를 칠함으로써, 밝은 색들이 처음에 그려지고 난 다음 어두운 그림자고 바림하는 과거의 전통을 수정하였다. 모네는 대상들의 경계를 흐리게 했다. 그는 그의 대상을 처음부터 윤곽선으로 나타내지 않았으며 즉 그는 색으로 끝내는 대신에 색으로 시작했다. 색의 감정적 힘을 인식한 이 시기 최초의 미술가들 중의 한 사람은 폴 고갱인데, 그는 색이 말에 선행하여 인체 내부에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침묵의 언어로 사용되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수 많은 시행착오 끝에 발견했다. 반 고흐는 고갱의 혁신을 매우 격렬하게 추구했다. 반 고흐는 음차의 갈래 같은 색의 조화로운 진동으로 고갱의 혁신을 뒤따랐다. 또한 그는 붓 대신에 팔레트의 나이프를 선호 하였으며, 튜브에서 갓 짜낸 밝은 색의 물감을 그의 캔버스에서 나이프로 반죽했다. 세잔느는 반 고흐나 고갱처럼 거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역시 색을 해방시키는 데 헌신했다. 세잔느는 분석적인 쇠라와 보다 더 긴밀한 공통점을 가지며, 점묘주의자처럼 그는 그림의 구성 요소들 중의 하나인 검은 선을 제거하는 것을 가능케하는 새로운 색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Chapter 14. 입체주의 / 공 간
피카소와 그의 동료인 브라크로 부터 시작된 입체주의는 미술사에서 하나의 단순한 사건이지만 아마도 전 미술사에서 가장 눈부신 변형이라고 말할 것이다.
입체주의 회화에서는 고정된 시간과 공간에 놓여진 확실히 이해될 수 있는 실재성이 무너졌다. 또한 입체주의는 르네상스 이래 처음으로 외부 현실의 정확한 묘사를 생산할 필요성을 차단시켰다. 입체주의 화가들은 솔직히 회화가 안료들의 색칠된 부스러기들이 배열된 평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것은 세계를 사고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새로운 방법들인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에 일치되며, 미술에서의 어떠한 운동도 이러한 역사의 요청에 충분히 정위된 적이 없었다.
물리학자들이 가시적 세계의 상상할 수 없는 형태들을 나타낼 이론들을 형성하기 시작함에 따라, 미술가들은 가시적 세계를 충실하게 재현할 규범을 마구 투하했다. 측량과 수학, 원근법의 토대들은 미술가들이 그들의 내적 시야를 그려내려고 시도하며 직관에 점점 더 의존해 감에 따라 포기되었다. 이러한 결합은 두 영역 사이의 실제적인 접촉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발생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사이의 연결점보다 더 날카로운 혁신적 미술과 상상적 물리학 사이에 존재했다.
이러한 급진적인 미술운동의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과 합체되어, 공간에 대해 사람들이 보고 생각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입체주의는 거대한 괴물의 외눈박이 눈으로 보는 시점의 폭정을 끝장냈다. 한때 미술의 대성공의 정점으로서 환호하며 맞이했던 원근법은, 이젠 더 크고 거대한 시각을 세우기 위한 주춧돌이 되었다.
Chapter 15. 미래주의 / 시 간
야수파들이 빛에 대한 다양한 명확함을 연구하고, 입체주의자들이 공간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진행시킨 반면에 미래주의자들은 시간을 분석한다.
미래주의 기치를 올린 사람은 이탈리아의 시인인 마리네티였다. 마리네티는 가극적인 열정으로 가득찼던 과거를 공격했고 역사를 일깨움으로써, 단지 현재에 살고 있는 지금 존재하는 유례없는 미를 사람들이 보기를 제안했다.
미래주의자들에게 신성시 되어 왔던 것은 한정된 시간 내에(공간을) 여행하는 거리라고 할 수 있다. 미래주의자들은 그들 이전에 있어 왔던 모든 정지된 관념들을 없애기 위해서 속도를 사용할 것을 탐구했다. 그들은 동시성의 개념을 재현하기 위한 방법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그림에서 시간의 토대들이 많이 겹쳐지면 겹쳐질수록 섬광 전구처럼 명확한 속도로 작품을 창조하여 나갔다.
그들은 그들의 조각에도 역시 암시적인 움직임을 부여했다. 보치오니의 작품 '공간에서 연속성의 고유한 형태들'에서 나타나는 흐르는 듯한 선은, 그가 날개를 사용한 것이 활보하는 움직임을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청동 부분들의 고정된 대상성을 초월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성의 개념이 구체화된 미래주의 선언서를 요약한 단일한 캔버스는,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주의자라고 볼 수 없는 마르셀 뒤샹에 의해 그려졌다. 그의 색다른 이미지들은 그를 마티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미술을 지배하는 세 명의 엘리트 중 한 명으로 만들었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는 입체주의에 대한 친밀도를 가진 강렬한 미래주의적 작품이었다.
Duchamp, Marcel (1887 ~ 1968)프랑스의 화가·조각가. 블랭빌 출생. 입체파 조각가 R.D.비용, 화가 J.비용의 아우이다. 파리의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공부하면서 P.세잔의 영향을 받았고, 1912년 뉴욕의 애머리 쇼에서 동시성을 표시한 회화 《계단을 내리는 나체》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
Chapter 16. 초현실주의 / 상대주의적 왜곡
아인슈타인이 비록 상대성 이론을 완성하였지만 그의 이론은 일반적인 언어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자신도 말년에 자신의 이론이 쉽게 받아들여 지지 않는점에 대해 서글프게 인정하였다.
만약 아인슈타인이 그의 탁월한 이론들을 소통할 적당한 단어들이 없음을 슬퍼했다면, 적당한 이미지들은 발견하기 위해 미술을 주시했어야 했다.
불행히도 그 시기의 다른 물리학자들 처럼 그는 그러한 연관성을 결코 주시하지 않았다. 20세기 초 몇 년간 미술의 성공적인 운동들은 물리학에서의 뛰어난 발견들처럼 대중들이 인정할 수 없는 형태들로써 대중들에게 또다른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야수파, 입체주의, 미래주의의 시작과 표현주의, 절대주의, 다다이즘, 그리고 초현실주의로 계속되는 새로운 미술 양식들은 일반 대중들이 혼란에 빠져 뒷걸음 치게끔 서구의 공동체적 미감을 강타했다.
프로이트는 그의 저서 '꿈의 분석'에서 꿈의 정당성을 축조하는 것에 의해 무의식의 특별한 시공간을 조명했다. 그 꿈의 양식은, 특정한 미술가들이 곧 그들 자신의 모든 이성적 감각과 위배되는 상징들과 병렬들을 소유한 무의식의 깊이를 이해하게 되는 수단들이 되었다. 1917년 아폴리네르는 이 새로운 운동의 실재를 '뛰어넘는'다는 의미에서, '초현실주의'라 명명했다. 이탈리아에서의 초현실주의 운동의 토대를 정초한 데 키리코는 그의 캔버스에서 깊이를 과장함으로써 원근법을 파괴시켰으며, 원래의 깊이보다 더 깊게 나타나도록 만들었다. 그의 작품중 '무한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보면 길다란 그림자들은 일출 또는 일몰의 시간을 제시하지만, 카프카 식 탑을 흠뻑 적시는, 눈에 거슬리는 햇빛는 정오의 현란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 데 키리코는 감상자가 시간에 대한 모든 직관적 지식에 의문을 가지게끔 하였다. 후기 초현실주의자인 르네 마그리트는 키리코가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외의 다른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그림을 시도한 최초의 화가'라고 말하면서 데 키리코의 선견에 경의를 표했다.
스페인의 화가인 살바드로 달리는 에술적으로 무질서한 이미지들의 연속적인 작품들을 생산했다. 그의 작품중 '기억의 고집'에서 달리는 시간에 대한 두 가지 일반적인 상징, 즉 시계들과 모래를 병렬했다. 그러나 달리의 억제적인 시선 속에서 시계들은 시간의 모래들을 닮은 방대하고 외로운 해안과 혼합되어 있다.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 르네 마그리트는 미술가라 불리우는 것을 싫어 했고, 대신에 회화라는 도구들로 대화하는 사색가로 간주되기를 더 좋아했다. 마그리트는 미래에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미지들을 포함하고 있는 작품들을 창조했다.
예를 들어 그의 '고정된 시간'이란 작품을 보면 난로에서 기차가 장벽을 가르지르고 있다. 그러나 그 제목은 '고정된 시간'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시간과 운동은 단지 하나의 상태인 빛의 속에서만 멈춘다. 빛의 속도라는 변형적인 장벽에 있는 기차에서 그 외부에 존재해오고 있는 시계라는 아인슈타인의 개념을 예시하기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어지는 것으로 느껴진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같은 분위기에서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창조했다. 그들의 숱한 좌절과 더불어 그 구조물들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발하며 신선한 개념들을 고려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이전에 전통적 서구의 상상에 포함된 완고한 적인 경계들을 깨는 데 일조했다.
Chapter 17. 추상미술 / 형태없는 물리학
새로운 세기의 첫 30년 동안에 미술과 물리학 양쪽을 특징짓는 국제적인 집중적 협력의 분위기는, 광신적이며 국수적인 국가의 장벽들이 성장함에 따라 은밀한 방해를 받았다. 1945년의 유럽과 아시아의 혼돈과 폐허 속에서 미국만이 승리자로 남았다. 미국의 힘에 관한 기술적, 과학적인 지배가 똑같은 해에 '추상표현주의 뉴욕학파'라 불리우는 또 한 종류의 폴발로 나타났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중요한 운동은 미술이 수천 년 동안 근거를 두었던 바로 그 대전제를 금세기에 다시 한번 더 변화시켰다. 물론 미술과 물리학 양쪽이 '사물'에서 주의를 돌려 대신 실체가 없는 영역에 집중될 때, 미술에서의 변천은 물리학에서와 같은 유사한 변형을 반영하게 되었다.
추상미술이라는 거대한 조류가 칸딘스키에 의해 1920년에 시작되었고 그것은 뉴욕에서 추상표현주의와 함께 1945년에 극에 달했다.
미술가들의 견고한 이 결합 집단은 아인슈타인이 공간, 시간, 빛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관해 생각했던 그 문제를 직접 이야기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전의 추상화가들보다 더 진보적인 작업을 행하였다. 잭슨 폴록은 이들 추상화가들 중에서도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이전의 미술가들과는 다르게,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미술가의 손목에서 나오는 실제적인 과정의 보이지 않는 순간을 설명하는 것을, 어떤 이미지를 그리는 것보다 더 관심을 가지며 그러한 미숧셩태를 전개시켰다. 후에 로젠버그는 폴록 스타일의 본질을 인식했고 그것을 '액션 페인팅'이라고 불렀다.
Pollock, Paul Jackson (1912 - 1956)미국의 추상화가. 와이오밍주(州) 출생.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하였다. 1930년대 무렵부터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화로 전향하였으며, 구겐하임 부인과 비평가 그린버그의 후원을 받아 격렬한 필치를 거듭하는 추상화를 창출하였다. 1947년 마룻바닥에 편 화포(畵布)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하여 하루아침에 명성을 떨쳤다. |
뉴욕 학파의 또 다른 구성원인 바넷 뉴만은 문제의 모든 측면을 토론하는 것을 좋아했던 세련된 뉴욕 인이었다. 뉴만은 정열적으로 예술을 사랑했고 끊임없이 그 임무에 질문을 던졌다. 그의 초기 그림들이 비교적 덜 전문적인 화가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하더라도, 뉴만은 새로운 신기원을 이룩하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또한 그는 헬레니즘에서부터 20세기까지의 주요 미술 개념인 정적인 공간이 더 이상 생명력이 없고, 장 개념의 탄력적 신장은 서양의 사고 속으로 통합되어야만 한다고 이해하였다.
Chapter 18. 해프닝 / 이벤트
뉴욕파가 전 미술계에 거대한 양의 물감을 튀기고 난 몇 년 후에, 새로운 세대인 젊은 미국 미술가들은 기존의 행위 예술가의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작업을 하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부류 중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인 재스퍼 존스는 자신의 계보를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서 찾지않고, 대신에 뒤샹과 마그리트의 풍부한 전통에서 찾았다. 그들처럼 존스는 우리들이 단어와 이미지에 붙이는 의미들에 관심을 두었고, 그들의 반응처럼 존스의 예술적 반응들도 그 안에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세계인 공간, 시간 그리고 빛의 몇 가지 놀라운 시각적 은유를 포함하고 있었다. 같은 시기 존스의 가가운 친구인 로버트 라우센버그도 역시 후기 추상표현주의자였다. 그는 심각하게 작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많은 혁신적인 생각은 아인슈타인의 공간, 시간, 빛들 간의 연관성을 구체화 하였다. 예를 들어 라우센버그의 초기 시도들 중의 하나에서, 그와 그의 부인인 미술가 수잔 웨일은 햇빛과 빛에 민감한 건축용 종이 사이에 자신들의 몸과 모델들의 몸을 끼워넣음으로써, 빛츼 요소 자체가 결과에 참여하는 미술을 창조했다. 토마스 월프레드는 1905년 빛의 예술적 형식을 소개했다. 이런 새로운 미적 매체인 그의 첫 작품은 작은 백열등, 몇 개의 유리조각, 그리고 조그마한 담배 상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를 'Lumia'라 불렀다. 1960년대의 다양한 미술운동은 로마 양초의 불꽃처럼 폭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의 특수한 형태에 대해 강한 예술적 메타포를 계속해서 만들어 갔다. 괴자인 앤디 워홀조차 물리학자들의 개념들을 표현했다. 워홀이 상업적인 상표를 사용하는 방법 때문에, 또한 경박한 기업 정신을 가진 그의 명성때문에, 그의 작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겐 어려웠다. 그런데 그의 일부 작품들은 상대성을 공명하고 있었다.
Warhol, Andy (1928 - 1987)미국의 화가. 필라델피아 출생.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52년경부터 뉴욕에서 상업디자이너로 활약하다가 화가가 되었다. 1962년 시드니 재니스화랑에서 열린 ‘뉴리얼리스트전(展)’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기 시작하고 그 후 만화의 한 컷, 신문보도 사진의 한 장면,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 등 매스미디어의 매체를 실크스크린으로 캔버스에 전사(轉寫) 확대하는 수법으로 현대의 대량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동시에 비판하여 이름을 떨쳤다. 63년부터는 《슬립》 《엠파이어》 등 실험영화 제작에 힘쓰고, 상업영화에 손대는가 하면 소설도 출판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여 60년대 미국 예술계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94년 9월, 호암갤러리에서 그의 팝아트전이 개최되었다. |
미술에 시간을 결합시티는 미술가들의 강박관념은, 후기 추상표현주의자들의 운동이 1960년대 미술계를 폭풍으로 이끌었던 '해프닝'을 전체적인 새로운 미술형식으로 발전시키도록 이끌었다. 이런 사건들에서, 미술작품은 더 이산 공간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상, 미술작품들의 공간상 존재는 분명히 일시적이었다. 즉, 이런 다다주의자와 초현실주의자의 'miniplays'는 미술이 정적인 공간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시간을 포함해야 한다는 개념을 보강하는 것이었다.
Chapter 19. 음악 / 미술/물리학
3만 5천년 전 구석기 시대의 한 외로운 부족민이 갈대 다발들을 교차시켜 신성한 정율을 일으키는 소리를 불어댔다. 동굴의 차갑고 어두운 벽에 울려퍼진 그 여운들은 전 시대를 통해 흘러내려, 우리가 음악이라고 부르는 반향음을 이루어낸 것이다. 후에 그리스의 독창 음악은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리의 직선을 추종했다. 중세에는 음악이 그 정신의 색무의 융단과 함께 얽히게 되었다.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작곡가들은, 원근법에 의한 미술과 뉴턴의 과학에 존재하는 동일 원리에 따라 음악을 작곡했다. 20세기에는 음악이 스타일, 내용 그리고 형태에 있어서 변형되었고, 동시에 이러한 변화들은 미술과 물리학에서도 일어났다. 빛으로서의 음악의 변형은 우주의 본질로서의 빛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숭배를 표현하는 대단원이다.
Chapter 20. 문학 형식 / 물리학 공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포함하는 '시대정신(zeitgeist)'은 1905년 비록 난해하긴 하지만 서양문화의 모든 측면에 스며들었다.
유럽의 정치체제에서뿐 아니라 세잔느의 회화와 폴로베르의 소설에서도 민주주의가 발생하였다. 군주에의 명시적이고 엄격한 계급제도는 동등함 이라는 중심적 가정에 의존하는, 보다 넓고 보다 관대하게 기초된 사회로 진화하였다. 몇 세기 동안 미술에서는 미술작품에 다른 엄격한 계급분류가 있었고, 작가의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뚜렷한 질서가 있었다. 회화의 중요한 주제는 국가의 왕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
미술, 문화 그리고 정치체계에서 주목되는 주제들의 서열은 아인슈타인이 모든 관성계를 위한 그의 '권리장전'을 선언하기 전, 몇 세대를 평정하고 있다.
Chapter 21. 뉴턴의 사과 / 세잔느의 사과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에서 그의 중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세잔느는 '사과와 비스킷'에서 떨어져야만 하는데 떨어지지 않는 사과들을 그림으로써, 뉴턴의 개념이 불완전하다는 가능성을 나타내었다. 어떤 다른 예술가 이상으로 세잔느는 전력을 다하여 '사과'의 본질을 연구했다. 그는 그가 평생 먹을 수 있는 사과보다 더 많은 사과를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세잔느의 사과 표현들은 뉴턴의 중력의 법칙을 은밀히 무효화시켰다. 그의 정물화의 대부분은 사과가 가득찬 테이블을 담고 있고, 그 사과들은 분명히 기울어진 표면 위에 불안정하게 자리하고 있다. 왜 사과들은 굴러 떨어지지 않는가?
양을 잃은 산들이 그의 캔버스 안에 그려짐으로써, 세잔느는 양과 공간에 대한 고정적인 개념들을 침식시켰다. 그리고 그는 과학자들의 집단이 중력과 공간, 질량의 패러당임이 개정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이전까지, 전 작품을 자기의 방식으로 그렸나갔다. 세잔느는 미술가가 공간과 양의 관계에 대해 계획하는 방식을 바꾸게 하였다. 그의 축적된 통찰은 학문적 전통의 개념들로부터 급진적으로 벗어난 것이다. 더이상 화가가 그 바탕에 대상을 표현하는 텅 빈 무대가 아닌 공간은, 이제 그 대상들의 양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반대로 그 대상들은 공간에 의해 개조되었다.
세잔느 작품의 대부분은 공간과 덩어리 사이의 경계에 대해 뚜렷한 윤곽을 나타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경계는 서로 작용하는 장(場)의 공유영역이기 때문이다. 마네, 모네 그리고 세잔느의 혁신적인 이미지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세기 초에 물리학 에서 일어났던 혁명으로 재빨리 도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미술가들은 19세기 말부터 공간과 양의 관계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었다. 그리고 이 문제들은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의해 소화되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Chapter 22. 시공 / 양 - 에너지
|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간하고 1915년 말 그것을 훌륭히 연결해낸 것은 물리하계에 상당한 놀라움을 주는 것이었다. 도처에 존재하는 발광한는 에테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19세기 물리학자들에 의해 별들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가정되었던 이 비가시적인 실체는 또한 빛의 파장을 전달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그것은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발간과 함게 증발해 버렸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과 질량-에너지의 등가(E = mc²)의 발견으로 인해 뉴턴 물리학에서 실재라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시간, 공간, 질량, 에너지는 이제 새로운 이원적 아인슈타인의 실재물인 시공간과 질량-에너지로 된다. 이것은 이제 그 각각의 빛의 속도라는 역설적인 접착에 의해 서로서로 연결되게 되었다. |
Chapter 23. 무게가 없는 형태들 / 중력의 힘
중력이라는 환각을 어떻게든 지각하면서 현대미술가들은,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공간간의 관계에 관한 우리의 관념들을 개정하기 오래전인 19세기말에, 반 중력이라는 주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회화와 조각에 두루 파문을 일으킨, 인습에 얽매이지 않았던 관념들을 회고해 볼 때 그것들은 변화의 전령으로 인식될 수 있다.
드가의 1867년 '파리, 페르난도 곡마단'은 공중에 정지되어 있는, 파리에서 유명한 줄타기 곡예사의 그림이다. 이 그림은 중력의 법칙에 도전했을 뿐만 아니라, 인습적으로 정위된 단서들 또한 엉망으로 해놓았다. 이 그림에는 분명한 수평선이 없고, 전체적인 도안에 있어서 천장의 버팀목들과 시각의 각도가, 구성의 특별한 원근법 때문에 보는 사람을 어지럽힌다.
1910년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화가 들로네는 에펠탑을 30개 이상의 그림의 주제로 선택했다. 왜냐하면 이 독특한 구조에서 공간은 실제로 질량 상호간에 서로 엮어져 있는 이전의 어떤 관습적인 구조물과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셔 또한 중력에 관한 전통적인 신념들에 도전했다. '세 개의 구 1'라고 제목이 붙은 교묘한 마분지 도려내기에서, 그는 투영된 기하학적 선들을 사용하여 뒤틀리고 으스러진 중력의 효과를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원근법 시각으로 본다면 3개의 구체들은 서로서로 쌓여진 것같이 보일 것이다. 위의 두 개의 구체의 무게가 밑에 있는 아래 것을 평평하게 만들어 중력의 뒤틀린 효과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보는 사람이 원근법을 무시하고 다른 각도에서 이 그림을 볼때, 그것이 중력에 의해 뒤틀려진 덩어리로 파악된 것은, 2차원적 마분지 오려내기로 만들어진 3차원적 환각일 뿐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났다. 원근법에 의해 부과된 단선적 시각에 또다른 차원을 더함으로써 그는 보는 이를 3차원적 중력의 외관의 뒤로 데리고 간 것이다.
Chapter 24. 조각의 질량 / 굽은 4차원
아인슈타인이 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발간한 것 보다 10년 앞서 조각가들은 조각을 한정시키는 것으로 예상되는 한계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오귀스뜨 로댕은 해머와 끌을 사용해서, 조각에 있어서 중력과 덩어리, 공간이라는 이들 관습적인 개념들을 변형시키려는 최초의 조각을 만들이 시작했다.
1886년 그는 '칼레의 시민들'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의 중심은 덩어리에 있는 게 아니라 공간에 있었다. 작품의 빈 공간 주위에 그룹을 진 인물들은 그 작품에서 멀리 기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로댕의 작품은 요소들은 따로다로 잡아당기는 원심력이 중심의 지배를 감소시켰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1912년 미래파 조각가 움베르토 보치오니는 현대 조각은, 질량이 중심축 주변에 배치되어져 있는 전통적인 조상술을 뛰어넘어야만 한다라고 썼다. 그는 말하기를 조각은 '대상을 에워싸고 가로지르는 공간적인 계획을 재료적 형태로 바꾸는 미술이 되어야만 한다'고 했다.
1913년 피카소와 브라크는 회화(공간)도 조각(질량)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미술 형태를 도입함으로써 캔버스의 평평한 이차원적 베니어판을 확대시켰다. 그들이 꼴라쥬라고 부르는 것은 그 둘의 정교한 혼합니다. 꼴라쥬는 그림들처럼 벽에 걸려 있지만, 조각처럼 보는 사람을 향해서 튀어나올 수 있는 하나의 구성물을 이루기 위해 함게 접착된 재료의 조각들로 되어있지는 않다. 알렉산드 칼더는 로댕처럼 조각의 중심 덩어리를 깨뜨려 그것을 많은 상이한 부분들로 만들었다. 로댕처럼 그도 또한 질량에 뿌리를 두고 있는 중력의 가시적인 중심을 제거했다.
1926년 칼더라 조각분야에 발을 들이면서 한 최초의 작품은 써커스 곡예사들을 장난감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의 인물들은 미켈란젤로의 카라라 대리서과 완전히 대조되는 전선으로 제작되었고, 마치 마네, 드가, 쇠라 그리고 피카소가 곡예사들을 묘사한 그림에서 그러했듯이 중력에 도전하는 개념들을 구현하였다. 중력에 대한 조각가들의 매혹은 조각가가 중력의 저장소, 즉 지구 그 자체를 다루는 예술인 '대지예술'에서 보다 깊이 표현되었다. 월터 드 마리아는 'Art Yard, 1961'라는 최초의 대지예술 작품을 만들었다. 그 작품은 사실 대상예술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해프닝'이었다.
Chapter 25. 나 / 우 리
분리된 공간과 시간이라는 우리의 세계에서 그러한 도식이 존재하는 유일한 단서들은 인과법칙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사건이 될 것이다. 그것에 대한 하나의 단서는, 진실에 대한 새로운 바탕들을 예견하는 듯이 이미지들을 혼란시키는 예술가들의 방법일 것이다. 예술가들의 직관이 보편적이며, 좀더 커다란 실재에서 운동에 대한 최초의 암시가 된다면 예술가들은 시대정신이 출현하는 것을 통해서 선지자의 독특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들이 아직도 인식할 수 없는 형태들을 만드는 예술가들은, 그들의 예술을 통해서 이러한 정신의 복합체를 발산시키는 원칙들을 포용하고 선언하는 것이다.
비평가들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색다른 목적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술가들의 작업이 진실로 시대정신의 발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회가 성숙되고 구성원들이 예술가들이 일찌기 획득하였던 것을 지적하는 동일한 잇점을 알게 될 때 분명히 회고될 것이다.
예술은 보편정신의 독특한 선구자이다. 모든 역사시대에 걸쳐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식은 문화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예술과 물리학의 분열을 창조한 인식의 바로 그 기원일 것이다.
Chapter 26. 오른쪽 / 왼 쪽
17세기 말 수학자 파스칼은 두 개의 상이한 정신의 상호 작용을 구분했다. 하나는 개념의 모든 면을 동시에 전체적으로 이해하도록 이끄는 지식에 대한 돌발적인 파악이고, 다른 하나는 연속적인 경향에 따라 진행되는 끈질긴 분석적 이성이라고 그는 각각 특징 지웠다. 비록 시인들이나 미술가들, 그리고 신비주의자들이 이러한 개념을 오랫동안 파악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파스칼은 정신의 이러한 이원성을 개념화한 최초의 과학자였다.
※ 우뇌의 특징
- 순수함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격세유전적 유산에 가까우며, 오른쪽 뇌는 웃음이나 믿음, 애국심, 환희, 사랑, 심미적인 기쁨과 조화와 같은 우리 감정의 복잡한 감정표현 상태를 식별하며, 이러한 것에 있어 좌뇌보다 더 능력이 있다.
- 이미지에 대한 이해력이다. 오른쪽 반구는 심신통일적인 방식으로 광대한 그림을 인식하고, 잠깐 봄으로써 전체적인 장면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은 전체에서 부분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고 몇몇의 조각들로부터 완전한 영상을 구성한다.
- 감정 상태와 이미지의 균일한 조화로부터 일어나는 정신적 혁신이다. 감정상태가 휴식할 수 있는 선반으로 이끄는 정연한 사다리가 없다해도, 그들은 메타포라는 마술 융단에 의해 거기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 음악감상 능력이다. 음악은 시간적 진행 과정에서 나오는 단순한 소리와는 다르다. 그것은 오른쪽 되엽이 상이한 근원들에서 나오는 다양한 동시적 소리들을 통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것을 우리는 음악이라고 부른다.
※ 좌뇌의 특징
- 왼쪽의 뇌반구는 오른쪽 손을 통제하며 존재보다는 행동과 관련된다.
- 언어의 생성과 이해 그리고 그에 따른 문법, 구문, 의미론등의 복잡함은 모두 왼쪽 뇌로부터 나온다.
- 언어의 발전과 함게 질의하고 논쟁한다.
- 숫자감각이다. 수학을 통해서 왼쪽 뇌는 숫자들을 뜻하는 무의미한 상징들을 단순한 산술로 재배열할 수 있다.
Chapter 27. 공 간 / 시 간
인간두뇌의 다른 반구에서 서로 나오는 대등한 공간과 시간은, 미술과 물리학의 분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구상에서 생명의 역사는 유클리드 공간의 세 벡터들과, 시간의 세 영속하는 상태들의 점차 강화된 이해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다.
가장 늦게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이 대등한 것의 모든 여석 가지 하부 차원을 개념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종이었는데, 그것은 인간만이 미래를 온전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아인슈타인 이후 지금에야 우리는 일곱 번째의 존재, 즉 시공의 분할할 수 없는 연속체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뇌의 오른쪽 면은 공간적 정보의 상황적 경지로 특정화되고, 왼쪽 부분은 시간적 순서로 차례로 인지되는 데이타를 종합한다. 이러한 배열은 이중적인 인간 두뇌에 있어, 실제가 시간의 컨베이어 밸트라는 3차원 공간의 확장적인 연쇄 속에 나타나는 임시적인 사건의 연속이라는 환경임을 강조하게 된다. 거의 2세기 전에 칸트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의 기본적 범주라고 가정했다. 사실 그것은 범주일뿐만 아니라, 각각은 상세히 분석된 거주 장소를 가진다.
Chapter 28. 디오니소스 / 아폴로
디오니소스의 음악은 주문으로 매료시키는 듯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폴로는 디오니소스의 음악을 혐오했고 대신 진지하고 사색적인 스타일을 더 좋아했다. 그의 악기는 수금이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하프, 바이올린, 비올라의 전신이다.
아폴로의 수금은 언제나 일곱 개의 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알파벳의 일곱 개 모음을 대표한다. 아폴로의 음악은 부드럽고, 질서정연하고, 디오니소스의 어지러운 리듬을 해독한다는 점에서 사고하기 위한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아폴로 음악의 제일가는 지지자인 플라톤은 디오니소스 악기의 선동적인 영향을 이해하고, 그의 저서 '공화국'에서의 아폴로의 현만이 애호될 것을 포고했다.
플라톤은 디어니소스의 플롯, 리듬악기 그리고 호른이 선동적인 악기라고 믿었다. 아폴로와 디오니소스로 대표되는 두 개의 반대되는 음악 양식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모든 관현악단에서 수금의 후신인 현악기들이 앞에 위치하며 위엄과 존경을 받는 반면 목관악기들과 호른은 그 뒤에 위치한다. 하지만 디오니소스적 형태인 째즈에서는 그 반대가 적용되는데 대체로 긴 현악기인 베이스는 위치와 역할 둘 다에서 배경을 맡는다.
아폴로는 현대 신경학자들이 왼쪽 뇌의 탓으로 돌린 모든 속성들을 대표한다. 반대로 디오니소스는 오른쪽 뇌의 모든 특징들의 완벽한 화신이다. 이오니소스의 수행원에는 음악, 연극, 댄스, 시, 회화 그리고 조각이 포함된다. 아폴로는 과학, 군사, 산업, 교육, 의학, 법률 그리고 철학을 주재한다. 디오니소스는 미술가의 전형이고 아폴로는 물리학자의 모범이다.
Chapter 29. 미 술 / 물리학
고전기 그리스에서 이성의 흥기가 신화의 헤게모니를 억압하기 이전에, 실용적인 지식의 보호자로써의 여신은 테크네(techne)였다. 그녀의 이름에서 오늘날의 단어 '테크닉'이 나왔으며, 그 안에는 단계적인 과학적 탐구의 관념이 전달되었다. 예술에 해당되는 그리스 단어들 중 하나도 또한 예술의 여신인 테크네였다. 그리고 그리스어 동사 티케인(tikein: 창조하다)도 그녀의 이름에서 나왔다. 테크네는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을 위한 영감의 역할도 한 것이다. 엄청난 수의 예술적 거장들과 과학의 많은 거인들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양 분야에서 상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을 다루었던 예술가들과 예술적 성향을 보여준 물리학자들이 있었던 반면, 양 분야에서 두드러진 공헌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이름이 다른 모든 사람들 이름 위에 우둑 서있다. 그는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이다. 그는 예술적 휴머니즘과 과학적 호기심을 갖춘 위인이었다.
로마 인들은 그리스 인들에게는 없었던 야누스라는 남성신을 도입했다. 야누스는 테크네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화에서 야누스는 두 얼굴을 가진 신이다. 야누스는 시작의 공간을 점하고 있으며 지나가는 것과 되어가는 과정을 주지하고 있으므로 시간상 한 순간에 앞과 뒤 둘다인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중심으로부터 미래의 가장자리까지 야누스는 동시에 두 관점을 자세히 조사한다. 이러한 두 가지 조망은 우리에게 우리가 세계를 보고 사색하는 방법을 바꾸게끔 한다. 조망 방향에 있어서 그럴듯하게 분기된, 미술가들과 물리학자들은 실재에 대해서 개정한 것들을 우리를 위해서 글이나 그림으로 보여준다. 이 글들은 학문 이외의 글로 인용해서 출판물에 인용하실 경우 저작권에 위배될 수 있답니다. 반드시'http://www.fractal.co.kr'의 마스터에게 허락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