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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용어

표현주의 (EXPRESSIONISM )

작성자진상용|작성시간05.10.28|조회수477 목록 댓글 0

 

 

   표현주의 (EXPRESSION‎ISM A.D 1911 - 1920)


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자연의 모방을 거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1911년 마르크와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색은 작가 개인의 내부생명, 즉 자아() ·혼()의 주관적 표현을 추구하는 ‘감정표출의 예술’에 있다. 이 운동은 우선 회화에서 시작되어 다른 조형예술을 거쳐 문학 ·연극 ·영화 ·음악에까지 미쳤다.

표현주의(表現主義,Expressionismus)

예술사와 비평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 예술의 기본 목적을 자연의 재 현으로 보는 것을 거부하며 르네상스 이래 유럽 예술의 전통적 규범을 떨쳐버 리려 했던 20세기 예술운동 중의 하나. 표현주의자들은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이며 회화의 선, 형태, 색채 등은 그것의 표현 가능성만을 위해 이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구성(구도)의 균형과 아 름다움에 대한 정통적 개념은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시되었 으며, 왜곡은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표현주의가 명확한 강령으로 자리잡게 된 것을 1905년경부터지만 그 싹이 보 이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이다. 표현주의 운동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으나 다른 나라에서도 거의 동시에 전개되었다. 특히 독일의 경우 1933년 나치의 탄압으로 해체되기 전까지 다른 어떤나라보다 표현주의가 발전했다.

표현주의는 야수파, 초기의 입체파, 인상주의, 그리고 의식적으로 모방을 거 부한 다른 여러 화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 독일 비평가들이 1911년 처음 으로 사용한 용어다. 그러나, 이 용어를 구뤼네발트나 엘 그레코 같은 화가들 에게 적용함으로써 용어 사용에 약간의 혼란을 가져왔고, 더 넓은 의미로는 낭반주의나 바로크와 유사한 미학· 비평 용어로 통용되기도 했다. 19세기 말 이전엔 형식의 아름다움이나 구성의 조화가 감성적인 메시지의 명료한 전달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 규범(관습)의 완전한 파괴는 없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는 '표현주의'와 20세기 예술의 한 경향으로서의 '표현주의'는 당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20세기 미술에서의 표현주의는 반 고호와 고갱을 선두로 하고 있다. 비록 반 고호가 스스로 인상주의 전통에 속해 있다고 생각했고 인상주의자의 밝은 색 채를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그의 감성적·상징적 특성은 색채를 단지 빛을 표 현하는 것에만 한정하지 않고 더 적극적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 용한데 있다. 그는 자연을 의식적으로 '인간의 심각한 정열을 표현하는 것'이 라고 과장했다. 이것이 색채를 감성적· 상징적 맥락으로 처음 사용하게 된 경우이며 선 또한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선의 방향이 미술가가 대상에 대해 느낀 감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기 때문이었다.

고갱은 엄밀한 의미에서 표현주의의 중요한 요소가 된 상징주의의 규범을 명확하게 받아들인 최초의 화가였다. 에밀 베르나르의 영향을 받은 고갱은 모든 형태를 단순화· 평면화시켰고 사실주의와 유사성이 전혀 없는 색채를 사용했다. 예 를 들어 (천사와 싸우고 있는 야곱)은 배경의 붉은 색 때문에 더욱 선명해 보 인다. 새로운 양식에 대한 내용으로 고갱은 내용의 단순성을 추구했다. 초기엔 브리타나 농민 사회에서, 후기엔 남태평양의 섬에서 그 단순성을 찾았다. 유럽 도시문명에 염증을 느낀 고갱은 이후 표현주의자들이 열중하게 된 원시 미술 이나 민속 미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미 반 고호와 고갱을 알고 있던 노르웨이 대생의 뭉크는 불안·공포· 애 정· 증오와 같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을 격렬한 색채와 왜곡된 선으로 표현해, 그 가능성을 탐구한 표현주위위 직접적인 선구자 중의 하나이다. 자신 의 강박관념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한 그는 그래픽 기법의 단순한 직접성을 원용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특히 독일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에 그 영 행은 바를라하의 조각에까지 이르는 등 방대했다. 즉 바제를 표현하는데 적용 했다. 한편 그로테스크하고 끔직한 가면을 이용해 인간의 본성 속에 잠재된 비열한을 그린 벨기에 태생의 앙소르와 독일 표현주의에 영향을 미친 스위스 태생의 호들러도 표현주의 초기의 중요한 작가이다.

표현주의 그룹은 1905년 독일과 프랑스에서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야수파는 반 고호와 고개으이 이론을 그들의 회화에 결합시켰는데 1908년 이 유과의 리 더격인 마티스는 그들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도 내개 추구 하는 것은 표현이다. 색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표현을 도와주는 것이다. 가 을 풍경을 그리기 위해 나는 어떤 색채가 그 계절에 적합한가를 기억해내려고 애 쓸 것이다. 나는 계절이 주는 감각에 의해서만 영감을 얻는다." 마티스는 이러한 생각을 인물화에도 적용했다. 마찬가지로 드랭은 풍경화에, 루오는 강 렬한 힘과 단순성에 의한 새로운 종교 회화에 이것을 적용했다. 1905년 드레스덴에서 다리파가 결성되었고 1906년 이들의 첫 전시회가 열렸다.

야수파의 회화가 가장 격렬한 그림에서도 구성의 조화를 무시하지 않았고 색 채도 장식성과 서정성을 잃지 않았던 반면, 독일에서는 이런 억제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즉 형태와 색채를 통한 왜곡은 기존 질서에 대한 반항과 창작 으로 향한 욕망의 심리적·상징적 표출이었다. 1913년 키르히너는 "우리는 직 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순수한 창조적 충동을 유발하는 모든 색채를 수용한 다."고 썼다. 그로므로 독일 미술은 고전적 기풍에 젖어있는 프랑스 미술의 입 장에서 보면 낯설고 거친 그리고 미완성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다리파에 가담했던 놀테는 아소르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코코슈카가 그린 혼란스러운 선과 과장된 색채의 풍경화와 초상화도 표현주의 작품의 전형이 되었다. 이러한 점은 베크만의 작품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스미스를 제외하면 표현주의의 모든 특징이 영국의 취향과 어울 리지 않았다. 루이스와 소용돌이파의 실험은 비록 그들을 표현주의라 분류하 더라도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진 것이어서 규모가 무척 작았다. 프랑스 야수파는 마티스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한동안 지지부진하게 전개되 다가 1907년 이후 형식적인 입체파와 유사한 점이 많았고 보치오니와 카라는 소용돌이치는 추상적 형태가 담긴 상징주의를 통해 기계시대의 정신을 표현하 고자 했다.

1911년 마르크와 러시아 출신 칸딘스키 등은 청기사 그룹을 조직해 같은 해 뮌헨에서 중요한 전시를 개최했다. 마르크는 동물을 통해 세계를 다소 감상적 으로 표현했고 곧 순수 추상으로 전환했다. 1911년 칸딘스키는 지각심리학 연 구에 기초해 <예술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썼다. 그는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절대 순수를 표현하고자 함으로써 절대주의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 한동안 청기사 그룹에 몸담았던 클레는 유하적인 표현을 시도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 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했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칸딘스키나 클레 같은 화가들이 여러 해동안 바우하우 스에서 그들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표현주의는 독일을 풍미하게 되었다.

청기사 그룹의 미술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햤고 후배 세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칸딘스키나 클레 같은 화가들이 여 러 해동안 바우하우스에서 그들을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표현주의는 꿈속의 장면을 그린 샤갈이나 격렬한 감정을 표현한 수틴에 의해 명맥이 유지 되었다. 영국에서는 매튜스미스가 정물이나 인물 습작을 통해 야수파적인 그 림을 계속 그렸다. 신즉물주의로 알려진 돌일의 새로운 리얼리즘(마술적 리얼 리즘)을 전개한 그로츠와 딕스는 초기 표현주의에서 고안된, 왜곡과 과장이 심한 작품을 그렸다. 표현주의는 표현주의의 직속 후에라 할 수 있으며 많은 그룹들이 야수파와 다리파의 방법을 현재까지 뒤따르고 있다.

 

현대 표현주의의 창시자 뭉크

현대 표현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뭉크.  그의 작품「사춘기」「절규」등을 보면 그는 노스탤지어와 공포, 절망으로 가득찬 내면세계를 표현해낸다. 「절규」는 표현주의의 대표적 작품으로 격렬한 색채, 터치의 소용돌이, 극적인 원근들은 절망적으로 일그러진 인물의 내면적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뭉크 :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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