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1. 서론
추상미술은 무엇인가
알프레드 바 Alfred H. Barr는 추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의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성을 지닌 존재가 되었을 때 진정한 '추상미술' 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 abstract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자연으로부터 이끌어내다', '추출하다' 이다.
용어의 어휘적 해석만 가지고는 추상회화의 정확한 개념을 설정하기가 애매하다. 미술에서 '추상'이라는 용어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구의 극단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된다.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던 칸딘스키는 인간의 내적 필연성, 정신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추상의 도래는 필연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연대신에 인간의 사유작용을 표현하는 것이 추상이라고 정의한다면 추상미술은 분명히 20세기의 발명이다.
추상은 1914년 제1차대전이 발발할 무렵인 1910-1913년 사이에 유럽에 감돌았던 전쟁의 기운과 함께 탄생되었다. 러시아의 말레비치와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제1차대전보다는 1917년에 봉기되었던 사회주의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추상회화를 탄생시켰다. 1930년대를 거쳐 형식적으로 관습화된 추상미술은 미국에서는 추상표현주의를 탄생시켰다.
2. 추상 표현주의
1) 추상 표현주의의 전개
표현적 추상은 ' 추상표현주의' 라고 명명되면서 미국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추상표현주의는 창조자에게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또한 관람자에게는 창조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추상표현주의 작품은 절대논리의 불확실성 자체를 표현하는 것이다.
추상표현주의는 1942 - 46년에 페기 구겐하임과 베티 파슨 화랑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지면서 본격적으로 하나의 미술사조로서 형성된다. 페기 구겐하임은 1942년에 화랑 '금세기의 미술'을 개업하였다. 이 화랑은 비록 5년 동안 운영되어 1947년에 문을 닫았지만 뉴욕에서 활동하는 미술가. 평론가, 화상들이 서로 만나고 토론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한 장소였다.
추상표현주의라는 용어의 유래는 칸딘스키의 표현적 추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평론가 알프레드 바는 1929년에 미국에서 전시되고 있었던 칸딘스키의 초기작품을 가리켜 형식은 추상적이고 내용은 표현주의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결국 표현적 추상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 용어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면 유럽에서 일어난 표현적 추상인 '앵포르멜' 운동도 포함되고, 더 넓게는 표현적인 느낌을 주는 추상 모두가 추상 표현주의에 해당된다.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중반에서 1950년대 초반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전개된 진정으로 미국적인 미술사조이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작가 개개인의 작품의 유사성이나 어떤 공통된 프로그램과 특정한 미술개념을 내보이기 위해 집단화된 미술그룹이 아니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선언서를 발표한 적도 없고 행동지침이나 전체적인 이론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젊은 미술가들은 미국 미술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자각을 갖고 독자적으로 조형적 형태를 발전시켰다.
액션페인팅은 캔버스 기능의 새로운 정의를 의미한다. 캔버스는 실재 혹은 허구의 대상을 재창조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가 각자의 행동을 위해 제공되는 행동의 장이 되었다. 액션페인팅은 신체를 통해 정신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폭발하듯 분출되는 감정과 본능적 직관을 신체행위를 통해 캔버스에 표현하는 것을 '액션 페인팅'이라고 명명한다.
1952년 미술평론가이자 시인이었던 로젠버그가 '아트 뉴스' 12월호에 화폭이 행동의 장 그 자체였던 화가들의 작업을 규정하기 위해서 '액션 페인팅' 이라는 용어를 제안하였고 그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화가는 무엇을 그리겠다는 의도를 갖고 화폭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물감이 우연적으로 만들어 내는 이미지를 위해 행동을 결정하고 화면과 관계를 맺는다. 초벌 그림인 크로키를 미리 해놓고 캔버스위에 옮겨 작업하는 전통적 방식은 작가의 감정, 정신자체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임 정신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고착시키기 위해 캔버스를 필요로 할 뿐이다.
호프만은 추상회화에서 색채의 '밀고 당기는 작용'을 연구하여 미국의 아방가르드 미술 형성에 교육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그는 독일 태생이며 1932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호프만은 색채들의 상호작용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는데, 이것이 추상표현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는 어두운 색들은 후퇴하고 밝은 색들은 진출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이용해서 회화적 공간을 탐구하였다. 그의 색채 상호관계와 공간 탐구는 미국 화가들이 회화의 궁극적인 조형성을 추구하는데 큰 자극이 되었다.
잭슨 폴록은 와이오밍 주 코디에서 태어나 1930년에 뉴욕에 와서 미술학생연맹의 벤튼에게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벤튼은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학생들에게 색채나 명암법을 가르치기보다는 16-7세기의 대가들인 루벤스, 틴토레토, 엘 그레토의 그림들을 분석하면서 구성능력을 길러 주는 데 주력했다. 특히, 벤튼의 벽화 강의를 통해 폴록은 호세 오로즈코와 알파로 시퀘이로스의 벽화에 관심을 가졌으며, 또한 19세기 미국 회화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에 속하는 라이더의 어두우면서도 낭만적인 바다 풍경화에 감명을 받기도 했다. 폴록이 추상표현주의의 발전에 미친 결정적 영향은 캔버스를 이미지가 탄생되는 '무한한 장'으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회화의 공간은 화가, 물감, 캔버스 간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신체의 제스처에 의해 계속적으로 뿌려지는 물감의 분출은 화면을 바탕과 형상이 구별되지 않는 복합적인 세계로 만든다. 화가는 화면의 구성을 정교하게 계산하고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자유로운 신체행위 속에 내재된 무의식에 의해 회화의 공간이 결정되도록 내버려 둔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전반적으로 동양미술에 관심이 깊었다. 흑백의 대담한 색조, 여백의 존중, 힘찬 속도로 그어지는 선 등은 외형적으로 동양미술과의 접근을 가능케 했다. 극동의 서체 역시 팔의 힘과 속도감을 중요시 여긴다. 추상표현주의자들은 힘찬 기백을 보여주는 서체의 외형적 형태에서 새로운 추상의 조형성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클라인, 마더웰등의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동양문자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것도 아니었으며, 서체의 다양한 종류와 문인정신등을 정확히 알지도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이 동양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할지라도 피상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추상표현주의의 원천은 어디까지나 서양미술의 역사적 문맥 안에 있다.
폴록의 격렬한 신체행위만큼 강렬하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액션 페인팅을 발전시킨 주요 작가는 네덜란드 태생의 미술가 윌렘 드 쿠닝이다. 그는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1916년부터 1925년까지 로테르담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드 쿠닝이 미술학교에 다닐 당시는 몬드리안과 반 되스버그가 드 스틸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하던 시기였다. 1926년 미국으로 온 드 쿠닝은 1940년까지는 자코메티를 연상시키는 인물화, 초상화를 그렸다. 그 후, 고르키의 친구가 되었으며 고르키를 통해 추상표현주의와 연관될 수 있는 젊은 미술가들과 교류하였다. 이후 1950년경부터 회화에서 주제는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결론짓고 다시 구상적 형상을 채택하였다. 그가 채택한 형상의 이미지는 '여인'이다. 쿠닝의 '여인' 연작은 성의 상징이나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여신을 연상시키며 또한 뭉크의 회화에서 피를 빨고 있는 흡혈귀 형상의 여인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추상표현주의자들 개개인의 양식은 독자적이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장식용 회화가 아니라 거대한 캔버스을 사용해서 화가, 관람자, 회화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만들고 또한 벽화와 같은 개념을 설정하였다는 것이다. 거대한 캔버스의 추상표현주의 회화를 바라볼 때, 관람자들은 회화에 둘러싸여 마치 어떤 환경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관람자는 회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고 화면의 애매한 공간으로 인해 감정은 더욱 고조된다. 이 같은 추상표현주의 특성은 액션 페인팅과 1950년대에 크게 발전하는 색면파 화가들에 의해 더욱 강조된다.
색면파 화가들은 액션 페인팅 화가들과 달리 화가의 감정 혹은 본능적. 감성적 반응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감정을 정화시키고 절제시키면서 철학적 의미를 회화에 부여하였다. 액션 페인팅과 색면파라는 이 두 개념은 추상표현주의라는 애매한 호칭으로 불리던 뉴욕화파의 커다란 흐름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액션 페인팅이 신체의 제스처를 가지고 우리를 회화의 세계로 안내하였다면 색면파 회화들은 우리를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색면파의 대표적 화가로는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크리포드 스틸, 애드 라인하르트, 아돌프 고틀리브등을 꼽을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오면 뉴욕 화단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열기는 시들해지고 대중매체를 이용한 새로운 미술사조인 '팝 아트' 가 일어나게 된다. 추상표현주의는 신진 세대들이 합류하면서 또 다른 방향으로 탐구된다. 후기 회화적 추상화가들은 화면의 공간으로 착각될 수 있는 어떠한 깊이도 용납하지 않았고, 평평한 표면을 지닌 캔버스와 완전하게 일치되면서 조화를 이루는 완전평면의 형태들을 지닌 자유로운 색채를 강조했다. 그들은 추상표현주의를 계승한 제2세대의 아류들은 아니다. 엘즈위스 캘리 같은 화가는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평면적이고 명확한 형태들은 몬드리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2) 유럽의 앵포르멜 미술
전후에 파리 화단을 중심으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비견할 만한 미술운동이 일군의 작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뒤뷔페, 아르 브뤼라고 불리는 코브라 그룹 작가들, 알레친스키 등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본능을 원색과 거친 재료로 표현하면서 새로운 양식을 찾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르통, 슈나이더 술라주, 마디외 등이 신체 제스처를 이용한 표현적인 붓놀림에 몰두하였다. 그들은 표현기법에서는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정신의 풍요로운 자유와 본능의 자발성에 의한 무정형의 형태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자 하였다. 그들이 탐구한 미술형식에 '앵포르멜', '타시즘', '다른 미술'이라는 용어가 붙었다.
앵포르멜 회화를 향한 새로운 미술의 발전방향은 1944년 10월에 뒤뷔페의 첫 전시회에서 예고되었고 그 다음 포트리에의 '인질' 연작을 통해 그리고 연속적으로 볼스, 알레친스키, 반 벨데, 코브라 그룹이 등장하면서 활기차게 추진되었다. 앵포르멜 화가들은 구상적 형태와 재료를 통해 정신성의 문제를 거론하기도 하였다. 뒤뷔페, 포트리에, 볼스등은 기호적 측면에서 대상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상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회화의 주제를 인간과 실제 대상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실재의 형태와 의미에 일치하는 기호를 찾는 것이 아니라 기호로 시작해서 기호로 의미를 찾는다.
포트리에, 뒤뷔페등이 동시대 사람들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겪는 체험을 증언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면, 아르통, 마티외, 술라주등의 파리 화단의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시대적 아픔의 직접적 체험의 재현과 기록성 있는 주제 그리고 사소한 일화적 이야기를 거부하고 순수 추상회화의 조형성을 신체의 제스처와 더불어 탐구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1947년 드루앵 화랑에서 타피에와 마티외가 기획한 전시회는 앵포르멜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연다. 마티외는 앵포르멜이라는 용어대신에 '서정 추상'이라고 명명하면서 신체의 제스처를 이용하는 제작방식으로 존중하는 추상회화를 결집시킨다. 여기에서 보여준 서정적 추상은 앞에서 고찰한 뒤 뷔페, 포트리에의 작품과는 달리 미국의 액션 페인팅과 유사하게 신체 제스처를 통해 본능의 자발성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미국 화가들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감미롭고 서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서정적 추상' 이라고 부른다. 서정적 추상에 속하는 앵포르멜 화가들은 1930 - 40년대에 파리에서 크게 유행한 후기 신조형주의와 기하학적 추상회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체의 제스처를 이용해서 자연의 재현, 어떤 현실 등을 표현한다는 전통적인 고정관념의 역할을 거부하고 기존의 모드와 표상을 해체시키고 변화시켰다. 신체의 행위를 이용한 창작방법은 급속히 유행하게 되고 마티외를 비롯해 아르퉁, 술라주등의 대가를 배출한다.
3.결론
인간이 주체가 되기위해 추상미술은 탄생되었다. 추상 탄생 이후 약 100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초창기 추상화가들의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추상은 현 시대의 여러 현상들과 결합하면서 인류행위의 정신성을 표현하는 근본적인 형태언어가 되고 있다. 20세기 초부터 표현적 추상과 기하학적 추상회화로서 반목하거나 혹은 상호의존하면서 발전해 왔다. 일반적으로 이 두가지 경향의 추상미술은 교대하면서 선두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다.
추상미술은 자신이 존재를 확인하기를 원했던 인간들의 욕구에 의해 탄생되었고 오늘날 추상형태, 사진, 영상 미디어, 컴퓨터, 레이저, 홀로그램 등의 여러 기술들과 제휴되어 내면세계를 객관화하는 인간의 무의식적 욕구충족의 수단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김현화지음. 『20세기 미술사』. 한길아트. 1999
노버트 린튼. 『20세기의 미술』. 윤난지 옮김. 예경. 1993
월간 미술.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