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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용어

테마로 보는 미술 : 사조와 장르 / 매너리즘 미술

작성자숲향기|작성시간11.04.19|조회수1,40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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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매너리즘에 빠지다’라는 표현은 틀에 박힌 방식이나 태도에 젖어 그것을 반복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이 서양미술의 한 양식을 가리키는 ‘매너리즘(Mannerism)’이라는 용어에서 유래한 표현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기로 넘어가는 1520년경부터 1600년 사이를 풍미한 양식을 일컫는데, 이 시기에 전개된 미술이 기존의 방식이나 형식을 답습한 미술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의 이 명칭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이자 고고학자 루이지 란지(Luigi Lanzi)가 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고전주의자 란지의 눈에 16세기 전성기 르네상스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미술은 그가 자신의 저서 [이탈리아 회화사(Storia pittorica della Italia)]에서 밝혔듯이 한 마디로 “미치광이와 같은 형상들”이었다.

 

 

자연을 대신해 뛰어난 예술작품 자체가 모델이 되다


그러나 란지가 혹평한 이 새로운 미술의 경향이 발생 당시부터 이렇듯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원래 매너리즘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마니에라(maniera:방식)’에서 찾을 수 있는데, 화가 첸니노 첸니니(Cennino Cennini)가 저서 [미술에 대한 책(Il libro dell'arte)](1437)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이 단어에는 다른 미술가들이 ‘보고 따를만한 방식’이라는 중립적인, 혹은 보다 긍정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었다. 당시 미술가들은 훌륭한 스승이나 대가들의 마니에라를 일관성 있게 따르도록 권고되었던 것이다. 이후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가장 위대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Le vite de' piu eccelenti pittori, scultori e architettori)](1550)에서 본격적으로 마니에라가 언급되었는데, 바사리에 따르면 마니에라는 자연과 사물의 충실한 모방에 대비되는 예술가 개개인의 주관적 표현, 독특한 스타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다와 백조] 1503~1507년
종이에 잉크와 검은색 분필, 16x13.9cm, 데본셔 컬렉션, 체즈워스.
레오나르도가 이 주제와 관련해 남긴 두 점의 드로잉 가운데 하나이다. 유화로도 제작되었는데 망실되었으며, 그의 제자 체사레 다 세스토(Cesare da Sesto)를 통해 모사된 작품이 전한다.

라파엘로 산치오 [레다와 백조] 1505~1507년
펜과 잉크, 분필, 31x19.2cm, 로얄 컬렉션, 윈저.
망실된 레오나르도의 유화 작품에 영향 받아 그린 라파엘로의 드로잉이다. 체사레의 모사 작품과 비교해보면 원작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16세기 초 르네상스 미술은 전성기를 맞아 1400년경부터 미술가들이 탐구해온 인체 묘사와 원근법, 공간 구성에서 거의 완벽의 경지에 들어섰다. 여기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라는 세 거장의 역할이 매우 컸다. 미술가들은 이 대가들의 방식, 즉 마니에라를 모범으로 삼고 너도 나도 이를 습득하고자 했다. 이제까지의 르네상스 미술이 자연을 관찰하고 정확하게 묘사하여 조화를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1510년대 이후 미술가들은 자연을 대신하여 뛰어난 예술작품 자체를 모델로 삼게 되었다.

 

체사레 다 세스토 [레다와 백조] 1505~1510년
패널에 유채, 69.5x73.7cm, 윌턴 하우스, 솔스베리.
레오나르도의 제자였던 체사레가 스승의 작품을 모사한 것이다. 원작인 레오나르도의 작품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폰토르모 [레다와 백조] 1512~1513년
나무에 유채, 55x40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이 작품이 폰토르모의 작품인지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레오나르도의 영향을 받은 폰토르모의 초기 작품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체사레의 모작과 비교했을 때 원작의 유사성과 함께 폰토르모만의 특성 역시 가미된 작품이다.

 

 

 

답습인가? 파괴인가?


13세에 피렌체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방 견습생으로 시작해 화가가 된 자코포 폰토르모(Jacopo Pontormo) 역시 대가들의 마니에라를 습득하는데 열중했다. 그러나 피에로 디 코시모(Piero di Cosimo), 프라 바르톨로메오(Fra Bartolomeo della Porta), 그리고 미켈란젤로와 같은 스승과 거장의 방식을 흡수하면서 그것은 곧 그만의 방식으로 변형되었다. 폰토르모가 24세에 그린 [이집트에서의 요셉]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프란체스코 보르게리니(Francesco Borgherini)의 신혼방에 걸릴 용도로 제작된 이 작품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야고보의 아들 요셉의 일생을 그린 4점의 연작 가운데 마지막 작품이다. 화면 안에 주인공 요셉은 여러 차례 등장한다. 왼편에 보라색 망토를 입고 있는 파라오에게 자신들의 형제를 소개하는가 하면, 오른쪽 하단에서는 붉은 두건을 두르고 굶주린 이집트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주기도 한다. 그 위로 야고보의 임종을 앞두고 침대 주위에 모인 가족들과 붉은 두건의 요셉이 또 다시 보인다. 르네상스 대가들이 그간 이룩해온 공간의 조화와 균형, 원근법에 입각한 비례와 건축적 묘사에서 벗어난 기이한 구성은 분명 기존 대가들의 방식과는 달랐다. 그것은 새로운 방식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폰토르모 [이집트에서의 요셉] 1515~1518년
나무에 유채, 96x109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1525년 로도비코 디 지노 카포니(Lodovico di Gino Capponi)의 의뢰로 제작한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은 초기 매너리스트로서 폰토르모의 역량을 강하게 드러낸다. 화면 중앙은 비어있고 그 주위로 예수의 시신과 충격에 빠진 마리아, 그리고 이들을 부축하는 인물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현실적인 공간 설정과 낯선 색채들은 관람자로 하여금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하지 못하고 부유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문득 예수의 시신을 어깨로 받치고 있는 남자의 슬픔과 불안에 찬 시선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화가의 그 강렬한 주관적 묘사에 슬며시 동화된다. 르네상스 미술의 통일성과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폰토르모의 이러한 방식은 수태고지를 받은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장면을 그린 [방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앞쪽의 두 여인은 정면을 보고 있는 뒤쪽의 두 여인과 같은 인물들이며 부풀려진 몸체와 인물들의 흐린 초점, 각기 다른 빛의 방향, 배경과의 부조화 등은 인위적이면서도 신비롭다.

  

폰토르모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 1528년
패널에 유채, 313x192cm, 산타 펠리치타 교회, 피렌체

폰토르모 [방문] 1528~1529년
패널에 유채, 202x156cm, 산 미켈레 성당, 피렌체 카르미냐노

 

 

폰토르모의 동료이자 프랑소와 1세의 궁정 퐁텐블로에서 활동하기도 한 로소 피오렌티노(Rosso Fiorentino)와 파르마 출신의 일명 파르미지아니노(Parmigianino) 역시 이탈리아의 매너리즘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들이다. 로소의 [피에타] 화면 전면은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강렬한 색채와 동작으로 표현된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다. 화면 가득 한 덩어리를 이룬 인물들을 따라가노라면 고전주의를 지향하는 르네상스 미술의 조화와 안정과는 다른 리드미컬한 구성이 느껴진다.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는 과장과 변형으로 나아간 매너리즘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거의 10등신에 가까운 성모의 목은 길게 늘여져 있으며 무릎에 누운 아기 예수는 너무 커서 기괴해 보인다. 천사들로 묘사된 소년 소녀들은 왼쪽 구석에 몰려있고 배경으로 그려진 거대한 기둥과 그 앞에 작게 그려진 수도자는 전경의 인물들과 전혀 맞지 않는 비례를 보여준다. 완벽한 조화와 균형의 방식에서 더 나아가기 위해 미술가들은 그것을 깨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 1  로소 피오렌티노 [피에타] 1537~1540년
    캔버스에 유채, 125x159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NM)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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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파르미자니노 [목이 긴 성모] 1534~1540년
    패널에 유채, 216x132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

 

 

베네치아, 스페인 미술 속 매너리즘


피렌체에서 시작된 새로운 미술의 경향은 베네치아와 스페인 미술에서도 발견된다. 먼저 베네치아에서 활동하며 잠시 티치아노의 제자이기도 했던 틴토레토(Tintoretto)의 [최후의 만찬]을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과 비교해보자. 먼저 레오나르도의 작품은 화면 중앙에 보이는 예수를 중심으로 원근법적으로 묘사된 공간 안에서 안정된 구도와 시점을 형성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5~1497년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460x880cm,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치에 교회, 밀라노
The Bridgeman Art Library - GNC media, Seoul  Bridgeman Art Library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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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토레토의 작품에서도 예수가 전체 화면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대각선으로 놓인 식탁과 이를 경계로 왼편은 제자들, 오른편은 음식을 나르는 이들이 불균형하게 배치되어 복잡하고 산만한 구성을 취한다. 여기에 밝게 빛나는 예수의 후광이 화면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온화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과 대조적으로 틴토레토의 작품은 베네치아파 화가답게 빛과 색으로 변형을 가하여 역동적이고 강렬한 분위기를 이루어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르네상스 전성기 미술뿐만 아니라 피렌체 매너리즘과는 또 다른 베네치아 매너리즘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1594년
캔버스에 유채, 363x568cm, 산 지오르지오 마조레 교회, 베네치아

 

 

크레타 섬 출신으로 스페인의 후기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엘 그레코(El Greco)의 독특한 작품 경향은 그를 매너리스트로 분류하는데 일조했다. 베네치아와 로마 방문을 통해 틴토레토와 미켈란젤로 등의 영향을 받기도 한 그는 종교적인 주제를 그만의 왜곡된 형태와 강렬한 색채, 낯선 장소와 광원을 알 수 없는 빛 등으로 표현해냈다. 자신의 죽음을 계시 받은 예수가 번민에 휩싸여 기도하는 장면을 그린 [감람동산의 그리스도]는 거의 동일한 구성으로 여러 점이 제작되었다. 전경에는 잠에 빠진 제자들이, 후경에는 붉은 옷을 입은 예수와 천사가 등장한다. 구름이 잔뜩 낀 어두운 밤 하늘과 인물들의 극적인 자세, 그리고 화면 가득 어지러운 윤곽선들로 인해 관람자는 마치 현실에서 벗어나 환상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받는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독일 미술사학자 막스 드보르작(Max Dvoràk)은 이러한 엘 그레코의 작품이 르네상스 물질주의를 대체하여 인간의 내면세계가 표출된 것이라고 보았다. 즉 사실적인 표현의 한계를 초월함으로써 획득한 비현실성과 추상성이 바로 매너리즘 양식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드보르작의 이 같은 지적은 17세기 이래 평가 절하되었던 매너리즘을 재평가하는 단초가 되었다.

 

엘 그레코 [감람동산의 그리스도] 16세기 말경
캔버스에 유채, 138x92cm, 릴 미술관, 릴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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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 [요한 묵시록의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 1608~1614년
캔버스에 유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여러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실로 매너리즘은 기존 르네상스 미술의 전형을 파괴하는 반고전주의적이고 실험적인, 다분히 탈고전주의적인 성향이 지배적이다. 이는 당시의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과도 연관 지어볼 수 있는데, 루터의 종교개혁, 지리상의 발견, 지동설 등으로 인해 유럽은 변화와 혼돈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탄생한 매너리즘이 조화와 균형보다는 예술가의 주관적 표현이 강조되는 과장과 왜곡, 일탈과 변형의 독창적인 양식으로 나아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매너리즘의 특징이 우리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특징들로부터 오늘날 현대미술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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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수 / 미술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 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고자 하며, 현재 문화센터와 대학부설교육원에서 대중들을 위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발행일  2011.01.15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Wikipedia, Yorck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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